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가톨릭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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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람어 | ܥܕܬܐ ܣܘܪܝܝܬܐ ܩܬܘܠܝܩܝܬܐ |
영어 | Syriac Catholic Church |
1. 개요
서(西)시리아 전례를 따르는 동방 가톨릭 교회의 일원이다. 시리아 가톨릭의 안티오키아 총대주교좌는 레바논 베이루트에 있다.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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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기독교의 역사 | |||
비잔티움 전례 | Melkite Greek Catholic Church: 멜키트 그리스 가톨릭 | ||
Greek Orthodox Church of Antioch: 정교회 | |||
서시리아 전례 | Maronite Church: 마론파 | ||
Syriac Orthodox Church: 시리아 정교회 | |||
Syriac Catholic Church: 시리아 가톨릭 | |||
동시리아 전례 | Ancient Church of the East: 동방 고대교회 | ||
Assyrian Church of the East: 아시리아 동방교회 | |||
Chaldean Catholic Church: 칼데아 가톨릭 |
17세기 예수회와 카푸친 수도회 선교사들이 오스만 제국의 알레포와 마르딘 등에 선교를 하면서, 이들과 접촉한 일부 시리아 정교회 신자들 사이에서 친가톨릭 운동이 일어났다. 기존 시리아 정교회와 새로운 시리아 가톨릭 교도들 사이에 교리 해석 문제로 갈등이 불거지자, 오스만 제국 당국은 1702년부로 개입하여 시리아 정교회의 편을 들어주어, 시리아 가톨릭 교도들을 박해하였다.
18세기 말에는 안티오키아 총대주교(시리아 정교회)로 미카일 야르웨흐(ܡܝܟܐܝܠ ܓܪܘܗ)가 뽑혔는데, 나중에 폐위되자 그는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교황수위권을 인정할 것을 주장하였다. 야르웨흐는 시리아 가톨릭 안티오키아 총대주교로 임명된 것을 계기로, 시리아 가톨릭의 총대주교구 및 총대주교좌가 자리잡게 되었다. 안티오키아라는 명칭과 다르게 근세 당시 안타키아는 볼품없는 소도시로 전락했던 상황이었고, 총대주교구는 알레포에 위치해 있었다.
오스만 제국은 프랑스의 압력 등의 이유로 1845년부로 시리아 가톨릭을 정식으로 인가하였다. 그러다가 1850년 알레포에서 그리스도인 학살이 일어나면서 상당수의 시리아 가톨릭 신도들이 재산을 잃고 흩어지면서, 1854년부로 총대주교구는 마르딘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시리아 가톨릭 총대주교구 위치는 터키 공화국 영토가 된 마르딘에서, 프랑스의 통치를 받던 베이루트로 이전되었다. 터키 공화국이 동방 가톨릭에 비협조적인 것과 대조적으로 프랑스는 중동 내 동방 가톨릭 교회에 무척 우호적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