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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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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애니콜
Anycall
파일:애니콜 로고.svg
2001년 후반부터[1] 브랜드 폐지(2011년)시까지 사용된 로고
[ 1994년부터 2002년까지 사용된 로고 ▼ ]
파일:애니콜 로고(1993-2002).svg
[2]
<colbgcolor=#034ea2><colcolor=#fff> 운영사 <colbgcolor=#fff,#1f2023>삼성전자
공개 1994년
폐지 2011년
후속 갤럭시[3]

1. 개요2. 상세3. 역사4. 역대 슬로건5. 모델명 규칙
5.1. SCH / SPH / SGH5.2. SHC / SHW / SM / GT
6. 출시 제품 목록7. 제품별 UI8. 기타

[clearfix]

1. 개요

애니콜(Anycall)은 과거 1994년부터 2011년까지 대한민국중화권에서 사용되었던 삼성전자휴대전화 브랜드이다.

2. 상세

1994년부터 2011년까지 보급형 피처폰의 경우는 2013년까지 삼성전자를 세계 휴대전화 시장 1위 회사로 발돋움할 수 있게 만든 상표다. 물론 삼성전자를 세계 휴대전화 시장 1위로 끌어올린 것은 삼성 갤럭시부터지만, 그 이전인 애니콜/MITs 시절부터 갖춰진 탄탄한 기술력이 없었다면 그 갤럭시를 내세운 삼성의 1위 신화는 절대 불가능했다고 평가하는 이들이 대다수다. 애니콜 시절에는 부동의 노키아에 밀려 세계시장 2위로 콩라인에 머물렀지만,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노키아가 몰락한 뒤 세계 휴대전화 시장 1위를 차지했다.

애니콜이 피처폰 브랜드이긴 하지만, 초기 스마트폰 출시 당시에는 피처폰과 스마트폰의 개념이 구분되지 않았기 때문에 초창기 스마트폰에 해당되는 MITs, 옴니아, 넥서스 S, 갤럭시 S, 갤럭시 K, 갤럭시 U, 갤럭시 A, 갤럭시 탭의 경우에도 애니콜 상표가 붙어있다. 참고로 애니콜 로고가 들어간 마지막 스마트 기기는 2011년 1월에 출시된 갤럭시 S 호핀이다. 2011년 2월에 출시된 갤럭시 에이스[4] 이후부터 스마트폰에는 삼성 로고만 들어가게 되었으며, 이후에 출시되는 피처폰이나 폴더형 휴대폰에서도 삼성 로고만 인쇄되었다.

1997년 9월 1일부터 2011년 초까지 MBC 뉴스데스크 시작 전의 시보 광고를 맡아왔다. 이는 갤럭시로 넘어와서도 계속 담당하고 있다.

아래 역사를 보면 알겠지만 세계 최초나 한국 최초의 기록을 많이 가지고 있다. 게다가 기네스북 등재 기록도 있다. 얼마나 열심히 만들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

3. 역사

파일:attachment/_140.jpg

1988년 아날로그 휴대폰 시장에 뛰어든 삼성전자는 1994년'한국 지형에 강하다\'라는 슬로건과 함께 '애니콜'이라는 상표를 정식으로 사용하면서 처음으로 아날로그 모델 SH-770에 사용했다. 하지만 후기 모델인 SH-800 부터 디지털로 전환되어 출시된 SCH-100 모델에 이르기까지 Anycall 로고를 사용하지 않다가 후기형 모델 SCH-100S 부터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는 아마도 세대 전환시기에 자사의 Anycall 로고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삼성전자 내부에서 깊은 고민을 했던 흔적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애니콜의 의미는 '언제 어디서나 통화가 잘 된다'는 뜻으로, 당시 선발주자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던 모토로라를 겨냥하여 만든 상표다. 하지만 당시 세계 시장에서 절대 강자로 군림했던 모토로라보다, 기술이나 기능 면에서 뒤쳐지는 것은 어쩔수가 없다고 쳐도, 핸드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통화 기능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불량품이 속출하는 등 품질이 거의 쓰레기 수준에 가까워서, 이러한 슬로건이 거의 허위 광고 수준에 가까울 정도로 이 시절의 애니콜은 거의 불량품을 내다파는 수준이었다. 심지어는 설을 맞아 직원들에게 선물된 2천여 대의 휴대폰마저 제대로 통화가 되지 않는 등 불량률이 높은 편이라 삼성전자 측에서 무상 교환을 실시하기도 했다.

이 때 이건희 회장이 "고객이 두렵지도 않나, 돈 받고 불량품을 팔다니!"라며 진심으로 분노하여 "시중에 판매 중인 핸드폰 전량 수거 후 소각하라!"는 지시를 내리기에 이른다. 1995년 3월 구미 공장 직원들이 '품질은 나의 인격이오! 자존심!'이라고 내걸린 현수막 아래 500억 원 어치의 자사 무선 전화기, 카폰, 팩시밀리 등을 해머로 때려 부수고 소각하게 된다.[5] 자사의 생산품 수백억원어치를 스스로 소각하는 화형식 시행 후 삼성전자 임원진 및 관련 부서 사람들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이후 출시되는 삼성전자 휴대폰의 품질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어 내구성과 완성도 면에서만큼은 당시에 까방권을 얻었다.[6] 이듬해인 1996년에 삼성전자는 드디어 51.5%의 점유율을 달성하며 한국 휴대폰 시장의 선두에 처음으로 등극한다.

