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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 삼프도리아 | 제노아 C.F.C. | |||
스타디오 루이지 페라리스 | ||||
Stadio Luigi Ferraris | ||||
<colbgcolor=#152f52><colcolor=white> 별명 | 축구의 성전 (il Tempio del Calcio) | |||
이전 명칭 | Stadio comunale di Via del Piano (1911 – 1933) | |||
소재지 | [[이탈리아| ]][[틀:국기| ]][[틀:국기| ]] 제노바 (Via Giovanni de Prà, 1, 16139 Genova GE, Italy) | |||
소유 | 제노바 시 | |||
수용인원 | 36,600석 | |||
표면 | 천연잔디 | |||
필드 크기 | 105 × 68m | |||
개장 | 1911년 1월 22일 ([age(1911-01-22)]주년) | |||
보수 | 1982년, 1987년 – 1989년, 2015년, 2018년 | |||
홈팀 | 제노아 C.F.C. (1911년 – 현재) | |||
U.C. 삼프도리아 (1946년 – 현재) | ||||
UEFA 등급 | ★★★ |
1. 개요
이탈리아 리구리아 주 제노바 마라시(Marassi)[1] 거리에 위치한 축구 경기장. 1911년에 개장되어 현재 이탈리아에서 축구 및 여타 스포츠 경기에서 현역으로 사용되는 경기장 중 가장 오래된 경기장이다.경기장의 명칭은 제노아 CFC의 주장이었으며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1915년 전사한 루이지 페라리스(Luigi Ferraris)를 기리는 의미를 담고 있다.
2. 역사[2]
스타디오 루이지 페라리스의 정확한 착공일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보통 1910년 7월 10일로 인정된다. 그 날은 제노아 CFC의 전 회장 에도아르도 파스퇴르(Edoardo Pasteur)가 어린 영국계 이탈리아팀 선수였던 마르키소 무소 피안텔리(Marquis Musso Piantelli)의 축구 경기장 건설 제안을 받아들인 날이다[3].1911년 1월 22일, 캄포 디 비아 델피아노(Campo di Via del Piano)라는 이름과 함께 이 경기장에서 제노아와 인테르와의 개장 경기가 열렸다.
새로운 경기장은 비사뇨(Bisagno) 강에 수직으로, 오래된 카젠나(Cajenna)[4]에 수평으로 건설되었다. 두 개의 경기장은 펜스로 분리되어 있었으며 제노아는 안드레아 도리아의 사촌으로부터 보상으로 1,000 리라, 유지보수 비용으로 200 리라를 매년 받게 되었다.
1926년 말엽 카젠나가 더 이상 사용이 불가하다는 발표가 나왔고 결국 제노아는 안드레아 도리아에 2만 리라를 보상하면서 그들이 사용하던 경기장 북쪽에 새로운 관중석을 세우기로 결정했다, 경기장 확장 공사는 1932년 말엽에 완료되었고 1933년 1월 1일, 제노아 팀의 전 주장 루이지 페라리스의 이름이 헌정되어 스타디오 루이지 페라리스로 재개장되었다. 그리고 이 헌정식에서 페라리스의 은메달이 북부 계단 아래의 게임 게이트 근처에 묻혔다. 스타디오 루이지 페라리스는 이 확장 공사로 당시 이탈리아 왕국 내에서 가장 현대적인 축구장으로 재탄생했으며, 수용 가능 인원 역시 20,000명에서 33,000명으로 늘었다.
이곳에서도 1934년 월드컵 중 한 경기가 열렸고 스페인이 브라질을 3:1로 꺾고 8강에 진출했다.
1946년부터 UC 삼프도리아가 이 구장에 이사옴으로써 제노아와 삼프도리아가 두 집 살림을 시작하게 되었고, 데르비 델라 란테르나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1990년 월드컵을 앞두고 루이지 페라리스 경기장은 건축가 비토리오 그레고티(Vittorio Gregotti)의 지휘 아래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거쳤다. 그레고티가 가장 신경 쓴 사항은 관중석 내 모든 각도에서 필드를 잘 볼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시야 확보를 위한 회의가 계속되면서 이 리모델링은 1987년 7월부터 1989년 9월까지 26개월간 지속되었다. 그 결과 이 경기장은 입구를 빼면 거의 모든 면에서 새로 태어났고 4만명의 수용인원과 함께 2개의 맥시 스크린, 기자실로 쓸 수 있는 전망대까지 있는 현대식 경기장이 되었다. 그리고 1990년 월드컵에서 총 4경기가 이곳에서 열렸다.
