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 사건의 상상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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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벨라 사건(Vela Incident)은 미국의 인공위성 벨라가 남인도양[1] 해상에서 원인불명의 강렬한 섬광을 포착한 사건이다.2. 역사
벨라 위성(Vela Satellite)은 1963년 미국과 영국, 소련 3국이 체결한 부분적 핵실험금지조약 (Limited Nuclear Test Ban Treaty)을 이행하는지 감시하고자 미국 국방부 주도로 발사한 군사용 인공위성이다. 해당 조약에는 대기권에서의 핵실험을 금지하는 내용이 있었고, 미국은 당시 공산권의 핵확산을 우려하던 터라서 비밀리에 핵실험을 감행할지 모른다고 눈이 벌개져서 감시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탄생한 것이 벨라 계획이다. 벨라 위성 총 12대를 만들어서 쏘아올렸는데, 각 위성은 감마선을 탐지하고 분석할 수 있는 최첨단장비를 탑재했다. 다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특별한 핵실험징후를 감지하지는 못했다.그런데 1979년 9월 22일 오전 12시 53분 (그리니치 천문대 표준시) 무렵 벨라 6911호의 광센서에 이상한 신호가 들어왔다. 망망대해에서 두 차례 강렬한 섬광이 감지된 것이다. 위치는 동경 40도 남위 47도 지점의 남인도양 해상으로, 아프리카 대륙에서 남동쪽으로 수천 km 떨어진 곳이었다. 근처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령인 프린스 에드워드 제도가 있으나, 무인도로 군사기지는커녕 민가 한 채도 없는 섬이다. 섬광은 수초간 지속되는데, 두 쌍이 한 몸으로 이루어진 위성 양측의 센서에 모두 분명하게 관측되었다.
섬광 발생 추정위치와 벨라 6911호 위성의 기록. |
3. 원인추측
3.1. 기기오류
벨라 위성은 워낙 잔고장이 심해서 가끔 오작동하는 경우가 있었으므로 기기고장일 확률도 있다. 그러나 '두 차례의 오작동이 같은 시각에 두 개의 위성 모두에 걸리는 확률'이 매우 낮은지라 가능성의 영역에만 머무르고 있다.3.2. 운석 충돌
천체물리학자 칼 세이건은 저서 코스모스에서 이것은 미처 관측되지 않은 운석 충돌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운석 충돌에 대한 세계적 조기경보체계 시스템이 없을 경우 운석 충돌을 핵폭발로 오인해서 우발적 핵전쟁이 벌어질 위험성이 높다고 주장했다.3.3. 핵실험
미국 정부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나 이스라엘 혹은 프랑스가 비밀리에 핵실험을 한 것으로 보고 조사에 착수했다. 사건 발생 해역 주변에 남아프리카 공화국 본토와 프랑스령 케르겔른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0년 7월에 나온 미국정부 보고서에서는 이 섬광이 핵실험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폭발과 섬광이 이스라엘이 실시한 비밀 핵실험으로 말미암은 것인데, 미국이 이를 은폐한다고 주장했다.후일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폐기하고 핵무기를 자진해서 포기했을 때,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핵무기도 사실상 이스라엘이 만들어준 것이었음이 밝혀졌다. 어쩌면 이스라엘의 핵개발 과정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이스라엘이 공동 핵실험을 했을수도 있다.
로스 앨러모스 국립연구소의 기술정보담당국장이었고 이스라엘과 파키스탄 및 북한 등의 비밀 핵개발을 다룬 <핵 급행>의 공동저자인 대니얼 스틸먼에 따르면, 1979년 어느 날 그는 다른 일로 CIA의 원자력국장 잉글레이 박사를 만났다. 박사는 광선분석자료를 내놓으면서 스틸만의 의견을 구했다. 평생 각종 핵실험자료들을 접했던 스틸먼은 바로 즉석에서 "대기권 핵실험의 흔적이다. 틀림없다."러고 대답했다. 잉글레이 박사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보라." 말했지만, 스틸만은 "단언컨대, 핵실험 이외의 가능성은 없다."하고 거듭 말했다고 저서에서 회고했다. 관련기사
2018년 8월 14일 호주의 한 언론기사 발표에 따르면 핵실험이 맞다고 한다. 기밀해제된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에 호주에서 도축된 양들에게서 아이오딘-131[2] 반응이 나타났다는 것. 호주 언론은 핵실험 당사자를 이스라엘로 추측하였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