파일:attachment/SKT_SCH-100S_119.jpg 파일:attachment/SKT_SCH-200F_348.jpg 파일:attachment/SPH-1100_M.gif
1996년 10월에 CDMA 방식의 디지털 휴대 전화인 애니콜 디지털(SCH-100S)을 출시하였고, 이듬해인 1997년 플립형(SCH-200F)을 출시하며 핸드폰 시장에서 상당한 인기를 얻기 시작했으며 전속모델로 배우 안성기를 기용해 임팩트를 발휘했다. 같은 해인 1997년 1.8GHz대역의 PCS 서비스가 시작됨에 따라 애니콜 PCS 모델(SPH-1100)을 출시했으나, 애니콜은 당시 검은색상 원톤의 투박한 디자인으로 아저씨폰 이미지가 상당히 강했고,[7] 기기 가격도 고가였던데 반해, 1997년 외환 위기의 여파로 저렴한 가격의 모델에 대한 신생 업체 모델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참신한 디자인과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의 신 모델들이 경쟁사로부터 쏟아져 젊은층 및 알뜰고객 공략에 실패하며[8] PCS 쪽의 시장 점유율은 주춤했다.

파일:SCH-800.jpg 파일:attachment/20050908134701modelImage1.jpg
특히 1997년 외환 위기 여파가 엄청났던 1998년에 삼성전자에서 폴더형과 플립업이라는 혁신적인 스타일로 야심차게 준비한 애니콜 폴더(SCH-800)와 애니콜 플립업(SPH-5000) 모델은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비운의 모델이 되었다. SCH-800의 경우 PCB 회로 기판에 "할 수 있다는 믿음"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것이 10년 뒤인 2008년에 한 누리꾼의 분해기를 통해 알려져 신선한 감동을 줘 화제가 되기도 했다. #, 참고로 당시는 모토로라노키아가 지배하던 시기였고, 삼성은 그냥 국내에서만 유명한 기업이였다. 하지만 20[age(2000-01-01)]년 현재 삼성전자는 이제 애플과 자웅을 겨루는 반면, 모토로라는 레노버에 인수되고, 노키아는 휴대폰 시장에서 철수했다는 걸 감안하면 격세지감.

파일:애니콜 미니폴더.jpg 파일:SCH-A8100.jpg 파일:애니콜 듀얼폴더.jpg 파일:SCH-U05.jpg 파일:SCH-A350.jpg

그러다가 1999년 장혁이 첫 광고 모델로 활약한 깍두기폰으로 불리는 애니콜 미니폴더(SCH-A100/SPH-A1000)가 출시되었는데, 당시로서는 가히 혁신적인 초경량, 초소형 설계임에도 성능은 향상된 대혁신[9]을 가져왔으며, 외관 케이스에 알루미늄을 도금함으로써 밀레니엄 스타일의 세련된 최고급 분위기를 연출해 중장년층과 젊은층 고객들을 모두 사로잡으며 비싼 판매가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하여 애니콜의 명성을 되찾게 된다. 현재까지도 애니콜의 명작 1순위로 들어갈 정도로 시대를 풍미했던 애니콜의 전설적인 모델이다. 이듬해인 2000년에는 밀레니엄 시대를 맞이하는 의미를 담은 모델인 밀레니엄 폰(SCH-A8100/SCH-U02/SPH-I1050)과 내부 디자인을 다소 라운딩 처리하고 폴더 전면에 LCD를 추가한 모델인 애니콜 듀얼폴더(SCH-A2000/SPH-A2000/SCH-U05)를 출시하여 다시 한 번 대히트를 치면서 그 명성을 이어갔고, 같은 해 11월에는 메인 LCD의 표시량을 기존 4라인에서 7라인으로 넓히고 디자인 또한 이전 미니폴더의 사각 디자인을 반영하고 2000 시드니 올림픽을 기념하는 모델로 폴더 전면의 올림픽 로고 부분을 24K 금도금으로 처리한 듀얼폴더인 올림픽폰(SCH-A350)도 출시했다.[10]

특히 1999년과 2000년 사이는 삼성전자한국 또는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를 당당하게 달 수 있을 정도로 당시로서는 아스트랄한 콘셉트로 파격적인 디자인과 최첨단의 기술력을 과시하는 실험적인 모델들을 쏟아내던 매우 특별한 시기다. 이 모델들 대부분은 실제 양산으로 이어지지 않거나 시판되었다 해도 당시에는 그닥 인기를 많이 얻지는 못한 편이지만, 이 다음 세대의 양산 모델에 들어갈 새로 개발된 최신 기능 및 멀티미디어 복합 기술들을 선행 개발의 성격으로 적용시켜 보면서 그에 대한 기술적인 노하우를 축적하는데 중요한 기초가 되었으며, 최종적으로 오늘날의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우수한 기술력을 기반으로 삼성전자가 마켓 리더로 활약하는 밑거름이 된다.

