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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20:47:13

여찬엽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족보명 여찬엽(余璨燁)
응순(應順)
본관 의령 여씨[1]
출생 1889년 7월 14일
경상도 의령현 칠곡면 도산리
(현 경상남도 의령군 칠곡면 도산리)
사망 1954년 12월 17일
경상남도 의령군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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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여찬엽은 1889년 7월 14일 경상도 의령현 칠곡면 도산리(현 경상남도 의령군 칠곡면 도산리)에서 아버지 여민규(余玟奎)와 어머니 나주 임씨 임병덕(林炳德)의 딸 사이의 3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14일 의령읍 장날에 구여순, 이화경(李華卿), 정용식(鄭容軾), 최정학(崔正學), 이우식(李祐植), 김봉연(金琫淵) 등이 주도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여 3천여 명의 군중과 함께 장터와 읍내를 행진하고 경찰서 앞에 이르러 독립만세를 외친 뒤 자진 해산했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의령향교(宜寧鄕校) 앞에 모인 1천 5백여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비가 내리는데도 불구하고 경찰서와 군청을 행진하며 만세시위를 전개했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19년 4월 28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소요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의령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4년 12월 17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여찬엽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삭주공파 29세 엽(燁) 항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