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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07 20:57:38

수전 앳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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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슨 패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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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앳킨스
Susan Atk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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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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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수전 데니스 앳킨스
Susan Denise Atkins
이명 세이디 메이 글럿츠
섹시 세이디
죽음의 천사
베이비 킬러
샤론 킹
맨슨 걸
출생 1948년 5월 7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게이브리얼
사망 2009년 9월 24일 (향년 61세)
미국 캘리포니아 주 차우칠라[1]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신장 160cm
죄목 마약, 1급 살인, 살인 음모
형량 사형무기징역[2]
배우자 도널드 리 레이져 (1981년 ~ 1982년, 이혼)
제임스 W. 화이트하우스 (1987년 결혼)
자녀 제조조스 재드프랙 글루츠[3] (1968년 10월 7일생)
종교 기독교
1. 개요2. 생애3. 범행4. 처벌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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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범죄자. 범죄 집단인 맨슨 패밀리의 일원이자 폴란스키 가 살인사건직접 가담한 3인방 중 한 명이다.

많고 많은 흉악범들 중에서도 특출나게 아름다운 외모로도 유명한데, 겉보기로는 상상 할 수 없는 잔혹한 살해 수법으로 인해 60명 가량의 맨슨 패밀리 구성원 중에서도 수장인 찰스 맨슨 다음으로 가장 악명이 높다. 때문에 가정 및 사회 환경의 중요성을 잘 알려 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2. 생애

1948년 미국의 샌게이브리얼에서 태어났다. 앳킨스에 따르면 부모님은 두명다 심각한 알콜 중독자 였다고 한다. 10대에는 캘리포니아 산호세에 있는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며 암으로 죽어가는 어머니를 간호하며 살았다. 그러나 15살 되던 해에 어머니가 으로 사망하자 그녀는 크게 방황하게 된다. 알콜 의존증이 있던 아버지는 앳킨스를 친척집에 내팽게치듯 맡겨버리고 앳킨스는 친척집에서의 생활을 적응하지 못하고 가출한다. 이후 LA에서 스트리퍼로 일하는 등 유흥업소를 전전하다 노숙 생활까지 하게 되었고 그때 길거리에서 찰스 맨슨을 만나 맨슨 패밀리의 일원이 된다. 이후 앳킨스는 히피 문화에 완전히 매료되었고 맨슨을 예수라고 믿을 만큼 맨슨의 절대적인 추종자가 된다.

3. 범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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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찰스 텍스 왓슨, 패트리샤 크렌빈켈, 수전 앳킨스

앳킨스는 히피였고 히피족의 소개로 맨슨 패밀리에 가입했다. 그러던 어느 날, 찰스 맨슨이 자신의 음악이 시끄럽다고 말한 음반 제작자를 제거하라고 명령했다. 앳킨스는 그 사람의 집 위치를 알아냈고 1969년 8월 9일, 맨슨의 지시로 3명의 동료와 그 집을 습격했다. 하지만 찰스 맨슨의 음악을 욕했던 사람은 이미 이사를 갔고, 그 집에는 폴란드 출신의 영화 감독 로만 폴란스키가 거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지 못한 그들은 그대로 집에 무단으로 침입하여 범행을 저질렀다.

가정부로 일하던 10대 소년 스티븐을 권총 네 방과 칼질 한 번으로 즉사시켰다. 헤어 디자이너로 일하던 세브링은 살려달라고 빌었으나 권총을 한 방 쏘고 칼로 7회 난도질한 후 시체를 거실에 매달아 놓았다. 애비게일은 28회 칼로 난도질했고, 그의 애인 프라이코스키는 권총 두 방을 쏘고 칼로 51회 찔러 즉사시켰다. 폴란스키의 당시 아내인 샤론 테이트는 임신 8개월차였는데, 테이트는 '살고 싶다, 아기를 낳고싶다'고 애원 했으며 최후의 순간에는 뱃속의 아기 만이라도 살려달라고 빌었지만 앳킨스는 테이트에게 "야이 썅년아, 난 그딴거 좆도 신경 안 써.[원문]"라고 말한 뒤 칼로 16회를 찔러 잔혹하게 살해했을 뿐만 아니라 테이트의 배를 갈라 태아를 꺼낸 것도 모자라 그 시체를 세브링의 것과 함께 거실에 매달아 두었다.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바로 다음 날 인근 슈퍼마켓을 찾아가 주인 부부를 살해했다. 괜히 맨슨 패밀리 일원중 가장 악명이 높아진게 아님을 알 수 있는 대목.