다만 손목에 차고 귀에 갖다대어 통화한다는 게 영화에서는 멋있게 보여질지는 몰라도 실사용 시에는 불편해서(특히 문자 메세지) 양산은 되었으나 판매량은 매우 적어 실험적인 모델로 평가 받게 된다. 게다가 일반인이 사용시 이상한 사람 취급받기 쉬웠다. 10년 뒤인 2009년에 동일한 모델명으로 후속모델인 워치폰이 출시되었다. 전작과 달리 블루투스 헤드셋이 기본지원 되기에 그나마 현실성이 있어 보이는 듯 했으나, 이 해에 3G 서비스가 안정화되고 iPhone을 필두로 한 스마트폰 열풍이 본격화되면서 삼성전자도 이 열풍에 가세하여 결국 워치폰은 역사의 유물이 되었다. 대신 손목에 차는 기기라는 개념은 훗날 자사 스마트 워치갤럭시 기어를 통해 부활하게 된다. 단 갤럭시 기어는 단독으로 사용 가능한 기기가 아닌 스마트폰의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기기이므로, 진정한 단독 사용이 가능한 기기로서의 부활은 기어 S기어 S2 3G 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스마트폰의 시조격인 IBM 사이먼은 시제품의 성격이 강한 데다 완전 벽돌 모양이었던 것에 반해, 이 모델은 당시의 주류였던 플립형 휴대폰에 준하는 사용성 및 휴대성을 가졌기 때문에, 비즈니스맨들 사이에서 의외로 인기가 꽤 있었으며 후속모델인 SCH-M200 / SPH-M2000 [21] 도 출시되었고, 이후 당시 PDA에서 많이 쓰이던 운영 체제인 Palm OS가 설치된 SCH-M330, 윈도우 모바일의 선조라고 볼 수 있는 Pocket PC 2000를 운영 체제로 적용한 SCH-M400이 나오기도 했다.(옴니아의 시조다!) 모델명으로만 본다면 옴니아 II가 같은 계열의 마지막 후속작이다. 굳이 SHW 네이밍까지 따지자면, LTE 미만의 네트워크, 즉 WCDMA 또는 CDMA EV-DO Rev.0[22] 이상을 지원하는 안드로이드/바다 OS 탑재 스마트폰 및 안드로이드 태블릿 컴퓨터 라인업인 SHW-MxxxS[23]/K[24]/L[25]/D[26]/W[27] 내에서는 SHW-M500W가 최후의 후속작이다. 참고로 이때 삼성은 'MITs'라는 이름의 PDA폰 상표를 출시했다. 지금은 운영이 중단된 스마트폰 사용자 모임인 마이미츠가 바로 MITs PDA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동호회였다.
2002년 후반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대화면 및 컬러 LCD 등을 탑재하기 시작하며 멀티미디어 기능을 중시하는 휴대 전화로 진화한다. 이 당시의 슬로건은 디지털 익사이팅 애니콜로, 2003년부터 카메라, MP3, 동영상 촬영 등을 지원했고, 2005년부터는 싱글 앨범 수준의 광고 음악 발표와 함께 광고와 뮤직 비디오를 결합한 애니 시리즈 마케팅이 화제거리였다. 사실 이 시기에는 애니콜이라는 상표가 '어른들이 쓰는 폰'이라는 인식이 젊은 소비자들에게 있었기 때문에, 젊은 소비자층에 더욱 어필할 수 있는 디자인의 모델 출시와 함께 이에 어울리는 마케팅이 이루어졌다.[30]
그리고 2002년부터는 멀티미디어 뿐만 아니라 다양한 편의 기능 및 이색적인 특징을 접목시킨 기종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블루투스, GPS, 로밍, 모바일 뱅킹, 게임, 아바타, 리모컨, 인테나 등이 대표적이다.
2008년 4월에는 애니콜 햅틱 시리즈를 출시했다.
갤럭시 S 시리즈 출시로 스마트폰 열풍이 불기 시작한 2010년 8월에도 애니콜 노리 시리즈를 출시했다.
여담으로 와이브로 지원 UMPC도 SPH-P9000[37]과 SPH-P9200 두 종을 KT용으로 출시했다. 현 시점에서는 KT에서 cdma2000 1xRTT/EV-DO Rev.0와 와이브로 서비스를 종료해 와이파이로만 써야 한다. 단, P9200은 WCDMA도 쓸 수 있긴 하다. 삼성전자 무선 사업부에서 개발한 Windows 탑재 기기는 이거 말고도 아티브 탭[38] GT-P8510이 있으며 갤럭시로 통합 이후에는 갤럭시 탭프로 S, 갤럭시 북 10.6/12.2(SM-W62x, SM-W72x), 갤럭시 북2가 있다.
이후 1994년부터 등장해 한때 한국 휴대폰 상표 가치 1위였던 애니콜은 2011년 갤럭시 S II부터 존폐 위기를 겪고 있다가 조용히 그 자리를 삼성 갤럭시에게 물려주며 등장한지 약 20년만인 2011년 결국 애니콜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4. 역대 슬로건

5. 모델명 규칙

5.1. SCH / SPH / SGH

애니콜 브랜드 초기부터 2009년까지는 SCH, SPH 모델명 규칙을 사용하였다.
모델명 뒤에 붙는 라인업은 아래와 같다.

