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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창/선수 경력/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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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창의 연도별 시즌 일람
2008년 2009년 2010년

1. 시즌 전2. 페넌트 레이스
2.1. 4월2.2. 5월2.3. 6월2.4. 7월2.5. 8월
2.5.1. 8월 6일: KIA전 () [패배] - 심논개 사건
3. 총평4. 시즌 후5. 관련 문서

1. 시즌 전

1.1. KBO 시범경기

2. 페넌트 레이스


2009년 전반기에 좋은 성적을 보여주면서 크리스 옥스프링의 부재로 빈약해진 LG 선발진의 한 축이 될 것이라고 기대를 받았다. 당시 타자들을 주로 땅볼로 처리하여 붙은 별명이 '심땅꾼'.

2.1. 4월

4월 7일 홈개막전인 잠실 롯데전에서 6.1이닝 6피안타 5K 무실점으로 대호투를 펼치면서 승리투수가 됐다. 이는 LG의 시즌 첫 승리였다.

4월 12일 두산전에서 6.2이닝 9피안타에도 위기관리에 성공하면서 2실점으로 호투해 시즌 2번째 승리 요건을 만들었다. 그러나 LG가 3:2로 앞선 8회초 평범한 외야 타구를 놓친 중견수 이대형의 히드랍더볼이 스노우볼이 되어 심수창의 승리가 날아갔고[1] LG는 역전패를 당했다.

4월 17일 잠실 KIA전에서 5이닝 10피안타(3피홈런) 7실점으로 탈탈 털리며 시즌 첫 패전을 당했다.

4월 23일 잠실 삼성전에서 5회까지 무실점 호투했으나 6회에 수비 실책 이후 무너지면서 4실점해 패전투수가 됐다.

4월 29일 청주 한화전에서 전날 6홈런을 날린 한화의 강타선을 상대로 프로 데뷔 이후 개인 최다이닝인 7.1이닝을 투구하며 6피안타 2사사구 6K 2실점으로 호투해 시즌 2번째 승리투수가 되었다. 불펜 방화로 승리가 무산될 뻔했지만 우규민이 1실점하고도 4:3으로 쫓긴 1사 만루 1점차에서 추가실점을 막았다. 이는 심수창의 통산 한화전 4연패 끝에 첫 승이었다.

4월의 성적은 선발 5경기 2승2패에 QS 3번과 함께 ERA 4.11을 기록했다. 3경기 호투, 2경기 부진. QS를 하지 못한 2경기도 5이닝은 넘기며 제몫을 했다.

2.2. 5월

5월 5일 어린이날 두산전에서 7이닝 5피안타 QS+ 무실점에 타선이 13득점이나 뽑아내면서 시즌 3승째를 올렸다. ERA는 3.35로 대폭 낮췄다. 2006년 이후 3년만에 어린이날 LG의 승리투수가 됐다. LG는 이 승리로 4연승에 성공했다.

5월 10일 대구 삼성전에서 6.1이닝 8피안타 3실점으로 또 QS에 성공해 제몫을 해냈으나 타선 지원 불발로 인해 패전투수가 됐다. 이 경기 패배로 아쉽게 LG의 9연승은 무산되었다.

5월 17일 목동 히어로즈와의 DH 2차전에서 5.1이닝 10피안타 4볼넷 3실점으로 투구내용은 좋지 않았으나 승리 요건을 갖췄다. 그러나 9회말 블론으로 인해 N/D를 기록했다.

5월 22일 잠실 한화전 김혁민과의 선발 맞대결에서 개인 최다이닝인 8이닝 3실점으로 QS+와 함께 승리 투수가 됐다. 한화전에서만 2승으로 시즌 4승(3패)째.

5월 28일 사직 롯데전에서 7이닝 10피안타 3실점으로 QS+를 찍었고 타선이 13점이나 지원해주면서 시즌 5승째를 올렸다.

5월 성적은 5경기 3승1패에 QS 4회(QS+ 3회)에 ERA 3.21을 기록할 정도로 봉중근과 함께 원투펀치로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 다만 33.2이닝 39피안타에 9볼넷에 11탈삼진에 그쳐 운이 따른 것도 사실이다.

