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f4ecd5><colcolor=#015566> 송광익 宋光翼 | Song Kwang Ik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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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50년 1월 26일 ([age(1950-01-26)]세) |
대구광역시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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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미술가 |
학력 | 계성고등학교, 계명대학교 미술학과 및 동 교육대학원 졸업. 일본 규슈산업대학 대학원 예술연구과 석사졸업. |
가족 | 아버지 송종달(宋鍾達,1917~2000), 어머니 이기조(李奇祚,1923~2001)사이 5남 1녀 중 4남. |
1. 개요
송광익(宋光翼, Song Kwang Ik, 1950년 1월26일~)은 한반도 유적·유물의 웅혼한 기상과 비전의 형상화에서 출발하였다. 이후 한지의 수행자적 노동방법론을 통하여 한반도풍토성과 한국인의 근원에 내재된 현상학적 정신성을 표출하는 대한민국 미술가이다.2. 생애
(왼쪽)대학3학년 때 미술실기실에서 동기들과 함께. 왼쪽부터 문상직, 배기찬, 송광익, 강갑용 1969년. (오른쪽)일본유학시절 1981년. 사진제공=송광익. |
1967년 계명대학교 문과대학 역사학과에 입학하여 2학년 때 미술대학 미술학과로 전과하였다. 계명대학 미술학과 창설의 중추역할을 했던 정점식(鄭點植,1917~2009)교수에게 진로문제를 상담하였고 이후 미술에 대한 기본적 논리와 이론을 지도받았다. 또 직접 그림을 그려가며 학생들에게 기법을 가르친 유병수(兪炳壽,1937~2008)교수에게 많은 배움을 받았다.
1976년 배순임(裵順任,1952~)과 결혼하여 1남 1녀를 두었다. 1979년 계명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과, 80~83년 일본 규슈산업대학(九州産業大学)대학원 예술연구과 석사 졸업했다.
“송광익은 1975년 ‘제2회 대구현대미술제’에 실험적인 미술을 지향하는 동시대 작가들과 함께 출품하였다. 또 같은 해 조직된 ‘대구현대작가협회’가 주최하는 창립전 및 제2회전(展)에 연속 참가했다.[1]”
“송광익은 후쿠오카에 머무는 3년 동안 일본 내 각종 전시회에 수시로 참여했다. 그리고 그 작품들을 가지고 1983년 후반기 일본도쿄, 오사카 그리고 서울까지 연결하는 순회전을 개최했다. 귀국 후 84년 5월 대구 수화랑에서 이 작품들을 선보이는 초대전을 열었다. 이 전시에서 82~84년 사이에 만든 새로운 양식의 작품들을 보여줌으로써 대구화단의 다양성을 더욱 풍부하게 했다. 이는 지역의 현대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하게 평가해야 할 일이다. 아직 80년대의 신구상회화운동이 대구화단에서는 싹을 틔우기 전이었다.[2]”
3. 년대별작품영상
4. 작품세계 발자취
(왼쪽부터)‘2023 대구문화예술회관미술관 원로작가회고전-송광익’전시전경. 사진=대구문화예술회관미술관. Closed conversation, 182×227㎝ Oil on canvas, 1982. Untitled, 130×161㎝ Oil on canvas, 1982. 사진=황인모. |
1970년대 초, 경주고분 등에서 영감을 얻은 한국의 역사성에 주목하며 파노라마 형식의 대형작업에 열정을 쏟았다. 이후 일본유학을 통해 재료와 방법론에서 다양성을 찾고 틀에 억매이지 않는 자유스러운 사유의 확장에 주력했다. 그러나 작업철학엔 당시 국내현실과 존재에 대한 고뇌가 투영되었다.
