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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19 22:36:46

오보카타 하루코

前 이화학연구소(리켄) 객원연구원
오보카타 하루코
小保方晴子 | Obokata Haruko
파일:external/2.im.guokr.com/moIX-2jLq3tD5VHrvmvjXT08QwxPfl2dGxfvL2_1XqaAAgAAYgEAAEpQ.jpg
이름 오보카타 하루코
한자(일어) 小保方晴子(おぼかた はるこ)
출생 1983년 9월 25일 ([age(1983-09-25)]세)
치바현 마츠도시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직업 생물학자, 前 이화학연구소 연구원
학력 마츠도시립 제6중학교 (졸업)
토호대학부속 토호고등학교 (졸업)
와세다대학 이공학부 (응용화학 / 학사)

1. 개요2. 생애
2.1. 만능세포 연구와 발표2.2. 연구논문 조작 의혹 제기2.3. 학계에서 제명2.4. 제명 이후
3. 미디어와 오보카타 하루코4. 기타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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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STAP細胞は有りまぁす
(STAP세포는 있습니다.)[1]

일본의 前 생물학자. 만능세포 연구논문 조작 사건의 장본인이다.

대한민국 언론에서는 유사한 파장을 일으켰던 황우석과 비교되면서 일본판 황우석으로 불리기도 했다.

2. 생애

일본치바현 마츠도시(松戸市) 출신이다. 부친은 미쓰비시 상사의 임원으로 미쓰비시 한국지사의 상무이사로 재직한 적도 있으며[2] 모친은 도쿄 소재 데이쿄헤이세이대학 교수, 언니도 대학에서 준교수[3]로 재직하는 부유하고 학문적인 분위기의 집안 출신이다.

마츠도시립 제6중학교와 토호대학부속 토호고등학교를 거쳐 와세다대학 이공학부 응용화학과에 AO전형[4]으로 입학했으며 2006년 졸업 후에는 동 대학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도쿄여자의과대학 야마토 마사유키(大和雅之) 연구실에 연수를 받아 줄기세포 연구에 입문했다. 2008년에는 박사과정에 진학하면서 야마토의 추천을 받아 교환학생 형식으로 하버드 대학교 찰스 버컨티 교수의 연구실에서 일했는데 당시 학교에서 비공식적으로 그녀를 부르던 별칭은 'Vacanti's Angel(버컨티의 천사)'.

버컨티 수하에서 본격적으로 다기능 줄기세포에 몰두한 오보카타는 2011년에는 와세다대학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이화학연구소(속칭 리켄)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했다. 2013년에는 리켄에서 세포 리프로그래밍 연구유닛을 이끌게 되었다. 이 시기 오보카타는 버컨티와 공저로 '자극 야기 다기능 획득세포'(stimulus-triggered acquisition of pluripotency, STAP세포), 자칭 만능세포 논문 투고에 공을 들였는데 2010년 PNAS, 2012년 네이처 등에서 거절되는 등 악전고투 끝에 2013년 네이처 게재에 일단 성공한다. 그리고 2014년 1월 STAP 세포 성과를 대중에 발표하면서 일약 스타가 되었다.

2.1. 만능세포 연구와 발표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영국의 과학지 네이처에 만능세포 관련 연구결과를 실었는데 '약산성액에 평범한 세포를 담그는 것만으로도 줄기세포를 만든다'는 내용이었다. 이 만능세포 연구의 아이디어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 초기단계의 연구 논문을 <네이처>에 기고했으나 그때는 게재를 거부당하고 "귀하의 논문은 분자세포학의 수십 년 역사를 모독하고 있다."는 신랄한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5]

원래는 이 조교의 지도교수인 사사이 요시키의 지도로 세포가 모세관을 통과하면서 물리적인 자극으로 인해 통과한 이후 세포 골격의 변화로 줄기세포와 비슷한 모양을 갖는 세포로 변하는 것을 발견하고 이에 물리적 자극과 스트레스로 줄기세포를 만들어보자는 의도였다지만, 사실이 아니다. 이 실험 자체가 지도교수이자 이화학연구소 부소장이었던 사사이 요시키가 차기 소장으로 임용되기 위해[6]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노벨상에 숟가락을 얻기 위한 여러 연구 어장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7] 참고로 호르몬이나 chemokine,cytokine을 이용하여 줄기세포를 만드는 것은 Ips(induced pluripotent stem cell)로 이미 발표되었다.

이 업적으로 2014년 1월 30일에 일본의 주요 일간지들은 오보카타를 1면으로 다루었다.

