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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19-01-08 18:15:25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사고 당일


1. 붕괴 당일 오전2. 대책 회의 그리고 영업 강행3. 붕괴4. 붕괴 직후

1. 붕괴 당일 오전

사고 전날부터 이미 지붕에 철근이 올라오는 펀칭 현상이 목격되면서 사실상 이 때부터 붕괴는 시작되었다. 이한상 삼풍백화점 대표이사를 비롯한 경영진들이 이에 대한 '대책'이라도 짜려고 했던 때는 사고 당일인 6월 29일이었다. 그들은 이날 5층에 있었던 일을 보고 비상임을 느끼게 되었다. 그 날 오전 9시, 5층 식당가 춘원 전주비빔밥 전문점 주인 김서정 씨한테서 긴급한 전화가 걸려왔는데 그 내용은 "춘원 전주비빔밥 전문집에 바닥이 돌출부분이 2m가 생겼고 천장이 조금 내려왔다. 빨리 와서 보라."는 내용이었다. 직접 가서 확인해 보니 5층 기둥에 무려 20cm나 되는 균열이 발견되었고 천장이 뒤틀려 내려앉아 있었다. 이는 곧 이미 거의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달았으며, 이는 사실상 건물 붕괴가 눈 앞에 다가왔다는 의미였다.

춘원 전주비빔밥 전문점 바로 옆에 있는 우동 전문점인 '현지'에서는 천장에서 물이 쏟아져 나왔으며 냉면 전문점 '미전'의 천장도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오전 10시에 출근한 A동(북관) 4층 상품의류부 직원(당시 31세)도 건물 4-5층에서 들려오는 '뚝뚝, 드르륵' 소리와 함께 약 3분간 무거운 진동을 느꼈다고 전해진다. 이한상 사장은 오전 11시쯤 이영길 시설이사 및 건축과 이완수 차장과 함께 5층 현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1시간쯤 뒤 우동집과 냉면집의 천장에서 물이 쏟아지고 바닥이 내려앉기 시작하게 되었다. 또 균열로 인해 콘크리트 부스러기가 음식에 떨어져서 식사를 하러 왔던 손님들의 항의가 끊이질 않았다. 결국 5층의 식당가 영업이 전면 중지되고 출입이 통제되었다.

또 붕괴 5시간 전에 5층에서 큰 파음이 몇 차례 들려왔다. 파음은 옥상의 에어컨 진동 때문에 난 것으로, 이 진동 때문에 삼풍백화점의 균열들은 더욱 심각하게 벌어져갔다. 파음을 들은 몇몇 고객들이 이에 대해 신고하자 백화점 시설과장인 이영길 이사는 이 파음이 옥상의 에어컨 실외기의 진동으로 인한 붕괴 조짐을 오래되지 않아 눈치채었는지, 사고 당일 오후부터 에어컨 가동을 전면 중단하는 조치를 취하고 백화점 측에서는 에어컨을 끄게 된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옥상의 균열은 이미 10cm나 벌어진 상태였다.

사고 당일이었던 6월 29일은 서울에 폭염이 기승을 부렸던 때였는데[1] 에어컨을 갑자기 꺼버렸으니 당연히 백화점 안은 1,0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의 열기로 인해 순식간에 찜통이 되었고 그래서 당일 쇼핑을 온 쇼핑객들은 백화점에 들어서면서 숨이 콱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이 덕분에 사고 발생 직전에 너무 더워서 쇼핑을 그만두고 백화점을 빠져나간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개그맨 이상해와 국악인 김영임 부부다.

한편, 삼풍백화점 측은 낮 12시 무렵 건물 설계 감리 회사인 우원건축에 연락하는 한편, 옥상의 에어컨 가동과 5층 입주업소에 대한 가스 공급을 중지시켰다. 또한 귀중품 판매 매장의 물품들을 1층 등 저층으로 옮기기 시작했고, 5층에 식당가와 같이 있던 상품권 매장도 1층 로비로 이동했다.[2]

2. 대책 회의 그리고 영업 강행

오후 3시, 그러니까 붕괴 약 3시간 전에 우원건축에서 임형재 소장과 이학수 구조기술자가 삼풍백화점에 도착했다. 4시에는 임원회의실(당시 삼풍백화점 남관 3층)에서 이준 회장 주재로 2차로 긴급대책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임형재 소장은 칠판에 건물 구조도를 그려가며 점검한 결과 건물의 안전에 중대한 이상이 발견되었고, 그러니 속히 영업을 중단하고 빨리 긴급보수를 해야 한다고 경영진에게 권했다. 하지만 여기서 경영진들의 정신나간 뻘짓거리가 작렬하였다. 매장을 폐쇄하느냐 마느냐를 가지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던 것이다. 즉, 당장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큰 그림을 못 보는 멍청한 짓거리가 벌어진 셈이다.[3]

거기다 이 회의에서 이학수 구조기술자는 "신공법으로 보수하면 위기를 넘길 수 있다. 진행되던 침하는 현재 멈췄다."고 하며, 임형재 소장의 "빨리 긴급보수를 해야 하며 고객들을 대피시키라"는 조언과는 다른 소리를 하는 실책을 범했다. 이준회장은 ''큰 위험은 없으니 영업을 계속하면서 보수 공사를 하자."는 최종 결정을 내렸다. 회장이 영업 강행을 결정했으니 어쩌겠는가? 그래도 이영길 이사가 나머지 이사들과 함께 최종 결정권자인 이준 회장에게 상황을 알리고 즉각 고객들을 대피시킬 것을 건의했으나, 오히려 이준 회장이 경제적 피해를 생각하여 대피 조치에 노발대발하며 반대했고 이에 나머지 경영진들도 따랐다.

