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울어라, 펜의 에피소드로, 이야기를 완결시키는 것에 대한 창작자의 고뇌를 다뤘다. 수많은 에피소드 중에서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도 많고, 상당히 의미심장한 내용과 촌철살인의 명대사를 담고 있기에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에피소드다. 화수는 신 호에로 펜 31화. 단행본 8권.2. 내용
2.1. 탁상공론
거장 만화가 후지타카 쥬비로는 매일 고통스러운 악몽을 꾼다. 그 내용은 무수히 많은 보자기를 하나하나 접으면서 모두 수습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절망하는 꿈. 꿈에서 깨어난 후지타카가 마주한 현실은 자신의 최대 걸작 헛짓거리 서비스[1]가 완결까지 3개월(12화 분량)을 앞둔 상황. 하지만 그동안 뿌려놓은 떡밥과 캐릭터들이 너무 많아 이걸 다 기간 내에 수습할 수 있을지 괴로워하고 있었으며, 이후 동료 만화가인 호노오 모유루, 나가레보시 쵸이치로를 불러 상담하고 있었다.후지타카가 처음 제시한 방법은 내레이션과 캐릭터의 대사량을 늘려 떡밥을 한꺼번에 푸는 것. 하지만 호노오는 정보량이 너무 많은 데다 말풍선 때문에 오히려 가독성이 떨어져서 안 하느니만 못하니 전부 수습하는 건 포기하고, 주요 캐릭터들만 어떻게든 수습하라며 일침했지만, 후지타카는 그동안 그려온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모두 끝내고 싶다는 작가주의에 의해 괴로워한다. 이 와중에 나가레보시는 보자기를 수습하는 게 뭐냐[2]는 기초적인 질문을 한다. 이에 후지타카는 어느 만화에 나오는 반전을 예시로 들며, 떡밥 회수는 독자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 방향으로 서사를 마무리해야 하는 작가의 책임이라고 주장하는데...
왜? 왜 꼭 (복선을) 착지시켜야 하는 건데? 책임이란 건 뭐냐고? 매번, 매 화마다 재밌게 만들어 주는 것이 더 중요하잖아?
나가레보시 쵸이치로는 굳이 수습할 필요 있냐고 반문한다. 오히려 매 화마다 재미있는 게 중요하지 굳이 마지막 화에 쓸데없이 힘써서 명작을 만드는 데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애초에 만화는 짧은 순간에도 독자가 즐길 수 있다면 그걸로 좋은 거라고 가르쳐준 건 후지타카였기에, 후지타카도 별 반문을 못한다. 거기에 갑자기 결말 잘해서 명작 대열 들어가려고 하냐고 비난도 한다. 그리고 여기에 이어 나가레보시는 정 명작을 만들고 싶다면 요즘 방식대로 하라고 한다.마지막 화에서 조지는 것이! 명작의 조건이라고!!!!
最終回でコケるのが!!名作の条件なんだよ!!!
나가레보시가 주장하길 마지막 화를 독자들이 납득하는 방향으로 끝내는 건 평소에 비축하면서 그리는 사람뿐이지만, 정작 그렇게 일일히 힘을 비축해서 안전빵 에피소드를 그리는 동안 독자들은 재미없다며 떡밥 다 풀릴 때를 기다리느라 잡지는 안 사고 단행본만 살 뿐이라고 한다. 그러니 연재하는 동안 성과를 내려면 스토리나 설정에 온갖 신경 쓸 시간에 매 화마다 재미를 주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게 낫다는 논리.最終回でコケるのが!!名作の条件なんだよ!!!
첨언하자면 평범하게 그리다가 마지막을 조지라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에 수습할 수 없어서 엉망진창으로 끝날 만큼 매 화를 마구 달려야 한다는 뜻이다. 뒷생각, 나중에 수습할 생각은 안 하고 자극적인 내용만 일단 던져서 흥미 유발하는 데 중점을 두는 요즘 만화 업계를 생각하면 상당히 의미가 있는 발언이다.
이에 옆에서 듣고 있던 보타Q 전 편집장도 한마디 거들기를 아무리 천재라도 100화를 연재하다 보면 1편 쯤은 재미 없는 화가 나오지만, 진정한 천재는 그 재미 없을 부분을 맨 뒤로 미룬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비록 결말은 조졌어도 거기에 다다를 99화 동안은 독자들이 즐겼으니 그걸로 된 거 아니냐며 어느새 나가레보시와 의기투합을 하고, 이를 본 후지타카[3]와 호노오는 어쩐지 네 만화가 하나같이 그 모양이더라라며 나가레보시의 연재 경력을 납득한다.
