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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6 12:52:34

사벌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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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벌국 | 沙伐國
<colbgcolor=#4A2D5B><colcolor=#fbe673> 소속 진한
위치 경상북도 상주시 일대
현재 국가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1. 개요2. 내용3. 기타4. 둘러보기

1. 개요

沙伐國.[1]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시에 있었던 진한계열 소국이다. 사량벌국(沙梁伐國)[2]이라고도 한다.

2. 내용

삼국사기 열전 석우로전과 지리지 상주에 등장하는 소국으로, 신라를 배반하고 백제에 붙었다가 석우로에게 토벌당했다고 전한다. 지금도 상주시에는 동명의 면인 사벌국면[3]이 있으며, 그곳에 전(傳) 사벌왕릉이 있다. 6가야중 하나인 고령가야에 비정되기도 하지만, 상주는 진한의 세력권이었기에 사벌국은 고령가야와는 관련이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신라가 지증왕, 법흥왕, 진흥왕 시기에 추풍령 일대를 본격적으로 개발하고 그 일대 호족들을 우대하면서 거의 신라 왕실의 직할령으로 만들다시피 했었는데, 그 지역이 바로 훗날 아자개견훤을 배출하는 이 사벌국 일대다. 물론 사벌국은 이미 그 이전에 지배 구조를 전면 해체당하고 신라국의 직접 지배령으로 편성되었으나, 신라 왕실이 서라벌에서 백제로 진출하는 길목이자 백제가 서라벌로 쳐들어오는 걸 막는 데 대단히 중요한 이 일대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 적어도 고고학적으로는 거의 왕실 직할령이나 마찬가지나 된 건 진흥왕 시기부터다. 그전까진 눌지계 왕가가 경북 서북부 영주 일대, 즉 죽령 일대를 왕실 직할령으로 삼아 그곳에서 주로 근위대 및 정예군 장병을 선발했는데, 법흥왕 이후 등장하는 습보계 왕가(=일명 무열왕계)가 여기에 추풍령 일대를 개발하면서 옛 사벌국 일대를 포함한 지역 또한 죽령 지역과 마찬가지로 신라 왕실의 직할령에 추가하기 때문이다. 이 일대 출신들은 왕권강화를 위해 경북 서북부 죽령 일대 출신들과 함께 신라 왕궁근위대를 배타적으로 구성하게 된다.[4]

이 일대는 의외로 후삼국시대 쟁패전에서도 중요한 캐스팅보트를 쥐게 되는데, 후기 박씨 왕실의 신라가 사실 내물왕 때의 그 신라보다 딱히 세력에서 못할 건 없었으나 근초고왕 백제보다도 판도가 훨씬 딸리는 후백제를 상대로 일방적으로 방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된 건 옛 사벌국 지역이 엉뚱하게도 바로 견훤의 후백제에게 포섭되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자개가 세력을 유지하는 지역은 견훤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으나, 그밖의 옛 사벌국 판도는 죄다 견훤의 후백제에게 넘어갔던 데다 아자개라고 딱히 적극적으로 신라 왕실을 도운 흔적은 없었으니 후삼국시대 신라가 밀릴 수밖에 없었음은 짐작이 어렵지 않다.

3. 기타

4. 둘러보기


[1] 삼국사기 지리지의 표기[2] 석우로전의 표기[3] 2020년 1월 1일 사벌면에서 사벌국면으로 변경되었다.[4] 물론 진흥왕 개혁 이전까진 왕궁근위대에 서라벌 출신들도 당연히 있었을 개연성이 높지만, 진흥왕의 군제 개혁 이후로는 왕궁근위대에서 서라벌인은 전면 배제되게 된다.[5] 6두품을 상징하는 6부 6성 중에서도 가장 권세 높았던 이씨 성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6부 이씨와 모종의 관련이 있어 이씨 성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거기다 견훤 집안의 전승에 따르면 진흥왕소비 부여씨의 아들인 김구륜의 손자이자 문무왕의 처 자의왕후의 아버지인 김선품의 후손 중 한 명이 아자개의 조상 할머니로 보인다.(아마 무열왕계에서 원성왕계로 교체되면서 신라 주류에서 밀린 걸로 보인다) 5두품 가문이기는 했지만 진골 방계, 6두품과 모종의 인연이 생길 만큼 한가닥 하는 집안이었다는 뜻이다. 5세기부터 신라 왕실 직할령 소속 친위대 가문으로 복무하는 과정에서 왕실 및 6두품 귀족들과 인연이 생겼던 것으로 보인다.[6] 다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신라 왕실에게 강렬한 미움을 받게 된 게 아이러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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