5.2. SHC / SHW / SM / GT

2010년 이후부터 기존의 SCH, SPH, SGH 모델명 규칙을 버리고 SHC, SHW, GT로 대체되었다. 이때부터 모델명 끝에 붙는 S, K, L로 통신사를 구분하였다. 2014년 이후부터는 SM으로 다시 변경되었다.
모델명 뒤에 붙는 라인업은 아래와 같다.
참고로 동시기 국내에 출시된 스마트폰은 통신 방식에 따라 SHW(3G) 또는 SHV(LTE)를 사용하였고, 모델명 뒤에 붙는 라인업은 M(3G)[49] 또는 E(LTE)[50]를 사용하였다. 2014년 이후부터는 SM으로 다시 변경되었고, 뒤에 붙는 라인업은 삼성 갤럭시 문서 참고.

6. 출시 제품 목록

시간이 흐를수록 출시 간격이 줄어드는 광경을 볼 수 있으며, 2G(CDMA)폰은 더 심하다. 한국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2011년 이후의 모델은 전부 수록하였다. 한국에 출시된 모든 피처폰 기종에 관한 정보는 세티즌의 '리뷰' 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참고로 SCH-Exxx, SCH-Vxxx, SCH-Bxxx, SCH-Cxxx, 계열은 3G CDMA이고,[51] SCH-Wxxx 계열은 3G WCDMA이다.[52] 굵은 글씨체는 01x 번호만 사용할 수 있는 단말기를, 취소선은 출시 취소된 단말기를, 빨간 글자는 문서가 아직 생성되지 않았거나 삭제 된 단말기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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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제품별 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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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기타

애니콜의 성공은 단순히 준수한 기기 성능에만 기댄 것이 아니라, 테마 음악을 중심으로 한 광고 콘텐츠의 성공을 통해 이루어졌다. 앞서 말한 안성기 외에도 2001년 'Digital Exciting' 시절 차태현-이나영 콤비의 열연, 2005년 당대 최고 인기 가수였던 이효리를 기용한 애니모션, 애니클럽, 애니스타의 광고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핸드폰 시장의 절대 부동 1위로 자리매김했다.[76] 특히 같은 해에는 한국 광고 사상 최초로 북한 무용수 조명애를 기용해 화제를 모았다.

광고의 음악이나 영상, 기획 등이 전반적으로 당대 최상급이었다. 제일기획과 삼성전자 홍보팀의 모든 역량을 집약해 만든 '애니시리즈' 광고의 성공으로 전 국민이 선호하는 핸드폰 상표가 된 것이다.

파일:Talk Play Love Anycall.svg
삼성 Anycall 토크 플레이 러브 2007 광고

애니콜, 새 브랜드 슬로건 ‘Talk, Play, Love’ – Samsung Newsroom Korea

2007년 9월 16일부터 2011년까지는 TPL(Talk, Play, Love)로 슬로건을 변경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애니밴드 참조. 이후로도 삼성전자는 뛰어난 광고 기획과 기기 품질을 바탕으로 애니콜에 대한 국민적 선호도를 유지하는데 성공했다. '애니콜'이란 상표는 그 광고를 떼어 두고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 후에는 햅틱 시리즈를 필두로 한 풀 터치스크린 폰의 비중이 높아졌다. 스마트폰 시장에 진출한 역사가 오래되었으나 Windows Mobile의 한계와 부족한 최적화 등으로 인하여 비난을 받아왔으며, iPhone의 한국 진출 이후 Android를 탑재한 스마트폰에 사업 역량을 쏟기 시작했다.[77]

디자인은 매직홀폰 등의 아예 디자인에만 올인한 제품 몇 개를 제외하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딱 무난한 물건이 대부분. 게다가 다른 회사에 비해서도 같은 디자인 우려먹기가 좀 심하다. 디자인을 중시하여 휴대폰을 고르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점도 좀 까인다. "새 것을 사도 중고를 사는 느낌"이라고 혹평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신상품이 나와도 어차피 디자인이 똑같기 때문에 구매욕이 줄어든다"라는 관대한(…) 평을 내리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어 W8400은 W5200의 Personal GUI 버전이라고 봐도 될 듯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으며, 햅틱1(W420, W4200)과 햅틱 팝(W750)은 대충 보면 다른 듯 하지만, 배터리 커버를 까보면 완전히 똑같다! 컴팩트 슬라이드 폰 시리즈는 전체적인 디자인이 비슷하고[78], W410, W4100, W4150과 S510, S5150은 터치키 유무와 LCD 크기 빼고는 거의 같다.[79] 더 극단적인 예로는 S480/S4850은 Flash GUI가 기반인 짝퉁 Black GUI[80]가 들어갔고 배터리 구조가 바뀌고 모바일 뱅킹 기능이 추가되고 카메라 화소수가 아주 조금 상향된 거 빼면 E3200과 완전히 같다!

디자인 뿐만 아니라 벨소리 우려먹기도 심한 편인데,[81] '그대와의 왈츠'[82], '몽상의 비행(Imagination)', 2004년에 적용된 '수줍은 고백'은 멜로디가 비슷하고 '추억 속의 오르골'을 편곡해 '장난감 상자'로도 탑재했으며 '구름'='솜사탕', 'Exciting Bass'='Moonlight Dance', '춤추는 비눗방울'='조각꿈'='꿈 속 여행', '놀이동산'='가벼운 발걸음', '로봇'='외계인', '바람'='돌고래의 수다' 등 매우 많다.[83] 다만 벨소리에 맞춰서 진동이 울리게끔 하는 리듬믹스 벨 등 애니콜만의 특색이 드러난 벨소리도 있다. 가끔 효과음도 우려먹는데, 약 2004년에 탑재된 버튼음 중 '실로폰'은 Flash GUI의 '맑은음'과 같으며 B340, W200에 적용된 버튼음 중 '맑은음'은 Black GUI의 '실로폰'과 같다. 즉, 2004년의 실로폰과 2006년의 실로폰은 다른 것이다.