2011년 5월 28일, 제노아 구단의 주최하에 구장 건립 백주년 기념식이 열렸고, 제노아 OB와 스타일리스트들과의 친선 경기가 열렸다.
3. 구조
지금의 루이지 페라리스는 그 이후로도 소소한 변화들이 있었는데 전망대는 유지비용 문제로 철거되었고 원정석도 삼프도리아 홈경기 때는 북쪽 구석, 제노아 홈경기 때는 남쪽 구석을 쓰는 걸로 바뀌었다.[5] 2005-06 시즌 당시 삼프도리아의 UEFA 컵 참가를 위해 관중석을 UEFA의 기준에 맞춰 변경하면서 38,000석으로 규모를 조금 줄였고, 2010-11 시즌에는 삼프도리아의 챔피언스 리그 출전을 위해 다시 좌석을 손보면서 현재의 수용 인원이 되었다.2001년에는 이탈리아의 새로운 안전 지침에 따라 강철 격자와 회전문이 경기장 외부 경계에 설치되었다. 현재 UEFA 등급 3 경기장으로 각종 유럽 대회의 경기를 치를 수는 있지만 결승전을 치르지는 못한다.
4. 대체 계획
이탈리아의 석유 회사 ERG의 CEO 리카르도 가로네(Riccardo Garrone)가 삼프도리아의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경제적인 이유로 루이지 페라리스를 대체할 새로운 구장 계획이 나오기 시작했다. 구장 인근의 빠른 도시화와 더 강력한 안전 관련 규정으로 인해 계획은 탄력을 받았으며 계속된 논의 끝에 2007년, 세스트리 포넨테(Sestri Ponente)의 도크에서 최종 프로젝트가 발표되었다.하지만 페라리스의 대체 계획을 반대하는 서포터들도 있었는데 제노아의 서포터들은 1911년부터 100년 가까이 지켜온 그들의 홈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고, 삼프도리아 서포터들은 마라시의 경기장을 안드레아 도리아로부터의 연관짓기도 했지만 전설적인 구단주 파올로 만토바니(Paolo Mantovani)[6]와 현재까지 그들의 유일한 스쿠데토를 차지했던 1991년의 추억을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제노바 시 당국은 국제 공개 입찰을 통해 페라리스 구장의 판매를 추진했는데 이때 시 당국은 판매 금액이 3천 6백만 유로까지 가기를 바랐다. 하지만 삼프도리아는 관료적 절차의 까다로움 때문에 시작 과정에서 손을 뗐고, 제노아 역시 오퍼가 들어오지 않은 데다 높은 운영비용 때문에 역시 손을 떼면서 새 구장은 시의 소유로 남게 되었다.
유로 2012의 개최지 선정 당시 이탈리아도 개최를 희망했을 때 도리안 경영진이 지원하던 세스트리의 새로운 경기장 디자인이 유행했었다. 처음엔 제노바 시의회와 다른 시의 팀 회장 엔리코 프레치오시(Enrico Preziosi)는 이 디자인에 회의적이었지만 후보 도시에서 제외되는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아서 제노바 시장은 가로네의 아이디어를 지지했다. 하지만 ENAC[7]의 의견은 달라서 제노바 공항의 미래 발전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항공국 소유지 중 경기장 부지에 들어갈 땅을 판매하길 거부했다. ENAC은 대체 계획을 수립하지 않았고 제노바 시장은 대신 캄피(Campi) 지역의 전 콜리자(Colisa) 지역을 새 경기장 부지로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가로네의 계획에는 세스트리 지역이 필수였기 때문에 제노바 시장은 팬들의 압력 아래 가로네에 의해 디자인 된 가설을 설정하는 것으로 한 발 물러났다.
2009년 10월 16일, 유효한 새 구장 건설 프로젝트가 제출되지 않으면 제노바는 후보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소식이 나왔다. FIGC은 페라리스 구장이 유로 대회 개최를 위한 UEFA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연방 지도자들은 교착 상태에 빠진 제노바의 경기장 문제에 강한 자극을 주는 것이 목표였고 당시 제노바 시장 마르타 빈첸치(Marta Vincenzi)는 또한 삼프도리아의 사유지를 포함한 두 개의 임시안을 마련했다.
