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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퍼거슨

배리 퍼거슨의 역임 직책
{{{#!folding ▼
스코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폴 램버트
(2001~2003)
배리 퍼거슨
(2003~2009)
대런 플레처
(2009~2013)
}}} ||
배리 퍼거슨의 수상 이력
{{{#!folding ▼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파일:SFWA-logo-mast.png
1999-00 · 2002-03
파일:PFA Scotland.jpg
파일:PFA Scotland.jpg
베스트팀
파일:PFA Scotland.jpg
2006-07 · 20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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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퍼거슨의 기타 정보
파일:레인저스 FC 유니폼 엠블럼.svg
레인저스 FC 명예의 전당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Rangers_Hall_of_fame.jpg
헌액 인물
모지스 맥닐, 피터 맥닐, 피터 캠벨, 윌리엄 맥베스, 톰 밸런스, 존 맥퍼슨, 조크 드러먼드, 니콜 스미스, 닐리 깁슨, 알렉스 스미스,
로버트 C. 해밀턴, 아서 딕슨, 지미 고든, 제임스 보위, 토미 케언스, 앤디 커닝엄, 버트 맨더슨, 토미 뮤어헤드, 샌디 아치볼드, 데이비드 미클존,
앨런 모턴, 툴리 크레이그, 두기 그레이, 지미 플레밍, 밥 맥페일, 지미 심슨, 조지 브라운, 지미 스미스, 제리 도슨, 샘 잉글리시,
토런스 길릭, 알렉스 벤터스, 윌리 손턴, 조크 쇼, 윌리 우드번, 윌리암 와델, 조지 영, 이언 매콜, 바비 브라운, 새미 콕스,
조지 니븐, 조니 허버드, 빌리 심슨, 존 리틀, 에릭 캘다우, 알렉스 스콧, 랠프 브랜드, 지미 밀러, 바비 시어러, 빌리 리치,
데이비 윌슨, 해럴드 데이비스, 데이비드 프로번, 이언 맥밀런, 윌리 헨더슨, 로니 매키넌, 짐 백스터, 존 그레이그, 콜린 잭슨, 샌디 저딘,
윌리 존스턴, 윌리 매티슨, 데이브 스미스, 알렉스 맥도널드, 콜린 스타인, 알피 콘 주니어, 피터 매클로이, 데릭 팔레인, 데릭 존스톤, 토미 매클레인,
톰 포사이스, 앨리 도슨, 데이비 쿠퍼, 바비 러셀, 데이브 맥퍼슨, 앨리 맥코이스트, 이언 듀랜트, 그레이엄 수네스, 테리 버처, 크리스 우즈,
리처드 고프, 이안 퍼거슨, 레이 윌킨스, 존 브라운, 마크 헤이틀리, 앤디 고람, 스튜어트 맥콜, 브리안 라우드루프, 폴 개스코인,
외르크 알베르츠, 배리 퍼거슨, 로렌초 아모루소, 슈테판 클로스, 페르난도 릭센, 나초 노보, 리 맥컬록, 데이비드 위어, 앨런 맥그레거, 제임스 태버니어, 스티븐 데이비스
}}} ||
Rangers Football Club Hall of Fame
파일:BarryFerguson.jpg
<colbgcolor=#0032a0> 이름 배리 퍼거슨 MBE
Barry Ferguson MBE[1]
출생 1978년 2월 2일 ([age(1978-02-02)]세)
영국 스코틀랜드 사우스래너크셔 해밀턴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
[[스코틀랜드|]][[틀:국기|]][[틀:국기|]])
신체 178cm | 체중 74kg
직업 축구선수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0032a0> 선수 레인저스 SABC (유스)
레인저스 FC (1994~1997 / 유스)
레인저스 FC (1997~2003)
블랙번 로버스 FC (2003~2005)
레인저스 FC (2005~2009)
버밍엄 시티 FC (2009~2011)
블랙풀 FC (2011~2014)
플릿우드 타운 FC (2012 / 임대)
클라이드 FC (2014~2015)
감독 블랙풀 FC (2014 / 감독대행)
클라이드 FC (2014~2015 / 선수 겸 감독)
클라이드 FC (2015~2017)
켈티 하츠 FC (2017~2020)
알로아 애슬레틱 FC (2021~2022)
국가대표 45경기 3골 (스코틀랜드 / 1998~2009)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5px"
{{{#!folding 정보 더 보기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colbgcolor=#0032a0,#191919> 가족 데릭 퍼거슨
조카 루이스 퍼거슨
아들 카일 퍼거슨
등번호 레인저스 FC - 6
블랙번 로버스 FC - 16, 24
버밍엄 시티 FC - 12
블랙풀 FC - 16
플릿우드 타운 FC - 37
클라이드 FC - 6, 12, 16
주발 오른발
종교 무종교
}}}}}}}}} ||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기타 경력5. 수상 경력
5.1. 선수
5.1.1. 클럽5.1.2. 개인
5.2. 감독

[clearfix]

1. 개요

스코틀랜드축구선수 출신 감독. 선수 시절 주 포지션은 미드필더이다.

