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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레타니아 군주 ⴱⴰⴳⴰ | 바가 | ||
제호 | 한국어 | 바가 |
베르베르어 | ⴱⴰⴳⴰ | |
라틴어 | Baga | |
생몰 년도 | 기원전 3세기 | |
재위 기간 | 기원전 3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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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우레타니아 왕국 군주.2. 행적
기원전 206년, 히스파니아에서 하스드루발 바르카, 마고 바르카, 하스드루발 기스코의 카르타고군과 함께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의 로마군과 맞서던 누미디아 왕자 마시니사는 일리파 전투에서 참패한 뒤 스키피오와 다시는 싸우지 않겠다는 약조를 한 후 본국으로 귀환하고자 했다. 그러던 중 누미디아의 왕이자 그의 아버지였던 가이아가 사망한 뒤 가이아의 동생 오잘케스가 왕위에 올랐다가 고령으로 사망하고 오잘케스의 동생 카푸사가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는 이에 불복하여 카푸사에 맞서기로 마음먹었다.마시니사에게는 해군이 없었기에, 누미디아에 돌아가려면 북아프리카 해안가를 따라 마사에실리 족의 영토를 지나거나 바가가 다스리는 마우레타니아 왕국의 영역을 통해 사막을 가로질러야 했다. 그는 마사에실리 족의 왕 시팍스가 순순히 협조해줄 리 없다고 판단하고, 바가에게 서신을 보내 자신을 도와달라고 청했다.
바가는 4,000명의 기병을 보내줘서 그를 누미디아까지 호위하게 했다. 마시니사가 누미디아 국경에 도착했을 때, 지지자들이 대거 합류할 거라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고작 500명만 가세했다. 하지만 마시니사는 누미디아 국경까지만 안내하기로 한 약조에 따라 마우레타니아 기병들을 돌려보냈다. 이후 누미디아에 진입하여 여러 마을을 돌며 지지자들을 추가로 확보한 뒤 카푸사와 전투를 벌여 승리하고 마실리 부족의 왕위에 올랐다.
이상은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의 역사서에서 기술된 기록이다. 이를 토대로 추정하건대, 바가는 이베리아 반도와 마사에실리 족의 영토 사이의 영역을 지배했으며, 4,000명의 기병을 선뜻 내줄 정도로 강력한 군사력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사하라 사막을 가로질러 누미디아 국경까지 안내한 것을 볼 때, 그는 사하라 사막에도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