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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28 18:46:07

성 파트리치오

성 패트릭에서 넘어옴
라틴어: Sanctus Patricius
웨일스어: Sant Padrig
게일어: Naomh Pádraig
영어: Saint Patrick

파일:external/moviewriternyu.files.wordpress.com/st-pat-snake.jpg 파일:St Patrick1.jpg 파일:Celtic Cross of Saint Patrick.jpg
1. 소개2. 생애
2.1. 선교 활동
3. 여담
3.1. 뱀 설화3.2. 세 잎 클로버의 비유와 성 파트리치오 축일
4. 기타
4.1. 성 파트리치오 십자가4.2. 가족
5. 미디어

1. 소개

성 파트리치오는 아일랜드 섬을 포함한 브리튼 제도가톨릭을 전파했다고 알려진 아일랜드수호성인이자 브리튼 제도의 선교사, 주교로, 아일랜드의 역사와 가톨릭 신앙, 문화 등에 두고 두고 큰 영향을 끼친 브리튼인 선교사이다.

라틴어 이름은 마고누스 수케투스 파트리키우스 코티르티아쿠스(Magonus Succetus Patricius Cothirthiacus)이며 생몰은 387 ~ 461

아일랜드어로는 파리그(먼스터)/파드러그(코노트)(Pádraig, [ˈpˠɑːɾˠɪɟ\]/[ˈpˠaːd̪ˠɾˠəɟ\]), 영어로는 패트릭(Patrick)으로 표기한다. 한국 천주교에서 사용하는 음역이 본 항목명인 '파트리치오'이다.[1]

가톨릭, 정교회, 루터교, 성공회에서도 파트리치오를 성인으로 인정, 공경하고 있으며 축일은 3월 17일(세인트 패트릭 데이).

2. 생애

파트리치오는 4세기 말인 384년부터 400년 무렵, 쇠퇴하던 로마 제국의 속주인 브리타니아 세쿤다(현재의 영국 웨일스 서부)에서 로마계 지방 의회의 의원이었던 브리타니아 부유층 귀족인 칼푸르니우스(Calpurnius)와 콘체사(Concessa)의 아들로 태어났다.

16세 때 해적에게 납치돼 아일랜드 서부 코노트 지방 해안가의 어딘가로 끌려가 그 곳에서 6년간 노예 생활을 하였다. 파트리치오는 노예로 살던 시기에도 신앙생활을 게을리하지 않음은 물론, 그곳에서 현지인들의 언어인 게일어를 채득해 사제가 되어 아일랜드에 복음을 전파하기로 마음 먹는다. 결과적으로, 이는 훗날 아일랜드에서 선교할 때 큰 도움이 되었다.

본인이 회고한 바에 따르면, 파트리치오는 어느 날 꿈 속에서 해안가로 가면 "브리타니아로 가는 배가 있으니 그 배를 타고 아일랜드를 탈출하라." 하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는다. 이튿날 꿈에서 들은 말씀대로 아일랜드 탈출에 성공하여 꿈에 그리던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왔다.

2.1. 선교 활동

파일:The Region of St Patrick's Mission.png
파트리치오 성인이 선교 활동을 했던 아일랜드의 여러 지역들.

탈출에 성공한 뒤 또 꿈을 꾸었다. 이번에는 아일랜드 백성들이 나타나 "아일랜드로 돌아와 아일랜드인들을 위해 하느님께 빌어달라." 하는 내용이었다.

파일:saintpatrickpreaching.gif
아일랜드인들에게 선교활동을 행하는 파트리치오 성인.

파트리치오는 이 꿈을 잊지 않고 갈리아(현재의 프랑스) 지방으로 가서 오세르(Auxerre)의 성 제르마노(Germanus, 7월 31일) 주교를 찾아가 사제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으며 4년 동안 머물렀고, 그로부터 사제서품을 받았다. 교황청으로부터 아일랜드 선교 임무를 부여받은 뒤 432년 성 제르마노 주교로부터 주교품을 받고 아일랜드 선교를 위해 떠나 435년 3월 아일랜드에 도착했다. 이후 40년 동안 파트리치오가 아일랜드에서 펼친 선교와 관련된 일화는 셀 수 없이 많다.

아일랜드에서 사목활동을 점화하면서 개종자가 잇따랐고 이교도였던 아일랜드인들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가 되어, 아일랜드 고유 종교였던 켈트 다신교인 드루이드 신앙은 거의 사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찍이 켈트 부족 문화를 탐탁지 않아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드루이드 문화의 본산이었던 브리튼에서 드루이드 문화가 거의 사라지고, 게일 문화권에 그나마 남아 있던 드루이드 신앙도 이 때를 즈음하여 사라진 것이다.

3. 여담

3.1. 뱀 설화

파일:Patricius.jpg

파트리치오가 아일랜드 섬의 뱀들을 모조리 쫒아냈다는 아일랜드 민담 설화가 있다. 실제로 아일랜드에 자생하는 뱀은 없으며 과학자들은 빙하기 때 멸종되었던 거라고 추측하고 있다.

3.2. 세 잎 클로버의 비유와 성 파트리치오 축일

파일:Saint Patrick's Day.jpg

그리스도교를 전파한 지 30년이 지난 461년 3월 17일 파트리치오가 사망하자 시신을 다운패트릭[2]에서 화장했다는 설이 있다. 파트리치오는 이후 아일랜드 가톨릭에서 존경을 받는 주요인물이 되었다.

