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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6 18:51:00

모리타 카즈요시 아워 웃어도 좋다고!

파일:와랏테 이이토모 로고.jpg

1. 개요2. 기획 의도3. 프로그램의 구성
3.1. 오프닝3.2. 고정 코너
3.2.1. 텔레폰 쇼킹3.2.2. 요일 대항 이이토모 CUP
3.3. 엔딩
4. 사건·사고

1. 개요

모리타 카즈요시 아워 웃어도 좋다고(森田一義アワー 笑っていいとも!)는 1982년 10월 4일부터 2014년 3월 31일 종영될 때까지 평일인 5일 동안 낮 12시부터 1시에 후지 테레비에서 생방송으로 방영된 예능 프로그램이다. 진행자는 타모리. 녹화는 신주쿠에 위치한 스튜디오 알타에서 했다.

1989년부터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점령했고, 2014년 3월 31일 종영될 때까지 무려 26년동안 동시간대 시청률 수위방송기록을 지키며 일본을 대표하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성장하였다. 전성기에는 점심 시간이면 어느 식당에서나 이 프로그램을 켜놓을 정도로 대인기였던 프로그램이었다.

2014년 3월 31일자로 종영되었다. 타모리가 건강이 안 좋아진 아내의 병간호를 하기 위해서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고 싶다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마지막회가 방송된 날 저녁의 종영 특집 특별프로그램에 등장한 게스트들이 후덜덜한데, 오프닝부터 타모리가 평상시 팬이라고 언급했던 요시나가 사유리가 영상 중계를 통해 프로그램의 마지막을 축하해주었고[1] 이후 아카시야 산마가 출연한 것을 시작으로 일본의 거물급 연예인들이 차례로 등장[2][3][4]하다가 무려 아베 신조까지 텔레폰쇼킹의 게스트로 등장. 방송 마지막에는 게스트로 비트 다케시가 등장하여 방송불가용어로 점철된 축사를 생방송으로 읽는 위엄을 뽐내면서 종영되었다, 이 외에도 야후 재팬에서는 <모리타 카즈요시 아워 웃어도 좋다고!>의 종영을 맞아 첫 페이지의 디자인을 바꾸는 등, 일본을 대표하는 방송답게 전국적인 스케일의 반응들이 이어졌다.

방송 기간은 총 31년 6개월으로 2014년 3월 31일(최종회)에서는 8,054회 방송 횟수를 기록하여 프로그램은 "생방송 예능 프로그램 방송 횟수 신기록", 타모리는 "생방송 예능 프로그램 단독 진행 최장 기록"으로 각각 기네스북에 선정되었다.

2. 기획 의도

비트 다케시, 아카시야 산마, 시마다 신스케 등으로 대표되는 2세대 게닌들이 대거 출연했던 예능 프로그램 <웃을 때입니다 (笑ってる場合ですよ)>가 "점심 시간에 보기에는 너무 과격한 개그를 방영한다."는 항의를 받아 일찍 종영되자 프로듀서 요코자와 다케시가 <웃을 때입니다>의 후속 프로그램으로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의 모토는 "친구처럼 편하고 아무 부담없이 볼 수 있는 방송"이었다.

당시만해도 음담패설로 유명한 심야 방송 전용 게닌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타모리를 낮 시간대에 캐스팅하는 파격적인 면모를 보여준 프로그램이었다.[5] 또한, 프로그램의 모토에 걸맞게 출연진들이 시청자들과 함께 소통하는 코너들을 지속적으로 신설하였고 그간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사회의 각종 유명 인사들이 코너의 게스트로 출연하거나 인기 연예인들이 코너의 레귤러 멤버로 활약하였다.

3. 프로그램의 구성

타모리는 프로그램의 전체 진행을 맡았으며 매 요일마다 다른 코너와 다른 레귤러 멤버들이 출연했다.

기본적인 프로그램의 구성은 아래와 같았다.
오프닝 → 일일 코너 ① → 텔레폰 쇼킹 → 일일 코너 ② → 일일 코너 ③ → 요일 대항 이이토모 CUP → 엔딩

혹은

오프닝 → 일일 코너 ① → 일일 코너 ② → 텔레폰 쇼킹 → 일일 코너 ③ → 요일 대항 이이토모 CUP→ 엔딩

'텔레폰 쇼킹'과 "요일 대항 이이토모 CUP"은 고정 코너였고 생방송이었기 때문에, 텔레폰 쇼킹이나 2번째 일일 코너가 길어질 경우 일일 코너 3을 중지 또는 단축하기도 했다.