아~ 그렇긴 하지. 나온다고, 인간의 어둠! 세계의 파멸! 모든 것이 붕괴할 날은 눈앞에!
....그치만, 모든 것의 붕괴 같은 건 난 그릴 줄 모르거든! 잘 알지도 못하고!
하지만 부채질은 하고 있어! 부채질하면 독자들이 기뻐하거든! 지들 멋대로!
(나가레보시가 던진 떡밥에 낚여서 자기들 멋대로 설정놀음을 하는 독자들은) 작가인 나보다 더 엄청난 영역에 가 있더라.
나가레보시 曰
....그치만, 모든 것의 붕괴 같은 건 난 그릴 줄 모르거든! 잘 알지도 못하고!
하지만 부채질은 하고 있어! 부채질하면 독자들이 기뻐하거든! 지들 멋대로!
(나가레보시가 던진 떡밥에 낚여서 자기들 멋대로 설정놀음을 하는 독자들은) 작가인 나보다 더 엄청난 영역에 가 있더라.
나가레보시 曰
나가레보시의 만화는 매 화마다 스토리 진행은 없으면서 항상 회수도 못할 새로운 복선을 던지곤 하는데, 본인은 이걸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시키기 위해서라고 주장했으며, 보타Q도 이런 식으로 99화 동안 독자들이 알아서 즐기게 해준 덕분에 잘 팔린다고 시시덕대는 꼬라지를 보고 후지타카와 호노오는 나가레보시는 빼고 상담을 마저 진행하기로 한다. 편집장 입장에서는 연재 동안 잡지가 잘 팔리면 그만이지만 만화가로서는 작품을 제대로 완결시켜야 한다는 책임감과 함께, 끝마무리를 계속 망가트려버리면 그 다음부터는 독자들이 믿지 않게 된다는 위험성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호노오도 후지타카의 상담 상대가 될 수 없긴 매한가지였는데, 호노오는 후지타카와 달리 떡밥 회수 자체를 못 했기 때문. 가령 일반적인 만화에서 '주인공을 구해주는 남자가(복선)→실은 아버지였다(회수)'는 식으로 전개하는데, 호노오는 '주인공을 구해주는 남자가(복선)→아버지보다 수준 높은 남자다(?!)'라는 식으로 전개해버려서 재미가 없는 건 둘째치고 애초에 복선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4] 이 말을 들은 나가레보시도 어이없어 하더니 상담은 어느새 호노오 극딜로 변질되었다.
2.2. 폭풍전야
결국 후지타카는 상담 결과와는 별개로 일단은 제대로 그려내겠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다음 연재호를 본 호노오는 후지타카가 기어코 저질렀다고 경악한다. 완결 11화를 앞둔 상황에서 중요도 D급 조연의 서사부터 '제대로' 풀기 시작한 것.[5] 헛짓거리 서비스의 애독자였던 호노오는 분명 재미는 있었지만 주인공의 서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스토리였던지라 이러다 주인공 스토리는 못 끝낼 거라며 전전긍긍하는 와중에 후지타카의 연재처에서 연락이 온다. 알고 보니 헛짓거리 서비스가 완결되면 자신이 연재할 예정이었던 것. 이 말을 들은 호노오는 자신의 새 연재를 좀 늦추면 후지타카가 그릴 분량이 늘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자신은 독자인 동시에 작가로서 사사로운 감정으로 자신의 일을 소홀히 할 수 없다고 고민하던 중 묘안을 떠올린다.그리고 호노오의 신 연재 소식은 후지타카에게도 전해졌는데, 호노오는 헛짓거리가 완결된 직후가 아닌 마지막 화로부터 4화 전에 연재하기로 결정하자 후지타카는 헛짓거리의 마지막 화 vs 신작의 도입부로 겨룰 생각이냐며 긴장하지만, 담당 편집자는 긴장해야 할 건 지금 당신 연재 페이스라고 깐다. 후지타카가 조연부터 순차적으로 서사를 푸는 페이스가 계속되면 주인공과 히로인의 서사는 못 끝내기 때문. 하지만 후지타카는 사람에게 우열은 없다, 내가 만든 캐릭터 역시 조연 주연 할 거 없이 모두 똑같이 소중한 존재라며 조연에서 주연까지 '제대로' 그려내겠다고 주장한다.