대책 회의 이후 구체적인 보수 계획에 대한 논의가 1시간이 넘는 한편, 임 소장은 설계 도면을 찾으러 서초동에 있던 사무실로 돌아갔다. 이후 삼풍 측은 중앙홀 2층의 행사전을 모두 스포츠센터 1층으로 옮기고 2층은 통행을 금지했다. 결국 그렇게 사고의 피해를 최소화할 골든 타임을 놓쳤고 그렇게 영업은 강행되었다. 만약 이때라도 영업을 중단하고 시민들의 대피를 실시했다면, 건물과 기자재만 손해보는 선에서 피해가 최소화 됐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3. 붕괴

이 무리한 영업 강행의 대가는 참혹했다. 붕괴 약 1시간 전인 오후 5시 경, 4층의 천장까지도 가라앉기 시작하자 직원들은 고객들이 4층으로 가는 것을 막았다. 그런데 백화점은 붕괴 50여 분 전에도 고객들로 시끌벅적했고, 관리자들은 일부 상품들을 저층으로 옮기는 것 외에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계속 영업을 강행했다. 그리고 붕괴 17분 전인 오후 5시 40분, 이영철 시설부장에게서 임원실 회의장으로 다급하게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 내용은 "현재 붕괴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는 보고였다. 이 전화가 오자마자 이준 일당은 회의를 중단하고 백화점에서 다급히 도주했다. 물론 이 때에도 고객들에게 대피하라는 안내 방송 따위는 전혀 하지 않고 자기네들 몸뚱아리만 빠져나왔다. 그것도 지하 1층에 이준의 큰며느리까지 내버려 둔 채로. 다행히 큰 며느리는 나중에 구출되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삼풍 측은 중앙홀 1층의 통행과 영업을 중지하고 2층도 영업을 중지시켰지만, 이윤을 위해 영업을 계속하였다. 당시 삼풍 측은 침하를 막기 위해 백화점 4각 구간에 뼈대를 세워서 가까스로 막았으나 1층의 침하 현상이 멎자 5층의 천장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했고 결국 1, 5층과 지하 1층에 막대한 균열이 생겼다. 경영진이 도주하는 동안에도 백화점 매장 안에서는 1,000여 명이 넘는 고객들이 여전히 쇼핑에 열중하고 있었고 종업원들도 마찬가지로 영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고 발생 불과 7분 전인 오후 5시 50분에 경영진들에 의해서가 아닌 삼풍백화점 직원들의 고함이 5층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모두 긴급히 대피하라"는 소리였고, 건물이 우르릉하면서 무너지는 소리도 들렸다. 몇몇 고객들은 영문도 모른 채 대피하였지만 안타깝게도 지하에 있던 사람들 중 상당수는 이를 듣지 못했다. 직원들이 비상 벨을 울리고 고객들을 뒤늦게 대피시키기 시작했으나 무슨 수로 이 넓고 복잡한 백화점에서 1,000여 명도 넘는 사람들이 고작 7분 안에 무사히 탈출할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결국에는......

생존자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작성된 당시 기사에서 붕괴 직전의 긴박함을 알 수 있다.

<특집> 三豊참사..생사(生死)의 갈림길 5분-(1) https://news.v.daum.net/v/19950715105600854
<특집> 三豊참사..생사(生死)의 갈림길 5분-(2) https://news.v.daum.net/v/19950715111600893
<특집> 三豊참사..생사(生死)의 갈림길 5분-(3) https://news.v.daum.net/v/19950715112800872
(연합뉴스 1995-07-1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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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註= 사고사상 최악의 인명피해를 낸 삼풍백화점참사는 사고 당일인 29일 오후 5시52분 옥상부터 붕괴가 시작돼 20-30초 간격을 두고 지하 3층까지 차례로 무너져 내려 층별로 대략 2∼5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이날 사고는 백화점 왼쪽 A동 5층 건물의 식당가 천정이 `우르르'하는 소리와 함께 무너져내리면서 시작됐으며 몇초 후 `쾅'하는 폭발음과 함께 건물 전체가 5층부터 차례로 내려앉았다.

연합통신은 검찰에서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를 받은 30여명의 진술 내용과 본사 기자들이 부상자등 생존자들을 대상으로 취재한 탈출기를 토대로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했다.>

(서울=聯合) 1995년 6월29일 목요일 퇴근시간 직전인 오후 5시50분을 조금 지난 시각.

서울에서도 부유층들이 많이 사는 서초동의 하늘에는 석양이 아름답게 한폭의 그림을 만들고 있었다.

주로 외제 수입품을 많이 팔아 서민들은 가까이 하기 힘든 고급 백화점 삼풍백화점 A동 건물에는 직원과 고객등 1천8백여명이 물건을 팔거나 사는 등 여느 백화점과 같은 정경이었다.

◆ 삼풍백화점 B동 건물 3층 회의실.

오후 5시30분. 李준회장 등 삼풍백화점 관계자들과 구조 설계사 李學洙씨 등 13명은 1시간여에 걸친 대책회의 끝에 바닥이 내려앉고 있는 A동 건물 5층에 대해 야간 보수공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이 백화점 李完秀 시설부 차장(40)은 회의가 끝나자 B동 지하1층 창고로 내려왔다. 야간 보수공사를 위한 작업준비를 서두르기 위해서다. 오후 5시50분께 5층에 있던 시설부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 올라오라" 매우 다급한 목소리였다. 5시52분쯤 됐을까.전화 수화기를 통해 엄청난 굉음이 들려오는가 싶더니 전화가 끊어졌다.