원가 절감으로도 악명 높다. 예를 들어 2008년에 들어서도 저가 폰은 QCIF+(176×220) LCD를 우려내거나[84] 기본기조차도 개판인 등. 핸드폰을 그냥 기능만 보고 사거나 공짜폰으로만 쓰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원가 절감 행보는 삼성 갤럭시에서도 현재진행형이다.

초창기부터 효과음 등의 사운드에 신경을 많이 썼다. 당시의 타사 동급 기기와 비교하면 애니콜의 사운드가 더 고품질이었다. 다만 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회사들도 사운드 개선에 신경을 쓰기 시작함으로써 점점 비슷해졌다.

한국에 출시되는 휴대 전화의 상표 중에서 동급 사양에서 가장 비싼 가격을 내거는 경향이 있는 대신, 살 때는 비싸더라도 가격 방어가 잘 돼서 시간이 지나도 가격이 잘 떨어지지 않는 면이 있었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시대가 된 2010년 이후 옛날 얘기가 됐다. 출고가가 135만원이던 명품 폰인 '조르지오 아르마니'조차 버스폰으로 나왔다. 그리고 옴니아 2도 출시 1년 6개월만에 버스로 나왔다.

이후 애니콜에서 확장된 상표로는 삼성 옴니아, 애니콜 햅틱, 햅틱 아몰레드, MITs가 있으며 후속 상표로 갤럭시, 웨이브, 아티브가 있다.

애니콜의 문자 입력 방식은 천지인 자판이다.

외국에서 팔리는 제품에는 Anycall이 아닌 Samsung Mob!le[85] 또는 FUN Club 상표가 들어가는데 이유는 이 단어가 콜걸(전화로 연락하면 오는 매춘부)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외적으로 중화권에서는 애니콜의 초창기 로고[86]와 Samsung Mob!le을 둘 다 사용했다.

야구 선수 임창용의 경우 삼성 라이온즈 서정환 감독 시절 혹사를 당할 때 구단의 모기업인 삼성과 맞물려 '애니콜'로 불렸다. 이후 삼성팬들이 별명을 다시 소환시켜 삼성에서 아무 상황 때나 자주 등판하는 선수를 가끄음 애니콜이라 부르기도 한다.

1997년부터[87] 2011년까지 MBC 뉴스데스크의 시보를 맡아왔었다.[88] 그러다가 갤럭시에 애니콜 상표를 떼면서 자연스럽게 갤럭시 시보로 전환되어 20[age(2000-01-01)]년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2003년부터 한국경제신문 1면 돌출광고도 맡기 시작했다.

배터리 아이콘은 2008년까지 3칸이였으나, 이후 터치위즈를 채택하면서 5칸으로 바뀌었다.[89] 애니콜 상표가 아니라 삼성 로고를 달고 출시된 피처폰이긴 하지만 마스터 듀얼은 이전까지 쓰던 5칸 아이콘이 아닌[90] 안드로이드 킷캣부터 볼 수 있는 흰색 배터리 아이콘을 왼쪽으로 돌린 듯한 모습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칸이 나누어지지 않았으나, 배터리가 닳을 때마다 5분의 1 단위로 줄기 때문에 5칸이라고 볼 수 있다.

1998년부터 2001년까지 애니콜 마스코트도 있었다. 이름은 애니였고 손에 안테나를 들고 있는 여러가지 색의 박쥐였다. 주로 사용설명서에 등장했으며 휴대폰 부팅 화면에도 나타났다.

갤럭시 버즈 프로의 출시 이벤트로 애니콜 T100(이건희폰)[91]과 E700(벤츠폰)[92]의 디자인을 적용한 케이스를 증정하며, 이후 추가로 A100(미니폴더, 통칭 깍두기폰)[93] 케이스도 선보였다.

단축번호는 한국의 제조사들 중 가장 많은 1000개(000~999)를 지원했다.

2023년 5월 18일 방탄소년단 슈가의 단독 해외투어 미국 콘서트에서 한 관객이 들고 간 것[94]을 슈가가 발견해 직접 들어 촬영했다. #1 #2 #3 #4

