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友義鎮(おおとも よししげ) / 宗麟(そうりん) 1530년 1월 31일 (음력 1월 3일) 또는 5월 30일 (음력 5월 4일) ~ 1587년 6월 11일 (음력 5월 6일) |
오토모 가문의 교요[가몬] |
大友宗麟 / 義鎮 (おおとも そうりん / よししげ)
(1530년 1월 31일 ~ 1587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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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센고쿠 시대의 다이묘. 오늘날의 오이타현 지역인 분고(豊後)를 대대로 지배하던 슈고 다이묘 가문인 오토모가 21대 당주로 오토모 요시아키의 아들. 소린은 요시시게 이후 사용한 법명이며 본명은 오토모 요시시게(大友義鎮).센고쿠 시대에 접어들자 규슈 북쪽의, 오늘날 후쿠오카현 일대인 부젠, 치쿠젠 지방으로 확장에 성공, 서쪽의 류조지, 남쪽의 시마즈와 함께 규슈 섬을 삼등분한 세력으로 발돋움했다.
2. 생애
아버지 요시아키가 장남인 소린을 폐적하고 대신 소린의 배다른 동생인 시오이치마루(塩市丸)에게 당주 자리를 넘겨주려고 했으나, 이를 눈치챈 소린파 가신들이 요시아키를 야습한다(二階崩れの変, 니카이쿠즈레의 변). 이 사건으로 요시아키의 두 딸과 시오이치마루, 시오이치마루의 생모가 모두 사망하고, 요시아키 본인도 이 때 입은 상처로 인하여 며칠 후 사망하면서 소린이 당주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반 소린파 가신들은 모조리 숙청되고 만다.바다 건너 주고쿠에서 오우치 요시타카가 스에 하루카타의 모반으로 죽자 자신의 동생인 오토모 하루히데를 오우치 가 당주로 보내고 오우치 가의 영토인 부젠과 지쿠젠에서 오토모 가의 영향력을 넓혀 갔다. 또한 히젠 슈고직을 획득하고 히고에서 자립한 숙부 키쿠치 요시타케를 멸망시키는 등 적극적으로 세력 확대에 힘썼다. 본래 히젠에서 세력을 떨치고 있던 쇼니 가문은 오우치 가문이라는 공통의 적 때문에 오랫동안 오토모 가문의 동맹이었으나, 외교적인 상황 호전으로 인해 아예 히젠 자체를 얻기를 원한 오토모 소린은 류조지 다카노부를 밀어줘서 쇼니 후유히사를 죽이고 쇼니 가문을 멸망시키도록 해줬다.
한편으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등 서양에서 온 바테렌(선교사)들이 가톨릭을 선교하는 것을 허락했고 이 것에 불만을 품은 가신 이치마다 아키스케, 오바라 아키모토 등이 반란을 일으켜 치세 초기는 상당히 힘들었다. 히젠에서도 소린의 휘하로 들어왔던 류조지 다카노부가 세력 확장을 하면서 오토모 가문의 영향력에 의문이 생겨났다. 더욱이 모리 모토나리가 수백년간 주고쿠를 지배해 온 명문 오우치 가를 완전히 멸망시키면서 그 대가로 소린은 부젠과 치쿠젠을 영토로 얻긴 했지만, 모리 타카모토의 공작을 통해 이 지역의 호족들이 자주 모리 가문에 귀의해서 골머리를 썩었다. 모토나리가 요시나가를 죽이는 것을 묵인하는 대가로 모토나리와 손잡고 거병한 치쿠젠의 아키즈키 후미타네(秋月文種) 토벌을 인정받아 아키즈키 가를 멸했지만, 아키즈키 다네자네(秋月種実) 등 아키즈키 후미타네의 아들들이 모토나리에게 도망갔고 모토나리는 이들을 받아들여 아키즈키 가문이 부활해서 부젠까지 확장할 수 있게 도와줬다. 치쿠젠에 전진기지 만들어놓으라고 보내놓은 후다이 가신인 타카하시 아키타네(高橋鑑種)[1]마저 모리씨와 내통해, 이 지역에서 오토모 가는 모리 가와 격렬한 전투를 지속해야 했다.