2.3. 그리고…
당연히 완결이 가까워지는 와중에도 주인공의 얘기는 코빼기도 안 보여서 독자들은 물론, 호노오도 실시간으로 똥줄이 탔지만 그와 동시에 호노오의 연재일도 다가오면서 호노오가 왜 연재일을 헛짓거리의 완결 4화 전으로 결정했는지 밝혀졌다. 알고 보니 호노오는 자신의 신작은 미루고 자신의 연재 분량을 써서 헛짓거리 서비스에서 가장 뽕이 차는 명장면(=주연들의 서사)을 날치기, 아니 대리 연재할 계획이었던 것.[6] 호노오의 어시스턴트들도 미친 짓이라고 경악하다가 자신들이 보고 싶은 헛짓거리 서비스의 진정한 클라이맥스를 보고 싶다며 호노오를 돕기로 한다. 편집부 역시 작품을 깔끔히 완결하는 쪽이 좋을 테고, 호노오와의 콜라보라고 홍보하면 더 잘 팔릴 거란 이유로 수락.호노오가 이전에 대필을 했던 적이 있는 만큼[7] 후지타카는 처음엔 위화감 없이 감상하다가 자신이 그린 적 없는 페이지[8]가 끼어있는 걸 깨닫고 나서 놀라 호노오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렇게 두 작가의 우정을 다시 확인....하긴 개뿔, 자기가 그리고 싶은 부분을 멋대로 그렸다며 호노오한테 죽빵을 날린다. 호노오를 찾아갔을 땐 이미 자신이 그리지도 않았을 헛짓거리 서비스의 클라이맥스 원고가 한가득 쌓여있었는데, 이를 재빨리 훑어 본 후지타카는 자신의 작품을 완벽히 이해한 호노오에 대한 기쁨 & 본인 작품도 아닌데 완성도 높고 재밌다는 분함 & 이걸 내가 그렸어야 했는데라는 울분이 교차한 나머지 호노오를 한대 더 후려친 후 원고를 가져간다.
2.4. 후일담
헛짓거리 서비스는 호노오의 추가 분량까지 합쳐서 성공적으로 모든 보자기를 회수하고 완결하는 데 성공했다. 훗날, 후지카타는 헛짓거리 서비스의 완결권 마지막 장면에 special thanks 호노오라는 문구를 적어두었으며, 연재를 끝낸 후 보자기를 모두 회수한 꿈을 꾸며 숙면했다.그리고 호노오는 헛짓거리 서비스의 원고에 모든 힘을 쏟아부은 나머지, 신작은 매우 부진한 성적을 냈다고 한다.
3. 설명
이 에피소드는 결말이나 설정 등에 대해 지나치게 무책임한 태도를 보여 자신의 역량 이상으로 스토리를 벌려 놨다가 수습하지 못하는 작가들이나 초반과 후반의 내용이 맞지 않거나 막판까지 잘 나가면서 호평받았는데 결말에서 자폭하는 장편 소설,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영화, 드라마[9]들에 많이 인용한다.[10]또한 후반에 주인공이 후지타카의 막판 연재를 대신 해주는데, 이것은 실제로 호에로 펜의 작가인 시마모토 카즈히코가 후지타와 절친이라 최종장을 연재할 때 자신 휘하의 어시스턴트를 총동원하여 적극적으로 서포트해 준 현실을 (비틀어서) 반영한 것이다. 그래서 꼭두각시 서커스 최종권의 special thanks에는 시마모토의 이름이 명기되어 있다.
