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27 14:28:33

양의지/여담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양의지
1. 개요2. 야구 관련
2.1. 2022년 FA 계약 비하인드2.2. 2019년 FA 계약 비하인드2.3. 말말말
3. 야구 외
3.1. 두산 베어스에 대한 애정3.2. 포커 페이스3.3. 박정원 구단주3.4. 예능 프로그램 출연3.5. 선행 및 기부3.6. 기타

1. 개요

두산 베어스의 레전드 포수인 양의지의 기타 사항들을 설명하기 위한 문서.

2. 야구 관련

파일:의지과자선물.jpg
파일:의지황당.gif
파일:yang_kang.gif

파일:밑장빼는용제폐하.gif

파일:밑장빼는콘스.gif

2.1. 2022년 FA 계약 비하인드

두산은 4년 전 NC에 양의지를 내주면서 전력이 크게 흔들렸다. 박세혁을 앞세워 우승을 차지했지만 정규리그 강자가 되지 못했다.
급기야 2022시즌은 9위까지 내려앉았고 김태형 감독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박정원 구단주는 이승엽 감독이 부임하자 양의지 선물을 준비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영입을 위해 직접 나서는 열의를 보였다.
사진 한 장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구단주가 직접 팔을 걷어부쳤는데 베팅금액은 문제가 아니다.

구단의 FA 사상 최다금액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곧 '양의 귀환' 이라는 보도자료가 나올 듯한 분위기이다.
2022.11.22 오전 10시 경 올라온 기사 내용 중
파일:박정원양사장.jpg

2.2. 2019년 FA 계약 비하인드

허구연 해설의 에 따르면 NC는 2018 시즌 종료 후 스토브리그 당시 이재원 정도의 포수를 노리고 있었다고 한다.

이동욱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처음 감독 선임이 된 후 구단주와의 첫 식사 자리에서 구단주가 이동욱 감독에게 팀의 부족한 부분을 물어보았고, 이동욱 감독이 "포수가 지금 마이너스입니다" 라며 포수 포지션 보강을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김택진 구단주가 식사자리 막바지에 "오케이, 이 감독님께 선물 하나 드리겠습니다" 라며 통큰 결정을 암시했다고 한다.

이후 김택진 구단주가 팀 주요선수들과 비시즌에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모창민을 비롯한 선수들이 이구동성으로[11] "양의지를 데려와 달라"고 부탁을 했고, 그 말을 들은 구단주가 금액에 상관치 말고 양의지를 영입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 얘기들은 당시 NC 팬들 사이에서는 이미 알려져있던 이야기이기도 하다.[12]

2020년 12월 당시 상황과 관련한 질문에 양의지는 “사실 처음에는 석민이 형이 그 이야기를 한 줄 알았다. 석민이 형이 ‘창민이가 아니고 나다’라고 했다. 그런데 또 창민이 형도 그렇게 얘기하더라”라며 “누가 됐든 형들이 그런 말을 해준다는 게 나를 인정한 것이다. 고마울 따름”이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NC의 시장 참전이 공식화된 2018년 12월 7일 SBS뉴스 단독보도
SBS Sports 중계를 통해 알려진 바로는, 정우영 캐스터와 이승엽 해설이 2019 시즌 개막전 중계방송을 준비하면서 NC 측에서 들은 얘기는 "더 줄 생각도 있었다"는 말이었다고 한다. NC 측의 영입의지가 너무 확고해서 애초에 두산에서는 잡을 수가 없었던 것.[13]

NC 김종문 단장이 밝힌 양의지 영입 막전막후 기사에 따르면, NC가 양의지 측 에이전트와 처음 만난건 12월 4일이다. 이후 4번 정도 만났고 전화와 이메일로도 꾸준히 의견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최종 사인은 12월 10일, 발표는 11일이었다.

당시 이동욱 감독까지 FA 영입 협상테이블에 나가서 직접 양의지를 영입하려고 애썼다는 이야기도 당시 팬들 사이에서는 이미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었다. 양의지 영입 발표 직후 NC 선수들의 반응은 환영 일색.[14]

당시 NC 팬들은 포수난에 지쳐있었기 때문에[15] 양의지 영입에 누구보다 환호했다. 팬들은 이적발표 전날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김태형 감독의 표정을 보고 희망회로를 열심히 돌리기도 했다.[16]

이 영상은 양의지 본인도 봤다고 하며, 영상을 보고 '구단주님이 정말 이것때문에 나를 영입했나?' 싶어서 식사하면서 구단주에게 물어봤다고 한다.
얼마를 받아야 해 양의지
얼마를 퍼줘야 돼 양의지
우리는 돈 없어요 펀딩을 해볼게요
제발 좀 남아줘요 양의지
SBS 지상파 뉴스에도 탄, 지캐가 제작한 양의지 펀딩송 #

2018 시즌 당시에는 지캐가 양의지 펀딩송까지 만들며 화제가 되었는데, NC 이적 이후에 재평가를 받다가 양의지가 2023 시즌을 앞두고 다시 친정팀으로 돌아오면서 또 재조명을 받았다.