李차장은 순간 "끝났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건설과정에서의 총체적 부실, 고객과 직원들의 안전을 뒤로한 채 영리추구에 급급하던 삼풍백화점의 붕괴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그순간부터 약 5분간 백화점 안에 있던 고객과 직원들은 말그대로 아비규환의 수라장에서 생과 사의 갈림길을 헤매야만 했다.

◆지상 5층에서의 탈출

이날 오후 5시45분께 창문 너머로 삼풍주유소가 내려다 보이는 삼풍백화점 A동 건물 5층 중국음식점 `월계관'.

건물 균열로 상당수의 식당들이 문을 닫아서 그런지 이곳 월계관에도 손님이라고는 한명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월계관 金信模사장(40)은 화교인 騰永發조리실장(45), 安元根영업과장(27)과 함께 홀 안쪽에 있는 사무실에서 앞으로의 영업대책을 숙의하고 있었다. 에어콘도 나오지 않을 뿐더러 화장실에 금이 가는 바람에 손님들을 더 이상 받을 수 없었다.

바깥 홀에서는 종업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농담을 하고 있었다. 5시50분께 갑자기 비상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과거에도 몇번 속은 경험이 있어서인지 종업원들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였다.

회의를 시작한지 7분쯤 지난 5시52분께 金사장은 `꽝 쾅 쾅'하는 소리를 듣고는 깜짝 놀랐다. 홀을 지나 현관으로 뛰어 나왔다. 저쪽 비빔밥집 `춘원'과 냉면집 `이전' 쪽에서 흙가루와 함께 콘크리트 더미가 우두둑 떨어지고 있었다.

아뿔싸, 뭔가 잘못돼 가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평소에도 동작이 재빨랐던 李석민씨(25.영업부)가 비상구를 통해 아래층으로 황급히 뛰어내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李씨 뒤를 이어 조리부에 근무하는 천병성씨(31)와 유영우씨(28), 조정자씨(55.여)가 무리를 지어 내달았다. 金사장은 마음이 급해졌다. 그러나 내일이 월급날이라는 생각이 번쩍 들어 사무실로 다시 돌아가 통장과 도장이 든 가방을 챙겼다.

같은 시간. 騰실장과 安과장은 종업원들에게 "빨리 나가라"고 소리치면서 가스밸브를 잠그기 위해 주방으로 뛰어들어갔다. 安과장은 불길이 훨훨 타오르는 가스를 차단하고는 비상구로 향했다.

주방에 있던 화교 朱鴻國씨(44)는 `별거 아닌데 다들 '라고 투덜거리며 주방 안쪽 벽에 걸려있는 옷을 가지러 갔다. 그러나 朱씨는 평소 같은 화교로 남달리 친하게 지냈던 騰실장 손에 이끌려 밖으로 나왔다.

朱씨가 서쪽 비상계단에 들어서자 앞에는 조리실장 騰씨를 비롯해 9명 정도의 종업원들이 2명씩 줄을 지어 한꺼번에 몇 계단씩 건너 뛰며 마구 내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뒤늦게 비상구로 들어선 金사장도 정신없이 뛰었다. 주방에 근무하는 화교 王貴功씨(30)가 앞에서 열심히 뛰고 있었다. 머리 위에서는 콘크리트 더미가 소나기처럼 무너져 내려 몸을 마구 때렸다.

그러나 아프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3층까지 내려왔을 때다. 金사장은 갑자기 비상계단으로 폭풍같은 모래바람이 쳐 그만 몸의 중심을 잃고 말았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뛰어내려갔으나 이미 1층 입구는 콘크리트 더미가 막고 있었다.

수십명의 사람들이 앞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金사장은 비상계단을 통해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지상 1층과 2층 사이에 유리창이 보였다. 사람들과 함께 바닥에 있는 콘크리트 덩이를 들고 삼풍주유소 쪽으로 나있는 유리창을 깼다.

그리고는 한사람씩 뛰어내렸다. 아픔도 정신도 없었다. 마구 달려 도로까지 뛰어 나왔다. 뒤를 돌아보니 방금 뛰어내렸던 비상계단은 이미 땅밑으로 꺼지고 보이지 않았다.

한편 동작이 빨라 가장 먼저 뛰쳐나간 李석민씨는 A동건물이 완전 붕괴되기 몇십초 전에 이미 비상계단을 통과, 1층 현관을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태풍과 같은 회오리 바람과 함께 李씨는 공중으로 붕 떠올라 길바닥에 떨어졌다. 李씨는 이 바람에 몸에 타박상을 입고 유리파편이 몸에 박히는 부상을 입었다.

또 두번째로 식당을 탈출했던 유영우씨는 비상계단으로 1층에 도착, 다시 출입구가 있는 A동건물 동쪽으로 거슬러 올라가 현관문을 나서다가 회오리 바람에 날려 B동건물에 있는 약국까지 날아가 흙더미 속에 파묻혔다. 유씨는 14시간동안 파묻혀 있다가 30일 오전 8시께 구조대원에 의해 구출됐다.

그러나 세번째로 식당을 벗어났던 조정자씨는 A동건물과 B동건물 가운데 있는 1층 현관을 벗어나는 순간 콘크리트 덩어리에 머리를 맞아 현장에서 절명했다. 안전지대란 없었다. 한마디로 운명의 장난이었다.

다음으로 그래도 비교적 빨리 식당을 탈출했던 騰실장은 건장한 체력을 무기삼아 남들보다 빨리 비상계단을 통해 1층을 지나 지하층까지 곧장 내려가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다시는 살아서 올라오지 못했다.1층에서 탈출을 했어야 했던 것이다.

가장 운이 좋았던 종업원은 영업준비실에 근무하는 馬순덕씨(55.여).

馬씨는 이날 속이 안좋았으나 식당 화장실이 폐쇄돼 A동건물 대각선 4층에 있는 화장실에 갔다가 화를 면했다.