한편으로는 무단 대리 연재라는 호노오의 기행과 여기에 이은 후지타카의 격렬한 빡침 때문에 묻혔지만, 사실 작중에서 호노오와 후지타카는 이상적인 작가와 독자의 모습을 보였다. 후지타카는 본인 말마따나 독자가 기대하는 방향으로 떡밥을 회수하려 했는데,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후지타카가 장기 연재를 하면서 이상적인 마무리를 연상시킬 수 있도록 빌드업을 잘 해놓았기 때문이고,[11] 호노오는 애독자로서 후지타카의 빌드업을 보고 어떤 서사를 의도했는지 파악하고 그려냈기에 후지타카가 사태파악을 하고서도 이를 읽고 만족할 수 있었던 것이다.[12][13]
[1] 일본어 원문으로는 'からぶりサービス'. 일본어로 空振り는 '목적했던 일이 헛일이 됨', '(야구의)헛스윙'을 뜻하는 단어. 꼭두각시 서커스의 원제인 카라쿠리 서커스(からくりサーカス)의 단어에서 한 글자씩만 살짝 바꿔놓았다.[2] 우리나라에서 복선을 던지는 걸 '떡밥을 뿌리다'라고 하듯이, 일본에서는 이렇게 뿌려진 떡밥을 '펼쳐둔 보자기(広げた風呂敷)'라고 칭한다. 다만 요새는 '플래그 회수'라고 하기도.[3] 처음에는 보타Q의 말에 감탄하다가 결말을 던져도 99화 동안 재밌게 했으니 된 거라는 말에 정색했다.[4] 웃긴 점은 여기서 예시로 써먹은 사이가 마사루와 사이가 사다요시의 관계가 정말로 아들과 아버지를 초월한 아버지라는 점이다.[5] 내용상 최종화에서 빌마나 아시하나 등 조연 캐릭터들이 대거 퇴장하는 부분을 읽은 것으로 보인다.[6] 복선 회수를 중요시 여기는 후지타카의 성격상 빌드업은 충분했기에 독자들이 기대하는 주연들의 마무리는 대강 예상할 수 있었다. 당시 후지타카가 조연 서사부터 푸는 바람에 그 시점에선 탁상공론에 불과했겠지만… 이걸 호노오가 작가인 동시에 애독자로서 대신 그려내려 했던 것.[7] 이전에 후지타카가 손을 다쳐서 호노오가 4화 정도 대신 연재를 했을 때 후지타카는 흡족해했다. 이 과정에서 마사루를 멋대로 죽여서 빡쳤지만. 실제로도 시마모토는 다른 만화가의 작풍을 잘 복사하는 편이다.[8] 꼭두각시 서커스 최후반 부분, 로켓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가토의 등을 마사루가 지켜주는 명장면의 패러디다. 압권은 손님으로 주문을 재촉하는 배경의 기계인형들.[9] 사람이 생각하는 게 다 비슷한지라 이런 경우는 일본 외에도, 만화 이외의 다른 장르에서도 많다.[10] 사실 작가들 입장에서는 일단 자기 작품에 애정이 있고, 열심히 스토리를 짠 만큼 모든 스토리를 다 쓰고 싶은 것이 어쩔 수 없는 심리다. 하지만 이런 심리와 다르게 보여줄 수 있는 스토리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완성도의 문제도 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덜어내는 것' 또한 중요한 작가의 역량인 것. 오히려 재능이 뛰어난 작가일수록 쉽게 빠져드는 함정 중 하나다.[11] 헛짓거리 서비스의 모델이 된 꼭두각시 서커스는 설정 충돌이 꽤 심한 작품에 속하지만 주요 복선의 회수만큼은 깔끔하게 진행되었다. 또한 작가가 캐릭터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각 캐릭터들의 퇴장 역시 주연이든 조연이든 무게감 있게 진행되었다. 덕분에 퇴장해서 아쉽다는 반응은 있어도 캐릭터들이 허투루 소비되었다고 평가하는 독자는 거의 없는 편이다.[12] 현대에 들어서는 반전과 클리셰 파괴에 집착하다 못해 이를 곡해한 나머지 뿌려놓은 떡밥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작가들이 있지만, 사실 반전이란 건 복선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회수하는 데에 있다. 보물지도가 있어도 기록된 곳을 직접 확인해보지 않으면 의미가 없듯이, 복선 역시 실제로 회수되기 전까지는 탁상공론에 불과히기에 독자들은 이 복선들이 어떤 형태로 회수될지, 진짜 의미있는 복선은 맞는지 확인해보고 싶은 호기심과 기대감 때문에 챙겨보는 것이기 때문. 전개를 하다 보니 떡밥을 회수할 틈이 없을 수는 있어도, 뿌려둔 떡밥을 없던 셈 치고 엉뚱한 전개를 급조해내는 행위는 체호프의 총을 무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13] 이에 대한 비하인드를 밝힌 사례로는 마사토끼가 있다. 마사토끼는 지망생 시절에 그린 두뇌게임 만화들의 복선이 예측 당하자 그때그때 중간 서사를 뒤집어 눈치채지 못하게 했지만, 이로 인해 서사가 꼬이는 일이 생긴 데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런 식으로 독자의 예측을 피하기 위해 전개를 뒤집어대는 건 작가의 위치를 남용하는 것밖에 안된다는 걸 깨달았기에 더 이상 중간에 복선이나 트릭을 수정하지는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