“나는 한국선사시대 울주지방에서 발견된 반구대와 천전리 암각화에서 표현된 조형의 상징성, 주술성을 현장답습과 실사(實寫)를 통하여 조형적 측면에서 분석 연구하였다. 태양을 표시 한 원(圓)에다 더욱 동적인 요소를 넣어 동심원이나 원에 선(線)을 가미시킨 형태로 표현되고 있다. 또 물고기는 수직, 동물은 수평방향으로 기본적인 공간성을 유지하며 표현하였다.[3]”
“캔버스 뒷면에 색료를 침투시키고 다시 표면에 화이트로 조형함으로써 의도된 우연의 색 면을 구성한다든지, 뒷면의 스펀지 부착으로 암석의 텍스추어를 표현한다든지, 색연필 사용 등은 작가의 내적필연성에 의한 방법이며 동시에 독창성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4]” “인간은 자연에서의 탈출을 시도하면서 땅이나 바다, 하늘마저도 문명의 망목(網目)속에 가두어 두려 한다. 그것에 대응하고 있는 자세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리얼리즘, 그것이 송광익 회화세계라 하겠다.[5]”
“화가 송광익 ‘그물’은 그가 바라보는 당시 세계관에 대한 고찰을 담지하며 개인의 자유와 다양성이 소외되어 가는 그 시대모습을 통찰한다.[6]” “송광익은 귀국 후 84년 대구 수화랑 초대전을 끝으로 더 이상 서사적 사실주의 양식은 눈에 띄지 않고 기법에서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의 실험을 모색한다. 자발적이고 우연적인 방식으로 인간의 실존적 상황을 은유할 형상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7]”
(왼쪽부터)‘2023 대구문화예술회관미술관 원로작가회고전-송광익’전시전경. 사진=대구문화예술회관미술관. Untitled, 77×57㎝ Mixed media on paper, 1997. Untitled, 100×80㎝ Oil on wood panel, 1997. 사진=황인모. |
한국의 고성장시기에 인간본연의 문제에 주목한다. 앵포르멜수법을 이용하고 자연적인 현상에서 일어나는 우연효과를 반영하는 등 삶이란 계획대로 흐르지 않고 묻혀가고 상처받을 수 있다는 것의 은유를 화폭에 녹여냈다. “90년대는 대한민국사회가 민주화와 개방, 그리고 급변하는 경제적 환경 속에서 개인의 존재와 가치에 대한 고찰이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던 시기였다. 때문에 그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송광익 작가는 인간의 존재가치와 실존문제에 대한 탐구를 본격화하게 되었다. [8]”
“1990년대 ‘인간시리즈’에 들어서면 실존적 존재로서 인간의 모습은 화면의 전면에 등장할 만큼 비중이 커진다. 그렇다고 작품 속 인간을 세밀하게 묘사하지는 않는다. 단서를 통해 이 형태가 인간을 표현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 시기 송광익 작업에서는 액션페인팅의 느낌이 더욱 강하다. 이는 실존적 존재로서 자신을 화면에 투영하고자 몸을 던졌다는 느낌 즉 작업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9]”
“송광익 작가는 전통적인 자개로 장식한 그림에서 보이는 꽃과 새의 문양들을 활기차게 붓과 물감으로 표현하며 표현주의적기법과 전통적 미적소재의 결합을 이룬다. 90년대 후반까지 추상표현주의적인 화면에 전통적인 이미지와 텍스트를 소환해 서사적인 회화에 집중하던 작가는 또 다른 매체의 실험과 함께 새 밀레니엄 시대의 전환기를 맞는다.[10]”
“90년대 중반부터 자연스럽게 현대미술의 실험과 도전에 매혹되어 구상작업으로부터 실험적 미술로 전향한다. 스카치테이프 재료를 활용해서 평면 위에서 재료, 물성, 형태실험을 하게 된다. 테이프 작업은 신문지에 테이프를 붙이고 이를 다시 물로 씻어내어 테이프에 남아 있는 혼적만을 평면에 옮겨 작업으로 구성되기도 한다. 궁극적으로는 종이 숲에서 들리는 소리, 촉각을 일깨우는 존재의 소리 때문이 아닌가 한다.[11]”
(왼쪽부터)‘2023 대구문화예술회관미술관 원로작가회고전-송광익’전시전경. 사진=대구문화예술회관미술관. 지물(Paper things), 244×490㎝ Hanji paper ink, 2016. 사진=황인모. |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테이핑 작업은 평면뿐만 아니라 신문의 좌우상하에서 드러나는 정보와 여러 이미지들이 입체적으로 보이는 공간성을 확보해 낸다. 이에 따라 한국적인 것을 찾게 되는데 바로 한지이다. 빛이 통과하고 스며들고 투과되는 한지의 자연성에 매료되어 여러 형태로 변환시키는 응축과 확장의 패러다임으로 진화하고 있다.