2000년대 레인저스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선수이다. 뛰어난 리더십과 중원에서 경기를 지휘하는 플레이스타일을 바탕으로 레인저스의 스코티시 프리미어 리그 5회 우승, 스코티시컵 5회 우승, 스코티시 리그컵 5회 우승, 2번의 도메스틱 트레블, 2007-08 시즌 UEFA컵 준우승을 주장으로서 이끌었고,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4년 레인저스 FC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 선수 경력

2.1. 유소년 경력

1978년 2월 2일, 글래스고 근교 해밀턴에서 레인저스를 열렬히 응원하는 가정에서 태어난 배리 퍼거슨은 유년 시절부터 가족들을 따라 아이브록스 스타디움을 직관하는 등 레인저스를 응원하며 성장하였다.

퍼거슨은 8살 무렵 자신의 고향 해밀턴의 유소년 축구 클럽 '밀 유나이티드'에서 축구를 시작하였다. 10대 초반부터 그의 재능은 세간에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165cm라는 작은 키로 인해 '스코틀랜드 스쿨보이즈'의 입단 테스트에서 불합격하는 등 많은 애로사항을 겪었다. 그러나 1991년, 퍼거슨은 레인저스 아카데미 입단 테스트에 합격해 3년 간 훈련을 받았고, 마침내 1994년에 레인저스와 프로 계약을 맺게 된다.

2.2. 클럽 경력

2.2.1. 레인저스 FC 1기

스코틀랜드의 해밀턴에서 태어난 퍼거슨은 유년시절부터 레인저스 서포터였던 가족들과 함께 레인저스 FC를 응원해왔다. 1991년, 레인저스의 아카데미에 입단한 후 차근차근 단계를 거쳐 축구 실력을 배양한다. 시간이 흘러 1996-97 시즌을 앞두고 1군팀에 콜업된 그는 하트 오브 미들로시언과의 스코티시 프리미어 리그 최종전에서 프로 데뷔전까지 경험하게 된다. 1997-98시즌에 앞서 네덜란드의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부임하면서 퍼거슨을 팀의 미래이자 레귤러멤버로 여겼고 장기 계약까지 채결한다.

데뷔 후 2시즌동안은 간헐적인 경기 출전을 통해 1군 무대를 적응하는 기간이었다면, 1998-99 시즌부터는 본격적으로 베스트 11의 일원으로 자리 잡으며 레인저스의 키 플레이어로 활약한다. 물론 실력만큼이나 성격 또한 보통이 아니어서 종종 기행을 일삼으며 감독의 머리를 골치 아프기도 했지만[2], 22살의 나이에 주장직을 이어받았을만큼 뛰어난 리더십과 중원 장악력으로 리그 정상급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2003년까지 3번의 리그 우승과 스코티시 컵, 스코티시 리그컵 우승을 차지 했다. 또한 2002-03 시즌은 가장 발군의 활약을 보인 시즌으로 중앙 미드필더 자리에서 18골을 기록하며 라이벌 셀틱의 야성을 뿌리치고 도메스틱 트레블을 달성함과 동시에 스코틀랜드 리그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는 영예를 누린다.

2.2.2. 블랙번 로버스 FC

2003년 8월 29일, 자국 리그를 평정한 퍼거슨은 750만 유로의 이적료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블랙번 로버스 FC에 입단한다. 첫 시즌부터 주전으로 도약하며 강등권 탈출을 위해 고군분투했으나 12월 28일, 박싱데이기간 열린 19라운드 뉴캐슬 유나이티드전에서 무릎뼈가 골절되는 큰 부상으로 일찍 시즌을 마감해야만 했다. 다행히 팀은 막판 4연승을 찍는 행보를 보이며 13위를 기록, 잔류에 성공한다. 2번째 시즌에는 그레이엄 수네스의 총애를 받아 주장으로 임명되었고 이번 시즌에도 주전으로 활약했으나 2005년 1월, 그는 구단에 이적을 요청했고 친정팀 레인저스가 그에게 관심을 보인다. 이후 구단 간의 많은 논의 끝에 450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합의되었고 그는 이적시장이 종료되기 직전에 레인저스에 다시 합류한다.

