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368C6F><colcolor=#ffffff> 오성훈 Oh Sung-Hoon | |
출생 | 1980년[1] 6월 27일 |
사망 | 2025년 2월 3일 (향년 45세)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데뷔 | 1998 피플크루 힙합 댄스 비디오 1집 'Hiphop Nation' |
학력 | 동양공업고등학교 |
경력 | 피플크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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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비보이·래퍼 출신 작곡가.2. 생애
2008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1994년 학교 선배의 폭력으로 자퇴 후 혼자 있는 시간에 서태지와 아이들을 접하면서 춤에 입문했다고 한다. 이주노, 강원래 등을 배출한 문나이트에서 손꼽히는 비보이로 활동하다 1997년 비보이 크루 피플크루로 데뷔했다. 피플크루가 비보이 크루였던 시절에는 한국 비보이 최초로 에어트랙을 성공시켜[2] 유명세를 떨치기도 했다. 피플크루 메이저 데뷔 후에도 2집까지는 비보이로 활동[3]하다가 2002년 3집때는 래퍼 포지션으로 활동했다. 2002년 피플크루 3집 활동 종료 후 작곡가 겸 작사가로 전향해[4] 소리의 〈만나고 싶다〉를 시작으로 조영수와 케이윌 〈LOVE119〉와 거미 〈기억해줘요 내 모든 날과 그때를〉, 제이세라 〈사랑시 고백구 행복동〉, 나비 〈마음이 다쳐서〉, 디셈버 〈별이 될게〉, 〈가슴으로 운다〉, KCM 〈슬픈 눈사람〉, 신혜성 〈나이〉, MC몽 〈허클베리 몽의 모험〉, SG워너비 〈비틀즈의 음악보다〉, 브라이언 〈일년을 겨울에 살아〉 등 여러 곡의 작곡·작사에 참여하며 명성을 알렸다. 비보이 출신 작곡가임에도 히트곡 중엔 발라드가 많은데, 데모를 돌릴 때마다 비트가 너무 비보이스럽다(강하다)는 말을 듣고 비트가 없는 발라드를 만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댄서하던 애가 어떻게 발라드를 히트시킨 거냐'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3. 사망
2025년 2월 3일, 새벽에 갑작스럽게 자신의 작업실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빈소는 서울 영등포구 교원예움 장례식장에 마련되었으며 장지는 5일 서울시립승화원이다. #4. 이야깃거리
2010년 MC몽 병역비리 사건 때 MC몽이 치아 관련 질환이 있었던 건 사실이라는 글을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올려 MC몽을 두둔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적이 있다. (당시 기사)[5] 얼마 안 가 글은 삭제되었다.취미로 비트박스를 배운 적이 있어 MC몽 1집, 3집에 비트박스 세션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피플크루 2집 부클릿의 SPECIAL THANKS에 따르면 비트박스를 가르쳐 준 사람은 후니훈이라고 한다.
[1] 생전에는 1979년생으로 활동했다.[2] 질럿의 유튜브에 출연하여 이야기한 바에 따르면 베니 & 터프키드 영상을 우연히 보고 연습하다가, 한국인들은 에어트랙을 할 수 없다는 비보이 선배의 말에 오기가 생겨 에어트랙 관련 비디오 테이프를 가지고 있던 같은 피플크루 멤버 조형일에게 사정사정해 비디오를 빌려서 사흘 동안 집에서 계속 보며 연습했다고 한다. 갑자기 안 나오니까 조형일은 오성훈이 비디오를 먹튀했다고 의심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1주일 후 오성훈이 조형일에게 비디오 테이프를 돌려줬다고 한다. 옆에서 지켜보던 김근서는 오성훈이 이미 에어트랙을 마스터한 상태여서 비디오를 돌려준 줄 알고 있었는데, 오성훈이 조형일이 빌려준 비디오를 복사해서 소장했다고 밝히자 폭소했다.[3] 2집 타이틀곡 〈야화〉, 후속곡 〈너에게〉에 보컬로 참여하기도 했다.[4] 댄서로서는 노력만큼의 보상을 받지 못하니까 돈 벌 수 있는 직업을 찾다가 작곡에 입문했다고 한다. 피플크루 3집 활동 당시 제과 CF 촬영으로 받은 50만원으로 중고 피아노를 구입한 후 어머니에게 사정해서 피아노 학원을 끊었으며, 왼손으로 건반을 치지 못하니까 젓가락을 왼손으로 쥐고 밥을 먹을 정도로 노력했다고.[5] 하필 오성훈 본인도 군면제자라 유유상종이라는 소리만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