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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2 08:57:50

예카테린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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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Yekaterinburg_skyline2.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Catherineburg.jpg
파일:예카테린부르크 문장.svg
러시아어: Екатеринбург
영어: Yekaterinburg
독일어:Jekaterinburg
한국어: 예카테린부르크
설립 1723년
면적 1,111㎢
인구 1,539,271 (2023)
인구밀도 1,385명/㎢
시간대 UTC+5
1. 개요2. 도시 특징과 역사3. 교통4. 출신 인물5. 이야깃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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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러시아 중앙부에 있는 대도시로 우랄 연방관구의 수도이자 스베르들롭스크 주의 주도이다. 인구는 2023년 기준으로 약 154만 명으로 러시아 전체에서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노보시비르스크에 이은 4위 규모로, 한마디로 우랄 산맥의 중심도시.

도시의 이름은 러시아의 여제이자 표트르 대제의 부인이었던 예카테리나 1세에서 따왔다. 예카테리나 대제와 다른 사람이다.

2. 도시 특징과 역사

도시가 우랄 산맥의 동쪽 기슭에 가까스로 위치해있기 때문에 대륙 구분상으로 아시아에 속해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유럽아시아를 나누는 오벨리스크가 도시 서쪽으로 40km 거리에 위치해있다. 만약 찾아가볼 생각이라면, 우랄 산맥에 유럽과 아시아 경계비는 이것 말고도 수십 군데가 있다. 무려 2,000km나 되는 우랄 산맥에 경계비가 하나밖에 없을 리가 없으니 당연한 것. 이 중 가장 유명한 곳은 도시에서 40km 떨어진 가장 크고 가장 오래된 오벨리스크인데 경계비 기단석을 유럽 서쪽 끝 포르투갈의 호카 곶과 아시아 대륙 동쪽 끝인 축치 반도 데즈뇨프 곶에서 가져온 돌로 만들었다. 이 경계비는 1846년 러시아 제국차르 알렉산드르 2세황태자던 시절 방문한 것을 기념해 만들었다고 한다. 여기는 기념비 외에 특별한 것은 없지만 상징성과 인증샷 때문에 관광객이 종종 찾아간다. 아시아와 유럽을 가르는 경계선상에 있는 도시로 튀르키예이스탄불이 있다면 러시아엔 예카테린부르크가 있는 셈.

우랄 산맥의 풍부한 천연 자원들이 모이는 도시이기 때문에 공업이 상당히 발달했다. 러시아인들이 예카테린부르크하면 바로 떠올리는 것이 공장의 이미지. 도시 자체가 18세기 광산업을 위해 건설된 도시이고 이로써 축적된 부를 통해 공업, 금융업, 상업이 발달하게 되었다.

러시아 내전 이후 예카테린부르크는 우랄 산맥 권역에서 현재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스베르들롭스크(Свердловск, Sverdlovsk)라는 이름으로 도시 이름이 개칭되었다.[1] 이후 스탈린이 우랄 산맥을 공업화하면서 군수산업도 크게 발달하게 되었고 이렇게 만들어진 예카테린부르크와 우랄 산맥 권역의 공업지대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러시아 산업의 핵심이 되었다.

소비에트 연방 체제가 무너지고 러시아 연방이 되면서 도시 이름은 다시 옛 이름인 예카테린부르크로 바뀌었으나, 아직까지 이 도시를 포함한 주는 스베르들롭스크 주(Свердловская область)라고 불리면서 소련시대 이름을 간직하고 있다. 이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감싸고 있는 레닌그라드 주와도 동일하다.

최근 러시아에서 발전속도가 빠른 도시 중 하나다. 인구가 꾸준히 늘고 있고 고층건물도 많이 올리는 중. 2020 엑스포 유치에 뛰어들었지만 두바이에게 밀렸다.

시의 중심부에는 저 위의 사진에서 나오듯이 크고 아름다운 인공호수와 운하를 만들어 두었다. 시민들의 산책로로 이용되며 가끔 카누를 타고 노는 사람들도 보인다.

3. 교통

유럽모스크바극동 시베리아를 잇는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예카테린부르크 역을 통과하며, 러시아 철도가 아시아로 이어지는 길목이기도 하다. 모스크바에서 출발한 열차가 여기서 러시아 동부와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등으로 가는 철도가 분기한다. 덕분에 근대 러시아 소설에서 누군가가 시베리아로 유형을 간다면 항상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잠깐 머무는 장면이 나온다.

시내 교통은 예카테린부르크 지하철이 담당하고 있으며, 시베리아에 몇 없는 지하철 보유 도시이다. 트램과 트롤리버스가 활성화되어 있다.

