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6-25 06:25:46

세갱 드 바드폴

이름 세갱 드 바드폴
Seguin de Badefol
출생 1330년
프랑스 왕국 도르도뉴 바데폴 성
사망 1366년
나바라 왕국
아버지 세갱 곤토 드 바데폴
직위 용병대장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프랑스 왕국 출신 용병대장. 나바라 국왕 카를로스 2세에게 고용되어 프랑스에서 약탈을 자행했지만, 카를로스 2세에게 독살되었다.

2. 생애

1330년경 프랑스 오아국 도르도뉴 지방의 바데폴 성에서 세갱 곤토 드 바데폴의 아들로 출생했다. 그는 '절름발이(Chopin)'라는 별명으로 일컬어졌다. 1356년 푸아티에 전투에서 잉글랜드군에 용병으로 고용되었으며, 1360년 5월 8일 브레티니 평화 협약으로 프랑스와 잉글랜드간의 전쟁이 중단된 뒤 실직 상태가 된 용병대 지휘관을 맡아 3,000명을 끌어모은 뒤, 님, 보케르, 아비뇽 지역을 약탈했고, 알레스 시로부터 약탈을 모면하는 대가로 몸값을 받아냈으며, 뒤이어 벨레이 지역으로 이동해 프랑스 오트루아르 주의 생제르맹라프라드에 있는 두에 수도원을 약탈했다.

1362년 4월 6일 브리네 전투에서 15,000명의 용병대를 이끌고 토벌에 나선 프랑스군을 섬멸하고 부르봉 공작 자크 1세 드 부르봉을 전사시키고 장 2세 드 멜룬을 생포했다. 이후 몽트브룬을 점령하고 생플루 일대를 약탈하고 무라트 시로부터 몸값을 받아냈으며, 오브락 시를 약탈했다. 1363년 나바라 국왕 카를로스 2세에게 고용되어 리옹과 마콩 사이의 지역을 황폐화시켯다. 1364년 5월 21일 카를로스 2세와 프랑스 국왕 샤를 5세간의 평화 협약이 맺어졌지만, 그는 가스코뉴로 철수하라는 카를로스 2세의 지시를 듣지 않고 손과 론 지역에 계속 머물면서 약탈을 일삼았고, 그해 11월 부르고뉴와 노르망디의 국경지대인 앙스를 포함한 60개 성과 마을을 점거했다. 그의 무자비한 약탈로 인해 민심은 카를로스 2세에게 등을 돌렸고, 교황 우르바노 5세는 세갱 드 바드폴을 파문했다.

1365년 말, 세갱 드 바드폴은 바라 왕국에 찾아와서 카를로스가 자신에게 지불하겠다고 약속한 상당한 급료를 지불하라고 요구했다. 카를로스는 그가 쓸데없이 주민들을 학살하고 교회 재산을 털어버리는 만행을 저지르는 바람에 일을 그르쳤다고 여겼기에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일단 겉으로는 받아들이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가, 나중에 사람을 시켜 독살했다. 당대 연대기는 그가 무화과, 모과 또는 를 먹고 죽었다고 기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