그들은 자신들이 숙청한 사람들이 엉뚱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몰랐지만 나중에 조사과정에서 알게 되었는데, 그들이 유명인이라는 진실을 알게 되자 더 주목받을 수 있게 됐다며 기뻐했다.

이후 앳킨스는 캘리포니아에서 경범죄로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되었는데, 경찰 조사 중 테이트를 살해한 것을 자랑이라도 되는 것처럼 떠벌였다. 이 때문에 폴란스키 일가 습격 사건의 용의자로 현장에서 체포되었으며 사형이 확정되었다. 배후에서 이 사건을 저지르도록 조종한 찰스 맨슨과 공범인 찰스 텍스 왓슨, 린다 카사비앙, 패트리샤 크렌빈켈, 레슬리 반 호튼 역시 전원 체포되었다.

4. 처벌

파일:수전 앳킨스 재판받으러 가는길.jpg
1969년 12월, 재판을 받으러 가는 수전 앳킨스
▲ 재판을 받으러 가기 전 노래를 부르는 맨슨 걸즈[5]

1971년에 앳킨스 일당과 살인을 배후 지시한 찰스 맨슨은 샤론 테이트를 살해한 혐의에 대한 재판을 받았다. 검찰 증언을 조건으로 기소 면제 처분을 받은 린다 카사비앙을 제외한 나머지 4명 모두 사형이 확정되었으나, 그 이듬해 캘리포니아 주에서 사형 제도가 폐지되면서 졸지에 무기징역으로 형이 감형되었다.

앳킨스는 징역을 사는 동안 기독교 신자가 되었고, 교도소 내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하여 학사 학위를 취득했으며[6], 봉사활동을 하며 지난날의 과오를 뉘우치는 모습을 보였다. 범죄를 저지를 당시의 범죄의 죄질이 너무 나쁜데다가 원래 사형이었으나 사형 폐지 처분에 따라 감형된 상태라서 가석방 심사는 계속 탈락했다.

30대 때 수잔 앳킨스를 좋아한 남자와 옥중결혼을 하기도 했다가 다음해 이혼했다. 남자는 수잔 앳킨스의 외모를 매우 좋아한 남자였다고 한다.중년 이후에도 옥중결혼을 하였다.

앳킨스는 뇌종양에 걸렸고 2009년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가석방을 신청하였으나, 2009년 9월 2일 수전 앳킨스의 가석방 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7] 결국 앳킨스는 2009년 9월 24일 교도소 병원에서 향년 61세로 옥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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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투병 생활을 하고있는 모습
파일:art.atkins.cdc.jpg
임종 직전의 모습[8]

앳킨스는 장장 38년 동안이나 캘리포니아 교도소에 수감되었는데, 이는 캘리포니아 교도소 역사상 두 번째로 긴 여성 장기복역수였다.[9] 앳킨스 본인도 일생의 3분의 2에 달하는 기간 동안 징역을 살았다. 죄를 뉘우치는 것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너무 많은 사람을 죽였으므로 사회 상식상 교도소에서 생을 마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었다.