한참 볼일을 보던 馬씨는 화장실 문이 흔들거리고 바닥이 들먹거려 처음엔 지진이 난 것으로 생각했다. 화장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와 삼호가든아파트쪽 유리창으로 다가선 순간 뒤에는 이미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이었다.

馬씨는 이런 황당한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생각하면서 끝까지 무너지지 않고 남아있던 A동 북쪽 벽면에 매달려 지상으로 한발짝 한발짝 내려갔다. 곧이어 출동한 소방차 덕택에 사다리를 타고 마침내 이승에 발을 디뎠다.

백화점 5층 식당가에는 `식도락'이란 일식집이 있다. 이 식당 종업원 李炳昊씨(20)도 비교적 빨리 탈출한 편에 속했다. 주방에서 조리를 돕던 李씨는 식당에서 30여m 떨어진 한식집 `춘원' 쪽에서 `우르르'하는 소리를 듣고는 급히 대피했다.

李씨는 북쪽 비상계단을 통해 내려오는 순간 `꽝'하는 굉음과 함께 5층 천정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황급히 건물밖으로 대피해 뒤를 바라보고 있는 순간 또 `꽝'하는 소리와 함께 건물이 순식간에 붕괴되는 것을 지켜봤다.

◆지상 4층 사람들의 운명

이날 오후 5시45분. A동 지상 4층 귀금속점 `미보'에 근무하는 직원 유재석씨(40)는 안경부쪽 기둥 위로 `뚝'하는 큰 소리를 듣고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천장이 좀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시 7분 정도 지나자 `뚜둑'하는 소리가 났으며 3분 후에는 `쾅'하는 굉음(옥상이 5층위로 붕괴되는 소리)을 들었다. 어디로 뛸까하고 주위를 둘러 보았다. 중앙 에스컬레이터 쪽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 내려가고 있었다.

유씨는 에스컬레이터를 포기하고 몇몇 사람들과 함께 남쪽 비상계단으로 뛰어내려갔다. 유씨는 두줄로 뛰어 내려가는 인파에 섞여 2층과 1층 사이 계단을 열심히 뛰고 있었다.

갑자기 `우르릉 쿵'(5층이 4층위로 내려앉는 소리)하는 굉음과 함께 폭풍이 불어와 앞을 볼 수 없었다. 사람들은 약 10초간 철제 손잡이를 잡고 쪼그리고 앉을 수 밖에 없었다.

유씨는 바람이 멈추자 1-2층 사이의 비상계단 유리창으로 뛰어가 베니어판에 붙은 각목을 뜯어내 유리를 깨고 약 2m아래 백화점 정문쪽으로 뛰어내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법연수원 쪽으로 내달렸다.

三豊백화점 4층 판촉실에 근무하다 사고 직전 진동음을 듣고 탈출길에 나섰던 金賢貞씨(27.여)는 그래도 불행 중의 다행인 편에 속했다.

金씨는 동료 李동호씨(31)와 함께 사무실을 나와 3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던중 갑자기 전기가 나갔고 곧이어 두 사람은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한동안 의식을 잃었던 金씨가 동료 李씨의 부르는 소리에 깨어났을땐 어이없게도 콘트리트 구조물과 철근 사이로 뻥뚫린 하늘을 보며 누워있었다.

30일 새벽 극적으로 구조된 金씨는 사고 당시 콘트리트 조각과 돌더미 속에 깔려 꼼짝할 수 없었으며 동료 李씨는 바닥쪽으로 얼굴을 처박은 채 몹시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그냥 보고만 있어야 했다.

◆지상3층,1백50여명 탈출길 신사정장과 남녀 캐쥬얼, 골프웨어, 스포츠용품 등을 판매하는 지상3층 매장은 이날따라 유난히도 무더웠다.

에어콘 가동까지 중단되어 매장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손으로 꼽으면 30여명 정도나 될까. 직원들 1백20여명 정도만 손부채를 흔들며 퇴근을 기다리는 한가로운 모습이었다.

이날 오후 5시50분. 캐쥬얼 청바지 등을 판매하는 캘빈클라인에 근무하는 李美賢씨(22.여)는 며칠전 손님이 줄여달라고 맡겨놓은 옷을 찾아오기 위해 2층에 있는 수선실로 내려갔다.

3분쯤 지났을까. 수선실 직원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위층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소리야"라고 소리치며 수선실 직원들이 밖으로 나가버렸다. `위쪽에서 공사를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李美賢씨는 올라가서 구경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3층으로 통하는 비상계단으로 들어섰다.

3층 쪽에서 "피해라"라는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떼를 지어 아래층으로 몰려 내려오고 있었다. 그냥 그 자리에 서있을 수 만은 없었다. 2층 비상계단 쪽으로 한 발짝 움직이는 순간 `휙'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허공으로 뜨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는 정신을 잃어버렸다.

이에 앞서 이날 오후 5시52분 무너지지 않은 B동 건물 지상3층 삼풍건설산업 회의실. 정연구 비서실장(48)은 대책회의를 마치고 나와 다른 부서의 업무보고를 경청하고 있었다.

갑자기 A동 쪽에서 비명소리와 함께 `꽝'하는 굉음(옥상이 5층위로 내려앉는 소리)이 들려왔다. 정실장은 다른 참석자들과 함께 회의실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는 건너편 B동 3층의 비상구 입구 4곳이 사람들로 가득찬 것을 보고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

정 실장은 李준 회장을 부축, 남쪽 비상구로 향하다 중앙의 에스컬레이터 계단이 보이길래 마구 걸어내려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李회장과 함께 B동 건물 남쪽 지상 주차장 쪽으로 빠져나왔다.