2.2.3. 레인저스 FC 2기

1년 반만에 레인저스로 복귀한 퍼거슨은 3월 5일, 인버네스 CT와의 경기에서 복귀골을 신고했으며 스코티시 리그 컵 결승전에 선발 출전하여 팀의 우승을 기여하고 시즌을 마쳤다. 2005-06 시즌 개막 이전, 알렉스 맥리쉬 감독에 의해 페르난도 릭센을 대신하여 주장으로 선임된 퍼거슨은 팀의 중원 사령관으로 매경기 출전하며 팀을 도왔지만 퍼거슨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에 팀은 스코티시컵에서 히버니언 FC에게 발목을 잡히며 조기에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고 리그 타이틀은 셀틱에게 빼앗기는 등 무관을 기록하며 우울한 시즌을 보낸다.

2006-07 시즌에는 맥리쉬 감독이 사임하고 올랭피크 리옹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폴 르갱 감독이 부임한다. 퍼거슨은 여전히 주전으로 활약했지만 12월 27일, 인버네스와의 리그경기에서 1:2로 패한 후 그는 라커룸에서 르겡 감독과 심한 말다툼을 벌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퍼거슨은 팀의 주장직에서 박탈당했고 머더웰 FC와의 경기를 앞두고 명단에서 제외되는 곤혹을 치른다. 둘 사이에 냉랭한 관계는 2007년 1월 4일, 르겡이 사임하고 나서야 마무리되었다. 이후 퍼거슨은 선발명단에 복귀했고 주장으로 재선임되었으며 잔여 경기에서 정기적인 출전기회를 가졌다.

2008년 1월, 하츠와의 스코티시컵 준결승전에서 논란이 될 만한 핸들링 득점을 기록했으나 경기 후 전혀 의도가 한 것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이후 팀은 결승에서 퀸스 오브 사우스를 만나 승리하며 타이틀을 추가했다. 5월 14일,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와의 UEFA컵 결승전에서는 클럽통산 400경기를 달성했다. 그러나 팀은 0:2로 패하며 생애 첫 유럽대항전 트로피 획득에 실패했다.

다음 시즌에는 오래간만에 리그 타이틀을 거머쥐었으며 스코티시 컵 우승까지 성공하면서 더블을 달성하는데 기여했으나 시즌 중이었던 2009년 4월, A매치 기간 치러진 네덜란드와의 월드컵 예선경기에서 패한 뒤 팀 동료인 앨런 맥그레거와 장기간 호텔에서 술을 마시고 행한 행동으로 인해 규율 위반으로 출장정지를 당했는데 아이슬란드와의 다음 경기에서 벤치에 앉아있던 그들은 부적절한 제스처를 취하는 사건[3]을 일으키면서 2주간 주급정지와 함께 다시 한번 주장직에서 박탈되기도 했다.

2.2.4. 버밍엄 시티 FC

2009년 7월, 그는 버밍엄 시티로 이적하면서 4년 반만에 프리미어리그 무대로 복귀하는데 그의 이적 배경에는 은사 알렉스 맥리쉬의 영향이 컸다. 감독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은 퍼거슨은 첫 시즌부터 맹활약하며 9위라는 호성적에 기여했고 버밍엄 선수들이 선정한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다음 시즌에도 퍼거슨은 매경기 풀타임을 소화하면서 버밍엄의 중원사령관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지난 시즌과 다르게 팀은 부진한 경기력으로 강등권을 맴돌고 있었다.

그 와중에 풋볼 리그 컵에서는 결승까지 올라 아스날 FC를 만나게 되고 후반 44분, 1:1로 맞서던 상황에서 로랑 코시엘니의 클리어링 실수로 오바페미 마르틴스가 결승골을 만들어내면서 우승을 달성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그와중에 득점 이후 행렬을 따라가던 퍼거슨은 코시엘니의 실수를 조롱하듯 그의 뒤통수를 후려 갈기며 지나가면서 안그래도 허탈한 구너들의 뒷목을 잡게 한건 덤이었다. 그러나 드라마틱한 우승에도 불구하고 리그에서의 부진은 여전했고 결국 17위를 기록하며 2부리그로 강등을 맞이하고 만다.

2.2.5. 블랙풀 FC

버밍엄이 2부리그로 강등당하자 퍼거슨은 스코틀랜드에 있는 가족과 더 가깝게 이동할 수 있다는 이유로 강등팀인 블랙풀 FC과 2년 계약[4]에 서명했다. 이적 직후 찰리 아담 대신 주장완장을 이어받은 퍼거슨은 2012-13시즌 초반에 회장과의 불화로 인해 유소년팀 선수들과 함께 훈련을 받아야했고 이로 인해 플릿우드 타운 FC로 단기 임대를 다녀오기도 했다.

