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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4-07 03:26:14

알렉산더 린제이

이름 알렉산더 린제이
Alexander Lindsay
출생 미상
스코틀랜드 왕국 사우스 에이셔 크레이기 교구 바르웨일
사망 1308년 이후 (향년 미상)
스코틀랜드 왕국
아버지 데이비드 린제이
어머니 마거릿 린제이
형제 윌리엄 린제이
배우자 베아트리스 앨리스 스튜어트
자녀 데이비드, 알렉산더, 레지날드, 윌리엄, 베아트리스
직위 바르웨일, 바이어스, 크로퍼드의 영주

1. 개요2. 생애3. 가족

1. 개요

스코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제1차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 시기 로버트 1세의 부관으로서 잉글랜드 왕국에 맞섰다.

2. 생애

바르웨일, 바이어스, 크로퍼드의 영주 데이비드 린제이와 램버튼 지역의 린제이 가문 출신인 마거릿 드 린제이의 장남이다. 형제로 심링턴의 영주로 알리사와 록하트와 결혼한 윌리엄 린제이가 있었다. 아버지는 1279년 루이 9세십자군 원정에 참여했다가 이집트에서 사망했고, 그는 어린 나이에 영주가 된 뒤 바데녹 영주 존 코민 2세의 후견을 받았다. 1289년 브리검에서 열린 스코틀랜드 의회에 처음으로 출석했고, 1296년 7월 28일 베릭에서 다른 스코틀랜드 귀족들과 함께 베릭에서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1세에게 스코틀랜드 국왕으로서 충성을 맹세했다.

1297년 플란데런 백국으로 가서 프랑스와의 전쟁에 참여하라는 에드워드 1세의 명령을 거부했다. 에드워드 1세는 이에 분노해 그를 6개월 동안 스코틀랜드에서 추방하고 모든 땅을 몽수한다고 선언했다. 이후 윌리엄 월레스의 휘하에 들어갔지만, 1297년 7월 9일 어바인에서 잉글랜드 토벌대의 압도적인 전력을 보고 제임스 스튜어트, 윌리엄 르 하디와 함께 항복했다. 그 후 1298년 7월 22일 폴커크 전투에서 더럼 주교 앤서니 베크의 부대에 가담해 잉글랜드군의 승리에 일조했다. 그는 이 공로에 따라 스튜어트 가문의 영지였지만 제5대 스코틀랜드 대시종장 제임스 스튜어트가 윌리엄 월레스에게 가담한 혐의로 몰수당한 땅을 받았다.

1306년 3월 캐릭 백작 로버트 브루스가 스코틀랜드 국왕 로버트 1세로 등극하자 즉시 그의 편에 섰다. 그 해 6월 메스번 전투에서 로버트 1세가 펨브로크 백작 에이머 드 발랑스에게 참패한 뒤, 아솔 백작 존 드 스트라스보기와 함께 로버트 1세의 왕비 엘리자베스 드 버러, 딸 마조리 브루스, 이사벨라 맥더프 등 여인들을 데리고 북쪽으로 도피했다. 그러나 잉글랜드군의 추격으로 9월 킬드럼미 성에서 생포된 뒤 옥고를 치렀다가 1308년경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석방되었다.

1309년 세인트앤드루스 의회에서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에게 평지를 보낸 사람 중 한 명이었다. 1308년 갤러웨이에서 군사 활동을 벌인 스코틀랜드군 지휘관 중 한 명이었다. 이후 그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3.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