2.3. 6월

6월 14일, SK전에 선발 등판하여 7⅓이닝 5탈삼진 3볼넷 3실점[2]으로 퀄리티 스타트 플러스를 달성했고, 이재영의 세이브로 최종 스코어 5:3으로 이겨서 심수창은 이날의 승리 투수가 되었다. 그런데 이 승리가 이후 786일 간의 마지막 승리가 될 것이라고, 또 LG 트윈스 소속으로서 이후 3607일 간의 마지막 승리가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6월 26일, 문학 SK전에 글로버와의 선발 맞대결에 등판하여 패전투수가 되었다. 4⅓이닝 6피안타(2피홈런) 6사사구 4K 5실점(4자책점), 시즌 평균 자책점 4.95, 경기 BABIP 0.286, 게임스코어 31점 PQS 1점을 기록했다. 시즌 6패째를 기록했고, 이 패배는 장대한 18연패의 시발점이 된다.

2.4. 7월

7월 2일, 잠실 롯데전에 손민한과의 선발 맞대결에 등판하여 패전투수가 되었다. 2연패
6⅓이닝 4피안타(2피홈런) 6사사구 4K 4실점(4자책점) 시즌 평균 자책점 5.00, BABIP 0.142, 게임 스코어 47점, PQS 2점을 기록했다.

7월 8일, 무등 기아전에 구톰슨과의 선발 맞대결에 등판하여 6이닝 7피안타 3자책으로 QS는 기록했으나 패전투수가 되었다. 3연패

7월 18일, 시민 삼성전에 윤성환과의 선발 맞대결에 등판하여 패전투수가 되었다. 4연패

7월 23일, 무등 기아전에 아킬리노 로페즈와의 선발 맞대결에 등판하여 패전투수가 되었다. 심수창은 5⅓이닝 5피안타 3자책점으로 분전했지만 로페즈가 8이닝 4피안타 6삼진 0자책점으로 맹활약하는 바람에 연패를 끊지 못했다.5연패

7월 31일, 목동 넥센전에 마일영과의 선발 맞대결에 등판하여 퀄리티 스타트 플러스를 기록하고도 패전투수가 되었다. 6연패

2.5. 8월

2.5.1. 8월 6일: KIA전 () [패배] - 심논개 사건

파일:external/wstatic.dcinside.com/shimnongae.jpg

경기 풀영상
경기 요약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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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6일, 잠실 KIA 타이거즈 윤석민과의 선발 맞대결 경기에서 심수창이 선발 투수로 등판했다. KIA는 1위, 6연승으로 승승장구 중이었고 LG는 7위, 6연패 중이었다. LG로서는 앞서 기아와의 3경기 중 2패를 기록한 뒤 마지막 경기였다. KIA는 전날 경기에서 이김으로서 54승 4무 37패로 단독 선두에 올라섰고, 두산은 롯데에게 패해 53승 2무 39패로 2위로 내려앉아 2002년 이후 7년만에 단독 1위에 성공하자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의 꽉 찬 KIA 팬들은 스윕의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1회 초 톱타자 이용규를 2루수 땅볼 아웃으로 잡아내고 김원섭을 2-3 풀카운트 승부 끝에 볼넷으로 1루로 보낸다. 3번 타자 홍세완을 3구로 유격수 플라이 아웃으로 잡으며 아웃 카운트를 하나 남겨두고 이닝을 종료하려고 했지만 최희섭이 우익수 앞 1루타로 2사 1, 3루를 만들고 5번 타자 김상현의 타석에서 폭투로 3루 주자가 홈인, 3구째 김상현이 우익 2점 홈런(115m)을 때리면서 순식간에 3:0으로 승부가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6번 타자 장성호에게 2스트라이크째에 좌익수 앞 1루타, 7번 타자 안치홍을 2-3 풀카운트의 접전 끝에 볼넷으로 베이스에 다시 주자가 쌓여갔다. 불 붙은 KIA의 타선은 식을 줄 모르고 심수창은 점점 속이 타들어갔다. 2사 1, 2루에 투구수는 31개, 김용수 코치가 마운드로 올라가 심수창의 상태를 점검했다. 생각대로 경기가 풀리지 않는 지 심수창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다. 불펜에는 아무도 준비를 하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의 KIA팬들은 스윕의 기대로 가열찬 응원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홈구장 경기라는 이점이 무색하게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의 3분의 2 이상을 채운 노란 물결의 KIA의 팬들은 LG 팬들의 수를 압도하며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을 떠나가라 KIA 타이거즈를 응원했다. 8번 타자 김상훈도 7구 2-3 풀카운트 끝에 볼넷으로 2사 만루가 되었다. 다행히 9번 타자 이현곤이 친 타구가 박종호의 글러브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고 2루 포스아웃으로 길고 긴 이닝을 끝마쳤다.