공항으로는 콜초보 국제공항이 있는데, 한국에서는 직항 노선이 없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출발하고자 한다면 베이징 서우두 국제공항에서 환승하거나 타슈켄트 국제공항에서 환승해서 가는 방법이 있다.

4. 출신 인물

5. 이야깃거리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니콜라이 2세 일가가 1918년 7월 17일 이곳에 있던 이파티예프 하우스 지하실에서 최후를 맞았다. 이파티예프 하우스는 1977년에 와서야 철거되었으며[4] 현재 그 자리에는 당시 처형당한 로마노프 왕가를 추모하는 피의 성당이라는 정교회 성당이 2003년 완공되었고 관련 박물관이 세워져 있으며 예카테린부르크의 주요 관광지 중 하나이다. 그 외에도 오래된 도시인만큼 시베리아 횡단철도 연선에서 관광지가 많은 편인 도시다.

또다른 명소 중 하나는 유럽아시아 사이 경계선 표시 기념비. 경계선이 시내에 있지는 않고 택시를 타고 가면 편하다. 노선버스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5] 유럽-아시아 경계선 기념비가 고속도로 옆에 바짝 있다보니 접근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이 유럽-아시아 경계선 기념비는 이스탄불처럼 뚜렷한 지형적 경계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상징적으로 세운 비석이다. 사실 사회 교과서에 있다 카더라

스베르들롭스크였던 시절인 1979년에는 도시에 있던 생화학무기 연구소에서 생물병기로 생산된 탄저균이 도시에 퍼지면서 몇 개월만에 수천 명이 죽었다고 한다.

2013년 지방선거에서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가 민주주의를 도입한 이후 러시아 대도시들 중 사상 최초로 집권여당이 아닌 야권 성향의 시장이 당선되었다. 시민 운동가 출신의 전직 야당 국회의원 예브게니 로이즈만이다. # 2017년에도 재선에 성공했는데, 이 때문에 2018년통합 러시아당에서 눈엣가시라고 판단하고 예카테린부르크 시장직을 지방자치제를 폐지하고 시의회에 의한 간선제로 돌려버렸다.[6] 이후 예브게니 로이즈만 전 시장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반대하다가 2022년 8월 체포되어 투옥당했다.#

스포츠론 프로 축구팀 FC 우랄 스베르들롭스크 오블라스트가 있다. 현재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에서 활약중에 있다.

1980년대 전설적인 소련 포크 가수였던 알렉산드르 바실라초프의 고향으로 잘못 알려져 있는데 해당 인물은 볼고그라드의 체레포베츠 출신이다. 다만 예카테린부르크에 위치한 대학을 다니긴 했다.

5년마다 열리는 엑스포 등록박람회를 유치하려고 시도 중이다.

[1] 고참 볼셰비키이자 고위 정치인이었던 야코프 스베르들로프의 이름에서 따왔다. 예카테린부르크 국립극장 앞에 이 사람의 동상이 있다. 개칭은 소비에트가 봉건적 색채가 남아있는 예카테린부르크라는 이름을 도시에 쓸 수 없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레닌그라드로 개칭된 상트페테르부르크도 마찬가지.[2] 이 지역의 국립대학교인 우랄 공과대학교 건축학과 출신이다. 처음 일자리를 잡고 정치적 기반을 다졌다. 1991년 보수파의 쿠데타 당시 옐친에 의해 임시 수도로 거론되기도 하였다. 그만큼 당시 옐친에 대한 지지세가 강했던 지역. 시내를 찾아보면 커다란 옐친의 동상이 있다. 다만 여기 출생은 아니고, 같은 스베들롭스크주의 붓카(Бутка)라는 소도시 출신이다. 물론 고향인 여기만 평가가 좋고 다른 지역에서는 나라를 말아먹은 천하의 개쌍놈 취급한다.[3] 蔣方良, 본명 - 파이나 바흐레바.[4] 이를 철거한 자가 바로 보리스 옐친이다. 그는 이 짓을 함으로서 중앙정부의 주목을 받아 출세길을 달리기 시작하였다.[5] 예카테린부르크 역 근처에 있는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탈 수 있긴 하다.[6] 예카테린부르크 시장직 선제로 돌려놨다고 했었는데 기사에는 여기만 특별히 그렇게 했다는 내용은 없다. 러시아 지방선거가 어떤 지역은 직선으로 선출할 수도 있고 어떤 지역은 시/주 의회에 의한 간선으로 선출할 수도 있게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