잠시후 백화점 건물 전면 쪽으로 걸어간 李회장은 A동 전체가 무너진 것을 보고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참사가 벌어지고 난 뒤 였다.

◆우왕좌왕했던 지상2층 매장

숙녀의류를 판매하는 지상 2층 매장에도 이날 직원 1백20여명과 아르바이트생, 고객 등 모두 1백50-1백80여명이 일을 하거나 쇼핑을 하고 있었다.

오후 5시40분 A동 북쪽 벽 중앙부 근처에 있는 2층 수선실.

朴봉 실장(35)은 `때르릉'하는 전화벨 소리를 듣고 수화기를 들었다.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옥상이 조금 내려 앉았다. 시설이사 등이 오르내리고 심상찮다. "우리는 철수한다" 옥상 물탱크옆 가건물 수선실에서 걸려온 전화다.

朴실장은 2층 매장을 한번 쭉 둘러보았다. 이상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朴실장은 직원들에게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전화를 끊은 지 10여분 지난 뒤였다.

위층에서 "쿠쿵"하는 울림소리가 들려왔다. 朴실장은 순간 섬뜩한 전율이 느껴졌다. 직원 4-5명과 함께 빠른 걸음으로 바로 옆에 있는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관리사무실 입구에서 2층 관리직원인 金우형씨(27)를 만났다. 金씨는 4층에 있다가 이상을 느끼고 2층 사무실로 허둥지둥 달려오던 길이었다.

金씨는 관리사무실과 소비자상담실 문을 박차고 직원들에게 소리쳤다. "붕괴위험이 있다, 빨리 대피해야 한다. 4층 귀금속팀은 이미 많이 빠져나갔다. 5층은 중국집 등을 제외하고는 오후부터 폐쇄한 상태다"

관리사무실에 앉아있던 姜신택부장과 李남훈대리, 韓동진씨 등 직원들은 金씨의 다급한 전갈을 각 매장에 알리기 위해 사무실을 뛰쳐나왔다.

李남훈 대리는 동쪽 디자인 매장으로 달려갔으며 韓동진씨는 서쪽 캐쥬얼매장으로 달려가 "대피하라"고 외쳤다.

관리사무실에 위급한 상황을 보고했던 金우형씨는 다시 상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북쪽 중앙 비상구를 통해 4-5층 쪽으로 다시 뛰어 올라갔다.

계단을 뛰어내려오며 탈출길에 나섰던 직원들은 3층 쯤에서 유일하게 계단을 거슬러 올라가는 金우형씨를 목격했다. 그 뒤로 金씨를 본 사람은 없었다.

한편 관리사무실 직원들로부터 비상대피령을 받은 2층 매장 직원들 대부분은 북쪽 벽면에 있는 2개의 비상계단 입구 쪽으로 허둥지둥 몰려들었다.

북쪽 벽면 비상계단은 직원들이 평소 출퇴근로로 이용하던 곳으로 매장에서 30초 정도만 뛰어가면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상황은 이미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대피통보를 받은 직원 일부가 무사히 1층으로 탈출한 직후 북쪽 비상계단 부근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반대쪽으로 뛰어" 姜부장과 李대리, 韓동진씨 등 3명은 북쪽 출구로 달려오는 직원들을 B동 연결통로로 다시 몰았다.

대피령 직후 곧바로 B동 쪽으로 뛰었던 남쪽 캐쥬얼 매장 직원은 상당수가 탈출에 성공했으며 B동 연결통로로 다시 되달려간 일부 직원도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A동 북쪽 벽면에서 B동 쪽으로 되돌아가던 직원들 상당수는 끝까지 건너가지 못하고 A동 중앙부에서 무너져 내리는 천장에 깔려 매몰됐다.

또 동쪽 디자인 매장 직원들 대부분도 북동쪽 비상계단으로 많이 몰려들었으나 출구가 막히는 바람에 대부분이 실종되고 말았다.

동쪽 디자인 매장에 근무했던 安은경씨(22)는 처음엔 상황의 심각성을 감지하지 못했다. 직원들이 모두 북동쪽 비상계단 쪽으로 뛰어가는 것을 보고 남들보다 늦게 뛰기 시작했다.

安씨는 비상계단 쪽이 함몰되고 앞사람들이 우왕좌왕하기 시작하자, 다시 B동 연결통로까지 죽어라하고 달렸다. 도착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철제 다리는 이미 끊겨 떨어지고 있었다.

다시 뒤돌아선 순간 관리사무실 李남훈 대리 등 남자직원 2, 3명과 매장 여직원 12명 정도가 바로 뒤에서 헉헉거리며 서있었다. 安씨는 이들과 마주본 채로 무중력감을 느끼며 밑으로 떨어졌다.

한편 2층 매장에서는 영업에 몰두, 손님과 얘기를 나누거나 전화통화를 계속하는 등 성격이 너무 느긋하여 끝내 모습을 감춰버린 직원과 손님들도 일부 있었다.

특히 한 여직원은 친구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얘. 건물이 무너진댄다. 전화 끊어야겠다"고 말한 뒤 다시는 목소리를 들려주지 못했다.

◆아무것도 몰랐던 지상1층

A동 건물 지상1층은 에어콘이 작동하지 않아서인지 평소보다 적은 20여명의 손님만이 한가롭게 물건을 들러 보거나 고르고 있었다.

매장에서는 60여명의 직원들이 땀을 손으로 닦아내며 짜증을 내고 있었다. 비록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 일은 계속할 수 밖에 없었다.

사고 당시 1층에 있었던 사람들은 4, 5층에 머물렀던 사람들과는 달리 백화점이 순간순간 무너져 내리고 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1층 화장품 코너에서 근무하는 金은선씨(22.여)는 오후 5시56분께 `쿵'하는 소리를 들었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뚱뚱한 남자가 넘어졌겠군' 웬걸. 에스컬레이터 쪽을 쳐다보니 위에서부터 수십명이 마구 뛰어내려오고 있었다.

