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북한의 정치가.2. 생애
1947년 평안남도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는 함경북도의 지방관료로, 1995년 함북 명천군 행정경제위원장을 거쳐 1997년 함북 행정경제위원장에 올랐다. 1998년 7월, 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당선되었으며 책임비서와 인민위원장의 분리임명 정책이 시행됨에 따라 리근모가 가지고 있던 함북 인민위원장 자리를 받았다. 2003년 8월, 최고인민회의 11기 대의원에 재선되었으며 2005년 4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사회주의강성대국 건설에 공을 세운 일군으로 선정되어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2009년 8월, 1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다.그러다가 갑자기 고속승진을 하게 되는데, 2009년 9월 18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전임 재정상 김완수가 해임되고 박수길이 신임 재정상 겸 내각 부총리로 발탁된 것이다.2010년 4월 9일, 최고인민회의 12기 2차 회의에 출석하여 국가예산에 관한 둘째 의정 보고를 맡았다. 2009년 화폐개혁의 실패로 김영일 내각이 숙청당하고 여러 부총리가 해임되는 와중에도 생존했다. 2010년 9월에 열린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 갑작스럽게 보이지 않게 되는데 2010년 11월, 조명록 사망 이후 장의위원에 위촉된 것이 사실상 마지막 경력이었으며 2011년 4월 7일에 열린 최고인민회의 12기 4차 회의까지는 모습을 드러냈으나 그해 12월에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는 내각 부총리임에도 장의위원에서 누락되었다. 병환으로 인한 퇴갤인지 아님 일처리 미숙으로 인한 숙청인지는 알 수 없으나 2012년 2월에 최광진이 후임 재정상으로 나타남에 따라 재정상에서 해임되었음이 확인되었다. 2012년 4월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해임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2012년 4월 13일의 최고인민회의 12기 5차 회의에서 내각 부총리 인선이 있었는데 이때 해임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2014년 13기 최고인민회의 선거, 2016년 7차 당대회에서 모두 소식이 없었다. 주성하 기자의 보도에 따르면, 박남기 처형 이후 새로운 희생양을 찾는 과정에서 그도 걸려들었는데, 이미 폐암 투병으로 반 죽음의 상태였고, 그런 그가 화폐개혁에 개입했다고 뒤집어씌우기 민망해서 정치범수용소로 마무리했는데, 이미 중병인 그를 수용소에 보내자마자 죽어버렸다고 한다. #
3. 참고문헌
- 통일부 정세분석국 정치군사분석과, 북한 주요인사 인물정보 2013(서울: 통일부,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