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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8 16:23:47

연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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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관광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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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FFFFFF> 연화지
鳶嘩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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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경상북도 김천시 교동 820-1[\br]
유형 저수지
1. 개요2. 상세

1. 개요

파일:external/gbtour.sillasystem.com/4A44F07D3B3840539BD932F2DB243816.jpg
경상북도 김천시 교동에 위치한 저수지이자 관광지.

2. 상세

조선 시대 초기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숙종 37년(1711) 당시 김천의 군수였던 윤택(尹澤)이 솔개가 연못에서 날아올라 봉황으로 바뀌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윤택은 이 꿈을 길하고 좋은 징조라고 여겨 저수지에 솔개 연() 자와 떠들썩할 화() 자를 써서 연화지()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떠들썩할 화() 자를 '바뀌다'라는 뜻으로 사용할 경우에는 '와'라고 읽어야 하지만, 지명이 '연와지'가 아닌 '연화지'로 굳어버렸다.

벚나무가 저수지를 빙 둘러 심겼다. 또한 저수지 한 쪽에는 섬 3개가 있는데, 가장 작은 섬에는 소나무와 벚나무 몇 그루가 있다. 나머지 두 섬은 작은 석재 다리로 연결되었는데, 섬 내부에는 1985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5호로 지정된 봉황대()라는 정자 하나가 있다. 이 정자는 본래 읍취헌()이라는 이름으로 삼락동 북쪽에 있었지만 구화산 아래로 이전되었고, 헌종 4년(1838) 김천군수 이능연(李能淵)이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봉황루란 명칭은 당나라 이백의 시 '봉황루에 올라'에서 따왔다고 추측한다. 현재 걸린 편액에는 봉서관(鳳棲觀)이라고 쓰였지만, 주민들은 봉서관이 아니라 '봉황루'라 부른다.

현재와 같은 산책로와 조경 등이 조성된 시기는 1993년경이다.

풍경이 상당히 예뻐서 김천시 내에서 데이트 코스로 유명하다. 특히 벚꽃이 폈을 때나 야경이 예쁘다. 벚꽃 시즌에는 사람이 꽉 찬다고 보면 된다.

김천예고 출신인 김호중이 2020년 내일은 미스터트롯으로 유명해진 후, 김천예고 일대가 김호중 거리로 지정되어 관광산업이 활성화됐는데, 연화지가 김천예고에서 가깝다 보니 덩달아 유명해지기도 했다. 다만 김호중이 괴인으로 전락하면서 아리스가 연화지를 점령하는 일은 사그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