1559년에 무로마치 막부의 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에게 막대한 헌금을 하여 부젠, 치쿠젠 슈고와 규슈 탄다이(九州探題)에 임명되었으며, 1567년 모리 가와 내통하던 가신 다카하시 아키타네를 다치바나 도세츠의 도움으로 멸망시킨다. 이렇게 모리 가와 대립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1569년에는 서쪽의 류조지 다카노부와도 대립해, 히젠을 침공하나 동쪽에서 모리 모토나리가 치쿠젠으로 빈집털이를 오는 바람에 퇴각한다. 이에 오우치 씨 일족인 오우치 테루히로를 스오로 보내 모토나리를 괴롭혀 아키로 물러나게 한다. 이로 인해 모지 성(오늘날의 기타큐슈시)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한 부젠 국 대부분은 오토모 가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한편 자신이 버렸던 쇼니 후유히사의 동생 마사오키와 쇼니 가문의 잔당을 후원해 다카노부와 싸우게 한다.
1570년 다시 다카노부와 히젠에서 전투를 벌이지만 이마야마 전투에서 기습으로 동생이자 총대장 치카사다가 전사하고 만다. 결국 형식적인 우위만 확인한 채 류조지 가와 화친을 맺고 1576년 아들 요시무네에게 당주 자리를 양도하고 은거한다.
1577년 시마즈 요시히로가 휴가를 침공하고 휴가의 다이묘 이토 요시스케가 오토모에 망명한다. 오토모는 시마즈와 결판을 내기 위해 대군을 이끌고 나섰으나 미미가와 전투에서 또 대패하였으며, 이 전투로 다키타 지카카네·쓰노쿠마 세키소·가마치 아키모리 등 많은 가신들과 수하 호족들이 전사한데다 여러 호족들이 배신하여 오토모 가는 쇠퇴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오토모가 휘청이는 동안 서쪽 히젠은 류조지 다카노부가 완전히 독립해 떨어져나갔고, 치쿠고 호족들도 대부분 류조지 다카노부의 수하로 갈아탔다. 거기에다 모리 가와의 적대관계로 인해, 모리 가에 의탁하고 있던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가 한때 6국의 슈고직과 규슈 탄다이를 막부에서 임명받은 오토모 소린을 거꾸로 '6국의 흉도'로 지목하면서 전통적인 권위도 위태롭게 된다.
그래도 규슈 서쪽을 장악한 류조지가 시마즈와 적대했기 때문에 나름대로 규슈는 삼국의 균형이 맞아떨어져 소강 상태를 보였으나, 1584년, 시마즈는 류조지마저 오키타나와테 전투로 굴복시켰다. 오토모는 가신 타치바나 도세츠를 보내 치쿠고를 침공케 했으나 도중에 도세츠가 병사하면서 오히려 시마즈 군의 공격을 받는다. 일껏 도세츠가 확보한 치쿠고 영지들은 거의 다 시마즈 군에 항복했고, 치쿠젠의 오토모 거점들은 물론 오토모 가의 본거지인 분고까지 시마즈의 공격에 노출되어 오토모 가의 세록 중신들마저 시마즈 군에 항복하기 시작했다.
결국 1586년 오사카로 가서 혼슈를 대부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구원을 요청한다. 시마즈는 도요토미가 본격적으로 규슈에 오기 전에 규슈를 통일해버리려는 심산으로 오토모에 총공격을 가했다. 시마즈 이에히사에게 거성 후나이관을 빼앗겨 우스키 성(臼杵城)에서 농성을 벌인다.
1587년 히데요시가 규슈 정벌에 나서며 전세가 역전된다. 하지만 소린 자신은 시마즈 요시히사의 항복 직전 병사하고 만다. 향년 58세.
