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UEFA 유로 결승전 개최 경기장 | ||||
12회 | → | 13회 | → | 14회 |
유로 2004 포르투갈 이스타디우 다 루스 | 유로 2008 오스트리아/스위스 에른스트 하펠 슈타디온 | 유로 2012 폴란드/우크라이나 NSC 올림피스키 스타디움 |
역대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개최 경기장 | ||||
1962-63 | → | 1963-64 | → | 1964-65 |
웸블리 스타디움 | 프라터슈타디온 |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 | ||
1985-86 | → | 1986-87 | → | 1987-88 |
에스타디오 라몬 산체스 피스후안 | 프라터슈타디온 | 네카어슈타디온 | ||
1988-89 | → | 1989-90 | → | 1990-91 |
캄 노우 | 프라터슈타디온 | 스타디오 산 니콜라 | ||
1993-94 | → | 1994-95 | → | 1995-96 |
아테네 올림픽 스타디움 | 에른스트 하펠 슈타디온 | 스타디오 올림피코 |
''' 오스트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 | |
에른스트 하펠 슈타디온 Ernst-Happel-Stadion | |
<colbgcolor=#E31F2B><colcolor=#fff> 이전 명칭 | 프라터슈타디온 Praterstadion |
기공 | 1929년 |
공사기간 | 1929년 ~ 1931년 |
개장 | 1931년 7월 11일 |
보수 | 1945, 1956, 1965, 1984 ~ 1986, 2005 ~2008 |
소유 | 빈 시 |
운영 | Wiener Stadthalle Betriebs- und Veranstaltungsgesellschaft m.b.H. |
설계 | 오토 에른스트 슈바이처 |
홈팀 | 오스트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FK 아우스트리아 빈, SK 라피트 빈[1] |
수용인원 | 50,865석 |
최대 수용 기록 | 90,726명(1960년 10월 30일, vs 스페인) |
규모 | 105 x 68 m |
표면 | 잔디 |
UEFA 등급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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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축구 경기장.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가장 큰 축구 경기장이며 UEFA 카테고리 4성급 구장중 하나이기도 하다. 원래 이름은 프라터슈타디온(Praterstadion)이었지만 오스트리아 출신 명감독 에른스트 하펠이 1992년에 사망한 이후 그를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경기장 이름에 헌정하였다. 또한 오스트리아 축구 연맹의 본부가 이 경기장에 있다.2. 역사[2]
2.1. 기공 - 제2차 세계 대전
1915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시절부터 축구 경기장의 계획은 있었고 많은 계획안이 제출되었지만 당시는 제1차 세계 대전중이라 축구장을 지을 형편이 못되었다. 1928년 11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붕괴 10년이 되는 시점에 프라터슈타디온의 공사가 시작되었다. 이후 독일계 오스트리아 공화국을 거쳐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으로 정치 체제가 바뀌었기 때문에 공화제 설립 1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도 있었다.경기장은 독일 출신 건축가 오토 에른스트 슈바이처(Otto Ernst Schweitzer)의 설계로 23개월의 공사 기간을 거쳐 제2회 노동자 올림피아드 개최에 맞춰 건설되었다. 빈의 프라터에 위치해 있어서 프라터슈타디온으로 명명되었다. 건설 당시 400,000m²로 유럽에서 가장 큰 수영장을 포함한 여러 편의 시설이 갖춰진 현대식 축구장이었고 수용 인원은 6만이었다. 특히 6만명이 차거나 빠지는 데에 7~8분밖에 안 걸리는 구조로 이름이 높았다.
1931년 개장 이후, 오스트리아 대표팀의 홈 구장으로 사용되면서 1934년과 1938년 월드컵 지역예선 경기가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 경기장도 제2차 세계 대전 때 역사의 소용돌이를 피할 수 없었는데 오스트리아 병합 이후 막사와 군인 대기 장소, 유대인 추방 이전의 임시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폴란드 침공 이후 1,038명의 빈 출신 유대인들이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의 명령에 의해 이곳의 B 섹션 복도의 관중석 아래에 구금되었다가 부헨발트 강제 수용소로 이송되었다.[3] 그리고 그들이 이송된 이후 바로 다음날 축구 경기가 열렸다. 2003년 이후로는 민간 주도로 경기장의 VIP 구역에 이 비극을 기록한 명판이 설치되기도 했다.