2.2. 연구논문 조작 의혹 제기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만능세포 연구논문 조작 사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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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을
참고하십시오.
2014년 2월부터 의혹이 제기되었다. 세계 각국의 연구실에서 '논문에 실린 그대로 따라해 보았으나 만능세포가 생성되지 않는다'라는 의견이 계속 나오던 가운데 공동저자 가운데 와카야마 데루히코 교수가 저자명 철회를 요구했다. 관련 기사

또 만능세포의 제작에 관한 논문에서 사용한 사진의 진위여부가 의심된다는 의견도 나왔으며#, 박사학위를 받은 논문까지 표절 의혹이 제기되는 등# 여러모로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 당시와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표절 등의 건으로 소속 연구소에서 대면조사를 받을 때 표절에 대해서 해서는 안 되는 짓이라는 인식이 없었으며 2005년 독일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을 표절하여 발표한 것도 그 안에 사용된 기초적인 단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한 단어로 바꿔서 사용하는 등 학자로서 최소한의 소양이 있는지조차도 의심받았다.

한편 사태가 커지면서 정신적으로 중압감을 느꼈는지 "주변에서 보기에 상당히 위험한 상태"라는 말도 흘러나왔다. 그녀 곁에 사람을 두어 혹시나 모를 사태를 막고자 감시 중이라고 전해졌다. 가족들도 조작 의혹 이후 두문불출하여 이웃에서도 그들을 거의 보지 못할 정도였다. 8월 5일 논문 공저자였던 사사이 요시키 이화학연구소 부소장이 자살하여 파문은 더더욱 확산되었다. 줄기세포 분야의 촉망받는 연구자였던 그의 죽음은 세계적으로 동료 과학자들의 애도를 불렀다. #

일본에서는 망신거리라서 그런지 2014년 초의 스포트라이트나 사태의 중요성에 비해서는 기사량이 적다. 애시당초 만능세포 자체에 별 관심이 없었는지 발표 당시에서도 네티즌들 반응도 "오보카타 예쁘다"가 대부분이었고 TV 취재조차도 연구 내용보다는 "그녀도 연구자이기 전에 한창 때의 여대생이다"라면서 "연구실에 귀여운 인형이 많이 놓여 있다"느니 "여가 때는 친구들과 명랑하게 놀러 다닌다"든지 기사만 줄창 내보냈었다. 물론 이것은 그녀와 그녀의 연구팀이 조장한 이미지이지만 이런 것만 취재한 언론 측도 충분히 막장이다. 상세한 내용은 만능세포 연구논문 조작 사건을 참고. 황빠가 아닌 오빠

일본미국 연구팀이 오보카타가 만들었다고 주장한 만능세포의 정체를 확인해 본 결과 평범한 수정란 유래 배아줄기세포로 판명되었다. 결국 이미 알려진 줄기세포를 만능세포로 위장하여 전세계의 관심을 끈 희대의 사기꾼이자 어그로꾼으로 낙찰되었다.

2.3. 학계에서 제명

와세다대학은 2014년 10월 6일에 일단 오보카타 하루코의 박사학위를 취소하고[8] 동시에 일정 유예기간(대략 1년) 동안 다시 박사논문지도, 연구윤리 재교육을 실시하여 박사논문을 정정시킬 수 있다면 학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조치를 발표했다. (기사, 일본어) 그러나 몇 번이나 제출된 논문 개정판도 박사논문 수준의 완성도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판단하여 와세다대학은 2015년 10월 30일에 당연히 오보카타 하루코의 박사학위 자격 박탈을 확정시켰다.(출처기사, 일본어) 대한민국 언론에는 2015년 11월 01일에 보도되었다. (('스탭세포' 소동 일본 여성과학자, 결국 박사학위도 잃었다) 기사 인용 )

파일:attachment/오보카타 하루코/le.jpg

모교의 연구소개 및 장학생 목록에서도 오보카타의 사진이 삭제되어 버렸다. "일본 정부의 정식 지원사업이라 리스트에서 삭제가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나오자 사진만 내려 버렸다.

소속기관이었던 이화학연구소는 오보카타의 연구에 4,600만엔을 쏟아부었고 연구 부정이 드러난 후에는 거꾸로 부정의 조사와 검증에 8,360만엔이 들어갔다.[9] 책임자인 오보카타는 징계위원회는 면했으나 2014년 12월 본인 신청에 의해 퇴직 처리되었으며 그 많은 '연구' 비용 중에서 네이처 투고 비용 60만엔은 오보카타에게 반환을 받았다. 이외에 이화학연구소는 2015년 2월에 고위 연구원 2명을 견책, 엄중주의 처리하고 이미 퇴직한 오보카타는 '징계해고 상당'으로 공지하였다.

