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York Mets NYM |
정규시즌 전적 2024년 7월 24일 기준. | ||
뉴욕 양키스 New York Yankees | 무승부 | 뉴욕 메츠 New York mets |
80 | 0 | 65 |
포스트시즌 전적 2021년 9월 26일 기준. | ||
뉴욕 양키스 New York Yankees | 무승부 | 뉴욕 메츠 New york mets |
4 | 0 | 1 |
1. 개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라이벌리로, 지하철로 양 팀의 경기장이 이어짐에서 유래되었으며, 현재는 뉴욕 양키스와 뉴욕 메츠간 경기를 말한다. 과거에는 뉴욕 양키스, 뉴욕 자이언츠와 브루클린 다저스의 경기도 서브웨이 시리즈라고 부르기도 했다.2. 어원
이 명칭의 어원은 꽤 오래되었다. 1889년 당시 뉴욕을 연고지로 두었던 뉴욕 자이언츠와 브루클린 다저스간의 ‘월드 챔피언십 시리즈’가 그 시초였는데, 당시 뉴욕은 트롤리가 다니던 시절이라 서브웨이가 아닌 트롤리 시리즈로 불렸다.[1] 브루클린 다저스의 팀명인 다저스도 ‘트롤리 다저스’에서 기원한 것으로 당시 뉴욕시 대중교통이 트롤리였기에 이를 피하면서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 붙여진 것이다. 게다가 년도를 보면 알다시피 뉴욕 양키스가 창단도 되기 전이었고[2] 아울러 아메리칸 리그가 설립된 년도가 1901년이었으며[3] 내셔널 리그와 아메리칸 리그 우승팀간의 경기인 월드 시리즈가 제정된 것이 1903년이었다.[4]여하튼 이후 한동안 뉴욕 연고지 팀들간의 경기가 없었다가 1921년 뉴욕 자이언츠와 뉴욕 양키스간의 월드 시리즈가 성사되면서 이 명칭이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다시 한번 이 두 팀들간의 매치가 성사되면서 두 번째로 불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1923년, 양팀간의 3년 연속 매치 성사로 3회 연속으로 불려지는 호칭이 된다.
1956년, 다저스와 자이언츠가 캘리포니아로 연고지 이전을 하기 2년전 양키스와 다저스간의 월드 시리즈에 붙여진 이후 무려 44년만의 공백끝에 뉴욕 양키스와 뉴욕 메츠간의 2000년 월드 시리즈가 성사됨으로써 서브웨이 시리즈가 귀환하였다.
3. 정규시즌으로의 서브웨이 시리즈
1997년 메이저리그는 사상 첫 리그 교류전인 인터리그를 실시한다. 이 인터리그는 다수의 연고지 팀들을 보유한 캘리포니아, 뉴욕, 시카고, 텍사스에서[5] 관심을 끌어모았는데 이중 당연히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을 둔 캘리포니아,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시카고 컵스를 둔 시카고, 그리고 뉴욕 양키스와 뉴욕 메츠를 둔 뉴욕의 반응이 뜨거웠다.특히 뉴욕은 자이언츠와 다저스가 나란히 서부로 이전한 1958년 이후 4년동안 양키스 혼자 독점적 위상을 누려왔고 1962년 메츠가 창단된 이후에도 메츠의 허접한 성적으로 인해 거의 양키스 왕국으로 불리던 지역이었다. 다만 1969년 메츠의 창단 첫 월드 시리즈 우승과 80년대의 대활약과 더불어 양키스의 암흑시대가 시작되면서 양팀 팬들의 기세가 역전되던 상황에서 인터리그 신설 소식이 알려지자 팬들은 누가 실세인지를 가릴 수 있는 기회가 왔다며 반기는 분위기가 된다.
이러한 분위기 가운데 1997년 6월 16일, 양키스와 메츠와의 사상 첫 정규시즌 리그 교류전이 (구)양키스 스타디움에서 벌어졌고 당시 메츠의 선발이었던 데이브 믈릭키의 완봉승 호투에 힘입어 메츠가 양키스에 6-0으로 승리, 기선을 제압한다.
2022년 이 라이벌전의 명칭으로 인해 샌드위치 체인점인 써브웨이에서 스폰서를 맡게 되었다.
4. 기타
- 현재까지 총 14회 서브웨이 시리즈가 치러졌는데 양키스의 압도적인 우세이다. 11회나 위닝 시리즈를 가져갔다.
- 2024년 치뤄진 4번의 맞대결에선 뉴욕 메츠가 4전 전승으로 양키스를 압도했다.
