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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9 14:13:26

서울의 달빛 0장



1. 개요2. 줄거리3. 등장인물4. 해석5. 여담

1. 개요

김승옥이 1977년에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본래는 연작소설로 계획했던 것이나, 0장을 쓴 이후로는 두 번 다시 같은 서울의 달빛이라는 제목으로 작품을 내지 못하여 단편소설이 되어버린 케이스다.

이 작품을 보면 알겠지만, 1970년대 작품치고는 웬만한 야설 저리가라 할 정도로 꽤나 야하다.[1]

2. 줄거리

소설 속 내용은 유한계급의 남성인 '나'[2]아내였던 여배우 한영숙과의 결혼 및 이혼에 관한 내용이다.

대학교 시간강사였던 나는 부산에 출장을 갔다가 서울로 오는 비행기에서 옆 자리에 앉은 배우 한영숙을 만났다. 본래 나는 TV를 잘 보지 않아 그녀가 유명한 여배우였는지 몰랐다. 그러나 후에 이를 계기로 그녀와 연인이 되었고, 마침내 결혼에 골인하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나는 과거 현역 복무 시절에 휴가를 가서 어느 술집 여자와 5번 정도 섹스를 하다가 그만 성병에 걸린 경험이 있었다. 이 때문에 사랑하는 아내에게 성병을 옮길까 두려워 헐레벌떡 정자 검사를 받았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내가 된 한영숙이 순진무구한 처녀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신혼여행을 간 첫날밤, 나는 아내가 예상과 달리 숫처녀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충격을 받았지만 그래도 아내를 믿으려 하며 과거 성병에 걸렸던 사실과 그 때문에 정자 검사를 받은 사실을 고백했다. 아내는 나를 이해한다는 듯 과감하게 펠라치오까지 했지만, 나는 오히려 포르노의 한 장면이 떠올라 아내가 더욱 음탕하게 보였다. 아내가 숫처녀가 아니었음을 알게 된 나는 아내의 추악한 음부를 보며 구토를 느꼈다.

신혼여행 후 나는 잡균의 침입으로 요도염에 감염됐다. 그리고 아내는 임신을 했지만 어느 날 갑자기 변기에 앉아 심하게 하혈을 했고 급히 병원으로 데려갔지만 의사에게 충격적인 말을 듣는다. 태아가 자연유산됐으며, 아내에게 낙태 경험이 많았다는 얘기. 비로소 나는 한영숙이라는 여자가 도깨비들이 실컷 뜯어먹다 버린 썩은 고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아내가 화보 촬영으로 늦는다는 전화를 받은 나는 친구들과 함께 나이트클럽으로 갔는데, 그 곳에서 호스티스나온 아내를 보고 만다(...). 이에 분노한 나는 부부싸움을 하게 됐고, 결국 이혼하고 만다. 내가 이혼하자 어머니형수는 공백을 지워준답시고 내 집을 여자와 함께 사는 것처럼 꾸며 주었고, 나 또한 폭주해서 이혼 후 3개월 동안 무려 60명 이상의 여자섹스를 하며 막장 인생을 산다. 그러나 그런 행위로도 심리적 공허감은 해소되지 않았고 다시 한영숙에게로 돌아가고파 한다.

나라고 착각하고 있던 이전의 나로부터 점점 멀어짐을 느끼면서도 아내에게 가까이 가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그녀를 완전하게 소유할 수 없다는 좌절감이 더욱 커질 뿐이다. 그 와중에 나는 그 여자의 과거까지도 소유하고 싶은, 불가능한 욕망을 갖고 있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가 사 주신 아파트를 팔고, 작은 아파트와 레코드라는 400만원짜리 고급 승용차를 뽑았다.[3] 그리고 아파트를 팔고 남은 돈이 든 적금 통장을 들고 한영숙을 찾아갔다.

나는 한영숙에게 레코드를 보여 주며 아파트를 팔아서 생긴 돈이라며 적금 통장을 건네줬다. 한영숙은 그걸 위자료로 인식하여 이혼을 실감하고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이건 위자료가 아니라 다시 시작하자는 뜻에서 주는 뇌물이라고 말하려 했지만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고, 한영숙의 아파트로 가끔 놀러가도 되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빤히 응시했다.[4] 그 때 갑자기 한영숙에게서 코피가 났다. 나는 그걸 닦아주려 했지만 그녀는 손 대지 말라고 쏘아붙였다. 나는 급히 약국에서 약솜을 사들고 왔지만, 이미 그녀는 사라지고 없었고 그 자리엔 찢겨진 통장만 있었다. 나는 무참한 이별을 실감했다.

3. 등장인물

4. 해석

이 작품은 1960년대 새로운 문체의 미학, 감수성의 혁명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등단한 김승옥의 소설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연작 형태로 기획하고 썼으나 이후 소설 창작 활동을 중단하다시피 한 작가의 사정으로 더 이상의 후속편은 없다. 참신한 구어체의 문장, 내적 체험의 시간을 치밀하게 재구성한 플롯, 피상적이고 일시적인 사회성보다 본질적인 의식의 내부에서 주제를 끌어낸 문제의식, 관념이나 정감을 감각적인 영상으로 기술하는 표현기법 등이 문학적 공감을 자아낸다.