“인쇄매체로부터 차용한 이미지를 투명비닐테이프에 전사(轉寫,Copying by moving text, pictures, etc.)하는 방법과정을 거쳐 생산된 일종의 책 오브제를 선보이고 있다. 주로 시사성과 현장성에 집중된 중첩된 이미지들이 시대상황에 대한 작가의 현실인식을 반영하고 있다.[12]” “시간은 종이처럼 접혀지고 찢어졌다. 그리고 몸이 되었다. 활자가 사라진 책에서 이미지는 자연이 된다. 숭고의 한 모퉁이를 열어 촉각적이고 연약한 살갗을 가진 원시림으로의 여행을 부추기는 듯하다.[13]”
“송광익의 반복 속에서는 사물의 혼적이 전개되고 그것을 따라 우리의 감각이 확장된다. 사물과의 새로운 만남, 우연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이다.[14]” “송광익 작업에서 손때가 미묘하게 묻은 흰색은 빛의 변화를 더 뚜렷하게 보여주는데 그 의미는 더 깊은 것이 된다.[15]” “지물(紙物)연작은 물질이 전하는 다양한 미적질감의 탐구로서, 미니멀아트가 가졌던 물질성과 반복구조를 가진다. 순수한 손(hand)이 만드는 다양한 변화와 재료의 친근함으로 소박하고 아기자기하다.[16]” “송광익의 재료는 하나하나에 담긴 이야기가 화면에 맺히고 서린다. 그것은 몸이 만나는 시간과 공간의 이야기이다.[17]”
“2000년대 송광익 작가 작업들은 물질적인 성장과 속도에 치우친 현대사회이면에 있는 인간의 정체성과 동시에 창조의 가치와 예술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이다.[18]” “화가 송광익 같이 고독한 수행자의 자세로 단순반복적인 신성한 노동에 진정성과 진실성으로 무장하여 임하는 예술작업은 참 예술이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방향성을 보여준다.[19]”
(위 왼쪽부터)제2회 현대미술제(대구 계명대학 미술관,1975)표지 및 송광익 출품작 ‘OriginalⅠ.’ 삼보화랑 송광익 첫 개인전(80,대구미술관소장). (아래 왼쪽부터)한갤러리(2012), 인사갤러리(2012), 봉산문화회관(2013), 통인화랑(2018). 사진=대구문화예술회관미술관원로작가회고전:송광익 2023. |
5. 개인전·단체전·수상·미술관 소장
△개인전=2024 통인화랑(서울). 2023 대구문화예술회관(대구). 2022 소쿄 갤러리(일본). 2021 통인화랑(서울). 2019 솔루나 파인아트(홍콩). 2017~2018 통인화랑. 2015 갤러리신라(대구). 2014 봉산문화회관(대구). 2013 맥향화랑, 봉산문화회관. 2012 인사갤러리(서울), 한갤러리(파주). 2010 인사갤러리(서울), 봉산문화회관, 2009 갤러리신라, 2008 후지화랑(오사카), 구로가와 인 미술관(후쿠오카). 2006 갤러리신라, 봉산문화회관. 1992 21갤러리(후쿠오카). 1989 공간미술관(서울), 1984 서울미술회관(서울), 수화랑(대구). 1983 갤러리888(후쿠오카), 오사카포름화랑(도쿄). 1982 갤러리토와루(후쿠오카), 후쿠오카현립미술관(일본). 1980 삼보화랑(대구).△주요단체전=2020 메이드 인 대구Ⅱ(대구미술관). 2019 SOFA CHICAGO 2019(시카고,미국), 홍콩아트센트럴(솔루나 파인아트,홍콩). 2016 지독한 노동-소마인사이트(소마미술관,서울), 올해의 중견작가(대구문화예술회관). 2015 NEXUS-PAPER WORKS EXPRESSIONS(구로가와 인 미술관,후쿠오카 일본). 2013 대구미술사색(대구미술관). 