같은 해 11월 12일, 이미 FIGC는 안전 규정의 미비로 인해 페라리스 경기장이 유로 경기장으로 쓰일 수 없다고 발표했음에도 제노아 1893 재단은 UEFA 규정을 만족시킬 수 있는 자체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새롭고 멋진 플랫폼이 있는 26,000m²의 야외 공간, 총 39,000m²의 주차 공간, 4개의 새로운 타워, 28개의 새로운 스카이 박스 및 18,000m²의 도시 공원 조성이 포함되었다. 마라시 지역의 도시 재개발, 33,000석의 국제회의 수용 규모도 준수했으며 이 프로젝트에는 최소 5천만 유로가 들 것으로 예상되었다. FIGC는 이 프로젝트를 고려하지 않았고, 결국 12월까지 계속 설계가 지연되자 제노바 시는 후보지 선정을 포기했다.
잠잠했던 경기장 문제는 2011년 여름에 다시 떠올랐다. 리카르도 가로네 회장의 아들 에도아르도는 관료적으로 심각한 어려움에 맞닥뜨린 후 새 경기장의 가설을 보류한 후, 제노바 시와 함께 경기장 관리를 맡기로 합의하여 이 분야의 전문 회사인 Tre Colli에 상업적 부분을 맡겼다. 하지만 이것도 합의가 되는 듯 했지만 제노바 시의 입장에 변화가 생겨 협상이 좌절되었고 페라리스 구장의 민영화는 또 물 건너갔다.
2012년 12월 1일부터 페라리스 구장은 Best Union, Unifica, Costa Edutainment 및 Stadia에 의해 설립된 민영 합작 회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또한, 공개 입찰 절차를 통해 수행된 양도는 페라리스 구장의 소유주, Genoa Sportingenova S.p.A의 자회사에 의해 처리되었다.
2015년 여름, 120만 유로에 가까운 비용으로 구장의 잔디가 하이브리드로 교체되었고 이 비용은 양 구단이 균등히 분담했다. 그러면서 배수 시설도 업그레이드되었다. 이 때문인지 2018년 7월, 마페이[8]에서 평가한 마라시의 가치는 1,800만 유로로 주인들이 평가했던 700만 유로를 웃돌았다.
5. 국가대표 경기
5.1. FIFA 월드컵
5.1.1. 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
<rowcolor=#2d2f32> 경기일자 | 팀 1 | 결과 | 팀 2 | 라운드 | 관중 |
1934년 5월 27일 16:30 | 브라질 | 1:3 | 스페인 | 1라운드 | 21,000 |
5.1.2.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rowcolor=#2d2f32> 경기일자 | 팀 1 | 결과 | 팀 2 | 라운드 | 관중 |
1990년 6월 11일 17:00 | 코스타리카 | 1:0 | 스코틀랜드 | 조별 예선 C조 | 30,867 |
1990년 6월 16일 21:00 | 스코틀랜드 | 2:1 | 스웨덴 | 조별 예선 C조 | 31,823 |
1990년 6월 20일 21:00 | 스웨덴 | 1:2 | 코스타리카 | 조별 예선 C조 | 30,223 |
1990년 6월 25일 17:00 | 아일랜드 | 0:0 PSO 5:4 | 루마니아 | 16강 | 31,818 |
6. 콘서트
- 1980년 6월 11일 – 루 리드(Lou Reed)
- 1980년 6월 29일 – 에도아르도 벤나토(Edoardo Bennato)
- 1986년 7월 – 클라우디오 발리오니(Claudio Baglioni)
- 1999년 6월 11일 –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
- 2000년 7월 8일 – 루치아노 리가베(Luciano Ligabue)
- 2004년 6월 20일 – 바스코 로시(Vasco Rossi)
- 2003년 9월 4일, 2007년 9월 9일 – 부이오 페스토(Buio Pesto)
그 외에도 미겔 보세(Miguel Bosé), 루치오 달라(Lucio Dalla)와 프란체스코 데그레고리(Francesco De Gregori), 프랭크 자파(Frank Zappa), 조 코커(Joe Cocker), 피노 다니엘레(Pino Daniele), 파브리치오 데안드레(Fabrizio De André) 등이 이곳에서 콘서트를 개최했다.
7. 사건사고
- 제노아의 레전드 골키퍼 조반니 데프라(Giovanni De Prà)[9]가 1979년 사망했을 때 제노아 시 당국은 제노아 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데프라의 금메달을 경기장에 묻었다. 하지만 1990년 월드컵을 앞두고 경기장을 보수할 때 메달이 발견되지 않았다! 지금도 메달의 행방은 아무도 모른다.
- 1995년 1월 29일, 제노아 팬 빈첸초 스파뇰로(Vincenzo Spagnolo)가 AC 밀란 팬 시모네 바르발리아(Simone Barbaglia)에 살해당했다. 제노바 경찰이 밤새 경비를 선 덕분에 패싸움 등 더 큰 소동은 일어나지 않았고 스파뇰로를 상징하는 기념물이 북쪽 스탠드 근처에 있다.