현관 쪽에는 이미 동작빠른 직원들과 손님 몇명이 문밖으로 다급히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金씨는 `뭔가 잘못되고 있구나'하는 직감으로 얼떨결에 백화점 입구로 도망을 쳤다. 그녀는 `휙'하는 소리와 함께 바람에 날려갔으며 곧 정신을 잃었다.

이 백화점 1층 유로통상㈜ 의류코너에서 함께 일했던 여직원 朴善美씨(23)와 林海眞씨(25)도 건물붕괴 사실을 몰랐던 것은 마찬가지다.

퇴근시간이 다가오자 朴善美씨는 오후 5시40분께 집으로 전화를 했다. "에어콘이 꺼져 너무 더워요. 엄마. 수박 좀 사서 냉장고 안에 넣어 두세요"

두 여직원은 부채질을 하며 시간 가기 만을 기다렸다. 오후 5시56분쯤. 갑자기 옆 코너 점원이 비명을 질렀다. 가게에서 뛰어 나와보니 승강기 열린 문으로 사람들이 미친 듯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함께 현관쪽으로 힘을 다해 뛰었다. 건물 윗부분이 힘없이 내려앉는 것이 보였다. 움찔하는 순간 뒤쪽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에 몸이 날려 칠흙같은 암흑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들은 이틀 후인 1일 새벽 1시30분 극적으로 구조됐다.

1층 로비 중앙에 있는 랑콤화장품코너 판매원 張美淑씨(24)는 사고 직전 40대 남자 손님에게 거스름돈을 내주고 있었다.

張씨는 중앙통로쪽 복도에서 갑자기 강한 회오리바람이 불어오고 사람들이 흩어지는 것을 보고는 옆에 있던 양품창고로 재빨리 대피했다.

그러나 곧 천장이 무너져 내렸고 철근과 골재더미가 온몸을 덮쳐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석면가루와 먼지 등으로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었으며 같은 나이 또래의 鄭福實(25)이라는 여자와 몸이 엉겨붙어 뗄 수가 없었다.

1층 악세사리 코너에서 근무하는 鄭福實씨는 갑자기 불어닥친 회오리바람에 빨려들어 온몸에 유리파편이 박힌 채 張미숙씨 위에 떨어진 것.

두 여직원은 매몰 36시간 만에 지하1층 철제더미 속에서 살아나왔다.

한편 이날 오후 5시56분 지상1층 북쪽 주차장에서는 朴경규씨가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자신의 차를 몰고 백화점 밑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백화점 안으로 들어선 순간 먼지가 피어오르며 `우르릉'하는 소리를 들은 朴씨는 깜짝놀라 급히 차를 후진시켜 밖으로 빠져나왔다.

5초 정도 지나자 건물 전체가 엄청난 먼지를 내며 위층부터 차례로 무너져 내렸다. 마치 남산 외인아파트가 폭파공법에 의해 철거되는 모습과 똑같았다.

백화점 안에서는 `살려달라'는 여자들의 비명소리가 들렸고 먼지는 계속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속을 뚫고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이 한 두명 뛰어나오고 있었다.



삼풍백화점은 1989년 12월 1일 개관

지상 5층에 지하 4층의 2만 2천여평에 주차장을 포함하여 국내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백화점이였다.

직원만 1,000명 입주업체만 무려 659개, 국내최고의 호화백화점 "삼풍백화점"

A동 1층에는 명품관들이 위치해, 샤넬,루이비통,디올등과 같은 초호화명품업체들이 입주하였다.

A동 2층에는 여성의류 전문점들이 입주해있었고 3층에는 남성의류 전문 4층은 캐쥬얼과 스포츠웨어전문점들이 입주

그리고 A동 5층에는 고급한정식당들이 줄줄이 입주하였으며

지하1층은 서점,식품코너와 스낵코너 아케이드몰등이 입주해있었고

지하 2~3층까지는 주차장 4층은 주차장과 기계실이 위치해있었다.

중앙홀옆의 B동은 헬스클럽,수영장,전시회장같은 문화생활이 가능한 건물이였다.

즉 그야말로 삼풍은 강남권 부자들이 애용했던 고급백화점이였다.

내부는 화이트대리석으로 깔끔하게 치장했으며 고급샹젤리제와 분수대등

현재의 에비뉴엘이나 갤러리아,현대,롯데백화점의 고급백화점보다 더 사치스럽고 호화롭던 백화점 이였다.

국내 보석전도 삼풍백화점에서 개최

국내에서 이름날리던 디자이너들의 샵도 청담동다음으로 삼풍백화점에 많이 입점해있었다.

서민들은 들어본적도 없는 외국계 명품의류점들과 스포츠웨어전문점들도 전부 삼풍백화점에 있었고

지하 1층 스낵코너 마저도 고가의 외국간식과 식품,와인등을 판매하였다.

가장 유명했던것은 지하 1층 덴마크치즈베이커리매장으로 치즈하나에만 12,000원이나 했던....

또 웬디스,던킨도너츠,중화식당등등이 지하 1층에 입주했었다.

1995년 유일하게 삼풍백화점안에만 핸드폰을 들고 다녔던 사람이 많았다. (그만큼 부유한 사람이 많았던걸로..)

그후 삼풍백화점은 경기도권에 2호점을 개설할 목표였고, 주식상장도 고려하고 있었던 회사이다.


그러나 사망 501명, 실종 6명, 부상 937명이라는 인명피해는 8·15광복 이후 가장 큰 인적 재해로 기록되었으며 재산상의 손해도 매우 컸다.