2회 초 한 점 만회한 3:1의 스코어에서 다시 타석에 들어선 이용규를 좌익수 파울 플라이로 잡아낸다. 하지만 2번 타자 김원섭이 급격히 떨어지는 심수창의 변화구를 정확히 우익수 쪽 안타로 연결해 출루한다. 1사 1루. 홍세완과의 2-2 승부에서 좌익수 쪽 안타를 허용한다. 1사 1, 2루. 최희섭과의 2-2 승부에서 이번에는 우익수 쪽 안타를 허용해 4:1로 점수가 벌어진다. 김상현에게 또 한 번 1타점 2루타를 헌납한다. 1사 2, 3루 5:1. LG는 KIA와의 3연전에서 2회까지 3경기 모두 5점을 허용했다. 다행히 장성호의 땅볼로 2루 주자였던 김상현을 아웃시켜 2사 1, 3루 상황을 만든다. 이어지는 안치홍의 타구도 우익수 플라이로 아웃되며 2회 초가 끝이 났다.

3회 초 하위타선인 김상훈이현곤을 우익수 플라이와 2루 땅볼로 빠르게 두 개의 아웃 카운트를 만든 뒤, 1번 타자 이용규를 상대했다. 2-1 상황에서 떨어지는 공을 쳐내어 3루간 안타, 뒤 이은 타석에서 도루를 성공시켜 2사 2루 상황을 만든다. 2번 타자 김원섭과 2-2 승부 끝에 좌익수 쪽 안타를 허용한다. 이용규는 홈인하지만 3루를 노리던 김원섭의 3루수 태그아웃으로 이닝이 끝이난다.

4회 홍세완이 2-2 상황에서 떨어지는 공을 좌익수 쪽 안타로 연결한다. 피안타 10개 째(S:52 B:35 총 87구).4번 타자 최희섭이 3타수 3안타로 무사 1, 3루를 만든다. 이때 포수조인성과 마찰이 생겼다. 조인성이 경기 초반부터 욕을 하면서 계속 심수창을 다그쳤고, 안 그래도 팔목 부상의 와중에 힘겹게 던졌는데도 불구하고 욕을 먹어 열받은 심수창이 "아니 내가 뭘 잘못했는데요?!" 라고 외치며 일촉즉발의 상황을 연출하였다. 뒤이어 경헌호가 등판했다. 결국 조인성과 함께 2군행. 7연패 스톡킹에서 밝혔는데, 그 이후 2차사건이 터지긴 했으나 앞선 사건에 휘말려 잊혀지긴 했었다.
<rowcolor=#fff> 등판 연패 시즌 패 이닝 타자 투구 수 타수 피안타 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시즌 평균자책점 게임 스코어 PQS
선발 7 12 3 22 89 19 11 1 3 0 7 7 5.31 6[3] 1

파일:external/lh6.googleusercontent.com/%25EC%258B%25AC%25EC%2588%2598%25EC%25B0%25BD-%25EC%25A1%25B0%25EC%259D%25B8%25EC%2584%25B1.jpg
공 왜 이렇게 던지냐? → 아니 내가 뭘 잘못했는데요?! 손목도 아픈데? → 너 확 꾸겨버린다!?
파일:1606321119480.jpg

당시 경기 영상(해당 시점 재생)
영상을 보면 심수창이 조인성을 향해 불만을 토로하는 장면이 나오기 시작한다. 당시 김용수 투수코치는 배터리 사이에 흐르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해 감독에게 말하지 않고 바로 뛰쳐나갔다. 나중에 카메라가 덕아웃으로 돌아오는 심수창을 잡을 때 조인성의 표정도 백미.

평소부터 나쁜 성질머리, 바깥쪽 일변도의 볼 배합, 승패가 다 기운 경기 후반에만 스탯 관리 하는 타격, 떨어진 송구 능력 등을 이유로 들며 조인성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LG팬들은 '심수창이 팀을 위해 몸 바쳐 희생했다'며 심논개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2군에 간 조인성을 대신해 올라온 김태군은 8월 7일 LG의 새 외국인 투수 제레미 존슨을 비롯한 불펜진과 배터리를 이뤄서 무실점 경기를 펼쳤다. 그리고 다른 투수들도 김태군과 배터리를 짜니 훨씬 안정적인 피칭을 했다.