3.1. 오프닝


이이토모 오프닝 모음

이이토모 청년대가 프로그램 주제곡인 "우키우키 WATCHING"이라는 노래를 춤을 추면서 부르며 방송이 개시되었고 이후 타모리가 노래를 이어부르며 스튜디오에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방송이 시작되었다. 1984년부터는 타모리가 곡 중간애 "예이!"이라고 추임새를 넣으면 관객이 응답하는 패턴도 만들어지게 되었다.

노래가 끝나면 1994년 9월까지는 중간 광고가 방영되기 전 약 1분 동안 타모리가 프리 토크를 하였으며, 1994년 10월 이후에는 오프닝에 각 요일 레귤러 진이 등장하고 중간 광고로 전환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3.2. 고정 코너

3.2.1. 텔레폰 쇼킹

매번 다른 게스트[6]가 프로그램에 초청되여 타모리와 토크를 하는 코너. 프로그램 첫회부터 마지막 회까지 유일하게 종영되지 않고 방송된 장수 코너이며 이 프로그램의 간판 코너였다. 첫회의 게스트는 사쿠라다 준코였으며 마지막회의 게스트는 비트 다케시였다. 이 코너에 가장 많이 출연한 연예인은 톤네루즈였다.

자신이 일본의 셀레브리티라는 것을 증명하는 확실한 방법이 테츠코의 방이나 텔레폰 쇼킹에 게스트로 캐스팅되는 것이라는 속설이 있었을 정도로 인기있는 코너였으며 실제로도 연예인뿐만 아니라 작가, 스포츠 선수, 예술가, 국회 의원 등 사회 각 분야의 유명한 사람들이 코너의 게스트로 출연하였다.

코너에 출연하는 게스트에게 지인들이 코너 출연을 축하하는 화환과 축전을 보내는 것이 관례였으며 타모리가 화환과 축전을 보낸 유명 인사들과 기업 등을 몇 건 소개한 뒤 게스트와 동시에 자리에 착석하고 타모리가 게스트에게 지난 게스트의 메세지를 전하는 것으로 코너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게스트가 타모리에게 선물을 건내는 것을 시작으로 토크가 진행되었다.

출연한 게스트가 토크 막바지에 친구를 소개하는 형식으로 다음날(금요일의 경우는 다음주 월요일)에 등장하는 게스트를 소개하고 타모리가 전화로 출연 제의를 신청하는 것이 컨셉이었다. 전화를 통해 타모리가 "내일 올래?""라고 질문하면 의뢰를 받은 사람이 "좋고 말고!(이이토모!)"라고 답하는 형식이었다.

3.2.2. 요일 대항 이이토모 CUP

매주 다양한 게임을 각 요일 레귤러진 5,6명이 진행, 1주일을 통틀어 가장 성적(기록)이 좋았던 요일 팀이 우승하는 코너.

연말 연시의 시점에서 가장 승리 횟수가 많았던 요일 팀이 연말 특별 프로그램 『 특대호』의 엔딩 부분에서 연간 종합 우승으로 발표되고 연간 우승 요일 레귤러진에게는 "이이토모 컵"의 트로피와 금일봉 및 기념 반지가 증정되었다.

만약 연간 최다 승리 횟수가 같은 팀이 나오면 연장전을 하지 않고 동시 우승으로 취급했다.

3.3. 엔딩

그 날 등장한 요일 레귤러진아나 텔레폰 쇼킹의 게스트가 타모리와 함께 무대에 나온 후 타모리가 당일 방송 내용을 회고한다. 이후 방송 종료 시간이 되면 타모리가 관객들에게 "내일도 봐줄꺼야?"라고 질문하고 출연진과 관객들 전원은 "그렇고 말고!(이이토모!)"라고 큰소리로 답하면서 프로그램이 종료되었다.

