아케메네스 왕조 관련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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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어: راه شاهی
영어: royal road
1. 개요
고대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시대에 만들어진 도로. "왕의 길"이라고도 부른다.2. 특징
페르시아는 제국의 서쪽 끝에 있는 리디아 속주의 주도 사르디스에서 바빌로니아 속주의 주도이자 제국 제1의 도시이자 행정수도 바빌론을 거쳐 왕실 겨울수도이자 제2의 도시인 수사에 이르는 일종의 고속도로를 만들었고, 요소마다 역참과 수비대를 갖추어 당시 도보 여행으로 90일 걸리던 거리를 파발마로 7일만에 주파할 수 있었다고 한다.수도 수사에서 서쪽 끝의 대도시 사르디스를 잇는 길이 2,699km의 거대한 길이었는데, 맨 처음에는 다리우스 1세가 왕명을 빠르게 전달하기 위해 만들었지만 상인들도 쓰면서 국내 교역이 크게 촉진된다. 다리우스는 곳곳의 요충지마다 요새와 숙소를 세우고 상인들이 중간중간 쉬어갈 수 있도록 했다. 워낙 길이 깔끔하게 손질되어 있었던 덕에 대규모의 물량 이동이 가능했고 고대 시대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물산이 제국 곳곳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1]
유클리드의 유명한 발언인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다."에서 말하는 왕도(王道)가 바로 이 길을 말하는데, 유클리드는 학문을 배우는 데에는 이처럼 빠르게 갈 수 있는 길이 없으며 열심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것이다.[2]
3. 루트
왕의 길은 페르시아의 소아시아 총독부가 위치한 사르디스에서 출발해 아나톨리아 내륙을 거쳐 옛 아시리아 제국의 수도 니네베를 통과했다. 니네베를 통과한 왕의 길은 아래로 꺾어져 행정수도 바빌론으로 향했다. 그리고 바빌론에서 2개로 나뉘어 하나는 겨울수도 수사와 종교수도 페르세폴리스로, 나머지 하나는 여름수도 엑바타나를 거쳐 저 멀리 동방의 실크로드로 직통이었다.[3][4] 다리우스 1세는 곳곳 요충지마다 초소와 숙소를 설치해 상인과 파발들이 중간중간 쉬어갈 수 있게 했는데, 덕분에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의 파발보다 더 빠른 것은 없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4. 관련 문서
[1] 특히 황제가 보낸 파발꾼들이 15일 안에 제국 그 어디든 닿을 수 있었다는 말이 있다.[2] "기하학에는 지름길이 없다"고 번역했으면 더 의미가 쉽게 와닿았겠지만 처음에 왕도라고 번역하는 바람에 이대로 굳어졌다.[3] 파발꾼들이 말을 타면 무려 9일만에 왕의 길을 처음부터 끝까지 주파할 수 있었다고 한다.[4] 다리우스 1세가 깔아놓은 길 인프라가 워낙 좋아서 후대 로마 제국도 이 왕의 길을 조금만 보수하고 그대로 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