1944년에는 이 경기장에 폭탄이 떨어져 심하게 손상되었다.
2.2.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 축구장의 수용 인원 늘리기에 이 구장도 빠지지 않아 1956년, 테오도르 슐(Theodore Schull)에 의해 최대 수용 인원이 92,708명까지 늘었다. 그리고 1960년에 있었던 스페인과의 A매치에서 90,726명이 입장, 경기장 최다 수용인원 기록을 세웠지만 홈팬들 앞에서 오스트리아는 스페인에 0대3으로 완패했다.1965년에 프라터슈타디온은 다시 리모델링을 하면서 수용 인원을 줄였고 1992년 에른스트 하펠이 폐암으로 사망하자 그의 이름이 경기장에 헌정되어 현재의 이름인 에른스트 하펠 슈타디온으로 개칭되었다.
2.3. 현재
UEFA 유로 2008의 개최를 위해 이 경기장을 부분적으로 개보수했고 2005년에는 지하 난방, 2008년 5월에는 경기장 근처에 새로운 지하철역이 개통되어 접근성이 좋아졌다.오스트리아 축구 연맹은 현재 에른스트 하펠 슈타디온을 대체할 6만석 정도의 축구장 건설을 원하고 있다. 하지만 1억 유로는 들어갈 큰 공사를 축구단을 포함한 민간 투자 없이 진행하려면 빈 시]에서 이를 거의 다 부담해야 되므로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다.
현재 이 구장에서 축구 경기로는 오스트리아 대표팀의 홈경기나 ÖFB컵 결승전이 치러지고 있다. 육상, 사이클, 테니스 경기도 가끔 열리며 미식축구 경기도 열릴 때가 있다.
3. 주요 경기
3.1. 클럽 경기
3.1.1. 유러피언 컵 / UEFA 챔피언스 리그
<rowcolor=#000000> 경기일자(현지 시각) | 홈 팀 | 결과 | 원정 팀 | 대회 | 관중 수 |
1964년 5월 27일 | 인테르 밀란 | 3:1 | 레알 마드리드 | 1964 유러피언컵 결승전 | 71,333명 |
1987년 5월 27일 | 바이에른 뮌헨 | 1:2 | 포르투 | 1987 유러피언컵 결승전 | 57,500명 |
1990년 5월 23일 | AC 밀란 | 1:0 | 벤피카 | 1990 유러피언컵 결승전 | 58,000명 |
1995년 5월 24일 | 아약스 | 1:0 | AC 밀란 | 1995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 49,730명 |
3.2. 국가대표 경기
아직 오스트리아에서 FIFA 월드컵이 개최된 적은 없지만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대회는 개최한 적이 있다. 2008년 스위스와 공동개최했던 UEFA 유로 2008이 그것으로, 당시 오스트리아의 조별예선 전 경기와 일부 토너먼트 경기 그리고 6월 29일에 열린 스페인과 독일의 UEFA 유로 2008 결승전 경기를 포함해 총 7경기가 열렸다. 결승전 결과는 스페인이 1대0으로 승리로 거뒀고 무적함대는 이후에 개최된 메이저 대회 2개를 더 우승, 3연패를 달성하는 초석을 닦은 곳이다.3.2.1.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3.2.1.1. UEFA 유로 2008
<rowcolor=#2d2f32> 경기일자 | 팀 1 | 결과 | 팀 2 | 라운드 | 관중 |
2008년 6월 8일 18:00 | 오스트리아 | 0:1 | 크로아티아 | 조별 예선 B조 | 51,428 |
2008년 6월 12일 20:45 | 오스트리아 | 1:1 | 폴란드 | 조별 예선 B조 | 51,428 |
2008년 6월 16일 20:45 | 오스트리아 | 0:1 | 독일 | 조별 예선 B조 | 51,428 |
2008년 6월 20일 20:45 | 크로아티아 | 1:1 (1:3 | 터키 | 8강 | 51,428 |
2008년 6월 22일 20:45 | 스페인 | 0:0 (4:2) | 이탈리아 | 8강 | 48,000 |
2008년 6월 26일 20:45 | 러시아 | 0:3 | 스페인 | 4강 | 51,428 |
2008년 6월 29일 20:45 | 독일 | 0:1 | 스페인 | 결승 | 51,4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