2.3. 말말말

4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 이렇게 다시 돌아왔는데 제가 은퇴할때까지 두산베어스와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드리고 재환이나, 경민이, 재호 형, 원준이 형 이렇게 하나가 돼가지고 예전에 두산베어스다운 모습을 찾을수 있도록 멋진 모습, 멋진 플레이로 우리 선수들과 함께 열심히 뛰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두산베어스 4년만에 돌아오게된 양의지입니다. 반갑습니다.
2022년 11월 22일 4년만에 친정팀으로 돌아오고 팬들한테 남긴 인사말
오피셜 I 'Welcome Back 양의지!' 4년 만에 돌아온 두산의 안방마님! (11.22)

파일:0000857013_001_20221223080103406.jpg
두산의 ‘산타’ 양의지 “이승엽 감독님에게도 우승 안겨드려야죠”
스경X인터뷰

3. 야구 외

3.1. 두산 베어스에 대한 애정

파일:1671805633.png
파일:1671805633 (1).png
파일:1672008602.png

두산 베어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역대 포수중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타격센스로 두산베어스의 영구결번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또한 양의지 개인적으로도 두산베어스에 대한 애정이 큰 모양.

3.2. 포커 페이스

3.3. 박정원 구단주

두산은 4년 전 NC에 양의지를 내주면서 전력이 크게 흔들렸다. 박세혁을 앞세워 우승을 차지했지만 정규리그 강자가 되지 못했다.
급기야 2022시즌은 9위까지 내려앉았고 김태형 감독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박정원 구단주는 이승엽 감독이 부임하자 양의지 선물을 준비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영입을 위해 직접 나서는 열의를 보였다.
사진 한 장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구단주가 직접 팔을 걷어부쳤는데 베팅금액은 문제가 아니다.
구단의 FA 사상 최다금액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곧 '양의 귀환' 이라는 보도자료가 나올 듯한 분위기이다.
2022.11.22 오전 10시 경 올라온 기사 내용 중
파일:박정원양사장.jpg

파일:박정원선물양의지.jpg

3.4. 예능 프로그램 출연

3.5. 선행 및 기부

3.6. 기타


[1] 양의지, 프로야구 언택트 올스타 레이스서 '미스터 올스타' 선정 프로야구 ‘언택트 올스타’ MVP·홈런왕 양의지[2] 그 전날 두산 2군마산 야구장에 원정을 왔는데 이때도 양의지가 친정팀 선수단에게 간식거리를 돌렸다.[3] 홍성흔과 비슷하게 2차 FA에서 두산으로 복귀했다.[4] 실제로는 최용제는 급격한 기량 저하와 경쟁자의 다수 존재로 인해 입지가 사라져서 방출되었고, 안권수는 실력은 쓸만한데 병역 문제로 인해 두산에서 더 오래 뛰기 곤란해서 더 어린 유망주들 자리도 만들 겸 선수 길 터주기 차원에서 합의 후 방출되었다. 실제로 병역 문제 해결이 안되면 2023 시즌이 사실상 KBO에서의 마지막 시즌이 되는데, 롯데에서 상당히 잘하고 있어서 기량 때문에 팀을 떠난 것은 아님을 증명하는 중.[5] 시즌 1위[6] 비교적 적게 몸에 맞은 2014년에 한화 투수 타투스코에게 연속으로 공을 맞고 분노했던 적이 있다.[7] 양의지는 두산에서 영구결번까지 기록 될 것으로 보인다.[8] 은퇴식을 열어준건 두산이지만 더 열광한 건 롯데팬이었을 정도로 롯데팬이 환영했다. 정작 두산팬들의 반응은 시큰둥했지만.[9] 이게 왜 문제가 되냐면 한화가 끼어들어버리니 두산측에서 몸값을 올려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면 양의지의 마음이 어디로 기울지는 너무나도 뻔해진다.[10] 당시 박동원을 내보내더라도 계약규모가 올라간 양의지의 몸값이면 샐러리캡이 초과되어 버리는 상태였다.[11] 스브스스포츠 유튜브 <야구에 산다> 방송에 따르면 그 고참들이 앉은 테이블에서 한 명이 "양의지 없어도 괜찮습니다" 라고 말했는데, 잠시 후 다른 고참들이 이 선수를 데리고 나가서 혼을 내고 들어온 다음 다시 입을 맞췄다고 한다. 이후에 모창민이 이영미의 셀픽SHOW에 출현해서 이 한 명이 임창민이었다고 밝혔다.[12] 김택진 구단주는 스토브리그 전후로 NC 선수들과 식사자리를 자주 가졌다.나성범의 모질함[13] 실제로 양의지 FA 영입경쟁 당시에도 두산 측에서 처음에는 90억 이하에서 최초 협상을 시작했다고 한다. 정세영기자 뭐니볼 비하인드 텍스트 1편 2편 #[14] ‘NC행’ 양의지의 마음을 사로잡은 ‘4자대면’ [SW엿보기] "정말요? 실감 안나요"...양의지 영입에 ‘들썩인’ NC 선수들 [엠스플 in 괌] 모창민·이민호 “동료 된 양의지, ‘급’이 다른 포수다.”[15] 당시 글들####[16] #이적 후 비하인드[17] 나성범은 본인이 투수였다면 상대해 보고 싶은 타자로 김선빈과 함께 양의지를 꼽았는데, 그 이유로 '김선빈은 하도 키가 작아서, 양의지는 정말 치기 싫은 사람처럼 서 있다가 홈런을 치고, 도대체 무슨 구종을 노리고 있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 이라고 했다. 또 전 두산 베어스 투수 김성배도 은퇴 후 한 방송에서 현역 당시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웠던 타자 중 하나로 양의지를 꼽은 이유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고, 공을 던지면 터무니없이 헛스윙해서 다시 그 코스로 던지면 냅다 때려 홈런을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동료 선수들도 신기한 모양.[18] 양의지는 평소 골프를 자주 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화[19] 이날 셋이 함께 저녁을 먹은 것으로 추정된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1781
, 6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1781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2069
, 6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2069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61
, 2.2.1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61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