결혼과 이혼이라는 모티프를 통해 가족의 사회적 의미와 1970년대 삶에 대한 은유가 담겨 있는 이 소설은 모든 것을 자본으로 교환할 수 있다는 부패한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환멸을 표현하고 있다. 나와 아내인 한영숙은 성과 사랑까지도 돈으로 교환할 수 있다는 타락한 사회에 살고 있지만 자신들조차 뚜렷한 세계관이나 가치관을 가지지 못한 타락한 인물들이다. 이 소설을 통하여 작가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은 근대화, 산업화, 도시화로 규정될 수 있는 1970년대적 사회이다. 인간에 대한 가치가 상실되고 대신 돈과 가짜 욕망이 출렁이는 사회에서 두 남녀의 만남과 관계가 어떻게 어그러지는가를 여실히 보여주지만 참다운 삶을 위한 비전이나 대안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 그냥 찢어진 통장을 보여 주면서 소설은 그대로 끝난다.

5. 여담

소설가 겸 문학 평론가 이어령은 김승옥이 돈 때문에 소설을 쓰지 못하는 것을 몹시 안타까워해서 고급 호텔의 방을 빌려 김승옥에게 내주고, 돈 걱정은 하지 말고 소설 한 편을 완성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김승옥은 비싼 호텔 값과 밥 값을 이어령에게 청구시키는 게 미안하여, 부담감 때문에 제대로 소설을 쓰지도 못하고, 결국 호텔에서 달아나 버렸다(...). 이어령은 달아난 김승옥을 다시 한 번 소설을 쓰게하기 위해서 이번에는 다른 호텔의 방을 두 개 빌려놓고, 한 방에는 김승옥이 들어가서 소설을 쓰게 하고, 다른 방에선 이어령 자신이 사실상 발행인으로 있던 문학사상의 편집부장과 편집 기자를 김승옥의 원고를 정리해준다는 명분으로 들어가 있게 해서 김승옥이 달아나지 못하게 감시했다고 한다(...). 문밀레

김승옥은 이 때 '서울의 달빛'이라는 제목의 장편 소설을 구상하고, 프롤로그 격으로 짧은 분량을 완성하였다. 그러자 이어령은 "김승옥이한테서 다음 제1장의 원고를 받을 수 있다고 기대한다는 건 어리석은 것이다. 이 0장 만으로도 단편 소설의 완성도를 지니고 있으니……" 라며 본문 맨 처음에 나와야 할 0장이라는 낱말을 제목에 붙여서 보내온 원고를 단편 소설로 발표하게 만들었다. 단편 소설이 된 "서울의 달빛 0장"은 초대 이상문학상 수상작가의 영예를 김승옥에게 가져다 주었다. 김승옥은 훗날 "이 선생의 예언대로 나는 그 다음 제1장을 오늘 날까지 아직 못 써내고 있다."라고 하며 당시를 추억한다.

참고로 당시 김승옥은 '초우'의 감독이었던 영화감독 정진우에게 시나리오를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선금을 받은 상태였으나 차일피일 미루며 원고를 넘기지 못한 상태였고, 열받은 정진우는 이상문학상 상금에 대해 가압류를 걸었다. 김승옥을 아끼던 이어령은 정진우를 설득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결국 김승옥은 시상대에서 돈이 들어있지 않은 빈 봉투를 받아야 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중앙일보의 문화부 기자이자 문학평론가인 정규웅 씨는 서울의 달빛 0장이 발표 당시 돌아다니던 연예계 스캔들과 비슷하다고 주장했는데, 김승옥이 정말 모티브를 딴 것인지는 본인만이 알 듯.

[1] 애초에 이 작품 자체가 섹스에 대해 깊이 다루고 있는 내용이다. 대표작 무진기행에도 남자 주인공이 자위행위하는 모습이 있다.[2] 어머니가 요식업으로 크게 성공하신 분으로 묘사되어 있다. 작중의 '나'는 본래 대학교 시간강사였다가 때려친 상태로 무직이었는데, 어머니가 '나'의 명의로 남겨준 중국집에서 나온 수입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었다고 한다.[3] 1970년대 후반의 400만원이므로, 지금과는 가치가 매우 다르다. 70년대 후반이면 중견 공무원 월급이 6~7만원 정도 할 때였고, 대기업 소속의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인 직장인들이 20만원 정도 월급을 받던 시절이니, 400만원짜리 자가용이라면, 두둑하게 월급을 받는 대기업 직장인들 연봉의 약 2배 가격이었던 셈이다. 작중의 주인공이 레코드 자동차를 사자, 형이 "네가 재벌이냐? 엄마 기절시킬 일 있어?"라고 핀잔을 주면서, 자신이 적당한 중고차 알아봐줄 테니 자신의 지인에게 팔아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그러니 레코드 타는데 재벌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였던 것이다. 당시 굉장히 비싼 차로는 기아자동차가 라이선스 생산한 푸조 604가 있었는데, 저 당시 가격이 무려 2,300만 원대였다. 이 경우는 그야말로 큰 기업의 사장님들, 또는 전통적인 갑부들이나 타는 차였던 것.[4] 한영숙이 '나'의 눈을 응시하는 행위는 작중에 세 번 등장하는데 '나'는 '이때마다 우리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곤 했'다고 서술한다.[5] 본문에서 따옴표로 서술이 되어있다. 영숙의 말이라 진위는 작중에서도 밝혀지지 았았다.[6] 한영숙이 통장을 받았을 때 처음에는 어느정도 죄책감을 느끼며 위자료를 잘 쓰겠다고 했으나, 주인공이 가끔 아파트에 가도 되냐고 물은 뒤에는 통장을 찢어버리고 끝인사도 없이 사라진다.[7] 나와 처음 만났을 때 이 여자의 입에서 담배 냄새가 났다고 한다. 부업으로 룸살롱의 호스티스 일을 하고 있었다고 했는데 그녀들 직업 특성상 흡연자 아닌 사람 찾기가 더 힘들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