파트리치오와 관련된 일화로 대표적인 것은 세 잎 클로버의 비유다. 아일랜드 켈트 이교도인들에게 어떻게 하면 가톨릭삼위일체 교리를 쉽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고심하다가 세 잎 클로버(토끼풀)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파트리치오는 사람들에게 "한 클로버에 세 잎이 붙어있듯 성부·성자·성령도 이와 같다."하고 설명했다.

파트리치오는 강론을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하여 큰 인기를 얻었지만, 인기에 휩쓸리지 않고 늘 겸손한 자세로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파일:st-patricks-day-global2.jpg

아일랜드에서는 성 파트리치오 축일인 3월 17일국경일로 지정해 성인을 현양한다. 세인트 패트릭 데이(St Patrick's day)로 불리는 이 날 사람들은 가톨릭을 상징하는 초록색 의상을 입고 성인의 세 잎 클로버 비유를 기억하고 초록의 조화로운 평화를 바라며 세 잎 클로버 배지를 달고 행진한다.

아일랜드는 물론 미국, 호주, 영국, 캐나다 등에서도 3월 17일을 비공식적으로 세인트 패트릭 데이로 정해 기념한다. 이탈리아에서도 1861년 세인트 패트릭 데이에 주세페 가리발디, 주세페 마치니, 카밀로 카보우르가 주동이 되어 이탈리아 통일의 서막을 연 이탈리아 통일 기념일로 국가 기념일이다. 매년 3월 17일이나 그 즈음 열리는 메이저리그 시범경기 때 원래 구단 상징색이 초록색이 아님에도 초록색 모자나 유니폼이 등장하는 이유도 세인트 패트릭 데이를 기념하기 위한 뜻이 담겨 있다. 또 외국에 살고 있는 아일랜드계 사람이라면 종교를 불문하고 그 날을 특별히 기림을 볼 수 있다. 공휴일은 아니지만, 많은 개신교인들이 기념하는 얼마 안되는 축일 중 하나...[3] 물론 파트리치오 성인 축일이라는 본래 의미는 잘 모르고, 그저 아일랜드 최대 경축일이라는 것만 안다. 대다수 나라가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 발렌타인 데이를 지내듯 세속화된 형태로 지내며, 그냥 초록색 옷을 입고 지인과 모여 맥주를 마시는 날로 가볍게 여기는 정도.

4. 기타

파일:Sheelah.png

아일랜드 대기근 전에는 파트리치오에게 이름이 실라(Sheelah)라고 하는 아내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아일랜드에 있었다고 한다. 실증적으로 역사라기보다는, 아일랜드의 남녀를 Paddy와 Sheelah라는 부부 전승을 통해 대표한 것에 가깝다.[4]

호주에서 속어로 여자를 sheila라고 하는데 원래 아일랜드 계열 여자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4.1. 성 파트리치오 십자가

파일:성 패트릭.svg

파일:St Patrick's Cross Flag.jpg

성 파트리치오 십자가(Saint Patrick's Cross)는 하얀색 바탕에 붉은색 X자 모양 십자가(성 안드레아 십자가)를 그린 것이다. 하지만 이 문양은 성 파트리치오와 무관하며, 아일랜드를 대리 통치했던 피츠제럴드 가문[5]문장을 잉글랜드의 성 제오르지오(조지) 기, 스코틀랜드의 성 안드레아(앤드루) 기처럼 수호성인의 십자가 깃발이라고 내세웠다는 것이 정설이다.

1783년 성 파트리치오 훈장이 신설된 뒤부터 1922년 아일랜드 자유국이 수립되기 전까지 성 파트리치오 십자기(Saint Patrick's Flag)는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기로 여겨졌지만 강경한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은 "영국에 의해 만들어진 아일랜드의 상징"이라며 사용을 거부하였다.

아무튼 성 파트리치오 십자가는 성 제오르지오 십자가(잉글랜드), 성 안드레아 십자가(스코틀랜드)와 함께 영국의 국기인 유니언 잭을 구성하는 십자가 3개 중 하나이다.[6]

4.2. 가족

파트리치오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교회에서 부제였다고 한다.[7]

5. 미디어

성 파트리치오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도 있다. 제목은 'St. Patrick: The Irish Legend'#. 전투력이 남다른 파트리치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우스 파크에서는 시즌 25 마지막화에서 녹색 옷을 입지 않은 여자애를 꼬집었다[8]는 이유로 성범죄자로 구속된 버터스를 변호하는 역할로 등장.[9] 그리고 진정한 성희롱이 뭔지 보여준다. 그리고 그렇게 사우스파크 세계관에서 성 패트릭의 날은 취소되었고, 버터스는 5년 동안 사회 봉사를 해야하는 몸이 되었다.


[1] 한국 천주교는 라틴어 표기가 있는 옛 서양 남자 성인들의 이름을 음역할 때 라틴어를 기준으로 한 구한말 시절 교회의 음역에 따른 관습적인 표기를 사용한다.[2]북아일랜드 다운(Down) 주의 주도.[3] 이유는 가톨릭에서 개신교가 갈라지기 전이라 당시의 가톨릭이 그리스도교 그 자체였기 때문.[4] 출처: 아이리시 타임즈(Irish Times)[5] 가문의 선조는 노르만계지만, 아일랜드로 이주하고 빠르게 켈트 문화에 동화되어 현재도 '아일랜드인보다 더 아일랜드인같은' 가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6] 출처: 위키백과(Wikipedia)[7] 출처: 위키백과[8] 여자 변호사도 초록색 옷을 입지 않아서 꼬집었더니 더러운 짐승 녀석라는 말을 들으며 따귀를 3대나 맞았다.[9] 이때 그의 모습은 사우스 파크 그림체가 아니라 초상화얼굴를 그대로 가져온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