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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6 14:21:04

엔초 페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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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초 페라리설립자존 엘칸회장베네데토 비냐CEO
계열사 및 사업부
<colbgcolor=#D40000> 브랜드 페라리디노폐지
모터스포츠 스쿠데리아 페라리 HP페라리 AF 코르세
생산 공장 페라리 모데나 공장
패션 페라리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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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초 페라리
Enzo Ferrari
파일:4D88C1BC-969F-4D7D-AD29-80369C3AB577.jpg
<colbgcolor=#000> 본명 엔초 안셀모 주세페 마리아 페라리
Enzo Anselmo Giuseppe Maria Ferrari
출생 1898년 2월 18일
이탈리아 왕국 에밀리아 모데나
(現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 주 모데나)
사망 1988년 8월 14일 (향년 90세)
이탈리아 마라넬로
국적
[[이탈리아|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이탈리아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직업 레이싱 드라이버, 기업인
배우자 로라 도미니카 가렐로 (1923년 결혼 ~ 1978년 사별)
자녀 장남 알프레도 페라리 (1932년 출생 ~ 1956년 사망)
차남 피에로 페라리 (1945년 ~ )
신체 187cm

1. 개요2. 생애3. 여담4.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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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의 레이싱 팀 스쿠데리아 페라리와 자동차 제조사 페라리의 창업자.

2. 생애

1898년 이탈리아 북부 모데나에서 태어났다. 10살때인 1908년 볼로냐에서 자동차 경주를 처음 본 것이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13세 때 부터 운전을 했으며 스포츠에 상당한 재능을 보여 15세 때 스포츠신문에 축구 기사를 기고해 이름을 날렸다.
파일:external/www.grandprixhistory.org/ferrari45.jpg
젊은 시절의 엔초 페라리-외질??-

1915년 자신이 소속된 신문의 기사에서 이탈리아인 디 파르마가 1915년 미국 최대 레이싱 대회인 인디애나폴리스 500에서 극적으로 우승했다는 소식을 보고 과거 자신의 꿈인 레이싱 드라이버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20세에 꿈을 이루기 위해 자동차 회사의 트럭 운전사로 취직한다.

그러던 중 이탈리아 최고의 드라이버 중 한 명인 페리체 나지로를 만나 그의 소개로 스포츠카 메이커인 CMN사로 직장을 옮기고 운전 실력을 인정받아 레이싱에 데뷔하게 된다.

첫 출전한 레이싱은 50km의 산길을 달리는 경주로, 종합 11위를 기록했다.

1920년대 팀 알파 로메오의 드라이버였으나 1929년 자신만의 레이싱 팀인 스쿠데리아 페라리를 만들었고 이것을 보통 페라리의 시작으로 본다. 오늘날 페라리의 양산차 앞 펜더에 달린 엠블럼의 SF는 이 이름의 약자이다. 그리고 이 팀은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레이싱 팀이 되었다.

1939년 알파 로메오 측에서 자신의 레이싱 팀 스쿠데리아를 흡수하고 자신을 내쫓으려는 의도를 알아챈 페라리는 알파 로메오와 결별하고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첫 생산차량은 1940년에 나온 Tipo 815.

그러나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알파 로메오와의 계약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딴 자동차를 생산할 수 없었다. 1947년에는 드디어 페라리의 진가가 포뮬러 1르망 24시 레이스에서 본격적으로 발휘하기 시작했고, 이후 1988년까지 무려 5,000번의 우승 타이틀을 거머쥘 정도로 스쿠데리아 페라리는 막강한 팀으로 성장하게 된다.

1988년 8월 14일, 페라리는 90세의 일기로 이탈리아 마라넬로에서 심부전증으로 사망했다.

3. 여담

4. 어록

You cannot describe passion, you can only live it.
열정은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저 열정적으로 살아갈 뿐이다.
Aerodynamics are for people who can't build engines.
공기 역학은 엔진을 만들 줄 모르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Ask a child to draw a car, and certainly he will draw it red.
아이들에게 자동차를 그리라고 하면 빨간색으로 칠할 것이다.
The horse pulls the carriage, not push them.
마차는 미는 것이 아니라, 끄는 것이다.
You know how to drive tractors. But you'll never learn how to drive a real Ferrari.
트랙터는 잘 모는 모양이군. 근데 진짜 페라리는 평생 배워도 제대로 몰지도 못할 걸세.
250 GT의 결함을 지적하러 찾아온 페루치오 람보르기니에게.[6]


[1] Ordine al merito della Repubblica italiana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 훈장)[2] 탑기어에서 전 MC들이자 스포츠카 매니아인 제레미 클락슨과 리처드 해먼드가 이 때문에 입씨름을 한 적이 있는데, 저가의 슈퍼카를 구매해 진행한 특집에서 해먼드가 페라리 마크가 붙은 중고 디노 모델을 헐값에 사왔다. 해먼드가 잘 사왔다면서 자화자찬하자 클락슨이 "넌 가짜 페라리를 사왔잖아!"라고 극딜을 하고 해먼드가 이에 대해 "엔조가 비극적으로 요절한 자기 아들의 별명을 붙혀서..."라면서 진짜 페라리라고 반박하는 내용. 참고로 이 특집은 고작 약 310만원으로 미드십 엔진 슈퍼카를 구매하는 미션이라 3MC가 산 차들[7]은 다 폐차 직전의 폐급들이었다.[3] 이 일화 또한 훗날 프랭크 그릴로 주연의 영화 <람보르기니: 전설이 된 남자>의 배경이 된다.[4] 이 회사가 만든 대표적인 차종중에 하나는 BMW가 라이선스 생산했던 BMW 이세타이다. 이소가 개발하여 3년 정도 판매했었지만, 정작 창업자인 렌조 리볼타가 직접 타보고는 못 써먹을 쓰레기 같은 자동차라는 이유로 BMW에 이세타에 관련된 모든 것들을 싹다 털어 넘겨 버린다. 이후로는 페라리를 위해 차를 개발하던 기술자가 이직하자 그 기술력과 쉐보레 V8 엔진을 조합한 새 GT 카를 만들었고, 이세타는 다들 잘 알다시피 BMW가 10년동안 신나게 팔아먹었다. (참고 자료)[5] 사실 포드와의 사례는 오히려 페라리가 억울한 입장이다. 포드가 반대하면 해당 레이스에 못 나간다는 조항이 있는데, 레이싱에 죽고사는 페라리에게 간 내놔라 쓸개 내놔라 하면 다 빼서 가져오라는 뜻이다. 사실상 포드가 시비 건 것이나 다름없었고, 페라리의 입장에서는 화가 안 날 수가 없었다.[6] 이는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를 격노하게 만들었고, 람보르기니를 본격적으로 창업하는 계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