사실 조인성 입장에서 실드를 쳐보자면, 조인성은 포수이지만 굉장한 혹사를 당한 상태였다. 2008년에 엄청난 출장을 하면서 심신이 지쳐있는 상태에서 2009년에는 조바깥이라고 까이고, 그러던 걸 화내지도 못하고 분을 삭이던 중에, 심수창은 그걸 직격으로 바깥쪽으로 리드를 하지 말라고 뭐라고 했고, 이에 빡칠대로 빡친 조인성은 심수창한테 욕을 한 것.

다만 후에 알려진 기사에 의하면 이 때만 하더라도 조인성은 스스로 볼 배합을 하는 것이 아니라 벤치에서 볼배합을 지시했었다고 한다. 자신이 리드했으면 모를까 벤치에서 지시한 상황에서 리드못한다는 소리를 들으며 LG팬들에게 미움을 받았으니 억울할 만도 하다. 팀 내에서도 조인성이 너무 착할 뿐이라며 두둔하는 것을 보면 심수창에게도 문제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진실은 당사자들만 알겠지만.[4]
불암콩콩코믹스에서도 이 사건을 놓치지 않고 만화로 그려내었다.링크

2019년 박명환정수근과 함께 진행한 박명환야구TV 야구썰전 11화_정수근 취중진담 2편에서 그 당시의 이야기를 했다. 당시 투수조장이었던 최원호가 처음에는 주장 및 고참 야수들과 대화 후 투수들을 다 모아서 심수창을 하극상 처벌 명목으로 빠따때리기를 하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심수창이 "제가 왜 맞아야 되는데요? 제가 뭘 잘못했다고 맞아야 되냐구요?"라고 저항했고, 나중에는 최원호가 박명환을 시켜 심수창을 잡으라고 했다는데 유야무야됐다고 한다.[5] 사실 박명환이나 박경수나 심수창 본인이나 중요한 부분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설명 자체를 유야무야로 넘어간 부분이 있어서 아직 온전한 진실이 밝혀진건 아니다. 최원호는 모두 모인 곳에서 심수창을 투수 중 누군가에게 때리라고 했고, 심수창이 저항한 것, 그리고 이후 코치가 불러갔다는 것까지가 공통된 내용이나, 그 코치가 부르기 전까지가 분명하지 않다. 저항과정이 짧지 않았을 수 있기에 어느 정도 시간이었는지, 저항과정에서 분위기가 나빴고 거칠었다고만 했는데 그 거친 과정과 정도[6]에 대해 이야기는 훗날에도 당사자와 목격자들까지 이야기를 피하며 말하지 않았기에, 항상 당사자들에게 있어서 진실은 알 수 없다. 이 영향인지 먼 훗날 스톡킹을 하면서 방송사별 해설위원했던 야구인들이 거의 다 나와도 최원호이종열은 못 나오고 있다.
후에 2020년 11월 25일, MBC 라디오 스타(황금어장) 696회김광현, 박성광, 양준혁 해설위원과 함께 라디오 스타에 출연하여 해당 상황에 대해서 해명했다.(아래 영상)

[kakaotv(414376160)]
파일:세제어2.jpg
스톡킹 10만 구독자 돌파 기념 유튜브 라이브 중# 심수창이 자신은 "진짜 인성이형이랑 친해요 사진 보여드릴게요"라며 위의 사진을 공개했다. 채팅에서는 "허리에 초크 걸었어요 수창이형?" "10년 전보다 더 어색한 거 같아요." "숨을 못쉬겠어요."와 같은 반응이 나왔다.
그리고 7년뒤 이 사건이 한화에서 그대로 재현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대가 심수창이 아니라 정민태 코치였다. 심수창은 옆에서 말려보려다 기세에 눌려 슬금슬금 도망친다.

야 바꾸자 → 수창이 볼 좋은데 왜요 → 아니 바꾸러 올라왔는데 왜? → 볼 좋다니까요 → 내가 바꾸겠다는데 왜 네가? → 괜찮다니깐... → 네가 코치야?