[1] 2001년 후반~2002년 사이에는 구 로고와 혼용. 컬러 핸드폰에는 신형 애니콜 로고가, 흑백 핸드폰에는 구형 애니콜 로고가 박혀있었고(단, SPH-X4500과 SCH-X460은 흑백임에도 신형 로고가 박혀있었다.) 삼성 라이온즈는 2001년 후반기 당시 이 로고를 사용.[2] 흑백폰 출시가 중단된 2003년부터 사용을 완전히 중단했다. 다만, 대만을 제외한 중화권에서는 2011년까지 이 로고를 계속 사용했다.[3] 초기에는 애니콜의 하위 제품명으로 시작되었으나, 2011년을 기점으로 애니콜 브랜드가 폐지되고 그 대신 갤럭시가 메인 브랜드로 전환되었다.[4] 플래그십은 갤럭시 S II 이후부터다.[5] 이에 앞서 회수된 무선전화기의 경우 신제품으로 교환해주었다고 한다. 관련기사 교환 고지 광고[6] 다만 주류 언론들의 환상 덧붙이기에 의한 대중조작(mass manipulation)으로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7] 이 당시 애니콜 디지털 모델을 지원하는 cdmaOne(IS-95A/B) 800MHz의 SK텔레콤스피드 011 역시 PCS어차피 둘다 CDMA기반이긴하다. 1.8GHz 보다 넓은 통화 권역을 제공하는 대신 그만큼 비싼 요금으로 중장년층의 고객들이 대부분이라서 아저씨들의 이동통신 서비스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SK텔레콤1999년에 와서야 젊은층을 위한 요금제인 TTL을 상표화하는 전략을 통해 기존의 고정된 이미지를 깨는데 성공하였지만 세계최초로 차등과금 시스템을 개발한다던가 형편없는 데이터 요금제 등으로 폭리를 취하는 건 여전했다.[8] 당시 젊은층 고객들은 통화권역이 다소 협소하나 통화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단말기 가격도 착한 PCS 통신사 쪽으로 많이 몰렸기에 보수적인데다 프리미엄 이미지가 강했던 애니콜은 이들 젊은층 고객 공략에 불리했다. 원인은 조금 다르지만 2020년대에도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다.[9] 전작 모델이자 애니콜 폴더의 초기모델인 SCH-800 대비 부피는 26% 감소되고, 무게도 89g에 불과할 정도였음에도, 기존 모델보다 부가 기능도 향상되고 배터리 시간은 기존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났다.[10] 당시 미니폴더와 밀레니엄 폰, 그리고 듀얼폴더로 연이은 히트를 치며 애니콜 폴더는 한국 휴대폰 시장의 프리미엄 상표로 자리잡았고, 거기에 삼성전자가 2000 시드니 올림픽의 공식 스폰서로 참여하고 있었던지라 끝물 격으로 금도금 장식까지 하는 등 상당히 고급스럽게 치장하여 출시했다.[11] 여성 전용이라고 되어있지만 실제론 남성들도 구매 및 개통이 가능했다. 다만 DRAMA 요금제는 여성만 가입이 가능했기에 남성들은 다른 요금제를 가입하여 개통해야했다.[12] 이 폰과 연계된 KTF의 여성 전용 휴대폰 서비스 명칭이 드라마였기 때문. 광고[13] 외출 시 핸드백 속에 핸드폰을 넣어두는 여성들의 성향을 잘 파악한 장치로, 핸드백 외부에 램프를 연결해 달아두면 핸드폰 신호가 올 때마다 자기 것인지 꺼내서 일일이 확인할 필요가 없게 되고, 진동 모드나 무음 모드로 전환해도 신호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14] 물론 남성 고객들의 구매도 있었는데, 삼성에서도 이를 고려했는지 화이트, 블랙 색상도 내놓았다. 2001년 방송한 SBS 드라마 순자에서 남자주인공 정윤수 역으로 나온 정찬이 극중에서 들고 나오는 장면이 있었다.[15] 전부 KTF를 통해 출시되었으며, 모델명은 SPH-X4500, SPH-X8000이다.[16] 아래의 SCH-V200과 함께 그 당시에 판매된 극소수의 물량 중에서 현존하는 개체들이 아주 가끔 소장용으로 고가에 거래되기는 한다.[17] 세계 최초로 카메라를 탑재한 휴대폰은 1999년 9월 교세라가 출시한 VP-210이다.[18] 이 당시 매우 빈약하던 휴대폰 내장 메모리 용량을 감안한다면 '무려'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19] 그 당시에 판매된 극소수의 물량 중에서 현존하는 개체들이 아주 가끔 소장용으로 거래가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희소성으로 인하여 시세가 꽤나 비싸다.[20] 세계 최초로 개발된 풀 터치스크린 폰은 1994년 8월에 출시된 IBM 사이먼이다.[21] 이쪽은 당시 드라마 엄마아 누나야 에서 황수정이 들고 나온 폰으로도 알려져 있다.[22] LG U+. CDMA2000 1x 기기는 SHC로 배정받는다.[23] SK텔레콤[24] KT[25] LG U+[26] 자급제. SM- 네이밍은 N0으로 배정된다.[27] Wi-Fi로만 무선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태블릿 컴퓨터.[28] 모터 소리가 줄어들고 여닫는 속도가 빨라졌다고 한다.