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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3-20 23:05:30

아르타바스데스 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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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탁세스 왕조 12대 샤
Առաջին | 아르타바스데스 4세
파일:아르타바스데스 4세.jpg
제호 한국어 아르타바스데스 4세
아르메니아어 Առաջին
그리스어 ΑΡΤΑΒΑΖΔΟΥ
고대 페르시아어 Ṛtavazdā
존호
생몰 년도 미상 ~ 10년
재위 기간 4년 ~ 6년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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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르메니아 아르탁세스 왕조 12대 .

2. 생애

메디아 아트로파테네의 군주인 아리오바르자네스의 아들이다. 부친 아리오바르자네스가 2년 가이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아르메니아 왕으로 선임된 후, 그는 부친을 대신하여 메디아 아트로파테네를 다스렸다. 부친이 4년에 갑작스러운 사고로 사망하자, 그는 아르메니아 왕국을 인계받기 위해 로마 원로원에 사절을 보내 허락을 요청했다. 원로원의 허락이 내려지자, 그는 아르메니아로 가서 왕위를 이어받았다.

그러나 아르메니아인들은 로마의 지배를 더 이상 받고 싶어하지 않았다. 아리오바르자네스를 왕위에 올리기 위해 아르메니아에 군대를 이끌고 간 가이우스 카이사르가 온갖 문제를 터트렸기 때문이다. 그는 거만한 태도와 언행들로 자존심 강한 아르메니아 사람들을 자극해 아르메니아 왕실과 귀족들까지 피해를 입히는 폭동을 유발시켰다. 급기야 폭동을 진정시키기 위해 협상장에 들어선 순간 아르메니아인들의 매복 공격을 받고 복부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그를 호위한 경비병들도 큰 부상을 입었다. 로마군이 폭동을 가까스로 제압하긴 했지만, 가이우스는 더 이상 아르메니아에 머물지 못하고 소아시아로 도주했고, 서기 4년 2월 21일에 부상이 악화되어 사망했다.

이리하여 로마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된 그는 2년 후인 6년경 아르메니아인들에게 살해당했다. 아우구스투스는 아르메니아에 대한 외교 정책을 재검토하고 모계 쪽에서 아르탁세스 왕가와 관련이 있는 티그라네스 5세를 새 왕으로 세웠다. 아르메니아 귀족들은 티그라네스 4세와 함께 나라를 이끌었던 에라토 여왕을 궁정으로 불러들여 티그라네스 5세와 함께 공동 왕으로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