2009 송광익·이토 마사유키 2인전(봉산문화회관,대구). 1995 대구 ASIA FINE ART EXHIBITION(대구문화예술회관). 1991 CNU국제판화전(대전문화원), 대구문화예술회관개관기념전 한·중·일 미술교류전(대만). 1984 대구현대작가 오사카전(오사카부립현대미술센터), 대구현대작가전(수화랑), 후쿠오카30대전(후쿠오카현립미술관), 대구미술대전초대작가전(대구시민회관). 1982 기타큐슈비엔날레(기타큐슈시립미술관), 서일본미술전(Bridgeston미술관), ART 327(후쿠오카현립미술관,일본).
△수상=제27회 금복문화상 수상(금복문화재단,대구,2013). 제3회 기타큐슈 비엔날레 수상(기타큐슈시립미술관,1982). 제11회 Salon de Rupa 은상(후쿠오카현립미술관,1982). 제10회 Salon de Rupa 장려상(후쿠오카현립미술관,1981).
△미술관 소장=대구문화예술회관(대구), 대구미술관(대구), 국립현대미술관미술은행(서울), 기타큐슈시립미술관(일본), 구로가와 인 미술관(일본).
6. 송광익 화론(畵論)
(왼쪽부터)계명대 석사논문표지, 일본유학시절작업실에서 1981. 자료제공=송광익. 대구달성현풍작업실에서. 사진=권동철 2025. |
나는 고고학자가 꿈이었다. 대학진학도 사학과였는데 1학년 때 고적답사로 경주(慶州)에 갔었다. 밤안개가 자욱한 반월성(半月城)에 올랐었는데 그곳에서 내려다본 안압지, 계림, 천마총, 봉분 등이 완전히 환상적인 분위기였다. 그러나 내 눈에는 민가는 낮고 봉분(封墳)이 굉장히 높은 역비례가 들어왔고 ‘아 이런 공간도 형성이 되는구나!’하는 신선한 충격을 받고야 말았다.
돌아와서 나는 그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 나한테 맞지 않을까하는, 조심스럽지만 가슴 깊숙한 곳에서 뭔가가 뜨겁게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운명 같은 강렬한 열망이었다. 그리하여 중·고교시절 은사였던 미술학과 정점식 교수를 찾아가 전과(轉科)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 그리하여 1968년 2학년 때 역사학도에서 미술학도라는 새로운 세계의 돛을 올리게 된 것이다. 돌아보면 그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변곡점이 아니었나 싶다.
미술에 문외한이었던 나는 모방하는 것부터 시작했는데 마치 아이가 연필을 처음 쥐었을 때 한 곳만 선을 긋듯 내가 그림을 시작한 때가 그랬다. 미술초창기부터 대학졸업 뒤 몇 년간은 계속 그렇게 지속했는데 나중 그림을 그리는데 굉장히 효과적인 밑바탕이 되었다. 전부 실험으로 해보았기 때문에 몸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나는 만드는 자체가 즐겁고 재미있다
내 화업의 흐름을 보면 형상만 다를 뿐이지 한국자연의 풍토성과 역사성이라는 담론이 저변에 흐르고 있다. 자연에서 얻어지는 공간, 인간존재론의 회화, 종이로 만들어지는 입체 모두 그 맥락과 연결된다. 2000년대 이후 종이와 한지작업을 지속해 오고 있는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보다 나는 그냥 만드는 자체가 즐겁고 재미있다. 하나하나의 공간들이 형성되고 연결되어 어떤 패턴과 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에 흠뻑 빠져 살고 있는 것이다.
