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D6D7C1> 사랑하기 때문에 Because I Love You | |
<colcolor=#000> 가수 | 조용필 |
수록 음반 | |
발매일 | [[틀:깃발|1985년 4월 10일 | ]][[틀:깃발| ]][[대한민국| ]]
재생 시간 | 4분 15초 |
장르 | 발라드 |
작사 | 유재하 |
작곡 | |
편곡 | 조용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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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85년 4월 10일 발매된 조용필의 음반 《조용필 7집》의 수록곡. 작사 / 작곡 유재하, 편곡 조용필.2. 상세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 앨범이 발매되기 2년 전인 1985년 조용필 7집에 8번째 트랙으로 먼저 수록되었다. 이는 유재하가 밴드 위대한 탄생의 멤버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자작곡을 앨범 수록곡으로 올렸기 때문.[1] 재밌는 사실은 조용필은 일본 활동을 하면서 1984년에 CBS/SONY를 통해 조용필 7집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아시아의 불꽃>이란 앨범을 발표했는데, 여기에 '사랑하기 때문에'가 '芙蓉の花のように(부용꽃처럼)'이란 제목으로 일본어 가사로 수록되어있다. 어찌보면 일본에서 최초 공개된 노래인 셈.동명의 앨범에 대한 평가와 마찬가지로, 한국 발라드 계보에서 시조격으로 평가받는 곡이자 한국 대중가요 역사상 최고의 곡 중 하나로 꼽힌다. 발라드에 팝과 클래식적 요소를 가미하고, 브리지 부분을 도입하였으며, 이 곡 이전에 한국 가요에서 흔했던 소위 말하는 신파적 뽕끼라는 요소를 아예 찾아볼 수 없는 시초격 곡들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2] 이에 따라 현대 한국 발라드 음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곡들 중 하나로 평가된다.
사실 이 노래와 사랑하기 때문에 앨범은 발매되자마자 큰 반향을 얻지는 않았다. 대중 가요와 클래식을 접목한 탓에 독특한 코드 변주 등으로 당대 대중들에게는 노래가 낮설게 다가온 것. 유재하가 '가창력 미달(…)'이라는 어이없는 이유로[3] 방송 불가 판정을 받아 TV 방송에 잘 나오지 못 한 점도 한 몫 했다. 하지만 유재하가 요절하고 난 후 라디오 방송에 유재하의 곡이 불티나게 많이 신청되었으며, 이문세[4], 신승훈 등이 유재하의 음악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언급하면서 뒤늦게 재조명이 된 것이다.[5] 어찌보면 역주행의 원조격 되는 곡이지만, 요절한 뒤에 역주행이 된 것이니 더욱 그의 이른 죽음이 안타깝게 다가오는 부분.
먼저 발매되었던 조용필 버전이 C 메이저에 중간 템포인 것과 달리, 유재하 버전은 A 메이저에 느린 탬포의 곡인지라 분위기가 매우 하늘하늘하고 따뜻하다. 가사는 사랑하는 여인을[6] 향한 순애보가 담긴 가사. 유재하 버전은 무려 6분 15초에 이를 정도로 꽤 긴 곡이다. 유재하가 클래식을 전공했기에 노래에 피아노, 바이올린, 플루트, 클라리넷, 일렉트릭 기타 등 다양한 악기들이 접목되었다. 반면 위대한 탄생 멤버들과 함께 녹음한 조용필 버전은 보다 록적인 사운드가 두드러진다.
참고로 유재하는 조용필 버전의 '사랑하기 때문에'를 듣고는 본인이 생각한 곡의 정서와 맞지 않아 좀 아쉬워했다고 한다. 실제로 조용필 버전의 사랑하기 때문에를 들어보면 알 수 있는 것이, 물론 조용필의 보컬 실력이 유재하보다 훨씬 뛰어나기야 하지만 조용필의 창법에서 고전 트로트풍을 연상케 하는 약간의 뽕삘 때문에 유재하 버전과 비교해보면 이 곡 특유의 순수한 정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조용필 자신도 과거의 창법에 대해 "소리 속에서 눈물을 발견해야 하는데, 예전에는 일부러 눈물을 짜내려고 했다"며, "그 시대의 정서나 유행 때문에 슬픔을 소리로 나타냈다"고 표현했다. 그래서인지 90년대 조용필 Best Vol.2*와 조용필 30주년 기념 음반 Part. 1*에서 다시 부른 곡은 이전과 또 정서와 창법이 좀 달라졌다.
3. 가사
사랑하기 때문에 |
처음 느낀 그대 눈빛은 혼자만의 오해였던가요 해맑은 미소로 나를 바보로 만들었소 내 곁을 떠나가던 날 가슴에 품었던 분홍빛의 수많은 추억들이 푸르게 바래졌소 어제는 떠난 그대를 잊지 못하는 내가 미웠죠 하지만 이제 깨달아요 그대만의 나였음을 다시 돌아온 그댈 위해 내 모든 것 드릴게요[7] 우리 이대로 영원히 헤어지지 않으리 나 오직 그대만을 사랑하기 때문에 커다란 그대를 향해 작아져만 가는 나이기에 그 무슨 뜻이라 해도 조용히 따르리오 어제는 지난 추억을 잊지 못하는 내가 미웠죠 하지만 이제 깨달아요 그대만의 나였음을 다시 돌아온 그댈 위해 내 모든 것 드릴테요 우리 이대로 영원히 헤어지지 않으리 나 오직 그대만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
4. 여담
- 웹진 음악취향 Y가 선정한 발라드 베스트 100에 1위로 선정되었다.