히데요시는 소린에게 휴가 1국을 주려고 했으나 이를 거부해, 오토모 가는 분고 1국으로 결정된다. 이후 오토모 가는 조선 침략 때 평양성 전투에서 당주 오토모 요시무네가 고니시 유키나가[2]를 버리고 달아나는 바람에 가이에키당한다.
미미가와 합전 직전 선교사 프란시스코 카브랄로부터 세례를 받아 세례명을 돈 프란시스코(라 하였으며 프란이라고 서명하였다. 사망했을 때 키리시탄식으로 장례를 치렀으나 이후 아들 요시무네가 다시 불교식으로 장례를 치렀다.
독실한 기리시탄임에도 불구하고 호색한이었다고 한다. 미녀를 찾아 교토까지 갔으며 가신의 처를 빼앗는 등 여러 가지 사건을 벌이기도 했다. 게다가 정무를 돌보지 않고 주색에 빠져 이에 도세츠가 자주 훈계하였다고 한다. 이와 반대로 무욕의 군주로 그려지는 데 이는 만년의 모습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상당한 문화인으로 알려져 있다.
소린의 아내인 나다히메는 남편과 다르게 기리시탄을 싫어했다고 한다.(관련글)
소린의 딸들은 무장 등 명사들에게 많이 출가시켰는데 심지어 공가(公家)인 이치조 씨나 나가토 국(長門國)의 대표적 대영주 모리 씨에 출가하는 경우도 있었다.
3. 창작물에서
키리시탄들을 다룬 작품을 많이 남겼던 일본의 소설가 엔도 슈사쿠가 1990년 오토모 소린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 <왕의 만가(王の挽歌)>를 썼다.3.1.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
100만인의 노부나가의 야망 |
노부나가의 야망 신생 |
노부나가의 야망 출진 |
오토모 가문의 대표적인 다이묘 캐릭터다. 본인의 능력치도 괜찮은 편. 전투 면에선 타치바나 도세츠와 타카하시 쇼운 투 탑으로 어느 가문과도 맞설 수 있으나 그 밑의 2진급이 부족하다. 타치바나 무네시게는 등장이 너무 늦어 생년 무시 시나리오가 아니면 쓰리탑을 굴리긴 힘들다. 생년 무시 시나리오라면 타치바나 가문이 독립해서 더 허약해지는 경우도 있다.
천하창세에서는 아소가를 처음부터 종속시킨 상태로 시작하기 때문에 절개발이 가능하고, 종속 다이묘 흡수 이벤트를 거치면 아소 가의 유력 무장 카이 소운을 흡수할 수도 있다. 고노 미치나오와는 혼인관계에다가 숙장정과 목장이 덤으로 딸려오고 더불어 오우치 요시타카 살해 이벤트가 발생하면 무능한 아우를 오우치 쪽으로 보내는 것으로 승낙함으로써 남만정과 무역정, 거기다 공가정과 하치만구까지 딸려오기 때문에 개발 못 하는게 전혀 없다. 다만, 자금력이 부족한 초반에는 무리한 개발보다는 북큐슈 제압부터 신경쓰도록 하자. 오토모 소린 개인의 능력치는 좋은 편이지만 의리가 없어서 일반 무장으로서는 항상 충성도를 100으로 유지시키고 다이묘와 같은 성에 박아놓는 게 안전하다. AI에게 맡기면 규슈 대부분을 집어삼키는 것까지는 잘 하는데 류조지 - 모리 - 시마즈 다중전선을 뚫는 게 문제로, 그 넓은 규슈를 다 먹어도 시마즈, 모리, 류조지와 맞설 무장은 카이 소운 외에는 얻을 수 없기 때문에 한계에 부딪히기 쉽다. 특히 시마즈는 키모츠키와의 혼인동맹 때문에 물량에서 오히려 침입하는 오토모가 열세에 처하기도 한다. 하나라도 뚫으면 나머지 둘도 관광 보내고 서국의 패자가 되지만 못 하고 지지부진해지면 대개는 시마즈에게 쭉쭉 밀리고 망한다.
