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무함마드 나시룻딘 알 알바니 Muhammad Nasir Ad-din Al albani مُحَمَّد نَاصِر ٱلدِّيْن ٱلْأَلْبَانِي |
성향 | 살라프파 |
직업 | 이슬람 하디스 학자 |
생몰년도 | 1914년 알바니아 공국 슈코더르 1999년 10월 2일 요르단 암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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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셰이쿨 알바니(셰이크 알 알바니)라고도 불리는 무함마드 나시룻딘은 하디스 분류 학자 중 가장 저명한 학자 중 한 사람이다.철저한 하디스 고증에 입각한 이슬람 법 해석으로 샤리아를 중시하는 보수 이슬람 율법학자들에게 큰 반발을 받아야 했다. 이를테면 "부인을 때리는 데 이유를 묻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라는 하디스가 신빙성이 낮은 사실상 가짜 하디스라고 해석한 것을 이유로 '이맘들과 법학에 대한 존경심이 부족하다.'라는 비판을 받야야 했다. 의외로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학자로는 이븐 타이미야와 이븐 카시르를 꼽을 수 있다.
2. 생애
그의 가족들은 그가 아직 어린 아이이던 시절 아흐메트 조구의 탄압을 피해 시리아로 망명해 그곳에서 시계를 만들거나 목수 일에 종사하는 일을 하면서 틈틈히 시리아 현지 이슬람 학생들과 어울려 공부를 했다 한다. 193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하디스를 공부하기 시작한 그는 당시 세속주의 성향이 강했던 시리아에서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하디스를 해석하고 토론할 수 있었으며 이슬람 보수주의와 하디스 해석의 모순 사이의 괴리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후에 사우디아라비아의 메디나 대학에 유학을 가게 된 그는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하는 와중에도 사우디아라비아 지배층들이 겉으로는 와하브파 율법을 강제하면서 갖가지 모순적인 생활을 즐기는 것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니캅이 이슬람에서 강제된 것이 아니라는 상식적인 견해를 주장했다는 이유로 눈 밖에 났는데 결국 이 일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교편을 내려놓고 1963년에 시리아로 돌아가야 했다.
1979년에 시리아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피력한 이유로 잠시 감옥에 갇혔으나 딱히 극단주의자도 아닌 그를 감옥에 오래 가두자니 수니파 무슬림들의 불만이 커질 것을 우려한 시리아 정부가 석방하면서 이웃나라 요르단으로 이주하였다. 1999년 향년 85세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