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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3 15:30:50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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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어2. 그림
2.1. 개요2.2. 그림에 대해2.3. 한 장만 그린 게 아니다?2.4. 원본 그림들이 당한 수난2.5. 대중매체에서의 모습

1. 단어

絶叫. 있는 힘을 다하여 절절하게 부르짖는 모습을 뜻하는 한자어.

2. 그림

절규
Skrik
파일:뭉크 절규.jpg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
국가
[[노르웨이|]][[틀:국기|]][[틀:국기|]]
제작 1893년
사조 초기 표현주의
종류 초상화
기법 판지 위에 유화, 템페라, 파스텔, 크레용
크기 73.5cm × 91cm
소장
[[노르웨이|]][[틀:국기|]][[틀:국기|]]
뭉크 미술관

1893년 완성된 절규 시리즈의 첫 작품.

영어: The Scream
노르웨이어: Skrik

2.1. 개요

노르웨이 출신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 1863~1944)가 그린 표현주의 작품으로, 19세기 말쯤에 그려진 작품이다. 공포스러우면서도 자연의 고통의 소리에 고통스러운 표정과 인조적인 것과 자연을 구분 짓는 배경을 그려 내어 지금도 여러모로 회자되고 많이 패러디되는 뭉크의 대표 작품이기도 하다.

흔히 뭉크의 절규라고 많이 불려 작품 이름이 뭉크의 절규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작품명은 뭉크의 절규가 아닌 그냥 절규이다.[1]

2.2. 그림에 대해

이 그림이 엄청난 인기를 끄는 이유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보편적인 경험을 묘사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즉, 이 그림에는 일상생활의 긴장스트레스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이 그림에서 나타난 해골바가지 같은 얼굴에 대해서는 에드바르트 뭉크가 박물관에 전시된 고통스러운 표정의 미라[2]를 보고 영감을 얻어 그렸다는 설이 있으나 정확한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뭉크는 이전에도 끔찍한 공황 발작을 일으키게 되었고, 그 일을 계기로 충격파처럼 인물의 얼굴을 원초적 두려움의 모습으로 변형시키는 일련의 요동치는 선을 통해 절규를 묘사하였다. 또한 자신의 뒤에 걸어오는 2명의 인물을 아무렇지도 않게 그림으로써 이 효과를 강조하였으며, 결국 이 트라우마는 외부 세계에서 온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마음에서 기인했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뭉크는 자신이 크리스티아니아(현 오슬로) 교외에서 산책하고 있었을 때 이 증상이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어느 날 저녁, 나는 친구 2명과 함께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한쪽에는 마을이 있고 내 아래에는 피오르드가 있었다. 나는 피곤하고 아픈 느낌이 들었다. ‧‧‧ 해가 지고 있었고 구름은 피처럼 붉은색으로 변했다.
나는 자연을 뚫고 나오는 절규를 느꼈다. 실제로 그 절규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진짜 피 같은 구름이 있는 이 그림을 그렸다. 색채들이 비명을 질러댔다."[3]승원이
에드바르트 뭉크

실제로 뭉크는 본인 스스로가 죽음과 동거했다는 말을 할 정도로 인생 전체가 불안과 죽음 그자체 였다. 그는 어렸을때 어머니, 큰 누나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나는 걸 목격했으며 여동생은 정신병을 앓았다. 게다가 뭉크는 광신도가 된 아버지에게 엄격하고 무시무시한 교육을 받고 살아왔으며, 매질을 당하고 호되게 혼나는 일이 하루에도 여러 번이었다고 한다.

이런 불행한 유년시절의 영향과 허약한 몸으로 그는 성장하면서 결핵 등의 병을 안고 살아갔고, 그의 여러 작품에서 보이는 와류 같은 흐름이나 붉은 묘사 등은 그의 트라우마나 슬프고 암울하게 살아온 인생에서 기인한 것이라고도 한다.[4] 절규 역시 그러한 그의 인생을 표현한 작품 중 하나였으니 그의 그림에서 두려움, 슬픔, 피 같은 묘사가 보이는 것도 예외는 아니다[출처][6].