- 최악의 실책을 상징하는 히 드랍 더 볼의 유명세도 여기서 유래되었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 참고.
- 양키 스타디움이 있는 브롱스로는 뉴욕 지하철 4호선이 운행하고 메츠의 홈구장인 시티 필드가 있는 플러싱으로는 뉴욕 지하철 7호선이 운행한다. 이 두 노선은 그랜드 센트럴-42가역에서 만난다.
4.1. 양팀에서 모두 뛴 선수
배열은 가나다순, 명예의 전당 헌액자는 볼드체이름 | 양키스 소속 | 메츠 소속 |
게리 셰필드 | 2004~2006 | 2009 |
게리 산체스 | 2015~2021 | 2023 |
닐 워커 | 2018 | 2016~2017 |
드와이트 구든[6] | 1996~1997 | 1984~1994 |
데이비드 로버트슨 | 2008~2014, 2017~2018 | 2023 |
데이비드 콘[7] | 1995~2000 | 1987~1992, 2003 |
대럴 스트로베리[8] | 1995~1999 | 1983~1990 |
델린 베탄시스[9] | 2011~2019 | 2020~2021 |
로빈슨 카노[10] | 2005~2013 | 2019~2022 |
리키 헨더슨 | 1985~1989 | 1999~2000 |
바톨로 콜론 | 2011 | 2014~2016 |
요기 베라[11] | 1946~1963 | 1965 |
애덤 오타비노 | 2019~2020 | 2022~ |
루이스 세베리노 | 2015~2023 | 2024~ |
[1] 뉴욕시에 지하철이 개통된 때는 1904년이다.[2] 1903년 창단. 다만 창단 당시 팀명은 뉴욕 하이랜더스였다가 1913년 팀명을 개칭한다.[3] 내셔널 리그는 1876년 창설.[4] 여담으로 1921년과 1922년 월드 시리즈에서는 자이언츠가 우승, 2연패를 달성했으나 1923년에 양키스가 창단 첫 우승으로 자이언츠의 3연패를 막았다.[5] 캘리포니아, 뉴욕, 시카고의 연고팀은 서로 다른 리그에 속해있어서 인터리그가 아닌 이상 만나기가 쉽지 않지만 텍사스는 텍사스 레인저스와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똑같은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에 있어서 1년 내내 피터지게 싸운다. 이는 2013년부터 애스트로스가 내셔널 리그에서 아메리칸 리그로 소속 리그를 옮겨서 생긴 일이다.[6] 메츠에서 MVP급 활약을 하며 투수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하거나 사이 영 상수상하는 등 정상급으로 군림하다가 마약 문제로 인해 추락하다가 FA로 뉴욕 양키스로 이적했다. 이적 이후 노히트노런을 달성하거나 10승을 기록하며 쏠쏠한 활약을 펼쳤으며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도 얻었다.[7] 뉴욕 메츠에서 기량을 만개해 최전성기를 누리며 드와이트 구든 대신 메츠의 에이스 역할을 수행하다 캔자스시티 로얄스를 거쳐 양키스로 이적해서 퍼펙트 게임과 4번의 우승반지를 획득하며 에이스 역할을 했다.[8] 1980년대 메츠의 상징하는 선수로 메츠의 영웅 소리를 들으며 승승장구 했으나 자기관리 실패로 망해갔지만 양키스 이적 후 쏠쏠한 활약을 펼치며 양키스 3번의 우승데 기여하였다.[9] 양키스에서 데뷔 후 2010년대 최고의 우완 불펜투수라고 평가받으며 한시대를 풍미한 불펜투수[10] 양키스 시절 데릭 지터, 호르헤 포사다, 버니 윌리엄스, 앤디 페티트, 마리아노 리베라 5스타 라인 이후 간만에 등장한 팜 출신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향후 데릭 지터를 이어 팀의 간판이 될 것으로 주목받았으나 두 번의 금지약물 적발로 몰락한 선수이다.[11] 양키스에서 포수로서 리그 정상급 성적을 냈지만 감독 부임 첫해 월드시리즈 진출이라는 쾌거를 거두며 상대였던 카디널스와 7차전 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는데 문제는 양키스 수뇌부가 요기베라를 짜르고 당시 카디널스의 감독을 대려오는 뻘짓을 저지르며 버림받자 곧장 새로 창단한 메츠에 은사 케이시 스텡겔을 따라 건너가 플레잉 코치로서 뛰었고 양키스는 그 후 요기베라와 화해할 때까지 11년간 암흑기를 겪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