[29] 단 매직홀은 앞의 두 기기와는 달리 모터를 사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내장된 스프링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때문에 닫기도 자동으로 가능했던 전작들과는 달리 열기만 자동으로 되고 닫기는 수동으로 해줘야 한다.[30] 대표적으로는 박정아와 함께 도연했던 소녀시대로 데뷔하기 전 수영의 모습을 광고 속에서 볼 수 있는데, 데뷔 이후에는 애니콜 햅틱 광고에 등장했다.[31] 2001년 당시에는 120×160 해상도만 되어도 고해상도 취급받던 시절이었고, 2003년까지만 해도 고급 기종에는 176×220 해상도가 사용되었다. 또한 2009년까지 저가 기기에 들어간 흐리멍텅한 QCIF(176×144) 해상도보다도 높다.[32] 대충 봐도 답 나온다. 네이트 버튼이 딴 곳으로 이동하고 원래 네이트 버튼이 있을만한 자리는 '확인'이라고 쓰여 있으며, UI도 아랫부분이 배경화면으로 채워지거나 텅 빈 다른 기종과는 다르게 아랫부분이 출시 시점 기준으로 3년 후 등장할 Personal GUI마냥 메뉴 - 카메라 - 검색으로 되어 있다. 엄밀히 말하면 해외(SAMSUNG mob!le) UI를 커스텀한 것이지만.[33] 당시 나름 큰 용량이었던 1GB 메모리를 탑재한 뮤직폰.[34] 참고로 2003년 당시 애니콜 최고가 폰인 V410이 75만원 정도였다.[35] 2020년 기준으로도 120만원이면 최신형 갤럭시나 최신형 아이폰 가격대이다 이것보다 더 비싼 핸드폰은 갤럭시 Z플립이나 폴드 정도밖에 없다.[36] 단, LG Wing의 스윙 구조는 애니콜의 가로본능보다는 LG 싸이언 타임머신 DMB폰과 더 유사한 형태로 열리고 닫힌다.[37] cdma2000 1xRTT, EV-DO Rev.0 1.8GHz 동시지원. 피처폰 같이 생긴 보조 단말기로 보관 중에도 전화통화와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38] 윈도우 RT가 탑재된 그냥 아티브 탭. 3, 5, 7 이런 거 아니다.[39] 가장 널리 쓰인 슬로건이며, 특히 90년대생의 경우 해당 슬로건만 보면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40] 단, LGT용은 E가 붙어도 1xRTT만 지원한다.[41] 단, SCH-E510과 SPH-E3900은 MSM 6500으로 칩셋이 변경되었다.[42] S250, S310, S370, S1100[43] S350, S380[44] 단, SCH-V420, SPH-V4200, SPH-V4400, SPH-V4900, SPH-V5100, SPH-V5400은 예외로 LGT가 아닌 V 라인업임에도 VOD를 지원하지 않는다. 해당 기종들의 V는 View 혹은 Video를 의미한다고 봐야 한다.[45] 일부 LGT 모델 한정. 모델에 따라 6150을 사용하기도 하며, LGT 3G 서비스 시작 이후에 출시된 제품은 SKT, KTF 모델들처럼 6500과 6550을 탑재한다.[46] 단, SCH-B100은 MSM 5500 칩셋을 사용한다.[47] 일부 LGT 모델 한정, LGT 3G 서비스 시작 이후 출시된 제품은 SKT, KTF 모델들처럼 6500을 사용한다.[48] 초기에는 뮤직폰[49] SHW-M110S, SHW-M130K, SHW-M250L 등.[50] SHV-E120S, SHV-E250K, SHV-E330L 등.[51] SCH-Exxx, SCH-Vxxx, SCH-Bxxx, SCH-Cxxx 기종은 현재 CDMA, EV-DO 서비스 종료로 인해 사용이 불가능하다.[52] 다만 LGU+의 경우 cdma2000 Rev.0/A/B 임에도 W를 부여받았다. 아무래도 Wideband로 하려고 했는데 장인의 뒷배도 없고 로비력이 딸리는 LGU+가 있어서 Wideband가 아닌 Worldwide나 Wireless로 의미를 바꿨거나 기존의 모델명을 부여했다면 010only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되기때문에 그런듯 하다.[53] 당시 외환위기 극복과 폴더형 개발의 염원을 담아 '할 수 있다는 믿음'이란 문구가 프린트된 기판.[54] X270은 외장 카메라 기능이 추가되었다.[55] X290은 외장 카메라 기능이 추가되었다.[56] 삼성 최초로 010번호 지원이 되었다.[57] 최초로 내장형 안테나가 적용되었다.[58] 해당 피처폰의 SKT모델에서 WIPI와 통합메시지함 등을 제거(!!!) 후 소프트웨어 수정을 해 미국에서 불법수입된 적이 있었다. #[59] 최초로 Color GUI의 신 UI를 탑재한 기종이다.[60] 애니콜 최초의 MSM 6100 탑재 기종이다. 여담으로, S 라인업 중 유일하게 Color GUI의 구 UI를 탑재한 기종이다.[61] 바로가기 메뉴 버튼이 집모양이 아닌 화살표 버튼인걸로 보아 신 UI로 출시할 모양이었다.(애니콜 기종 중 집 모양 버튼이 있는 기종들은 구 UI이고, 화살표 모양 버튼이 있는 기기는 신 UI 혹은 Flash GUI 이후 기종이다. 예외가 있다면 SCH-S260은 집모양 버튼이지만 신 UI이다.) 여담으로 출시되었다면 E 라인업 중 유일하게 신 UI를 채택할 제품이었을 것이다.[62] 마지막으로 Color GUI의 구 UI를 탑재한 기종이다. 