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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궁전 부분
키루스 2세 영묘
유네스코 세계유산 | ||
이름 | 한국어 | 파사르가대 |
영어 | Pasargadae | |
아랍어 | بازارقادش | |
프랑스어 | Pasargades | |
국가·위치 | 이란 파르스 주 | |
등재유형 | 문화유산 | |
등재연도 | 2012년 | |
등재기준 | (i)[1], (ii)[2], (iii)[3], (iv)[4] | |
지정번호 | 11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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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페르시아어: پاسارگاد영어: Pasargadae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첫 번째 수도.
현재 이란의 파르스 주에 있다. 유적지의 넓이는 1.6 제곱킬로미터이고 유적지에는 페르시아 왕궁과 정원, 마우솔레움, 그리고 키루스 2세의 무덤 등이 있다. 200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되었다. 기원전 546년 키루스 2세에 의해 세워지기 시작했다. 키루스가 전투에서 전사하여 키루스 생전에는 완공되지 못했고 기원전 529년이 되어서 완공되었다. 한동안 페르시아의 수도였지만 키루스의 아들인 캄비세스 2세가 수도를 슈쉬로 옮겨 수도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다.
첫번째 수도라는 역사적 사실 덕분에 한국의 경주, 일본의 교토처럼 의례적, 상징적 수도의 지위를 누릴 수 있었지만[5], 그 규모는 나머지 4대 수도(페르세폴리스, 바빌론, 엑바타나, 슈쉬)에 비해 상당히 작았고, 중요도도 낮은 편이었다. 그래서 보통 아케메네스 왕조의 다중 수도 체계를 언급할때 파사르가다에는 빠지는 경우가 많다.
여담으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3세가 키루스 2세의 무덤을 방문한 적 있다. 자세한 내용은 키루스 2세 문서 참고. 이후 1905년 독일 고고학자 에른스트 에밀 헤르츠펠트(Ernst Emil Herzfeld , 1879 ~ 1948)에 의해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1928년 에른스트 헤르츠펠드에 의해 최초로 발굴되었고 1949년 이란 연구팀에 의해 다시 발굴되었다. 1960년대에는 영국 연구팀에 의해 발굴되었는데, 이 때 금과 보석으로 뒤덮인 보물이 발견되기도 했다. 유적지에서 발굴된 미술품, 도자기 등은 프리어 미술관과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보물은 이란 국립박물관과 대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키루스 대제의 날[6]인 페르시아력 어번 7일(그레고리력 10월 29일)이 되면 이 곳에 민족주의자들이 모여 이슬람화 이전의 이란을 기리고는 한다. 2016년 집회는 큰 시위로 번지기도 했다. 2021년에도 키루스 대제의 날을 전후해 사람들이 영묘를 방문하는 걸 막고 있었다고 하니, 10월 말에는 사실상 방문 자체가 어려울 것이다.
2. 구조
- 중심 궁전. 다리우스 1세 시기에 세워졌다. 대리석 기둥의 기단부가 고대 그리스 건축과 유사하다.
[1]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2]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할 것[3]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4]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5] 키루스 이후 페르시아의 황제들은 처음 즉위하고 나면 파사르가다에에서 특별한 의식을 치러야 했다.[6] 2000년대 초반 이후 인터넷 네트워크를 통해 만들어진 전통이다. 물론 키루스 대왕 자체는 훨씬 전부터 이란에서는 한국의 세종대왕 및 광개토대왕 급으로 존경받는 인물이기는 하나, 이란 이슬람 정권이나 국제기구로부터 그 어떤 인정도 받지 못하는 기념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