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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탁세스 왕조 초대 샤 Artašēs | 아르탁세스 1세 | ||
제호 | 한국어 | 아르탁세스 1세 |
아르메니아어 | Artašēs | |
그리스어 | Άρταξίας | |
고대 페르시아어 | Artaxšaθra | |
존호 | 샤 | |
생몰 년도 | 미상 ~ 기원전 160년 | |
재위 기간 | 기원전 189년 ~ 기원전 16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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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르메니아 아르탁세스 왕조 초대 샤. 셀레우코스 제국에 대항하여 독자적인 나라를 세웠지만 안티오코스 4세의 공세에 굴복하여 셀레우코스 제국에 신종했다.2. 생애
아르탁세스(Artaxias)는 고대 페르시아어 Artaxšaθra 에서 유래한 아르메니아 단어 Artašēs의 그리스어 단어로, "그의 통치는 진리이다"를 의미한다. 아르메니아에서 출토된 비문에 따르면, 자리아드레스(Zariadres)의 아들이라고 한다. 그는 일찍이 오론테스 왕조의 마지막 왕 오론테스 4세의 신하였지만, 기원전 200년 안티오코스 3세가 아르메니아를 침공하자 오론테스4세를 배신하고 안티오코스 3세에게 귀순했다. 안티오코스는 그 보답으로 그를 아르메니아 사트라프에 임명했지만, 견제 차원에서 메디아 아트로파테네, 콤마게네, 이베리아 등 여러 영토를 아르메니아로부터 분리시켜 사트라프들을 각각 임명했다.기원전 190년 마그네시아 전투에서 셀레우코스군이 로마군에게 참패하면서 제국의 위세가 약해지자, 그는 독립을 선언하고 자신을 샤로 선포했다. 그는 아르메니아 고원 전체와 여러 인접 지역을 공략했다. 셀레우코스 제국에 의탁했던 한니발 바르카가 자신을 잡으려드는 로마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아르메나 궁정에 망명했을 때 받아주기도 했다.
아르탁세스는 초기엔 아르마비르(Armavir)를 수도로 삼았지만 기원전 166년 아르타샤트(Artashat)를 건설하고 새 수도로 삼았다. 전설에 따르면, 이 도시는 한니발 바르카의 주도로 건설되었기에 '아르메니아 카르타고'라고 불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를 교차검증할 기록은 없어서 신빙성은 희박하다. 그는 아버지 자리아드레스의 이름을 딴 여러 도시를 더 세웠으며, 자신이 오론테스 왕조의 후예라고 주장했다.
그는 뒤이어 아트로파테네와 이베리아에 종속되었던 지역을 공략하고 아들을 그곳의 왕위에 올렸다. 또한 소 아르메니아를 공략하고 남쪽으로 확장하다가 셀레우코스 왕조와 무력 출동을 벌였다. 여기에 동쪽으로 진군하여 메데스, 카스피해, 파우니티다, 바솔로페다를 공략했다. 그는 정복지 주민들이 아르메니아어를 공용어로 쓰도록 권장해 지배력을 강화하려 했다.
그러나 세력을 급격히 확장하던 아르메니아 왕국은 곧 셀레우코스 제국의 대대적인 반격에 직면했다. 기원전 165년, 안티오코스 4세는 군대를 이끌고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 아르타샤트로 진격했다. 양측은 티그리스 강변에서 격돌했다. 스트라본은 양측 모두 피해가 매우 컸다고 기술했지만, 어느 쪽이 이겼는지는 기술하지 않았다. 다만 아르메니아가 셀레우코스 제국의 종주권을 인정하고 봉신이 되는 대신 영토를 인정받았다는 기록을 볼 때, 아르탁세스가 졌지만 파르티아와의 전쟁이 급했던 안티오코스 4세가 타협안을 제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164년 안티오코스 4세가 죽자, 그는 셀레우코스 제국에서 반란을 일으킨 밀레투스의 티마르코스를 지원해 셀레우코스 제국이 반란을 진압하느라 아르메니아에 신경을 쓰지 못하게 했다. 또한 서쪽의 유프라테스 강가에 있는 소국 소페네(Sophene)를 카파도키아 왕국과 분할하려 했지만, 카파도키아 왕 아리아라테스 5세 필로파토르가 소페네에 꼭두각시 군주 미트로부자네스를 새 군주로 세우면서 분할은 일어나지 않았다. 기원전 160년에 사망했으며, 아르타바스데스 1세가 새 군주로 등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