2013년 10월에는 고질적인 발목부상으로 인해 여섯 번째 수술을 받았고 12월 3일까지 결장하였다. 당시 수술을 집도했던 의사에게 더 이상 선수생활을 지속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2014년 1월 21일부터는 톰 인스의 경질로 인해 임시 감독직을 수행하며 플레잉코치로 활약한다. 이후 팀은 2점 차이로 간신히 3부리그로 강등을 면했고 시즌 종료 후 그는 팀을 떠났다.

2.2.6. 클라이드 FC

2014년 6월, 선수 겸 감독으로 스코틀랜드 4부리그인 클라이드 FC에 입단했고 시즌 종료 후 현역선수 은퇴를 선언했다.

2.3. 국가대표 경력

U-21대표팀에서 활동하던 퍼거슨은 1998년 9월 5일, 20살의 나이에 리투아니아와의 친선경기에서 A매치 데뷔전을 가졌다. 2004년, 폴 램버트의 은퇴로 인해 대표팀 주장 자리를 이어받은 그는 28경기동안 대표팀 주장으로 출전했다.

2007년 9월 12일 파르크 데 프랭스에서 열린 프랑스와의 유로예선에서 맹활약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같은 해 11월 17일에는 유로 본선 진출의 분수령이었던 이탈리아와의 유로예선에서 동점골을 기록했으나 팀은 종료 직전 크리스티안 파누치에게 통한의 결승골을 허용하며 본선진출이 좌절되고 말았다.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 유럽예선이 진행중이던 2009년 4월 3일, 그는 앞서 상술했던 사건으로 인해 선수단 규율을 심각하게 위반한 후 대표팀에 다시는 출전할 수 없었고 주장 완장을 대런 플레처에게 양도해야했다. 시간이 지난 뒤 2010년, 같이 징계를 받았던 앨런 맥그레거는 대표팀에 복귀했으나 퍼거슨은 클럽에 좀 더 집중하고 싶다는 말을 전했고 그의 대표팀 경력은 그렇게 마감됐다.

3. 지도자 경력

파일:B.Ferguson_Alloa.jpg

선수시절 강력한 리더십을 기반으로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블랙풀에서 활약하던 2014년 1월 21일, 전임 감독이었던 폴 인스의 경질로 인해 플레잉코치로 임시 감독직을 맡았다. 팀의 부진한 상황과 맞물려 일천한 감독 경험으로 인해 지도력은 썩 좋지 않았으나 어찌 운이 좋게도 강등을 면할 수 있었다.

이후 클라이드 FC에 플레잉코치로 입단한 뒤 2014시즌을 마치고 선수은퇴를 선언하면서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부족한 지도력을 보이며 팀의 성적은 하락했고 2017년 2월, 감독직에서 사임한다.

2018년 10월, 스코틀랜드 5부리그인 켈티 하츠의 지휘봉을 잡았다. 그는 이전보다 향상된 지도력을 선보였고 2019-20시즌 로우리그의 챔피언이 되었으나 플레이오프 결승을 앞두고 코로나 19로 인해 리그가 조기종료되면서 아쉽게 승격 도전은 좌절됐다.[5] 2020-21시즌에도 로우랜드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이번에는 플레이오프 결승에서 브레친 시티를 만나 승리하며 마침내 팀의 4부리그 승격을 일궈낸다. 플레이오프를 마치고 퍼거슨은 팀을 떠났다.

켈티를 떠난 후 스코티시 리그 원알로아 애슬레틱 FC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2022년 2월 14일, 성적 부진의 이유로 경질되었다.

4. 기타 경력

은퇴 이후 지도자 이외에도 STV의 온라인 축구토크쇼인 Peter & Roughie's Football Show의 패널로 출연하고 있으며 신문사 데일리 레코드에서 꾸준히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5. 수상 경력

5.1. 선수

5.1.1. 클럽

5.1.2. 개인

5.2. 감독


[1] 2006년 수훈, 5등급 대영제국 훈장 Member of Order of the British Empire[2] 2000년 8월, 라이벌 셀틱 FC에게 6:2로 대패한 후 호텔에서 술에 취한채로 팬들과 충돌하여 몸싸움을 일으키기도 했다.[3] 손가락으로 V자를 표시했는데 이 제스쳐가 영국에서는 뻐큐와 같은 욕으로 간주된다.[4] 1년 연장 계약 조항 포함[5] 스코틀랜드 5부리그는 하이랜드 리그와 로우랜드 리그로 나뉘어져 있으며 양 리그 챔피언이 플레이오프 결승에서 만나 이기는 팀이 4부리그로 승격하는 시스템이다.[6] 스코틀랜드 5부리그[7] 플레이오프 결승전 승리로 승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