후에 뭉크는 이 그림의 모사작에 연필로 "미친 사람만이 그릴 수 있는 것이었다(kan kun være malet av en gal mand)"라고 적어놨다. 이 문장을 보고 뭉크가 쓴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작품을 훼손한 반달리즘인지 여러 추측이 제기되었는데, 뭉크의 일기장과 편지의 글씨체 등과 비교해 본 결과 뭉크가 쓴 것으로 밝혀졌다. 다만 글씨가 쓰여진 시기는 작품을 그린 1893년이 아니라 이후 작품이 전시된 1895년에 쓰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데, 실제 이 작품이 전시되었을 때 "이런 그림을 그린 뭉크의 정신 상태가 건강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평가가 나온 데 대해 이 문장을 나중에 쓴 게 아닐까라는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한편 저 핏빛 배경을 보며 몇몇 과학자들은 인도네시아의 크라카타우섬에서 폭발한 크라카타우 화산에서 뿜어져 나온 화산재가 대기권을 타고 유럽으로 건너가서 하늘을 붉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다만 뭉크가 이 그림을 그린 시기는 1893년이고 크라카타우 화산이 폭발한 시기는 1883년으로 약 10년 정도의 간격이 있고, 위에 언급된 그의 일기에 이어지는 부분에서 그의 친구들은 먼저 걸어갔다고 적혀 있는 것을 볼 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붉은 하늘을 본 것 같지는 않다. 한편 스칸디나비아와 같은 고위도 지역에서 나타나는 특유의 구름인 자개구름[7]을 묘사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고 실제로 배경이 된 에케베르크 언덕에서 노을을 보면 피빛 같은 노을이 나타나기에 나름 신빙성 있는 주장이기도 하다.

또한 뭉크는 이 그림의 배경이 된 에케베르크 언덕을 절규 뿐만 아니라 여러 작품(절망,불안)에서 거의 강박 수준으로 계속 그렸다. 이는 뭉크가 어린 시절에 받은 정신적인 상처와 깊은 연관이 있는 장소[8]였기 때문이며 절규의 인기로 인해 실제 에케베르크 언덕에는 절규의 배경이라는 안내판이 있다.

장 폴 사르트르의 소설 '구토'에서, 주인공이 물가에서 돌을 줍다가 느닷없이 구토감을 느끼는 장면과 흡사하다. 길을 걷는 등의 일상적인 행동 중에 갑작스러운 비현실감과 이인증(Depersonalization)을 느끼는 것은 전형적인 공황발작의 증상이라고 볼 수 있다. 장르는 다르지만 두 작품 모두 현실 세계의 갑작스러운 붕괴와 자신의 존재를 이물질처럼 느끼는 공황장애의 심리묘사(비현실감 또는 자아 상실, 심박수 증가, 가쁜 호흡 등)가 대단히 빼어나게 표현되어 있다.[9]

2.3. 한 장만 그린 게 아니다?

절규는 연작품으로 총 4연작인데 첫 작품은 위의 이미지인 원작이고 두 번째 작품은 1895년 완성된 석판화 형태의 절규이다. 세 번째 작품은 1910년 완성된 템페라 화법[10]으로 그려진 절규이다.

파스텔로 그린 네 번째 절규는 유일하게 민간인이 소장하고 있던 작품으로(나머지 1, 2, 3연작은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 박물관 전시) 2012년 6월 이 작품이 소더비 경매장에 등장했다. 그리고 그 절규는 사상 최고가인 1억 1,990만 달러(1,355억 원)에 낙찰되었다. 2020년 6월, 첼시의 구단주이기도 한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소더비에서 1억 2천만 달러를 주고 샀다는 러시아발 뉴스가 터졌다.

석판화 형태의 두 번째 절규가 2014년 7월 3일부터 10월 12일까지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에드바르트 뭉크전을 통해 한국에 온 적이 있다.

현재 오슬로 뭉크 미술관에서는 총 3점의 다른 절규를 전시중이며, 보존을 위해 몇 분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공개하고 있다.

2.4. 원본 그림들이 당한 수난

이상하게도 전시된 유명 그림들 중에서도 유난히 자주 도난당했다가 되찾은 그림이다. 국립 박물관에 전시된 절규 중 한 그림은 1994년 도둑맞았다가 3달 만에 겨우 되찾았으며, 또 지난 2004년 8월 22일 무장 괴한 2인조에게 도난당했다가 2년 만인 2006년에 노르웨이 경찰되찾았다.

