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12px 0" | <tablebordercolor=#315288> | }}} | |
{{{#!wiki style="margin:0 -10px" {{{#!wiki style="display:inline-block; min-width: 14%" {{{#!folding ⠀[1~50호]⠀ {{{#!wiki style="margin:-10px 0" | }}}}}}}}}{{{#!wiki style="display:inline-block; min-width: 14%" {{{#!folding ⠀[51~100호]⠀ {{{#!wiki style="margin:-10px 0" | <table bordercolor=#fff,#1f2023> |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제40호 | ||
서울 창녕위궁 재사 서울 昌寧尉宮 齋舍 | ||
소재지 | 서울특별시 강북구 월계로 173 (번동) | |
분류 | 등록문화재 / 기타 / 종교시설 | |
수량 / 면적 | 1동, 연면적 264.46㎡ | |
지정연도 | 2002년 9월 13일 | |
시대 | 조선 후기 (사랑채 일부 19세기) | |
소유자 (소유단체) | 서울특별시 | |
관리자 (관리단체) | 서울특별시 중부푸른도시사업소 |
<colbgcolor=#94153e> 창녕위궁 재사 |
[clearfix]
1. 개요
서울특별시 강북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재사.2. 상세
조선 제23대 순조의 둘째 딸 복온공주[1]와 부마 창녕위(昌寧尉) 김병주(金炳疇)[2]의 재사(齋舍)이다. 정면 2칸, 측면 2칸의 전통 한식 건축 양식의 단층 목조 기와집으로 높은 장대석 기단으로 둘러싸여 있다.1832년에 복온공주가 세상을 떠난 뒤 무덤이 주변에 자리하였고, 이어서 김병주의 무덤도 위치하면서 재사가 건립되었다. 그 뒤 무덤은 용인으로 이장되었다. 김병주의 재사로 건립된 부분을 안채로 삼았고, 사랑채는 다른 곳에서 옮겨 세운 것으로 전한다. 6·25전쟁으로 재사와 행랑이 파괴되었지만, 1955년에 다시 지었다. 현재의 건물은 재실인 안채, 별채인 사랑채, 대문간채 등이 남서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안채와 사랑채는 모두 ‘ㄱ’자형 구조인데, 5개의 도리로 지붕 가구를 구성한 모습이다. 안채 부엌 남쪽의 대청마루는 이전에 재실로 사용된 공간으로, 김석진, 김영한(金甯漢), 김윤동, 김문현 등 4대조의 신위를 봉안하였다. 지금의 모습은 원래의 모습과 매우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조선 말기에 건립된 궁집의 구조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3. 기타
한일합병 후 김병주의 손자[3] 김석진이 일본의 남작작위를 거절하고 순국자결한 역사적 의미를 가진 건축물이다. #북서울꿈의숲 부지 내부에 위치하고 있다. 정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과거 드림랜드 시절에도 있었다. 사실 꿈의숲 부지가 신 안동 김씨의 문중 땅이었고, 해당 고택이 그 중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