지상 5층, 지하 4층, 그리고 옥상의 부대시설로 이루어진 삼풍백화점은 1989년 말에 완공하였으나 설계·시공·유지관리의 잘못에 기인된 참사였다. 정부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였다. ||

파일:attachment/sampoong03.jpg
위 사진은 완전 붕괴 30초 후 백화점 맞은편 삼보상호신용금고 건물 5층에서 촬영된 사진이다. [5][6]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7분, 삼풍백화점은 옥상으로부터의 붕괴 시작 5분만에 땅을 향해 완전히 내려앉았다. 건물의 남쪽 A동의 옥상이 무너져 그 곳에 있던 에어컨 실외기가 5층으로 떨어졌으며 이 거대한 충격으로 인해 나머지 아랫층들의 상판들이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무너지면서 불과 20초 만에 지하 4층까지 모조리 붕괴되었다. 이로 인해 백화점 안에 있던 고객들을 비롯한 1,500여 명 대부분이 A동의 붕괴와 함께 그대로 매몰되어 사망하거나 다쳤으며 그 중 일부만이 건물이 내려앉는 도중에 겨우 빠져나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7] 그리고 지하에 주차되어 있던 차량과 함께 주변을 지나가던 차량 수백 대가 무너진 콘크리트에 깔렸다. 생존자는 대부분 지상 1~2층에 있었던 사람들이었으며, 그 때 당시에 지하 1층 식품관에 있었던 사람이 상당히 많아서 그 사람들이 거의 사망했다고 보면 된다. 지하 2층과 3층은 주차장이라 사람이 있을 일은 드물다.

사진 속에서 보이듯 A동이 붕괴된 다음에도 B동은 멀쩡했으나 "B동 역시 붕괴의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폐쇄 조치된 후 1998년 10월에 철거 공사에 들어가 1999년 1월에 완전히 철거되었다. 붕괴 사고 사흘 후 실시된 현장조사 결과 B동도 마찬가지로 설계 강도보다 모자란 강도로 지어진 것이 밝혀졌다.
파일:attachment/collapse1.jpg파일:attachment/collapse2.jpg파일:attachment/collapse4.jpg

위 사진들은 실제 사진이 아닌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 사상 최악의 참사에서 CG로 재현한 영상을 캡처한 것이다.

4. 붕괴 직후



붕괴 사고 직후 공중파 3뉴스 속보. 당시엔 저렇게 큰 건물이 부실공사로 인해 그대로 무너졌다는건 생각치도 못했다. 이 참사와 가장 비슷한 유형이었던 1993년에 발생한 청주 우암 상가아파트 붕괴사고도 부실공사가 근본 원인이긴 하지만 LPG가스 폭발이 건물 붕괴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고, 삼풍 참사로부터 불과 2개월 전에는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 참사도 발생했기에 참사 직후 초기에만 해도 테러 혹은 가스 폭발로 인한 충격으로 건물이 붕괴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대세였다.

그러나 이는 곧 MBC김은혜 기자[8]의 활약으로[9] 부실공사로 인한 붕괴였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곧 대한민국 전체가 분노했다. 사실 와우 아파트 붕괴사고처럼 한국의 부실공사로 인한 폐단이 하루이틀의 문제도 아니었지만 삼풍백화점은 그 정점을 보여준 것이다.



▲ 백화점 붕괴 직후 소방관 및 기자들이 출동하여 촬영한 영상. 붕괴로 인한 먼지 폭풍에 휘말린 주차 차량이 뒤집혔으며 가운데 유리창도 모두 깨져나갔다. 오죽했으면 뉴스에서 직접적으로 지옥이라는 표현을 썼을까?

반면 사고에 직접적으로 휘말리지 않은 지나가던 시민들은 그냥 삼풍이 무너졌다는 투로 무덤덤하게 말하고 의료진과 구조진 그리고 취재진들이 출동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냥 태연히 근처 마켓에서 쇼핑을 했다는 목격담이 있다고 한다. 피해 규모를 잘 몰랐고, 이 때까지만 해도 사망자가 수백 명이 나오리라고는 예상도 못하던 시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당시 미국에서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 사건이 일어났기에, 붕괴 직후에는 북한[10]의 폭탄 테러라고 생각한 주민들도 많았으며, 저 큰 건물이 저절로 무너지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실제 주민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사고 당시 현장에서 약 400m 떨어진 아파트 주민들은 땅이 울리는 느낌에 지진이 난 것으로 착각하고 경비실에 연락을 했다고 한다. 백화점이 무너졌다는 충격적인 말에 설마하며 그저 '백화점 공사 현장에서 골재들이 무너졌나 보다'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사고 직후 강남소방서, 서초경찰서 등 관내 관공서의 전화는 시민들의 신고 전화가 폭주하면서 불통이 됐다. 관공서 관계자는 물론 기자들조차 이 소식을 못 믿고 건물에 금 정도 갔겠지 했으나 잠시 후 현장에 도착한 뒤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최병렬 서울특별시장과 이틀 전 지방선거로 당선된 조순 서울특별시장 당선인도 현장으로 달려갔는데, 오죽하면 최병렬 시장은 한동안 너무 기가 막힌 듯 아무 말도 못 하다가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하기사, 작년에 서울 한복판에서 다리가 무너진데 이어 이제는 대형백화점까지 주저앉으며 임기 마지막 날까지도 유종의 미는 커녕 목불인견의 대형참사가 일어나니 울음이 터져도 이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처참한 심정이 어련했겠는가.