다만 수형 생활 중에 자신의 범죄에 대해 용서를 빌고 교정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면서 새 사람이 되었고[10] 맨슨 패밀리에 가담하여 연쇄살인자가 되기 이전의 삶 특히 성장 과정이 너무나 가혹했기에 동정하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불행했다는 이유 따위는, 그녀가 맨슨 패밀리에 가담해서 자행한 끔찍한 범죄에 대한 변명이 될 수는 없다.[11][12]

게다가 80년대부터는 아예 범죄 자체를 부인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호주 티비 프로그램 '60Minutes Australia'에서 수잔 앳킨스를 인터뷰하며 그녀가 한 발언을 사건을 맡았던 담당 검사에게 전해주자 황당해 할 정도였다. 내용인즉슨 자신은 그 누구도 죽인 적이 없으며 살인의 주축은 찰리 왓슨 등 맨슨 패밀리의 남성들이었다고 한다. 자신의 죄라곤 단지 맨슨 패밀리의 일원이었으며, 저 사건 당시 적극적으로 막지 않은 것 뿐이라고. 마지막으로 담당 검사는 수잔 앳킨스는 변하지 않으며, 자신의 19년 경력 중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범죄자였다고 평했다. 심지어 그녀를 가장 믿고 가석방에 찬성하던 담당 신부조차도 교화는 됐어도 그녀가 실제로 살인을 한 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고 할 정도였다. 덧붙여 샤론 테이트의 모친도 수잔 앳킨스는 사건 이후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자신에게 'Sorry'라고 말 한 적이 없다고 했는데, 그걸 들은 수잔 앳킨스는 자신이 한 짓을 'Sorry' 같은 표현으로 사과하긴 싫었다고 말하는 등 역시 일반인의 사고방식과는 조금 다른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 여튼 80년대엔 그렇게 신실한 종교인 같은 모습으로 지내다 정작 90년대 들어서는 섹시 콘셉트의 사진집도 내는 등, 살짝 종잡을 수 없는 모습도 보여줬다.

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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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확히는 'Central California Women's Facility'(센트럴 캘리포니아 여자 교도소).[2] 1971년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공교롭게도 1972년 캘리포니아 주에서 사형이 폐지된 탓에 감형 되었다.[3] Zezozose Zadfrack Glutz[원문] Look, bitch. I don't care about you.[5] 왼쪽부터 패트리샤 크레빈켈, 레슬리 반 휴튼 그리고 수전 앳킨스.[6] 다만 앳킨스 말고도 미국의 장기수들 중에 오랜 수감기간 동안 역설적으로 나쁜 환경에서 벗어나 교화가 되면서 자기개발에 참여하여 학사학위를 따는 사람들이 많다. 앳킨스 외에 끝까지 반성하지 않은 맨슨을 제외한 나머지 두 명도 가석방은 되지 못했으나 학사학위를 취득하고 교화되어 성실하게 수감 생활을 하고 있다.[7] 샤론 테이트의 큰여동생 데브라는 "앳킨스가 마지막 숨을 거둘 때 그녀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그렇지만 그 전까지는 교정시설의 통제된 환경에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라며 가석방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8] 우측 남자는 앳킨스와 옥중 결혼을 한 제임스 화이트하우스 이다.[9] 최장기 복역수는 같은 범죄를 저지른 패트리샤 크렌빈켈이다. 크렌빈켈은 2017년 기준으로 [age(1971-04-28)]년째 복역 중이며 앳킨스와 같은 이유로 가석방 심사에서 13번 탈락했다.[10] 다른 맨슨 패밀리들에게도 나타나는 현상으로, 찰스 맨슨은 가석방위원회 참석도 않고 휴대폰을 소지하다가 적발되는 등 전혀 반성하는 태도가 없지만 그를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인 찰리 왓슨과 패트리샤 크렌빈켈은 종교에 귀의하는 등 나름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는 한편 학사 학위를 취득하는 등 교도소 측의 교정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11] 체포 이후 찍은 사진들을 보면 패트리샤 크렌빈컬처럼 히히덕거리는 사진이 꽤 많은데, 당시 그녀의 추악한 인성 혹은 범행 전에 복용한 LSD의 영향일 수도 있다. 찰스 맨슨 이외에 나머지 일당들은 잡힌 직후에는 싱글벙글하고 있지만 60살이 넘어서는 하나같이 우울한 모습밖에 없어서 상당히 대조된다.[12] 제프리 다머만 봐도 성장기 때 불행했지만, 그렇다고 그의 범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