3. 총평

결국 2009 시즌에는 봉중근과 함께 LG의 원투 펀치로 불렸지만 6승 12패를 기록했다. 8월까지 뛰었음에도 김혁민에 이어 류현진과 함께 시즌 최다패 공동 2위는 덤. 봉중근과 마찬가지로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하고도 패전 투수가 되는 일이 많아서 이렇게 된 것이다.[7] 하지만 평균자책점은 5.31로 그 시즌이 역대급 타고투저였음을 감안하더라도 대단히 높은 편이었다.[8]

여담으로 이 당시 어깨 건초염을 앓았던 듯 하다.

4. 시즌 후

연도 소속 경기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9 LG 21 122 6 12 0 0 0.333 5.31 143 21 64 57 74 72 1.639


영상 초반에 보이는 투수는 당시 중학생이던 박진태.

5. 관련 문서



[1] 이대형은 고글 논란으로 어마어마한 까임을 받았다.[2] 공교롭게도 그날이 나주환의 생일이었는데 자축포로 x존 넘겨버리는 큼지막한 타구 날렸던거라고 나주환이 스톡킹에서 밝혔다. 여담으로 별명이 군만두가 된 계기가 이 홈런 하나의 임팩트가 너무 컸다고.[3] 게임 스코어는 기본으로 주어지는 점수가 50점이다...[4] 스톡킹에선 이때 1루에서 지켜본 최동수, 덕아웃에서도 목격한 박경수, 구리야구장에선 우규민이 그소식 들었다고.[5] 박명환이 과거에 한 얘기를 보면 박명환이 이적생에 라이벌 관계였던 두산 출신이다보니 약간 거리감이 없지 않아 있었고 당시 고참 중에 인지도가 있던 선수가 박명환밖에 없어서 억지로 악역을 맡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박경수가 한 얘기에 따르면 락커룸이 이렇게 험악해지는 동안에, 수석코치가 와서 당사자 둘을 불러 가는 바람에 끝났다고 한다.[6] 투수조장이 회의까지 했고, 결론이 나서 투수들 소집한 투수조장이 대놓고 맞으라며 엎드리라고 한 상황에서 당사자가 "내가 왜 맞아야 되는데요"라고 정면으로 저항까지 했는데, 최원호처럼 선수시절 한 성질하던걸로 유명한 조장이 바로 포기하고 "그럼 됐다. 그냥 맞지 마라"라고만 하고 넘어갔을 개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코치가 처음부터 개입한 경우라면 몰라도, 코치없이 강제집합까지 했었다면 당시 야구계 분위기에서 상황이 넘어가기 어렵다.[7] 이 해 21번의 선발 등판 중 QS는 10회 달성했다. 또한 4실점을 하긴 했어도 6이닝 이상 소화한 경기도 2차례 있었다. 결정적으로 6월 14일 SK전 승리 까지만 해도 6승 5패 ERA 4.50의 나름 나쁘지 않은 활약을 하던 중이었다. 심지어 이 해 토종 다승왕 이었던 윤성환의 경우 비슷한 날짜인 6월 12일 등판 직후 성적이 의외로 심수창보다도 썩 좋지 못한 3승 2패 ERA 5.59였었다. 다만 윤성환은 이후 7월 월간 ERA 1.78로 제대로 각성한 이후 솔리드하게 계속해서 선발로 역할 수행을 잘 해내면서 시즌 최종 14승에 ERA 4.32로 시즌을 마감했었다.[8] 스탯티즈에서 제공하는 ERA+가 89.7로 리그 평균에는 못미쳤다. 그러나 8월 6일의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 부상을 안고 던진 선수였다는 점, 그리고 그런 부상이 있음에도 그 해 총 21번의 선발 등판 중 5이닝을 채 소화하지 못한 경기는 의외로 8월 6일 경기 포함 4경기 뿐이었으며 오히려 6~7이닝도 곧 잘 소화했고 8이닝 투구 경기도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굴려도 너무 굴렸던 것이 문제였었다. 심지어 7월 한 달 간 5경기 모두 선발 등판하여 총 31⅔이닝을 소화하며 월간 평균 6⅓이닝을 소화하는 상태였음을 감안하면 이는 당시 선수의 컨디션 체크도 제대로 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내보냈던 당시 코칭스태프 때문에 사달이 났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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