그 외에도 YTN의 취재로 당시 백화점 내부 또는 그 주변의 CCTV 사진으로 보이는[11]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으며 어둠 속 사고 현장에서 옷들을 훔쳐 유유히 달아나는 어느 여성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공개되었고 지금도 이 사진은 인터넷에서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다. 사진 상당히 오래된 보도 사진이지만 대형 참사가 난 뒤 잔해를 뒤지며 물건을 훔쳐 달아난다는 점에서 소름끼친다는 반응이 많으며 짤방으로도 가끔 쓰인다. 이외에도 그 정신없는 상황에서 저 사람처럼 백화점 물건을 도둑질을 하는 사람이 제법 많아서 이를 개탄하는 기사나 사설도 쏟아졌다.

붕괴 후 현장에 있던 모든 이들은 공황 상태에 빠진 상태였고 이런 참사에 대하여 사전에 마련된 대응 수칙도 없었기에 초기 대응 단계에서 사고 현장의 통제는 불가능했다. 당시의 붕괴 현장을 찍은 CCTV나 취재 동영상들을 관찰하다 보면 일부 몰지각한 이들이 이런 분위기를 틈타 붕괴 현장에서 무너지지 않은 B동의 슈퍼마켓 계산대를 털거나 A동의 무너진 잔해 더미 속을 파내며 희생자들의 소지품들을 뒤지며 돈이 될 만한 것들을 찾아 헤매는 추태를 보여 논란거리가 되기도 했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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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상청 자료에 의하면 1995년 6월 29일 당일 서울의 최고기온은 섭씨 29℃에 육박했고 안개가 낀 날씨였다고 한다. 다들 알다시피 안개가 끼면 체감기온 및 불쾌지수는 더 올라간다.[2] 당시 상품권 매장 직원의 후일 증언에 따르면, 지하 사무실에서 쉬다가 굉음소리를 듣고, 사무실 문을 여는순간 연기가 가득해서 에어컨이 폭발한줄 알고, 다른 직원들과함께 비상구를 통해 B동으로 올라왔다고 한다. 그때 로비매장에 있던 친구가 생각나 로비쪽을 보는 순간, 탁 트여있었던 로비가 잔해들로 막혀있는것을 보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고 한다.[3] 이후의 행보를 보면 알겠지만 결국 삼풍과 이준은 코딱지만큼 작은 이익에 몰두하여 안전을 등한시한 대가로 영원히 파멸했다. 차라리 돈이 약간 깨지더라도 안전을 감안했더라면 이준 말대로 경제적 손해는 조금 볼 수 있었겠지만 그정도 손해는 얼마 안가 메꿔졌을 것이다. 망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런 전조에 대해서 이런저런 잡음이 있었겠지만 최소한 이렇게까지 파멸하진 않았을 것이다.[4] 해당 기사는 연합뉴스 '<특집> 三豊참사...生死의 갈림길 5분(1)~(3)' (1995-07-15)이지만, 원본 기사가 연합통신 홈페이지에서 검색만 되고 제대로 뜨지않기 때문에 포털사이트에서 올려진 링크로 대체. 이전의 기사를 올린 커뮤니티 링크는 https://www.instiz.net/pt/1500208[5] 서울특별시에서 발행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백서> 본문 첫장에 인용된 사진이다. 위 업로드된 사진은 문건에서 2페이지에 걸쳐 인용되는 바람에 반이 짤린 상태로 스캔된 것이다. 원본사진에는 무너지지 않은 북쪽 엘리베이터탑까지 담겨있다. 해당 문건에는 이 사진외에도 구조대가 오기 전 상황 사진 4장이 시간순서대로 나열되어있으며, 사진 촬영자 신상정보까지 포함되어있다. 이 사진자료들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이후 가장 이른 기록물이기에 엄청난 가치를 지닌다. 다큐멘터리, 영화 등 많은 삼풍백화점 관련 매체들이 이 사진자료를 참고하였다.[6] 저 거대한 먼지 구름은 한 시간도 안 되어서 서초구, 강남구 전체와 잠실 일대까지 휩쓸고 지나갔다. 저 때가 하필 초저녁 시간대라서 놀이터에 아이들이 많이 나와 있었는데, 하늘 멀리서 웬 먼지 폭풍이 날아오더니 아파트 단지 전체를 휩쓸자 놀란 엄마들이 황급히 달려나와 아이들을 도로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기도 했다. 아이들은 무슨 일인가 하고 어리둥절해하다가 나중에 이유를 알고 큰 충격에 빠졌다.[7] 부상자들은 붕괴 초기에는 "뿌드등"하며 건물이 한 쪽으로 쏠리다 갑자기 밑으로 떨어졌으며, 이에 놀란 쇼핑객들이 여기저기서 "악!", "사람살려!"라고 소리치며 사고의 순간을 전했다.(출처: 96' 기자가 본 100대 뉴스, 한국편집기자회. 471 페이지)[8] 전 청와대 부대변인. MBN에서 앵커로 다시 활약중이다.[9] 119 구조원 옷을 빌려입고 붕괴 현장에 들어가 건물의 설계도를 꺼내 왔다. 한국에서 볼 수 없도록 시청금지를 걸어놨으니 vpn 등으로 우회해서 보면 된다.[10] 바로 전해인 1994년에 서울 불바다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11] 1990년대 중반임에도 CCTV 영상 화질이 너무 좋다는 점 때문에 진위 여부에 논란이 있다. 1995년 당시 CCTV의 화질로 사람의 이목구비와 표정, 들고 있는 물건까지 확실히 나오기는 어렵다. 카더라에 의하면 이 사람은 40대의 삼풍백화점 직원이고 추가 붕괴로 인해 사망했다고 하는데 정확하진 않다.[12]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등에서도 공습으로 무너진 집에서 도둑질을 하거나, 죽거나 다친 사람들의 소지품을 터는 인간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