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ccc><colbgcolor=#000> 에토레 부가티 Ettore Bugatti | ||
본명 | 에토레 아르코 이시도로 부가티 Ettore Arco Isidoro Bugatti | |
국적 | [[이탈리아 왕국| ]][[틀:국기| ]][[틀:국기| ]] →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 | |
출생 | 1881년 9월 15일 | |
이탈리아 왕국 밀라노 | ||
사망 | 1947년 8월 21일 (향년 65세) | |
프랑스 뇌이쉬르센 | ||
직업 | 자동차 엔지니어, 기업인 | |
조부모 | 할아버지 조반니 루이지 부가티 (1823 ~ 1880) 할머니 아멜리아 살보니 (? ~ ?) | |
부모 | 아버지 카를로 부가티 (1856 ~ 1940) 어머니 테레사 로리올리 (1862 ~ 1935) | |
형제 | 동생 렘브란트 부가티 (1884 ~ 1916) | |
배우자 | 바르바라 주세피나 마스케르파(1907년 결혼, 1944년 사망) 제너비브 마르그리트 델큐즈(1946년 재혼) | |
자녀 | 장녀 레베 부가티 (1903 ~ ?) 차녀 리디아 부가티 (1907 ~ ?) 장남 장 부가티 (1909 ~ 1939) 롤랑 부가티 (1922 ~ 1977년) 딸 테레즈 부가티 (1942 ~) 아들 미셸 부가티 (194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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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토레 부가티는 프랑스의 최고급 자동차 제조사인 부가티의 엔지니어, 디자이너이자 설립자[2]이다. 부가티 Type 2부터 수많은 명차들을 제작하여 지금도 자동차인들에게 존경을 마지않는 자동차 제작자이다.2. 생애
에토레 부가티는 1881년 9월 15일, 이탈리아 밀라노에 근거지를 두고 활동하는 유명한 예술가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 조반니 루이지 부가티(Giovanni Luigi Bugatti)는 뛰어난 조각가이자 건축가였고, 그의 아버지인 카를로 부가티(Carlo Bugatti, 1856 ~ 1940)와 어머니인 테레사 로리올리(Teresa Lorioli, 1862 ~ 1935)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실내 장식가이자 최고급 아르누보 가구, 악기, 보석, 자전거 제작자였다. 또한 그의 동생인 렘브란트 부가티(Rembrandt Bugatti, 1884 ~ 1916)도 후에 유명한 조각가가 되었고, 그의 고모부는 이탈리아와 스위스의 화가인 조반니 세간티니(Giovanni Segantini, 1858 ~ 1899)는 점묘풍으로 알프스산맥을 아주 아름답게 묘사하는 것으로 아주 유명한 화가였다.<colbgcolor=#fff,#191919> |
청소년기의 에토레 부가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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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티 Type 2와 굴리넬리 백작 |
3. 기행
에토레 부가티는 생애를 보면 알겠지만 정식으로 엔지니어링에 대해 배운 적 없이 독학과 어깨 너머로 배운 것만으로 이런 사기차를 뽑아내던 천재였다. 그러나 그는 완벽주의적이고 괴팍하기로는 엔초 페라리, 호라치오 파가니 저리가라 할 정도로 성격이 특이했는데, 그의 몇몇 일화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참고로 카더라 통신이 아니고 전부 실화다.- 동물 애호가였던 에토레 부가티는 집에 작은 개인 동물원을 두고 있었는데, 특히 개의 혈통에 대해 상당히 민감했던 그는 시중에 분양되는 개에 만족하지 못해 자신이 직접 개 분양업에 착수했었다.
- 프랑스의 달걀 값이 폭등하자 그는 이번에도 자신이 직접 닭을 키워 계란을 얻으려고 했는데, 지나치게 완벽주의적이었던 성격 탓에 직접 닭을 키울 이동형 닭장을 제작하고서야 만족했다. 물론 이렇게 해서 얻는 달걀이 훨씬 더 비쌌다고 한다.
- 그는 밥을 먹을 때 반드시 자신이 정한 배열로 식기를 배열하고서야 밥을 먹었다.
- 부가티의 고객 중 한 명이 추운 날씨에 차가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고 불평하자 그는 자사의 차를 살 정도의 재력이 되는 양반이면 당연히 차고에 난방장치를 설치할 정도는 돼야하는 것 아니냐며 쏘아붙였다.
- 알바니아의 국왕 조구 1세가 그의 차 중 최상위급 모델이었던 부가티 타입 41 루아얄을 구매하려고 했는데 부가티 본인이 조구 1세의 밥 먹는 방식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판매를 거절했다고 한다. 참고로 타입 41은 군주제 폐지와 대공황의 여파 때문에 판매부진에 시달려 목표 판매량 25대 중 꼴랑 3대만 판매되었다.
- 부가티 타입 35의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다며 불평한 고객이 있었는데, 에토레는 그에게 "내 차는 달리라고 있는거지 서라고 있는게 아니다."라는 짤막한 편지 한 장으로 대꾸한 적도 있었다.
- 어느 고객은 기차역에서 부가티 본사까지 택시를 타고 와서 차를 구매하겠다고 했는데, 에토레는 그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내쫓았다고 한다. 이유는 그가 타고 온 택시 브랜드가 마음에 안 들어서.(...)
- 당시 벤틀리 3리터라는 차를 두고 "세계에서 가장 빠른 트럭(The fastest lorry in the world)"이라고 했는데 이는 르망 24시에 출전하고 있던 벤틀리 3리터가 당시 레이싱 카들보다도 확연히 무게가 더 많이 나가서였다.
- 에토레 부가티는 오렌지를 특히 좋아했는데, 사시사철 싱싱한 오렌지를 먹기 위해 이번에도(2) 직접 실내 과수원을 지어 오렌지 나무를 심어 가꾸면서 매우 흡족해했다.
어떻게 보면 그의 지독한 완벽주의적인 성격이 여실히 드러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그의 성격으로 인해 퇴짜를 맞거나 좋지 않은 반응을 얻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혀를 내두르며 불쾌해 했음은 당연지사. 그래서 부가티 차량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은 재력도 있어야 했지만, 에토레 부가티의 이런 까다로운 진상 행적을 다 받아줄 수 있어야 했다고.
4. 기타
현재 에토레 부가티의 생가와 그의 개인 실내 과수원 등은 폭스바겐 그룹이 소유하고 있으며, 부가티 쇼룸으로 사용하고 있다. 일명 세계에서 가장 호화로운 쇼룸이라고도 불린다. 그의 생가와 과수원, 쇼룸은 여기를 보면 알 수 있다.[1] 이 문구는 부가티 라 부아튀르 누아르에 새겨졌고, 부가티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이 문구가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2] 엄밀히 말하자면, 현재 폭스바겐 그룹의 자회사인 Bugatti Automobiles S.A.S.가 아닌 Automobiles Ettore Bugatti를 설립했다. 오직 하이퍼카만 생산하는 현재와는 다르게 레이싱카부터 최고급 세단까지 각종 자동차를 만들던 회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