이 기종 이후로 최소한 Color GUI의 신 UI를 탑재하고 출시하였다. 여담으로, E 라인업은 전부 구 UI를 탑재하고 출시하였다.[63] SKT판은 Color GUI의 신 UI가 탑재되었으나 KTF, LGT판은 Flash GUI가 탑재된 기기이다.[64] Palm OS 기반이다.[65] 국내 최초의 DMB폰.[66] SKT판은 QCIF 액정에 Color GUI의 신 UI가 탑재되었고 KTF, LGT판은 QVGA 액정에 Flash GUI가 탑재되었다. 또한 SKT판은 가로본능 중 유일한 QCIF 기기이며, 마지막으로 Color GUI가 탑재된 기기이다.[67] 애니스타 뮤직비디오 및 CF에서 이준기가 들고 나온 기종이었다.[68] 일본에서는 707SC로 출시되었다.[69] 해외 출시 모델인 SGH-T419(T mobile )와 같은 하드웨어를 가지고 있다.[70] 디자인은 1세대 기종과 거의 똑같은데, 다른 점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하여 컬러 액정을 내부, 외부에 모두 달아놓고도 오히려 전작보다 더 얇아졌으며 크기도 약간 작아졌다. 또한, Black GUI가 탑재되어 있긴 한데 전반적으로 이전 UI에 Black GUI 테마를 입힌 거랑 비슷하며 Black GUI의 아이덴티티인 하이라이트 메뉴는 그냥 아무것도 안 뜨는 장식이다.[71] SCH-W390M은 멜론폰이라고도 불렸으며, 멜론 스트리밍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스마트폰 대중화 이후에도 멜론용으로 찾는 사람이 많았다. 또한 512MB 용량의 microSD 카드가 기본으로 제공되었으며, 나머지 사양은 동일하다.[72] 사용설명서까지 나오는 등 출시 직전까지 갔으나, 여러가지 결함이 해결되지 못하여 출시가 취소되었다.[73] 안타깝게 KTF 전용폰은 출시하지 않았으며, KTF 전용폰까지 진작 출시했어야 했다.[74] 원판은 GT-S5200인데 QVGA 액정에서 QCIF 액정으로 하향되었으며, 로마자 입력 방식이 Personal GUI 기기처럼 변경되었다. 또한 내부 UI도 햅틱 아이콘이 아닌 햅틱 아몰레드에 채택되기 시작한 터치위즈 아이콘이 들어가는 등 S 계열의 White GUI랑 다소 이질적이다. 참고로 이 기종은 최후의 White GUI 탑재 기종이자 QCIF 탑재 기종이다.[75] 오로라폰으로 불리기도 하였다.[76] 이후, 이 광고는 17년이 지난 2021년에 갤럭시 Z 폴드3 광고로 부활하여 승희이준호가 그대로 재현했다.[77] 삼성 갤럭시가 첫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이며 갤럭시 A가 한국에 첫 출시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이다.[78] W330, W3300과 W580은 전면 디자인 빼면 완전히 똑같다.[79] 그러나 사양은 W410, W4100, W4150이 훨씬 좋다.[80] Black GUI 특유의 특징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다! 당연히 하이라이트 메뉴는 장식이다.[81] 반면에 싸이언은 벨소리 표절이 심했다.[82] 특히 C230에 적용된 그대와의 왈츠는 수줍은 고백에서 보컬만 빼고 완전히 같다![83] 여담으로 '회색 도시'의 앞부분은 갤럭시 S2에 탑재된 'Wine Bottle'과 비슷하며, Flash GUI 매너모드음 중 맑은음은 갤럭시 S10의 알림음 'Voyager'과 같다.[84] QCIF+ 해상도는 2009년 후반에 들어서야 완전히 포기하였다. 최후의 White GUI 탑재 기기이자 QCIF+ 해상도 기기는 SCH-S540. 이마저도 GT-S5200에서 사양을 떨어뜨려 발매한 것이다.[85] Mobile 부분의 i가 거꾸로다. 즉 느낌표가 된다.[86] 삼성 심계천하 시리즈에도 사용되었다. 또한 한국에 출시된 일부 기종은 초창기 로고의 A에 있는 점만 뺀 로고를 사용한 적도 있다.[87] 1988년부터 1997년까지는 삼성시계(훗날 SWC)가 맡았으며, 당시 장세준 성우가 녹음했다.[88] 2007년에는 백진희가 시보소녀 시리즈를 연기하기도 했다.[89] 삼성 햅틱 첫 제품 당시엔 3칸이었다. 이전에 출시된 기종 중 일부도 업데이트를 통해 5칸으로 바뀌었으나, 당시 펌웨어 업데이트를 하는 사람이 드물어서 그런지 보기 힘들다.[90] 마스터 2G/3G는 기존의 아이콘을 그냥 흰색으로 바꿨다.[91] 유럽 GSM 모델명으로, 국내 출시 제품은 SCH-X400/SPH-X4000/4019(흑백 16화음 싱글 폴더), SCH-X420(흑백 16화음 듀얼 폴더), SPH-X4200/4209(컬러 16화음 듀얼 폴더), SCH-X430(컬러 40화음 듀얼폴더).[92] 마찬가지로 유럽 GSM 모델명으로 국내 출시 제품은 SPH-E3200(KT)/E3250(LG U+), SCH-E470(SKT)였다.[93] 이 모델은 유럽용 GSM과 한국용 CDMA 모델이 같다. 케이스는 CDMA 용이다.[94] 해당 모델은 SGH-T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