그러나 오토모 요시무네가 당주인 후대에서는 난이도가 급격하게 높아진다. 후나이 외에는 거의 영토가 없다시피 해서 사실상 히데요시에게 반 종속이라 가문도 영지도 없고 난이도는 높다. 거기다 다이묘인 본인이 또 F4 급 인지라 행동횟수가 1이다. 더불어, 있는 무장이라고는 타와라 쇼닌 정도인데 역시 싸움에 젬병이고 하나같이 나사가 단단히 빠진 가문인지라 또 무진장 힘들다. 재수 없으면 시작하자마자 시마즈의 맹공에 몰락하기도 한다. 타치바나 가문이 독립한 상황이고. 밑에는 이토가문이 있지만 있으나 마나 거의 털리고 위에는 쿠로다 요시타카가 버티고 있다가 결국 망한다.
혁신 때부터는 시마즈 가의 호구. 철포 재평가에 기술 테크가 생기면서 일방적으로 밀린다. 그리고 가문 고유 기술인 구니쿠즈시는 시마즈 군에 대항해 농성을 벌일 때 대포의 위력에 놀라 붙인 것이라고 한다.
노부나가의 야망 창조에서는 오우치 가문이 건재한 극 초반부 시나리오를 제외하면 본인이 생존한 상태의 거의 대부분의 시나리오에서 북 큐슈의 패자로 군림하는 강한 세력을 갖추고 있다. 개인 능력도 나쁘지 않은 편으로, 통무지정 순으로 76/66/82/86. 초장부터 분고, 부젠, 치쿠고, 치쿠젠의 4개 국을 처음부터 가지고 있는 시나리오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인공지능에게 내버려두면 멍청한(..) 인공지능에도 불구하고 타고난 힘의 차이를 바탕으로 류조지를 쥐어패고 북큐슈에서 떵떵거리다가 모리와 싸우면서 국력을 낭비하고 그러다 남 큐슈를 통일하고 북진하는 시마즈에게 털리는 상황이 90% 이상(..)의 확률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플레이어가 잡으면 타고난 국력 차이를 바탕으로 인공지능보다도 더 빨리 류조지를 해치우고 모리와는 화친하면서 아직 다 크지 못한 남쪽의 시마즈를 박살내며 큐슈 전체를 통일하는 것 까지 정말 '쉽게' 할 수 있는 초심자 세력이다.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살아있는 시나리오의 이마가와 플레이와 비슷한 느낌.
기본적으로 타치바나 도세츠, 타카하시 쇼운이라는 두 용장을 쌍두마차로, 전반적인 인재풀은 과히 나쁘지 않으며[4] 역시나 탑클래스급 능력치를 가진 명장 타치바나 무네시게라도 원복하면 전투 관련 인재 방면에서는 시마즈를 제외하고서는 서부 전체에서 비견할만 한 상대가 없을 정도. 시마즈에게 한창 털리는 후반기 시나리오 전까지[5]는 오토모 소린의 세력이 규슈 최강이기 때문에 힘을 빠르게 모아 류조지를 털어버리고 나베시마 나오시게와 같은 유능한 인재풀들을 끌어모으고 생산력이 뛰어난 히젠을 석권하는 것이 중요하다. 초기 시나리오일 수록 시마즈가 약하기 때문에 초기 시나리오에 빠르게 히젠까지 먹어치우는 데에만 성공하면 모리의 뒤치기만 조심하면 큐슈 통일은 정말 매우 쉽다. 심지어 모리의 컴퓨터 인공지능은 그렇게 공격적이지도 않은 편.
일단 규슈만 통일하면 그 다음의 행보는 주고쿠의 모리이든 시코쿠이든 정말 쉽게 풀어갈 수 있다. 시마즈의 유능하기 짝이 없는 인재풀과 류조지의 준수한 인재풀, 오토모 자체의 인재풀이 합쳐진 데다 규슈 전토의 생산력으로 전투를 풀어가면 사실 어지간한 세력은 오토모의 상대가 될 수가 없다. 그나마 천하포무 이 후, 오다 노부나가가 빠르게 세력을 확대하여 기나이를 통일했다는 전제 하에서는 오다 노부나가가 꽤 골치아픈 세력이 될 수 있겠지만 이미 노부나가와 대치한다는 선까지 갔다는 것은 주코쿠, 시코쿠를 장악했다는 의미와 동일한 지라 결국 플레이어가 국력 상으로도 밀릴 수가 없는 싸움. 기나이까지 먹는다면 그 선에서 총무사령 정책을 선택하고 게임을 클리어시켜버릴 수 있다.
