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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 메스 프랑스어: Metz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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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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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스 시 중심부의 모습. 중앙 오른쪽의 큰 성당은 생테티엔 성당(Cathédrale Saint Étienne de Metz). | |||||
<colbgcolor=#0055A4> 국가 | |||||
주 | 그랑테스트 | ||||
데파르트망 | 모젤(Moselle) | ||||
면적 | 41.94km² | ||||
인구 | 120,874명[1] | ||||
인구밀도 | 2,900명/km²[2] | ||||
시간대 | UTC+01:00 | ||||
우편번호 | 57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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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동부 그랑테스트 주의 모젤 데파르트망에 위치한 도시. 독일어과 영어로는 철자는 같지만 메츠라고 부른다. 주를 구성하는 알자스-로렌 지방 중 로렌 지역의 중심 도시이며 인구는 12만명이다. 라인 강의 지류인 모젤 강변에 위치하며, 로마 유적과 중세와 근대 건축물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다.2. 역사
독일의 문[3]
로마 제국 시대의 이름은 디보두룸 메디오마트리쿰(Divodurum Mediomatricum)이었다. 415년에 훈족에게 파괴되었으나 곧 복구되었다. 프랑크 왕국의 메로비우스 왕조 시절에는 아우스트라시아 (왕국 동부)의 궁정이 위치하여 카롤루스 왕조의 고향이 되었다. 843년의 베르됭 조약 이후 중프랑크 왕국 (로타링기아)[4]의 수도가 되었으며 910년에는 동프랑크 왕국령이 되었고 959년부터 로렌 공국의 수도가 되었다. 1095년의 군중 십자군 시에는 대규모 유대인 학살이 일어나는 흑역사를 겪었다.
1189년부터 메스는 중세 서유럽 (영,프,독)의 첫 번째 공화국인 메츠 공화국의 수도로 번영하였으나 이탈리아 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른 1552년에 프랑스 국왕 앙리 2세가 작센의 모리츠 선제후를 지원하는 대가로 툴, 비르텐과 함께 얻으면서 프랑스령이 되었다.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가 도시를 포위하였으나 함락에 실패했고, 동생 페르디난트 1세는 메츠, 툴, 비르텐의 프랑스 점유를 사실상 인정했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이 체결되어 공식적으로 프랑스 영토가 되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몰락 과정에서 연합군이 도시를 포위하였으나 역시 물러나야 했다. 하지만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발발하자 프로이센군에게 함락되었고 프랑크푸르트 조약에 따라 독일 제국령으로 편입되어 무려 300여 년 만에 독일의 지배하에 놓였다. 독일 제국 시기(1870 ~ 1919년)에는 엘자스로트링겐 제국영토에 속했다. 메츠의 프랑스인들은 낭시와 파리로 이주하였으며 1890년대를 지나면서 서서히 독일인 인구가 많아졌다. 독일 당국은 모젤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독일어로 가르쳤고, 프랑스어는 외국어로 허용되었다. 하지만 메츠의 원주민들은 사적으로는 프랑스어를 썼으며, 이에 대해 독일 정부는 각종 건물들과 요새를 만들어서 프랑스로 부터 메츠를 지키려고 했다.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는 매년 메츠를 방문하여 공사 현장을 시찰하였으며 "메츠와 그 군대는 독일 군사력의 초석이며 독일의 평화, 나아가 유럽 전체의 평화를 보호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평화를 수호하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독일의 패전으로 끝난 후 베르사유 조약으로 프랑스로 돌아왔으며,1918년부터 1919년 사이 독일계 주민들이 대량으로 추방되었다. 하지만 48년 간 독일의 지배하에 있던 메츠는 독일어와 프랑스어를 능숙하게 사용되었고 따라서 메츠 주민들은 프랑스-독일의 경계 사이에 존재하였다. 1940년 제2차 세계 대전 때 다른 프랑스 북동부 도시들과 함께 나치 독일 치하에 놓였다. 처음 독일은 프랑스인들의 감정을 고려해서 메츠를 위시한 모젤 지역을 합병하지 않았지만, 프랑스 괴뢰 정부인 비시 프랑스가 연합군에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자 이 지역을 독일로 합병하였다. 메츠는 프랑스 레지스탕스 운동의 거점이기도 했으며, 레지스탕스 지도자인 장 물랭은 메츠의 기차역에서 사망하였다. 1944년 9월 27일 조지 패튼이 이끄는 미 제3군은 메츠를 공격했고 2달 간의 격전 끝에 점령하였고, 전후 다시 프랑스가 수복했다.
3. 교통
도시에서 25km 남쪽에 메츠 낭시 로렌 공항이 위치해있다.4. 경제
역사적으로 이 곳에 철이 많이 나서 철강 산업이 발전하였다. 하지만 프랑스의 제조업이 쇠퇴하면서 메스의 철강 산업이 쇠퇴하였다. 그래서 산업 다각화를 위해 PSA, 푸조, 시트로앵, SFR, TDF와 같은 기업들이 메스 교외에 공장과 센터를 설립하였다. 또한 메츠는 연간 400만톤 이상의 곡물을 생산하는 항구의 본거지이기도 하다.5. 명소
- 퐁피두 센터 메츠 (Centre Pompidou-Metz) : 일본의 건축가인 반 시게루가 중국 모자에 영감을 받아 설계한 건물로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퐁피두 센터의 분점이기도 하다.
- 메츠 대성당 (Cathédrale Saint-Étienne de Metz) : 1520년 만들어진 고딕 양식의 대성당으로 세계에서 가장 넓은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다. 이를 보고 프랑스인들은 좋은 주님의 등불(la Lanterne du Bon Dieu)이라 불렀다. 가장 유명한 유물은 샤를마뉴의 망토와 7세기에 만들어진 성 아르눌의 반지이다.
- 메츠 오페라 하우스(Opéra-Théâtre de Metz Métropole) : 1752년에 만들어진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오페라 하우스.
- 독일의 문 (Porte des Allemands) : 15세기에 만들어진 메츠의 정문.
- 새 교회 (Temple neuf) : 메츠가 독일이 지배하던 시기 만들어진 신로마네스크 양식의 개신교 교회로 1904년 독일의 황제인 빌헬름 2세와 그의 아내가 참석한 가운데 개관하였다.
- 황제 광장 (Quartier impérial de Metz) : 프랑스 땅이었던 메츠를 독일화하기 위해 만든 광장으로 중앙역의 급수탑, 생트 테레즈 교회, 세르페누아주 문, 주지사 궁이 유명하다.
- 생 피에르 오 노네인 성당 (Église Saint-Pierre-aux-Nonnains de Metz) : 4세기에 지어진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로마 시대에는 공중 목욕탕이었지만 7세기에 성당으로 개조되었다.
- 메츠 박물관 (Musée de la Cour d'Or - Metz Métropole) : 1839년 설립된 박물관으로 갈리아의 로마화를 보여주는 갈로로만 유물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6. 자매 도시
7. 출신 인물
- 폴 베를렌 : 프랑스의 시인
- 장 마리 스트로브 : 프랑스의 영화 감독 듀오인 스트로브-위예 중 한 명. 스트로브는 프랑스 국적이지만 독일에서 활동했다.
- 에밀 베낭트 : 프랑스의 축구 선수 겸 감독
- 하인츠 하르멜 : 2차 대전 시기 독일 친위대 장군
- 구스타브 칸 : 프랑스의 시인 겸 평론가
- 장 프랑수아 팔리트르 드 로지에 : 몽골피에 형제의 열기구를 탄 첫 번째 사람. 나중에 열기구를 타고 영국 해협을 건너려다가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