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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23 15:52:15

온병훈

대한민국의 前 축구 선수
파일:온병훈.jpg
<colbgcolor=#eeeeee> 이름 온병훈
溫炳勳 | On Byung-Hoon
출생 1985년 8월 7일 ([age(1985-08-07)]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76cm / 체중 66kg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소속 <colbgcolor=#eeeeee> 유스 오이타 트리니타 (2001~2003)
선수 포항 스틸러스 (2006~2007)
전북 현대 모터스 (2008~2009)
대구 FC (2010~2011)
대구 FC (2013)
김해시청 축구단 (2013)
고치 유나이티드 SC (2016~2018)
국가대표 7경기 (대한민국 U-20 / 2005)
{{{#08162e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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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
<colbgcolor=#eeeeee> 학력 서울연희초등학교 (1992~1997)
중동중학교 (1998~2000)
숭실대학교 (2004~2005)
}}}}}}}}}}}}}}} ||

1. 개요2. 선수 경력
2.1. 프로 입단 전2.2. 포항 스틸러스2.3. 전북 현대 모터스2.4. 대구 FC
2.4.1. 거짓 증언으로 얽히게된 승부조작 사건
2.5. 무죄판결 그리고 복귀
3. 플레이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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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축구 선수. 포지션은 미드필더.

2. 선수 경력

2.1. 프로 입단 전

중동중학교 재학 중이던 2001년 황보관 당시 오이타 트리니타 U-18 유소년팀 감독의 눈에 들어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오이타 트리니타 유스 선수로 일본에서 고교 시절을 보냈던바 있다.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후 숭실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이때만 해도 축구계엔 그다지 알려진 바 없는 무명 선수에 가까웠다. 그러나 윤성효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미드필더로서의 재능에 눈을 뜬 온병훈은 윤성효 감독의 추천으로 박성화 감독이 이끌고 있었던 U-20 청소년대표팀에 발탁되었고, 2005년 수원컵에서 결승 놀라운 활약을 펼치며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된다. 그러나, 박성화 감독은 2005 FIFA 월드 유스 챔피언십 네덜란드 최종 엔트리에는 온병훈 선수를 발탁하지 않아 반짝 스타에 그쳤고 이후 온선수는 숭실대를 중퇴후 K리그 드래프트를 신청해 곧바로 프로 입단을 준비하였다.

2.2. 포항 스틸러스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에서의 활약으로 2006 신인 드래프트에서 우선지명 2순위로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하였다. 하지만 타고난 감각에 비해, 체력이 부족해 포항의 두터운 1군 스쿼드를 비집고 주전을 차지 못하였다. 그렇게 2년 동안 K리그컵 2경기 출장에 그쳤다. 그러나 R리그에서는 포항을 우승으로 이끌며 2006, 2007 두시즌 연속 베스트11과 MVP를 차지하였다.

2.3. 전북 현대 모터스

2008년 시즌을 앞두고 R리그에서의 온병훈의 활약을 눈여겨본 전북 현대 모터스 최강희 감독에 의해 온병훈 은 팀동료 이원재와 함께 전북 현대 모터스에 입단하게 된다.

전북에서 온병훈은 공격형 미드필더와 최전방 스트라이커를 활발히 스위칭하며 프리 시즌 경기에서 해트트릭까지 기록하고 2군에서는 9경기 출장 6골을 몰아치는 대활약을 펼쳐 최강희 감독에게 조커로 낙점을 받기에 이른다. 그 기대에 보답하듯 2008년 7월 부산 아이파크를 상대로 결승골을 터뜨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2009 시즌 전북 현대 모터스가 대거 공격진을 영입하면서 온병훈 선수의 자리는 주어지지 않았고, 결국 전북에서도 2008년의 잠깐 활약을 제외하고 2년동안 2군에 머무를 수 밖에 없었다.

2.4. 대구 FC

포항에서도 전북에서도 자리를 잡지못하던 온병훈에게 손을 내민 팀은 대구 FC였다. 2010년 시즌을 앞두고 전북이 대구 FC의 외국인 수비수였던 펑샤오팅을 영입하려함에 따라 대구는 펑샤오팅을 내주는 댓가로 5억원과 온병훈을 받아 트레이드를 진행하였다.

이후, 온병훈은 대구 FC에서 만년 유망주라는 꼬리표를 떼어내려는듯 2010년 3월 6일 포항 스틸러스를 상대로 대구 FC에서의 첫 리그 경기에서 바로 골을 기록하며, 2010 시즌 온병훈은 리그에서 총 23경기에 출전하며 주전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2008년에 이어 2010년에도 부산 아이파크를 상대로 팀을 리그컵 8강으로 인도하는 동점골을 뽑아내며 부산 킬러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었다.

2.4.1. 거짓 증언으로 얽히게된 승부조작 사건

그러나 2011년 7월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되어 방출당하였다. 이로 인해 대한축구협회와 K리그 연맹으로부터 선수 및 지도자 자격 박탈이 결정되고 말았다.

온병훈 선수가 승부조작의 주범으로 몰렸던건 검찰 조사를 받던 장남석이 온병훈에게도 돈을 건넸다고 둘러대었기 때문이였는데 이것이 위증으로 판명났던 것. 결국 2심에서 그 선배의 증언에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로 온선수는 무죄판결을 받게되었다.

그 결과, 온선수보다 앞서 무죄판결을 받고 선수자격 및 지도자 자격 징계가 철회된 홍성요, 이정호, 김응진 경우와 마찬가지로 K리그 연맹의 심의를 통해 징계가 완전 철회되면서 다시금 K리그 무대에 복귀하게 되었다.

2.5. 무죄판결 그리고 복귀

승부조작 사건 무죄 판결 이후 곧바로 대구 FC와 다시 계약을 맺고 복귀하였다. 장장 1년 6개월여만의 프로 복귀였다.

하지만 대구에서 13시즌 2경기 교체출장에 그친채 팀에 방출되었다.

2013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한국 내셔널리그소속 김해시청 축구단에 입단하였으나 김해에서도 별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결국 김해와도 계약해지 후, 현역으로 군입대를 하였다.

군전역 이후에는 일본 아마추어 리그 JFL소속 고치 유나이티드 SC에서 3년간 뛰다 선수은퇴를 선언 하였다.

3. 플레이스타일

드리블에 능한 스타일이며 수비와의 1:1에서 상당한 돌파 능력을 보이는 선수다. 공이 없을때의 움직임도 괜찮은 편이나 골 결정력이 다소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꾸준히 성장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선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