소린의 말년이라 할 수 있는 데토리가와, 몽환으로 이 후 시나리오들에서는 게임 자체가 꽤 어려워진다. 시마즈가 이미 규슈 남부를 통일한 상태라 호시탐탐 북진을 노리고 있고 반대로 오토모 가문은 배하에 있던 영주 세력들이 독립한 상태인 경우가 많기 때문. 일단 최대한 빨리 독립한 군소 영주들을 제거하여 본 영지를 안정화시키고 역시나 위와 마찬가지로 시마즈, 모리와의 싸움은 최대한 회피하면서 생산력이 뛰어난 히젠을 먹기 위해 류조지와 맞설 필요가 있다. 초기 시나리오와는 달리 후반기의 류조지는 이미 히젠을 거의 다 먹은 상태라 상당히 강한 편이기에 전투 시 주의할 필요가 있으나 여전히 오토모에 비해서는 약한 편이며 류조지 가문을 멸망시키는 시점부터 시마즈와의 전면 대결이 가능해진다고 생각해도 좋다. 적절하게 시마즈 가문과의 정면 승부에게 승리하고 규슈를 통일해주면 이 후의 루트는 위와 동일.
오토모 소린의 오토모 가문 고유 정책인 '절지단보호'[6]는 먼저 '남만보호' 정책이 실시되어 있어야 하며 패널티로는 보수 성향의 무장들의 충성 수치 -2가 확보되는 것이고 어드밴티지로는 각 성의 인구 증가 속도가 빨라지며 창조 성향의 무장들의 충성 수치 +2가 확보되는 것이다. 사실 보통의 고유 정책들은 굉장히 효과가 좋은 것이 일반적인데 오토모 가문의 고유 정책 절지단보호는 인구 증가 속도가 올라가며 비용도 높은 편이 아니라 장점이 분명하지만, 단점도 상당히 커서 쓰기 애매한 정책이다. 가문에서 보수 성향 무장들을 죄다 내쫓을 것이 아니라면 기본적으로 선 실시되어야 하는 남만보호 정책부터가 보수 성향 무장들의 충성 수치 -2를 패널티로 얻는데 여기에 절지단보호까지 실행하면 무려 -4의 충성 수치가 까여버린다. 어지간히 필요 요구 충성치가 낮은(충성스러운) 보수 성향 무장이 아닌 이상, 이래가지고서는 죄다 불만을 품어서 적의 공작과 매수에 그대로 당해버린다. 오토모 가문 무장들 중 주요 유력 무장들이 대부분 창조 성향인 것은 다행이지만 이번 작에서 장수는 많으면 많을 수록 좋은 시스템이란 것을 생각하면 거의 가문의 보수 성향 무장 반 수가 날아간다는 것은 치명적인 치명타나 다름없다. 인구 수 좀 빨리 늘리자고 당장의 그만한 패널티를 감내하기에는 너무 리스크가 큰 정책인 것. 능력주의 정책을 추가로 채용하면 중간이상 하는 장수들의 충성 수치를 3만큼 올릴 수 있지만 여러 모로 비용이 더 커진다.[7] 물론 오토모 가문이 서부 전체를 석권하고 엄청나게 강한 세력이 되었다면 무장 수도 무지막지해질테니 그 때에는 이런 리스크를 감수하고 써도 될 정책이기는 하지만 초반부터 쓰는 것은 무리인 정책이라고 봐도 좋다. 그나마 창조인 무장이 시마즈나 류죠지 같은 경우는 몰라도. 아소나 사가라 같은 보수형 무장은 혐오하기 때문에. 등용만 안하면 된다. 군단을 분할하면 군단소속으로 능력치의 합이 300이상의 군단 소속일 경우. 충성도가 +2 되기 때문에. 남만보호만 쓰고. 절지단 정책을 쓰지 않으면. 충성도 변화가 없다.