- Mnet 레전드 100 송 2위에 선정되었다. 참고로 1위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 두 곡 모두 대한민국 가요계에 큰 변화를 이끌어냈다는[8] 공통점을 공유한다.
- 1990년대 후반에 내한하여 내한공연을 가진 아카펠라 해외 그룹 소속 백인 가수가 한국어로 이 노래를 KBS에 나와 열창한 바 있다.
- 의외라면 의외로 힙합 그룹 DJ DOC가 이 노래를 리메이크 한 적이 있다. 1996년 1월 발매된 DJ DOC 3집에 수록되어 있다. 이 노래를 부른 사람은 DJ DOC의 보컬 김창열이다.
- 유재하 본인이 말하기를, 원래의 의미는 ‘절대로 헤어질 수 없기 때문에‘라고 한다.밴드 레모네이드 유혁_Threads
5. 커버(정식 리메이크 포함)
상징성이 있는 발라드 노래인만큼, 많은 가수들이 음반으로, 공연으로, 라이브로 사랑하기 때문에를 커버하고 있다. 또 보면 알 수 있듯 교포 출신이나 외국인들도 제법 부르는데, K-POP으로 한국 가요를 접한 이들이 K-POP의 뿌리는 어디에서 왔는지[9] 궁금해서 옛날 한국 노래를 배울 때 반드시 알아야 하는 노래로 위상이 더 올라왔다고 볼 수도 있는 부분이다.5.1. 유재하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 |
<colbgcolor=#324aac><colcolor=#fff> 발매 | 1987년 8월 20일 |
수록 음반 | 사랑하기 때문에 |
작사 | 유재하 |
작곡 | |
편곡 | |
길이 | 6분 21초 |
1994년 ♫ 2014년 ♫ 2023년 ♫ |
1987년 8월 20일 발매된 유재하의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의 타이틀곡으로 재녹음했다.
5.2. 로제
5.3. 이수현
비긴어게인 3 이탈리아 편 스칼리제로 성 앞에서 이수현이 불렀다.
5.4. 이하이X잔나비
비긴어게인 오픈마이크 1회 이하이와 잔나비 보컬 최정훈의 듀엣.
5.5. 버나드 박
K팝 스타 시즌3 참가자 버나드 박이 샘 김과의 생방송 결승전에서 선곡했다.
5.6. 혁오
5.7. 혁
2016년 VIXX 단독콘서트 UTOPIA 솔로무대에서 불렀다.
5.8. 황치열
5.9. 곽진언 & 김필
5.10. 수지
단순 커버가 아니라, 2017년 유재하 30주기를 맞아 김형석의 프로듀싱 하에 헌정 앨범 "유재하 30년, 우리 이대로 영원히"에 수록된 곡이다.
5.11. 서현진
2017년 영화 사랑하기 때문에 장면에서 불렀다. 참고로 서현진은 아이돌&뮤지컬 가수 출신이다.
5.12. 규현
5.13. 마크
5.14. 성시경
5.15. 서기
5.16. 이정재
5.17. 박선주/강레오
5.18. Saree McIntosh
K팝을 영어로 커버하는 미국 유튜버로, 해당 곡 역시 영어로 번역해 불렀다.
5.19. 지석진
5.20. DJ DOC
1996년 1월 발매된 DJ DOC 3집에 수록되어 있다. 노래를 부른 사람은 DJ DOC의 보컬 김창열이다.
5.21. 박지원
[1] '가리워진 길' 역시 마찬가지로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 세션으로 활동 당시 1986년 김현식 3집의 수록곡으로 제공하였다.[2] 신파적 요소나 뽕끼가 무조건 단점이라고 볼 순 없지만, 유재하의 노래는 유재하가 20대라는 젊은 나이에 이전의 음악과는 차별되는 새로운 길을 텄다는 점에서 더욱 고평가를 받는다고 할 수 있다.[3] 물론 유재하가 동시대의 가수인 이문세, 김현식 등에 비해 노래 실력이 부각이 잘 안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유재하는 특유의 음색만큼은 현재 기준으로도 충분히 호평받으며, 가창력이 좀 딸린다고 TV 방송에도 못 나오게 된 것은 확실히 어이없는 일은 맞는데, 들어보면 알겠지만 금지당할 정도로 노래를 못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4] 특히 이문세는 유재하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었으며, 유재하에게서 '그대 내 품에'(1집), '그대와 영원히'(3집)라는 곡을 받기도 하였다.[5] 물론 사후 훨씬 조명된건 맞지만, 생전에도 아예 반응이 없는건 아니었고 곡 자체는 라디오에서 들리고 있었다.[6] 실제로 사랑하기 때문에 1집 앨범의 모든 곡은 유재하가 실제 연인을 위해 쓴 곡이라고 한다.[7] 이후 유재하 1집에서부터는 '드릴테요'로 부른다.[8] 한국형 발라드와 K팝 댄스 음악 대중화의 시초.[9] 재미있는건 유재하에게 영향을 받은 작곡가 김형석에게 박진영이 프로듀싱을 배웠고, 그 박진영에게 방시혁이 프로듀싱을 배웠는데(방시혁은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출신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K-발라드가 오늘날 K-팝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