다만 처음에 구상(構想)할 때는 굉장히 즐겁다. 그러나 만들기 시작하면 괴롭기는 하다. 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또 같더라도 똑같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반복은 마치 고행(苦行)과 같다. 하루 종일 같은 패턴으로 이어나가는데 대작인 경우 수개월을 반복한다. 그러한 노동의 끝에서 완성된 작품을 보면 나만의 무한한 희열을 맛보게 된다.
◇입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다!
그림을 처음 시작할 때 스승의 말씀이 자꾸 생각난다. 당시 나는 모방단계였고 표현하고 난 뒤 선생님께 ‘이런저런 식으로 생각해 작업했다’는 말을 많이 했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여겼다. 그런데 어느 날 선생님께서 나직하게 ‘그림은 입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다. 행동, 행위로 하는 거니까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좋지 않다.’라고 하셨다. 당시엔 좀 충격을 받았지만, 요즈음 그 말씀이 기억에 남고 나 역시 그렇게 생활했던 것이 ‘옳았다’라고 여긴다. 앞으로도 나는 그렇게 묵묵하게 그 정신을 이어갈 것이다. [원문=대구문화예술회관미술관 원로작가 회고전:송광익 2023, 도록-인터뷰. 정리구성=권동철]
7. 외부링크
송광익 웹페이지서양화가 송광익‥응축과 팽창 3차원 입체한지의 집적
(인터뷰)화가 송광익‥“서로의 호흡을 느끼고 소통하는 것이 우주순환의 본질”
1974~2020년, 전시로 본 통인화랑 역사-(29)서양화가 송광익ⓑ
서양화가 송광익‥만물의 본성 영혼의 정화
(인터뷰)한지작가 송광익‥한국적미학의 현대성 제시하고 싶다
(전원 속 예술가들 .37) 서양화가 송광익
[1] 김영동 미술평론가, 송광익 선생의 예술세계, 2023.[2] 김영동 미술평론가, 송광익 선생의 예술세계, 2023.[3] 송광익 작가 한국선사암각화에 관한 일(一)연구, 계명대 교육대학원, 1978.[4] 권원순 미술평론가, 과묵과 젊음과 야심의 분출, 1980.[5] 정점식 계명대 교수, 송광익 회화세계, 1989.[6] 박천 시안미술관 큐레이터, 다시 봄, 2023.[7] 김영동 미술평론가, 송광익 선생의 예술세계, 2023.[8] 박천 시안미술관 큐레이터, 다시 봄, 2023.[9] 정연진 독립큐레이터, 인간 그 존재에 대함 고민, 2023.[10] 김영동 미술평론가, 송광익 선생의 예술세계, 2023.[11] 남인숙 미술평론가, 종이와 함께한 존재의 소리, 2010.[12] 고충환 미술평론가, 텍스트 메타텍스트 상호텍스트성, 2000.[13] 김영세 화가, 송광익의 지물-노동과 관조의 텍스트화, 2009.[14] 남인숙 미술평론가, 종이와 함께한 존재의 소리, 2010.[15] 양준호 미술사가, 삶-남기지 않는 일의 미학, 2015.[16] 하윤주 미술평론가, 사물 유희 파노라마-송광익의 지물, 2016.[17] 배태주 미술평론가, 몸이 만드는 풍경, 2018.[18] 박천, 다시 봄, 시안미술관 큐레이터, 2023.[19] 홍가이 미술평론가, 송광익 화가 발견하기,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