2.5. 대중매체에서의 모습

이 그림은 직관적이면서도 강렬한 작품인 탓에 전 세계적으로 패러디 대상이 되었다. 절규 패러디라는 구글 자동 완성 검색어도 있다. 영문 검색어로는 더 많이 뜬다.

물결 모양으로 변형된 사람의 얼굴의 포스가 여러 공포 소재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고스트페이스의 마스크가 가장 대표적인 예. 닥터후에 등장하는 외계 생명체인 사일런스의 얼굴의 모티브도 이 절규로, 드라마 내에서 기억은 못 하지만 유달리 섬뜩한 얼굴 중 하나로 꼽힌다.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심의 결과에서 '공포' 요소로 비슷한 그림이 사용되기도 한다.

[1] 이는 "절규" 자체는 1번 문단에서 볼 수 있듯이 그냥 한자어에 일반 명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인 뭉크의 이름까지 붙여서 부르는 편이다. 즉 "뭉크가 하는 절규"가 아니라 "뭉크가 그린 절규"이다.[2] 잉카마야 지역의 남미 미라라고 한다. 깜놀 주의[3] 그런데 뭉크가 묘사한 내용대로라면 그림의 인물은 절규하고 있는 게 아니라 자연의 절규를 듣고 있는 것이다. 이미지로만 느껴지는 부분에서 잠시 떠나서 잘 관찰하면 알 수 있는 것이 귀를 막고 있다는 점이다. 언뜻 보기에는 볼에 손을 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쉽지만 들려오는 비명을 듣지 않기 위해 귀를 막는 것이고 그렇다면 당연히 그림의 인물이 직접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4] 실제로 뭉크는 여러 번의 사랑 실패와 유년시절 트라우마로 괴로워 하다가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출처] 라이프 사이언스 라이브러리(Life Science Library). 한국일보 타임-라이프[6] 미국의 과학 전집 도서로, 70년대에 출판됐으며 이 책의 자매 시리즈로는 생물 등을 다룬 라이프 네이처 라이브러리(Life Nature Library)가 있다. 라이프 사이언스 라이브러리의 한국어 번역판은 한국일보 타임-라이프에서 출판하였으며, 26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매판 라이프 네이처 라이브러리도 한국일보 타임-라이프에서 번역 출판 하였다. 이 과학 전집의 심리에 대한 파트(The Mind)에 정신 질환을 가진 사람들의 그린 그림에 대한 묘사와 뭉크의 과거가 수록되어 있다.[7] 이 구름은 성층권에서 형성되기 때문에 해진 직후에 특유의 붉은빛으로 빛난다.[8] 어머니와 누나, 아버지의 장례식이 잇달아 에케베르크 언덕에서 치러졌다. 게다가 정신질환을 앓았던 여동생 라우라가 입원했던 정신병원도 그 근처였기에 뭉크가 여동생 면회를 갈때 자주 지나가곤 했다.[9] https://ijels.com/upload_document/issue_files/34IJELS-107202027-Sane.pdf[10] 달걀노른자, 벌꿀, 무화과즙 등을 접합체로 쓴 투명 그림 물감 및 그것으로 그린 그림을 칭한다고 한다.[11] 김홍도의 서당을 야자라고 하질 않나 생각하는 사람을 릴렉스 컴다운 렛츠고라고 하질 않나 모나리자를 쌩얼이라고 하질 않나...[12] 밋밋하게 표현되었지만 김병만이 한민관을 깨물자마자 원작 못지 않은 표정으로 변했다(...)[13] 홍인규는 미련이 남았는지 '집으로'에서도 두 번이나 호이홍 더하고 싶다고 고집을 부렸다(...)[14] 만화 14권 Part 9, 애니메이션 열투편 62화.[15] 웃음을 억지로 참는듯한 모습으로 표현되었다.[16] 사실 전에 이미 서번트들 세미누드 포스터로 여러 가지 의미로 크게 주목을 받은 전적이 있었다. 그런데 명화를 패러디한 마스터들 포스터는 정말 무슨 마약을 했길래 이런게 튀어나올까 싶을 정도로 보는 이의 정신을 파괴하며 동인녀들도 어이를 상실했다. 카리야가 패러디당한 뭉크의 절규 표정이 포스터를 보는 이의 심정을 대변해 주는 것 같다는 평을 들었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