3.2. 태합입지전 시리즈
태합입지전 5 기준 꽤 좋은 스탯 분배를 가지고 있다. 통솔 86, 무력 59, 지력 86, 정치 74, 매력 85. 적성 배분도 적절해서 족경 4, 기병 3, 철포 3 등 전투 적성도 좋고 개발 3 등 내정도 쓸만하다. 기본적으로 규슈 내에서는 가장 강한 축이라서 AI가 잡으면 류조지 가를 밀어버리고 규슈 북쪽을 완전히 장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좋은 장수가 꽤 많은 시마즈 가는 쉽게 밀지 못하기 때문에 규슈의 절반 이상을 먹고도 시마즈와 계속 대치하게 된다.명성은 손에 꼽을 정도로 높지만 악명은 전혀 없기 때문에 나름대로 쾌적한 플레이가 가능하다.[8] 그러나 일러스트가 서양풍 옷 입은 부담스럽게 생긴 대머리 아저씨라[9] 거부감이 있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력은 괜찮은 편이라는 점이 개그 포인트.
3.3. 전국 바사라 시리즈
오토모 소린(전국 바사라) 문서 참조.3.4. 전국오토메
원래 역사에서 기독교 신자였고 또한 대포를 무기로 사용했던 점을 반영해 수녀 복장을 하고 있고 철포를 무기로 사용한다. 원본인 파칭코는 시즌 2에서부터 등장했으며, 애니메이션에서는 진홍의 갑옷 조각을 소유한 악역으로 등장하고 PS Vita판 대전액션에서도 플레이어블로 등장한다.3.5. 토탈 워: 쇼군2
오토모 요시시게라는 본명대로 나온다. 오토모 가문의 후계자로 초반에는 어린애라 가계도에만 나와있고, 턴을 계속 넘기다보면 나이를 먹으며 후계자로 자동 등장. 이 게임 가문 시스템에는 첩실 제도가 없기 때문에 동생들이 죄다 친동생으로 나와서 반란을 일으킬 일이 없다.4. 관련 문서
[1] 원래 이름은 이치마다 치카무네(一萬田親宗)로 오토모 가문의 먼 방계 출신이다. 후사가 단절될 위기에 놓인 치쿠고 타카하시 가문에 양자로 들어가서, 치쿠젠에 훗날 오토모 가문의 주요 거점이 되는 이와야 성을 쌓고 본거지로 삼았다.[2] 오토모 소린과 마찬가지로 기리시탄 다이묘였다. 세례명은 아우구스티노.[3] 그나마 창조의 <천하삼십장> 시나리오에서는 타치바나가가 독립하지않고 남아있기때문에 염원하던 쓰리탑을 굴릴 수 있다. 이 시나리오에선 오히려 나베시마가 독립하는 류조지쪽이 더 낭패다.[4] 물론 시마즈 4형제를 필두로 하는 남쪽의 시마즈 가문에 비해서는 인재풀이 뛰어나다고 할 수 없다. 도우세츠의 아들인 타치바나 무네시게가 등장할 무렵이면 몰라도. 문제는 무네시게가 등장하는 시나리오에는 이미 시마즈가 패권을 쥐고, 오토모 자체가 약하게 나오는 시나리오라..[5] 정확히는 테도리가와 전투 시나리오나 몽환으로 시나리오 전까지[6] 기독교 크리스천 신도들을 일본어로 발음하면 키리시탄이고 이를 한자로 음차하면 절지단이다. 즉 기독교 신자 보호라는 의미.[7] 대신 보수 성향의 무능한 인재들은 다 합쳐서 -7의 충성 수치가 까이게 된다[8] 명성이 낮으면 만나주지 않는 인물들이 꽤 된다.[9]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와 차이점이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