논문의 공저자 기관이었던 하버드 또한 연구 부정 조사를 실시하였고 과거 지도교수였던 버컨티는 징계를 받지는 않았으나 2015년 교수 자리를 내놓게 되었다.

2.4. 제명 이후

2016년 'STAP HOPE PAGE'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입장을 소개하고 추가 실험자료, 프로토콜을 올려놓은 홈페이지를 개설하였다. 다만 학계의 반응은 차가울 뿐이었다. 홈페이지의 인삿말은 다음과 같다.
"우선, 2014년에 Nature에 발표 된 STAP 논문에 대해 깊은 사과와 진심어린 사과의 뜻을 표합니다. 저는 STAP 논문에 대해서 책임감을 느끼고 있고, 제 부주의한 실수에 대해서 과학자로서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이 웹 페이지를 시작하는 제 목표는 STAP 세포를 만들 수 있는 과학적인 증거를 얻기위한 정보를 과학계에 제공하는 것입니다. 저는 다른 과학자가 STAP 세포를 현실화할 수 있는 것을 희망하에 STAP 세포를 만들기 위한 프로토콜을 공개적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 사건으로 인한 정신적, 신체적 우울증에 대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STAP에 대한 정보를 점차적으로 업데이트 할 예정입니다. STAP 세포 진행 연구가 언젠가 합법적으로 과학 논문의 최전선으로 돌아와서 우리 모두가 이익을 얻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2016년 3월 25일 오보카타 하루코"

소송이 걸렸던 재판이 불기소처분으로 끝나면서 소송전은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이화학연구소에서 퇴직한 이후 한동안 실업자 신세였다. 2016년에는 여성잡지에 인터뷰를 하면서 사진이 공개되기도 했는데 직장이 없이 집에서 쉬고만 있었음에도 218,300엔(220만원)이나 하는 고가의 옷을 입고 사진을 찍어서 여러가지 의미에서 가십거리를 만들었다. 사실 고가 옷 말고도 옷부터 신발, 가방까지 비싼 명품으로 치장하고 다녔다고 하는 증언이 많은 것을 보면 원래 가지고 있는 고가 명품 옷과 명품백 등이 많은 듯.

물론 결과가 저랬지만 부모의 직업과 딸을 그만큼 공부시키고 지원해 줄 정도였으니 금수저인 건 확실하고 덕분에 아무런 부족함이 없이 풍족하게 살아갈 집안이다. 자신이 일을 하지 않아도 부모의 지원만으로도 돈 걱정은 전혀 없는 듯. 이 사람은 사건 이후 한동안 니트족이었다. 게다가 앞으로도 대학 전공을 살려 일을 하려고 해도 역사에 남을 연구 부정 행위를 저질렀다는 낙인이 꼬리표처럼 평생 따라다닐 테니 방법이 없어 보인다.

잡지 인터뷰 이외에도 2016년 <그 날(あの日)>, 2018년 <오보카타 하루코 일기> 등 2권의 에세이를 출간했다. 2016년 에세이는 26만권 이상 판매되기도 했다. 반대로 연구 부정 판명 후 행복의 과학 창시자 오카와 류호가 오보카타의 인지도에 편승해서 본인 동의 없이 자칭 '수호령 인터뷰' 책을 내기도 했다.

2019년에 도쿄도양과자점에서 일하고 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

2020년 1월 2일엔 도쿄의 한 과자점에서 점원으로 일하고 있는 모습이 주간신조(週刊新潮)에서 보도되었다.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은 거절되었다. 보도에 따르면 2019년 초부터 그녀와 같은 치바현(千葉県) 출신의 남자와 도쿄에서 동거 중이라고 한다.

3. 미디어와 오보카타 하루코

그녀의 인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일본 미디어들은 과학자로서의 면모 외에도 오보카타의 사생활이나 취미 등 일거수일투족을 취재, 보도하며 그를 '국민 아이돌'로 만들기 시작했다. 오보카타 자신도 이러한 상황을 방조하며, 여성성이나 애국주의에 호소하여 연구 내용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을 희석하려 했다.

