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8-29 01:40:03

비틀매니아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10px 10px; background:#FFFFFF"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0"
파일:비틀즈 로고.svg


{{{-2 {{{#!folding [ 전 멤버 ]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 20%;"
{{{#000000 {{{#!folding [ Studio Albums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tablewidth=100%>
파일:external/d817ypd61vbww.cloudfront.net/PleasePleaseMe.jpg
파일:external/d817ypd61vbww.cloudfront.net/WithTheBeatles.jpg
파일:external/d817ypd61vbww.cloudfront.net/AHardsDays.jpg
파일:external/d817ypd61vbww.cloudfront.net/BeatlesForSale.jpg
파일:external/d817ypd61vbww.cloudfront.net/Help.jpg

1963

1963

1964

1964

1965
파일:Rubber Soul Album.jpg
파일:91AL-aLarsL._SL1500_.jpg
파일:SgtPepper.jpg
파일:Magical Mystery Tour HR.jpg
파일:beatles_1968_transparent.png

1965

1966

1967

1967

1968
파일:external/d817ypd61vbww.cloudfront.net/YellowSub.jpg
파일:external/d817ypd61vbww.cloudfront.net/AbbeyRoad.jpg
파일:external/d817ypd61vbww.cloudfront.net/LetItBe_0.jpg

1969

1969

1970
}}}}}}}}}}}}
{{{#!folding [ US Albums ]
{{{#!folding [ Live Albums ]
{{{#!folding [ Compilations ]
{{{#!folding [ 관련 문서 ]
}}}}}} ||

파일:비틀매니아.jpg
1964년 암스테르담 스히폴 국제공항에 운집한 비틀즈의 팬들
영어 Beatlemania
한국어 비틀매니아
중국어 披头士狂热
일본어 ビートルマニア

1. 개요2. 배경3. 역사4. 악성 팬덤?5. 여담

[clearfix]

1. 개요

영국의 록밴드 비틀즈에 열광하는 현상을 지칭하는 말이다. 비틀즈 팬덤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오인받기도 하나, 이는 영단어 mania의 뜻을 재플리시로 오역한 결과다. 일반적으로 비틀즈가 투어 활동을 중단하기 이전인 1966년까지의 현상을 지칭한다.

2. 배경

1959년 엘비스 프레슬리의 군입대, 버디 홀리의 사망, 척 베리의 구속 등으로 인한 로큰롤 장르의 몰락으로 미국과 영국의 로큰롤 팬들의 실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때 혜성처럼 등장한 비틀즈의 노래는 미국과 영국의 로큰롤 팬들을 열광시켰으며, 1964년 브리티시 인베이전으로 미국의 팬들이 비틀즈에 환호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 당시 기성세대에 대한 반발감 역시 크게 기여했다. 20대에 갓 접어든 비틀즈는 영미권의 소녀 팬들에게 잘생긴 외모로 큰 인기를 얻었지만, 반대로 프랭크 시나트라류의 스탠더드 팝이 주류계였던 기성 음악 평론가들은 비틀즈를 혹평했다. 또 40대 이상의 기성 세대 역시 비틀즈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것이 오히려 보수적인 도덕관에 지쳐있던 10–20대들에게 일종의 반항으로 받아들여져 비틀즈의 인기만 더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반항 이미지는 후일 히피문화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3. 역사

1963년 10월 비틀즈가 런던에서 처음으로 공연을 했을때 수천명의 팬에 의해 리허설조차 하지 못할정도로 공연장이 마비되었고, 경찰들은 비틀즈의 팬들을 통제할 수 없어 비틀즈 멤버들이 공연을 끝내자마자 뒷문으로 도망치는 일이 일어났다. 이때 영국 언론에 의해 처음으로 비틀매니아라는 용어가 등장하였으며, 이후 영미권 언론에 의해 비틀즈의 팬들을 일컫는 명칭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이후 미국에 진출해서는 브리티시 인베이전이라는 이름으로 빌보드 상위 5개곡 독차지라는 전무후무[1]한 기록을 세웠으며, 미국의 메이저 언론까지 비틀즈와 비틀매니아를 톱기사로 다루기 시작했다. 보수 언론들은 '비틀즈는 일시적인 현상이고 로큰롤은 얼마 안가 쇠퇴할 것'이라고 했지만, 비틀즈의 인기는 높은줄을 모르고 올라가기만 했다. 스타디움에 팬들을 모아놓고 공연을 한 것의 시초가 비틀즈였을 정도로 당시 비틀즈의 팬덤 규모는 엄청났다.

