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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순조의 황녀 복온공주 | 福溫公主 | |||
<colbgcolor=#94153e><colcolor=#ffd400> 조선 순조의 왕녀 복온공주 | 福溫公主 | |||
김병주 · 복온공주 합장묘 전경 | |||
출생 | 1818년 11월 24일 | ||
조선 한성부 경희궁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45) | |||
사망 | 1832년 6월 10일 (향년 13세) | ||
조선 한성부 창녕위궁 (現 서울특별시 강북구) | |||
묘소 | 김병주 · 복온공주 합장묘[1] | ||
재위기간 | 조선 복온공주 | ||
1824년 11월 10일 ~ 1832년 6월 10일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94153e><colcolor=#ffd400> 본관 | 전주 이씨 | |
부모 | 부황 순조 숙황제 모후 순원숙황후 | ||
형제자매 | 부황 기준 2남 4녀 중 3녀 모후 기준 2남 3녀 중 차녀 | ||
배우자 | 창녕위 김병주 (昌寧尉 金炳疇, 1819 ~ 1853) | ||
봉호 | 복온공주(福溫公主) | ||
궁호 | 창녕위궁(昌寧尉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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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순조와 순원왕후의 적2녀. 효명세자와 명온공주의 동복 동생이자, 덕온공주의 언니가 된다.2. 생애
2.1. 혼란한 시기에 태어나다
1818년(순조 18) 순원왕후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2] 태어날 당시, 조선은 각지에서 일어나는 민란과 흉서, 역모 사건으로 나라가 어지러운 때였다. 특히 1818(순조 18) 8월에는 황해도 신천에서 홍수가 크게 났고, 10월에는 각 지역에서 일어난 재변으로 농사를 망쳐 세금을 경감하는 처분이 있었다. 이듬해에는 액례와 원예의 모반 작당이 있어서 공주가 살아있는 동안 한해도 조용한 해가 없었다.1824년(순조 24) 9월 20일 복온(福溫)의 작호를 받고 정식으로 공주로 책봉되었다.
단순히 태어난 순서대로 따지면, 후궁 숙의 박씨 소생의 영온옹주가 먼저 책봉되어야 맞는 일이었으나 순원왕후 소생의 복온공주가 책봉되었다.[3] 이는 적서의 구별을 둔 것으로 추측된다.[4]
2.2. 사랑받는 공주
효명세자는 삼매연림(三妹連林)[5]이라는 글에서 복온공주를 "복온이는 품성이 번화하고, 기골이 풍영하여 수중의 연꽃 같다."고 표현했다. 여기서 풍영(豐盈)하다는 말은 '풍만하고 기름지다'는 의미인데, 아마 복온공주의 모습은 젖살이 통통한 아가씨였을 것이다.한편, 복온공주도 시문을 짓고 글씨를 쓰는 문예 활동을 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명온공주, 덕온공주에게도 똑같이 보이는데, 이는 아버지 순조의 영향이 상당했을 것이다. 그 증거로 복온공주 글씨첩이 남아있다.
창덕궁 옥화당[6]에서 지내던 12세의 공주가 남긴 한글 시 7편과 한문 시 3편이 모여 있는데, 그 중 시 한 편이 2019년 국립한글박물관의 기획특별전에서 소개된 적이 있다.[7]
물고기가 물에 뜬 연꽃을 희롱하네 봄날에 따사로운 바람 천천히 불어 낙유원에서 빼어난 잔치 열었구나 물고기가 부용꽃 핀 물속에서 희롱하니 못가의 누각에 연꽃 향기 멀리 풍기노라 복온공주가 지은 한글 시[8] |
이 시에는 순조가 차상일(次上一)[9]이라고 점수를 매기고, 백면지 2권, 붓 5자루, 먹 3개를 하사한다는 기록이 같이 있다.
2.3. 혼인 생활
1830년(순조 30) 효장세자(익종)의 대리청정기에 부마 간택이 이루어졌다. 2월 22일 초간택, 3월 10일 재간택, 3월 28일 삼간택을 행하였고, 세 번에 걸친 간택은 모두 창덕궁 희정당에서 열렸다.최종적으로 낙점된 사람은 부사과 김연근의 아들 김병주였다.[10] 그의 본관은 안동 김씨로 순원왕후 집안의 사람이었고, 김병주의 조부 김학순은 관직 생활 중 세자시강원에 있었던 적이 있어서 이미 왕실과 인연이 깊었다. 그러므로 형식상의 간택일 뿐 사실상 내정자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4월 28일 가례를 올렸는데, 이때 공주가 입었을 활옷이 남아있다.
그러나 공주는 혼인한 지 2년 만에 요절하였다. 나이 15세로 후사가 없었다. 소식을 들은 순조는 빈소를 차리는 날 직접 공주의 집으로 나갔다.
"복온 공주의 상에 방금 거애하고 나니, 슬프고 서러워 마음을 걷잡을 수 없다. 예장(禮葬) 이외에도 필단(匹緞)·미포(米布) 등의 물건을 명안공주(明安公主)의 예대로 실어 보내고 온갖 상수(喪需)는 각사(各司)의 관원이 직접 올려 미진한 일이 없도록 하며, 성빈(成殯)하는 곳은 본방(本房)에서 하되 문로(門路)는 단봉문(丹鳳門)으로 하라."
《순조실록》 순조 32년 5월 12일
《순조실록》 순조 32년 5월 12일
부마 문서에 기재되어 있듯, 배우자인 공주가 먼저 떠났다고 해서 재혼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김병주의 후사는 양자를 통해 이어지게 된다.
불과 한 달 후인 6월, 어릴 적부터 병약했던 언니 명온공주마저 사망하고 말았다. 이에 따라 순조와 순원왕후의 자식들 중 가장 오래 산 자식은 덕온공주가 된다.
3. 여담
- 복온공주가 혼인하면서 궁궐에서 쓰는 삼해주 제조 비법을 전하여 안동 김씨 집안에 대대로 전해 내려온다고 한다. 삼해주는 삼해소주와 삼해약주 두 종류가 있는데, 2021년 현재 안동 김씨 집안의 며느리인 권희자 명인이 삼해약주를 만들고 있다.
4. 가족 관계
- 남편 : 창녕위 김병주(昌寧尉 金炳疇, 1819 ~ 1853) - 김연근(金淵根)의 아들
- 양자 : 김도균(金道均) - 김병교[11](金炳喬)의 아들
- 양손자 : 김석진(金奭鎭, 1843 ~ 1910)
[1] 경기도 용인시 원삼면 죽릉리 산 99-1[2] 승정원일기 2105책 (탈초본 109책) 순조 18년 10월 26일 신묘 15/23 기사. #[3] 영온옹주는 1817년생으로 1년 먼저 태어났다.[4] 더군다나 영온옹주의 생모는 승은상궁 출신이였다.[5] 세 명의 여동생들이 숲처럼 연달아 있다는 뜻이다.[6] 창덕궁 경훈각의 부속 건물이다.[7] <공쥬, 글시 뎍으시니: 덕온공주 집안 3대 한글 유산(2019.04.25-2019.09.18)>[8]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안대회 교수의 해석본이다.[9] 과거시험에 매기던 12등급 중 10번째.[10] 순조실록 31권, 순조 30년 3월 28일 병진 1번째기사. #[11] 남편의 족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