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와는 조금 다르게 홍콩의 경우 배우와 가수 겸업을 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는데, 엽천문도 그런 경우로, '빈매'를 통해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80년대 초반 작을 보면 열혈천사라든가 홍분유협같은 류의 영화에 출연했는데,흑역사가 되었다. 영화가 병맛이거나, 임청하같은 유명 배우에게 가려진 게 사실이다.
필모를 보면 은근 주윤발과 함께한 작품이 많다. 국내팬들에게는 첩혈쌍웅으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고, 상하이부르스에서도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대장부일기에서는 왕조현과 함께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성룡과 함께 Protector에 출연하기도 했고, 최가박당 시리즈의 4번째 영화 천리구차파에도 출연하였다.
1986년 임청하, 종초홍과 함께한 '도마단'에서 꿇리지 않고 여주인공의 몫을 톡톡히 해냈다.[5] 가수로써도 인정받고 있어서 출연작의 OST를 부르기도 했다. 88년 서극 감독의 '철갑무적 마리아'에 출연하는데 무려 1인 2역을 해냈다.
1989년 주윤발과 함께 첩혈쌍웅에 출연하게 되고 국내에는 이 영화로 인해 인지도가 늘어났다고 볼 수 있다.
서극 감독과 친분이 있었는데, 영화배우로써 흥하게 된 것이 서극의 덕분이라면, 영화계를 떠나게 된 이유도 서극 때문이라는 카더라가 있었다. 서극이 영화 '소오강호'의 남봉황 역으로 엽천문을 캐스팅하려 했는데, 엽천문이 이에 응하지 않아[6] 두 사람의 관계가 급속 냉각되었다는 것이다. 진실은 본인들만이 알 것이리라. 어찌됐던 1991년도 이후 엽천문은 한 편의 영화도 출연하지 않았다. 사실상 영화계를 떠났다고 보고 있다.
영화계 데뷔 이전에 1980년 '春天的浮雕'로 가수활동을 시작했다. 데뷔 초 목소리는 비교적 미성에 가까웠고, 이때부터 영화 주제곡도 불렀다.
대만 출신이지만 어릴 때 미국에서 살았던 경험도 있어서 만다린어와 영어가 모두 소화 가능했던 게 이점으로 작용하기도 했고, 가창력을 인정받아 홍콩에서의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1984년 홍콩에서 '영시십분' 이라는 곡을 발표했는데 제법 인기가 있었고, 그해 홍콩의 TVB에서 주관하는 십대경가금곡 안에도 들어버린다. 들으러가기
이후 발표하는 앨범이 모두 히트를 치고 홍콩에서도 유명해지게 되는데에는 임자상[8]의 공이 크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광동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엽천문에게 광동어와 광동어로 노래부르는 방법 등을 가르쳐준 사람이었고, 1984년 엽천문의 이름을 걸고 발표한 Sally Yeh 앨범 마지막곡을 듀엣곡[9]으로 수록하는 등 홍콩 활동을 하는 엽천문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앨범을 낼 때마다 많은 사랑을 받았고 홍콩 가요계의 사대천후[10]에 이름이 올라가기도 했다.
1990년대까지도 매염방, 왕비 등과 나란히 하며 왕성한 활동을 했고 명실공히 홍콩 가요계에서 인정받는 가수가 되었다.
1991년 12월 13일 SBS 개국 5일차 쇼 서울서울 첫회에 출연하여 노래 두곡을 불렀다.
1996년, 자신의 사부였던 임자상과 결혼을 하게 된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임자상은 이미 가정이 있는 사람이었고 이 결혼으로 인해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된다. 게다가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11]가정파탄자라는 오명이 씌워지기도 했다. 더군다나 임자상의 전처는 엽천문을 발굴한 사람이었기에 파장이 더 컸고 엽천문 본인도 마음고생이 상당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임자상과의 슬하에 자녀가 없다.[12]
임자상과의 스캔들 이후 '진심'이라는 곡을 발표하는데, 임자상과의 결혼으로 인해 온갖 비난에 시달릴 때의 심경을 노래한 곡이라고 하여 더욱 주목을 끌었다. 1997년 繫我心弦(계아심현) 앨범을 발표하고 셀린 디온의 My Heart Will Go On을 리메이크한 계아심현이라는 곡(타이타닉 광동어판 주제가)으로 컴백했다. 비난 여론도 잠잠해졌던지,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소속사와의 계약이 종료되고 콘서트 외에 앨범을 내지 않고 있다가, 2002년 새로운 회사 (EEG 엔터테인먼트)와의 만남과 함께 '니청도' 라는 앨범을 들고 컴백해 그해 십대경가금곡상 (상서)을 수상한다. 2002년 엽천문의 나이 41살.
남편 임자상과는 여전히 잘 지내고 있으며, 틈틈이 앨범도 내고 최근(2012년 11월 30일 기준)에는 '완전시니' 콘서트에 분주하다고 한다. 이 콘서트에 반가운 얼굴들이 참석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13] 2013년 12월 19일 비공식(?)적으로 한국에 방문했었다. 두 번째 방한.[14]
[표준중국어] Yè qiàn wén, 예쳰웬[광동어] yip6 sin6 man4, 입신만[3] 대만 첫 앨범[4] 주윤발이 클럽에 들어섰을 때 제니가 부르고 있던 노래 <천취일생>, 주윤발과 이수현이 고뇌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노래 <수연> 두 곡이다.[5] 함께 출연한 임청하나 종초홍은 그 당시에는 연기에 매진하고 있었던 데다, 여주인공이 3명이다 보니 서로 신경전이 상당했다고 한다.[6] 첫 번째. 서극이 남봉황역을 제의하자 그 역할이 조연이라 싫다고 했다. 두 번째. 당시 콘서트로 정신없어서 거절했다는 추측성 카더라가 있다.[7] 바로 이 상황에서 총이 발사되는 바람에 눈을 다치는 식으로 전개된다.[8] 엽천문의 현재 남편, 배우이자 가수. 황비홍(영화) 광동어판에서 남아당자강을 부른 가수이다.[9] 세르지우 멘지스(Sérgio Mendes)의 Never Gonna Let You Go를 불렀다.[10] 당시에 사대천왕과 더불어 많은 인기를 누리던 여가수 4명을 지칭한다. 임억련, 엽천문, 진혜한, 왕페이[11] 임자상: 1947년생, 엽천문: 1961년생. 무려 14살 차이.[12] 임자상은 전처와의 사이에서 1남 1녀를 두었고, 엽천문이 이들을 상당히 예뻐한다고 한다. 이중 아들 임덕신은 아버지와 함께 엽천문의 콘서트에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13] 열혈천사에 함께 출연했던 양혜산, 임청하가 참석했으며, 양범감독과 종초홍도 엽천문의 콘서트장을 방문했다.[14] 첫 번째는 1991년 SBS 쇼 서울서울 출연차 방문 이다.[15]임청하와 함께 출연했던 영화로, 조금 난해한 영화. 이런 류의 영화를 몇 번 더 찍었다. 주인공 빼고 다 죽는 영화...[16] 지금의 질타악단유행방의 전신격 시상식이다.[17] 홍콩판 '위 아더 월드' 라고 생각하면 된다.[18] 황백고, 임자상과 공동 프로듀싱[19] 한국으로 치면 올해의 10대 가수를 말한다.[20] 수상호명을 신승훈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