그러나 이런 지나치게 과열된 비틀매니아 현상으로 인해 비틀즈의 멤버들은 오히려 투어활동에 지치게 되는 역설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폴 매카트니는 본인이 부르는 노래를 못들을 정도로 비명 소리가 너무 컸다고 회고했으며, 거의 서커스 경기장에 온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여기에 필리핀 공연 당시 이멜다 마르코스 때문에[2]생사까지 위험해질 정도가 되자, 결국 이들은 1966년 월드 투어를 중단하고 스튜디오에서 실험적인 음악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소녀 팬들은 점차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했지만, 오히려 보수적인 평론가까지 비틀즈를 호평할 정도로 음악적인 수준은 높아졌다. 투어 활동을 접은 이후 작업한 첫 음반인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는 소녀 팬 뿐만 아니라 평론가들에게도 극찬을 받으면서 록 음악 장르를 예술로 편입시킨 것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된다.

4. 악성 팬덤?

빠가 까를 만든다라는 말이 통용되듯이 비틀즈의 팬덤 역시 다른 거대한 록 밴드들의 팬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비유를 하자면 유튜브같이 젊은 세대들이 많이 이용하는 커뮤니티에서 많이 관찰되는데 레드 제플린의 팬덤이 록부심표절 논란을 옹호하는 것으로 유명하고 의 팬덤이 그들의 업적을 호들갑을 떨며 과하게 올려치는것으로 유명하다면[3] 비틀즈의 팬덤은 비틀즈 이외에 다른 밴드들의 영향력을 무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예를 들어, Helter Skelter라는 곡을 두고 메탈 음악의 시초는 비틀즈고 비틀즈 혼자서 메탈 음악을 탄생시켰다고 과장하는 팬들이 문제가 된적이 있는데 이는 비틀즈 이외에 킹크스, 스테픈울프, 아이언 버터플라이의 모든 업적을 비틀즈가 한것처럼 둔갑시키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심지어 이 세 밴드가 메탈의 시초격되는 트랙들이 수록된 앨범을 헬터 스켈터가 수록된 화이트 앨범보다 더 일찍 발매했다. 하지만 상술한 세 밴드의 팬덤이 모두 저런 특성을 띄는건 절대 아니고 저렇게 문제가 되는 사람들은 오히려 진짜 팬덤들안에서도 걸러지는 분위기라는것은 명심하자.

5. 여담



[1] 오랫동안 지켜온 기록이지만 싱글 발매가 필요없는 스트리밍 시대가 오면서 드레이크, 테일러 스위프트 등이 이 기록을 다시 세웠다. 드레이크는 탑10에 9곡을 올렸고(6위 제외) 테일러 스위프트는 아예 10곡을 싹쓸이했다.[2] 이멜다 마르코스가 사전 조율도 없이 식사 자리에 멤버들을 초대했고, 당시 매니저였던 브라이언 엡스타인은 멤버들의 컨디션 조절을 위해 초대를 정중히 거절했다. 그런데 이멜다 마르코스는 마치 비틀즈가 자신에게 크게 모욕을 준 것 마냥 뉴스에 떠들어댔고, 공분한 필리핀 국민은 멤버들에게 돌을 던지는 등 위협을 가했다. 훗날 멤버들 모두 입을 모아 필리핀 공연은 인생 최악의 경험이었다고 진술했다.[3] 보헤미안 랩소디 상영 이후 한국에서의 상황. 한국을 제외한 미국이나 영국은 이미 록 시장이 컸기 때문에 퀸의 업적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했고 퀸의 음악이 우리가 늘 광고를 통해 듣던 음악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것도 어느정도 이러한 과대평가에 영향을 주었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