4. 사건·사고



[1] 요시나가 사유리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은 14년만의 일이라서 출연진이나 TV를 보고 있던 일본 대중들 모두가 놀랐다. 다만 당시 사유리는 영화 촬영 중이었기에 스튜디오 알타로 가는 것이 불가능해서 촬영장에서 영상 중계 형식으로 방송에 출연했다. 사유리가 타모리에게 선물한 명품 가방이 스튜디오에 도착하고 두 부부끼리 같이 저녁을 먹자는 약속도 정하면서 훈훈하게 대화를 끝냈다.[2] 특히 화재가 된 부분이 아카시야 산마의 토크중에 다운타운과 웃쨩난쨩이 난입하고, 다음으로 톤네루즈폭소문제, 나인티나인 등이 차례로 난입하는 장면. 이 중 나인티나인을 제외하면 한자리에 모인다는 것 자체가 톱뉴스급인 사람들 뿐이고 그 중에서도 다운타운과 톤네루즈는 불화설과 함께 "절대 함께 방송하지 않는 라이벌" 취급이기에 이후로도 한동안 화제가 되기도 했다.[3] 여러 방송에서 나온 뒷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원래는 저 사람들이 각자 15분씩 맡아서 따로따로 촬영하고 서로 만나지는 않을 예정(특히 다운타운과 톤네루즈)이었는데 타모리와 산마 세대에서 자주 하던 난입 개그를 해 보면 재미있겠다 싶어서 다운타운과 웃쨩난쨩이 난입(원래는 제작진 쪽에서 추진했는데 산마가 "타모리씨 방송인데 내맘대로 할 수는 없지"라며 거절했었다고 하는데 다운타운과 운난이 눈치채고 쳐들어간 거라고)하고, 이 때 마츠모토 히토시가 "이 방송 보면 SNS가 난리난다"라는 말을 하자 톤네루즈가 "그래? 기왕에 그렇게 될 거면 우리도 가자"라고 해서 폭소문제에게 말하고 바로 난입(원래 다운타운, 웃쨩난쨩 차례인 30분을 채운후에 나올 예정)을 했다고 한다. 산마는 이걸 보고 "(약간 기대는 하고 있었지만) 우리세대의 개그를 잊지않고 해 준 후배들에게 고맙다"라고 언급.[4] 무엇보다, 세간의 일반적인 인식으로는 절대 함께 공연하지 않을 사이라고 하던 톤네루즈와 다운타운은 사실 별로 소원한 사이도 아니었고 "그렌드 피날레는 축제다"라는 생각이 있었기에 방송국에서 말리는 걸 뿌리치고 뛰쳐나갔지만, 다운타운(특히 마츠모토 히토시)과 폭소문제(중에서도 오오타 히카리)는 진짜로 사이가 험악했던 관계였던지라(실제로 다운타운과 톤네루즈는 간간히나마 함께 나온적이 있지만 다운타운과 폭소문제는 함께 나온적이 없다) 후배들도 모두 놀랐다고 할 정도였다. 실제로 톤네루즈가 "어이 폭소문제 너희들도 함께 나가자"라고 권하자 오오타가 엄청 당황했었다고. 결국 톤네루즈가 먼저 나가서 분위기를 잡아주자 폭소문제는 나중에야 나왔고, 방송이 끝난 후에 마츠모토가 "(우리에게 맞춰줘서)고맙다"라고 오오타의 어깨를 두드려주자 오오타도 선배와 화해하게 되었다는 뒷이야기가 있다.[5] 요코자와 다케시가 라디오 프로그램 <단연코 타모리의 재미있는 대방송>이 주부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아 "낮의 타모리도 보고 싶다."고 생각하여 케스팅했다고 한다. <단연코 타모리의 재미있는 대방송>은 1980년 10월 6일에서 1988년 4월 2일까지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에 저녁 6시부터 2시간 동안 생방송으로 송출된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타모리와 여성 연예인들이 토크를 하는 코너인 <미녀 대담>, 그전까지 방송에서는 금기에 가까웠던 부부간의 밤 생활 비화 등을 투고하는 <전화 투고 코너>가 화제가 되었다.[6] 프로그램 내에서는 "전화 손님"이라고 부른다.[7] 오싱을 집필한 일본 드라마 각본계의 최고 전설 중 한 명이다.[8] 정체는 폭소문제의 오오타 히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