- 1999년 10월 12일에 열렸던 삼프도리아와 볼로냐와의 코파 이탈리아 경기. 삼프도리아의 주전 골키퍼였던 잔루카 팔리우카는 볼로냐 팬들의 물건 투척에 의해 곤욕을 치렀다. 볼로냐 팬들은 팔리우카를 향해 오렌지, 각종 병 등 다양한 물건들을 던져댔고 이로 인해 한 시간 15분 동안 경기가 중단되었지만 물건 투척은 계속되었다. 나중에는 팔리우카에게 경기장 화장실에서 뜯어온 수도꼭지까지 날아왔고 이 경기는 6일 후 볼로냐의 0대2 몰수패로 처리되었다.
- 2010년 10월 12일, UEFA 유로 2012 예선 세르비아전. 경기장 안팎에서 양국팬들의 패싸움이 일어났다. 가뜩이나 연막탄으로 인해 35분 늦게 시작된 경기에서 로켓이 골키퍼 에밀리아노 비비아노와 풀백 잔루카 잠브로타를 건드리자 주심은 시작된 지 6분 만에 경기를 중단시켰다. 이 경기는 이탈리아의 3대0 몰수승으로 처리되었고, 부상자 18명이 발생했다. 주모자 이반 보그다노프(Ivan Bogdanov)는 체포되어 3년 3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 2012년 4월 22일, 리그 경기에서 제노아 팬들은 시에나 AC에 후반 4분에 4번째 골을 먹히자 극대노를 시전했다. 후반 8분, 이들은 제노아 선수들을 위협하며 경기장에 긴장감이 감돌게 했지만 40분 만에 소요가 진정되었고 경기는 재개되었다. 제노아는 시에나에 1대4로 패했다.
8. 기타
- 루이지 페라리스의 최다 관중 동원 경기는 1949년 2월 27일의 이탈리아와 포르투갈의 A매치로 6만 명이 경기를 관람했다. 리그 내 기록으로는 1982년 11월 28일의 데르비 델라 란테르나로 57,815명이 경기장에 입장한 것이 최고 기록이다. 현재는 축구장의 입석 판매가 금지되었고 경기장 수용 인원 자체가 3만 6천명대로 줄어 루이지 페라리스 경기장 한정 불멸의 기록이 되었다.
- 판타지스타 로베르토 바조의 대표팀 은퇴 경기가 열린 곳이다. 2004년 4월 28일, 스페인과의 친선 경기에서 이탈리아는 스페인과 1대1로 무승부를 기록했다.
- 2011년, 이곳에서 마스터셰프 이탈리아의 야외 에피소드가 촬영되기도 했다.
- 2012년 2월 29일, UEFA 유로 2012 대비차 이탈리아는 미국과 친선 경기를 가졌는데 이탈리아는 클린트 뎀프시의 골로 인해 0대1로 패했다. 이 시합은 현재까지 이탈리아가 미국에 패한 유일한 경기이다.
- 2014년 10월 29일, 이탈리아 출신 영국 가수 잭 사보레티(Jack Savoretti)는 2015년 Written In Scars에서 발매된 앨범의 싱글 홈 비디오를 이 경기장에서 녹음했다.
[1] 그래서 이 경기장은 종종 스타디오 마라시로 불리기도 한다.[2] 출처: 이탈리아어 위키피디아[3] 경기장을 세운 빌라 센투리오네 무소 피안텔리(Villa Centurione Musso Piantelli) 안의 대지는 피안텔리의 소유였고 경기장 입구 근처에는 아직도 그가 살던 16세기 양식의 집이 남아 있다.[4] 안드레아 도리아의 스포츠 필드로 1902년부터 마라시의 경기가 열렸다.[5] 이는 주로 삼프도리아 팬들은 남쪽, 제노아 팬들은 북쪽 스탠드에서 경기를 관람하기 때문이다.[6] 1979년부터 그가 사망하던 1993년까지 삼프도리아의 구단주로 재임했는데 이 당시 공격적인 투자로 삼프도리아의 전성기를 이끌었다.[7] Ente nazionale per l'aviazione civile. 이탈리아 민간 항공국[8] US 사수올로 칼초 구단을 소유한 회사이다.[9] 1919년부터 14년간 제노아의 골문을 300경기 넘게 지켰으며 1924년 당시, 현재까지 제노아가 마지막으로 우승했던 때에 함께 했던 선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