상당히 여성스러운 성격으로 묘사되었는데,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캇포기(割烹着, かっぽうぎ)[10]를 실험복 대용으로 착용하였다. 연구 부정이 드러나기 전에도 이 부분에서 이질감을 느낀 사람이 많았다. 실험복은 유해 물질을 뒤집어 썼을 때 일차적인 방호를 하고 바로 벗어 치우기 위해 있는 것인데, 캇포기는 그 반대이기 때문. 특히 일반적인 면직물 소재라면, 실험실 안전 측면에서는 오히려 입지 않으니만 못한 복장이다. 실험용 앞치마나 간이 방호복이 우연히 갓포기와 유사한 형태로 앞치마와 소매가 일체화되는 경우가 있긴 하나, 이쪽은 내화학성을 담보하기 위해 고밀도 폴리머나 고무 재질을 사용하며, 갓포기에 비해 훨씬 벗기 쉽게 만든다.

또한 위의 프로필 사진에서는 (아무리 설정샷이지만) 마이크로피펫을 맨손으로 잡고 있다. 피펫을 사용할 때는 장갑을 끼는 것이 보통이다. 마이크로피펫은 마이크로리터(㎕) 단위의 적은 양의 액체를 정확하게 흡입, 주입하는 기구인데 그만큼 민감해서 손의 열에도 전달되는 액체 양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오보카타는 연구실을 분홍색과 노랑색으로 장식하고, 무민 매니아로 연구실 기자재에 무민 스티커를 붙여 놓으며, 이화학연구소임에도 불구하고심지어 연구실 내에서 거북이를 키운다는 등의 이미지가 언론을 타고 유행했다. 그러나 이후 이러한 것들은 그녀를 미디어의 스타로 만들기 위해 오보카타 측이 지어낸 이야기로 밝혀졌다.

4. 기타

5. 관련 문서



[1] 조작이 까발려지고 나서 인터뷰에서 남긴 말로 유명하다. 2014년 유행어 대상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물론 자기가 없다고 실토하면 사기죄에 해당하므로 없어도 있다고 한 것이라고 추측된다.[2] 이 점을 들어서 혐한·넷 우익 측에서 "한국과 엮이면 가족이 불행해진다"는 개드립을 치며 한국을 끌어들여서 엮기도 했다.[3] 한국의 부교수에 해당.[4] 게이오기주쿠대학에서 처음 실시한 전형으로 내신 성적, 활동 보고서, 학습 계획서, 지망 동기서, 면접, 소논문 등으로 지원자의 개성과 적성을 다각적인 평가를 실시하는 전형이다. 자기 추천전형으로 불리거나 2개 다 존재하는 대학도 있다.[5] 세포환경은 pH가 생각보다 변할 일이 많다. 체내만 해도 기관에 따라 pH2 까지도 떨어지는 곳도 있는데, 약산성 노출로 줄기세포가 나올것 같으면, 이런것들이 전부 줄기세포로 변할 수 있다는 소리다. 대개 혁신적인 발견을 증명하고 싶으면 논문에 당연히 보통은 왜 안되는지, 왜 이번 실험에서만 됐는지 설득력 있게 적는 게 당연하다. 그런 것이 없으면 당연히 듣보잡 논문행으로 직행하는 게 보통인데 '그냥 했더니 됐어요.'라고 하면서 논문잡지의 3대장 중 하나인 네이처에 그런 걸 투고하니 신랄한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6] 당시 이화학연구소는 "현 소장이 노벨상 수상자이니, 차기 소장도 노벨상 수상자가 되어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이에 초조해진 사사이 부소장은 여러 젊은 인재들을 데려와 지원하면서 그 중 하나라도 잘 되면 그들을 후원한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고자 했다.[7] 게다가 일본 언론사들이 사사이 부소장의 이런 의도를 간파하고 일제히 "노벨상을 수상한 야마나카 신야가 마땅히 다음 소장이 되어야 한다"는 여론을 조성해서 더 궁지에 몰렸다. 평소에 사사이 부소장이 뇌물을 주지 않으면 보도자료를 주지 않는 등(…)의 행동 때문에 언론들이랑 사이가 안 좋았다.[8]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데이터베이스에는 2014년 10월 6일 박사학위취소'(平成26年10月6日学位取消)라고 기록되어 있다. (해당링크)[9] 여기에는 변호사 선임비용 2,820만엔, 정신과 의사 초청 등 관계자들의 정신적 치유에 들어간 200만엔이 포함되었다. 마이니치 신문 보도[10] 일본 전통 앞치마로, 일본 미디어에서는 현모양처(야마토 나데시코)의 상징으로 주로 쓰인다.[11] '오보카타 하루코의 "만능세포는 있습니다!"의 말투가 귀엽다' 라는 뜻이다.[12] 링크된 기사에 실린 사진이 구찌의 21만 8,340엔짜리 원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