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노 탱리고도선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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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호 | 안국선우(安國單于) |
성 | 난제(攣鞮) |
휘 | 안국(安國) |
생몰기간 | ??년 ~ 94년 |
재위기간 | 93년 ~ 9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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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남흉노의 제9대 선우이자 이벌어려제의 아들, 이도어려제의 동생으로 이름은 난제안국(欒提安國).2. 생애
93년에 휴란시축후제가 죽자 선우를 계승했으며, 안국은 좌현왕일 때 칭찬을 받거나 훌륭하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선우가 되자 정독시축후제를 형제 상속 계승 차례에 따라 좌현왕으로 삼았는데, 온 나라가 자신을 따르지 않고 능력이 좋은 정독시축후제에게 붙자 그를 죽이려고 했다.요새 바깥에서 자주 정독시축후제에게 쫓긴 새로 항복한 여러 흉노가 그를 원망하는 것을 알고 그 사람들에게 계책을 맡기면서 함께 모의했는데, 정독시축후제는 이를 알고 번번이 용성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한나라에서 황보릉이 이를 알고 정독시축후제를 옹호하자 분한 마음을 더욱 심하게 품었으며, 두숭과 편안한 관게를 유지하지 못해 편지를 올려 두숭을 고발했지만 두숭이 서하태수에게 눈치를 줘서 중간에 가로채게 해서 보고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94년에 두숭이 안국이 옛날부터 있던 흉노 사람을 소원하게 대하고 새로 항복한 자들을 가깝게 여긴다면서 정독시축후제, 유리를 죽이려고 하고 흉노 우부의 항복한 자들이 안국을 협박해 군사를 일으켜 배반하도록 꾀를 내고 있다는 것을 알리면서 서하, 상군, 안정에서 이를 대비하게 해야 한다고 화제에게 말했다.
안국은 주휘, 두숭이 군사를 이끌고 온 것을 알고 장막을 버리고 도망갔다가 군사를 일으켜 난제사자를 죽이려 했는데, 정독시축후제는 이를 알고 만백성으로 도주하자 추격했지만 문이 닫혀 들어가지 못했다. 주휘가 관리를 파견해 이 사건에 대해 설명해 화의를 요구했지만 안국은 듣지 않았으며, 안국은 만백성을 함락하지 못하자 군사를 이끌고 가서 오원에 주둔했다.
두숭, 주휘가 여러 군의 기병을 징발해 추격하자 그 무리들이 몹시 두려워했는데, 외삼촌인 희위가 함께 죽임을 당할까 염려하면서 안국은 암살당했다. 안국이 죽자 정독시축후제를 선우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