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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5 12:54:12

마복림

<colbgcolor=#000><colcolor=#fff> 마복림
馬福林 | Ma Bok-rim
파일:마복림.png
출생 1920년
전라남도 광주군
(現 광주광역시)
사망 2011년 12월 13일 (향년 91세)
서울특별시 중구 국립중앙의료원[1]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직업 요리사, 외식사업가

1. 개요2. 생애3. 며느리도 몰라4. 마복림 떡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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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요리사, 요리연구가, 외식사업가.

1953년 신당동 떡볶이의 메뉴 베이스를 개발, 같은 해 떡볶이집을 오픈하였다. 쉽게 말해 현대식 고추장 떡볶이의 창안자로, 가히 한국 분식업계과 간편식 업계의 대모(大母)라 할만하다. 전골 형태의 즉석 떡볶이와 라볶이 역시 마복림이 개발한 신당동 떡볶이에서 유래되었다.

마복림이 처음 장사를 시작한 서울 신당동 일대는 그녀의 떡볶이집이 성행하면서 동종업계의 창업이 시작되었고, 그 결과 신당동은 오늘날에도 유명한 대표적인 떡볶이 타운이 되었다.

2. 생애

파일:0219EB3E50F41E501E.jpg
자신이 개발한 즉석 떡볶이와 함께 찍은 사진
2남 3녀 중 넷째로 태어났으며[2], 8.15 해방 직후부터 남편과 같이 미군물품 보따리상을 했다. 어느 날 중국집에서 중국식 양념이 밴 떡요리를 대접받게 됐는데, '이 음식이 맛은 좋은데 좀 느끼해서 칼칼한 양념이 더해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3][4] 하게 되었고, 이에 고추장으로 볶은 떡을 생각해내 6.25 전쟁 휴전 직후인 1953년부터 가래떡과 야채를 춘장과 고추장을 섞은 양념에다가 연탄불로 볶아내는 형식의 떡볶이를 만들어 팔았다.

이 당시에는 새로운 음식을 파는 군소 분식점 사장 정도였지만, 떡볶이의 맛이 근처 학생들에게 널리 알려지면서 신당동에서 값싸게 맛 볼 수 있는 별미로 유명해졌다. 청계천이 복개된 이후로 손님이 더욱 늘면서 가게도 크게 확장을 해 나갔고, 근처에서 떡볶이를 파는 가게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신당동 떡볶이 골목이 형성되었다. 세월이 흐르며 연탄불로 볶는 방식에서 가스불로 볶는 방식으로 요리법이 진화했다고 한다.

2008년부터는 투병생활로 인해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으며, 2011년 12월 13일에 향년 91세로 유명을 달리했다. 그 뒤에는 양념 제조 비법을 전수받은 아들들과 며느리들이 '마복림 할머니 떡볶이집'을 상호로 가게를 이어가고 있으며 신당동 일대에서 분점도 운영하고 있는 중이다.#

맛있는 녀석들 161회 즉석 떡볶이 편에 등장한 가게가 바로 이 분의 둘째 며느리가 운영하는 곳인데, 둘째 며느리의 증언에 따르면 "시어머니가 건강이 나빠지시기 전에는 며느리들에게 양념비법을 절대 가르쳐 주지 않으셨고, 당신께서 식당에서 사용할 떡볶이 양념 전량을 직접 다 만드셨다"고 한다. 그러나 본인의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하면서 며느리들에게 양념비법을 전수해 주었다고 한다.[5] CF에서 나온 말대로, 며느리도 모른다던 말이 단순히 마케팅을 위한 광고용 멘션이 아닌 정말 사실인 셈이었다.[6] 본인의 떡볶이 소스에 얼마나 자부심이 컸는지를 보여주는 일화.

마복림 떡볶이의 간판에는 마복림의 사진과 생전 유행어였던 "며느리도 몰라" 가 적혀있다. 생전에는 이 멘트만 적혀있었는데, 마복림 사후에는 "이젠 며느리도 알아요!"라는 멘트가 추가되었다.

3. 며느리도 몰라

해찬들 태양초 고추장 전설의 시작 며느리도 몰라 마복림 할머니
고추장 뭐 쓰냐구?
그거 알아서 뭐 하실라 그러세요
떡볶이집 차릴라 그래?
고추장 비밀은 며느리도 몰라
아무도 몰라
광고 중 마복림의 대사

신당동 떡볶이의 창시자 마복림이 전면에 출연하여 유명해진 TV광고로, 1996년에 방송된 해찬들 태양초 고추장 CF다. 당시의 CF모델은 일반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연예인을 기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7] 이에 비추어 보면, 연예인이 아니었던 마복림을 전면에 내세운 이 CF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8]

결과적으로 이 CF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 성공했고, 여기에 등장하는 명대사인 "며느리도 몰라. 아무도 몰라."는 얼마 안가 전국적인 유행어로 등극했다.

이 이후로도 "며느리도 모른다"라는 문장은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도 알려줄 수 없는 비밀을 뜻하는 관용어 비스무리하게 되었고, [age(1996-01-01)]년이나 지난 현재까지도 여전히 제법 인지도가 있는 유행어로 남아있다.[9]

참고로 저기서 언급된 며느리는 마복림의 대(代)를 이어서 가게를 운영 중이다. 2021년 유 퀴즈 온 더 블럭/132회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리고 바로 위에서 말했듯 며느리도 모른다는 말이 진짜였음이 밝혀졌다.

4. 마복림 떡볶이

파일:2021061110001416233732142781.jpg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웹 아카이브)
1953년 마복림이 창업한[10] 신당동 떡볶이집의 원조로, 현재는 마복림의 며느리가 대를 이어서 여전히 왕성한 성업을 보이고 있다. 간판을 보면 알겠지만 이젠 며느리도 비법을 안다고 한다. 사실 비법이 고정되어있다기보단 세월 따라 계속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게 더 맞을지도.

서울 지하철 2·6호선 신당역 7번 출구에서 도보로 약 400m 정도 거리에 있다. 홀 식사나 완제품 포장 외 즉석떡볶이 재료만 포장해서 집에서 조리하는 반조리 형태의 테이크아웃 판매도 진행하고 있다.

생전 마복림은 건강이 악화되기 전까지 매일 새벽에 가게로 출근해 양념장 소스를 만들고, 영업시간에는 카운터에 앉아 직접 손님 응대와 계산까지 도맡아했다고 한다. 마복림 가게의 단골이었던 조세호의 회고에 따르면, 떡볶이집에 가면 마복림 사장이 나와 "몇 명 왔어?"라고 친근하게 물은 뒤 인원 확인 후 들여보내줬다고 한다.

2021년 6월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경수진이 이곳을 방문해서 반조리 제품을 구입하고 집에서 이를 해먹은 에피소드가 방송된 직후, 주말 내내 신당동 떡볶이타운 일대에 인파가 몰리기도 했다.

한국 패션계의 대부 앙드레 김도 생전 마복림 떡볶이의 단골 손님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가게에는 빨간색 앞치마만 있었는데 앙드레 김을 위해 흰색 앞치마도 같이 준비해줬다고 한다. 마복림의 며느리와 손녀가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서 이야기한 내용이다.

사족으로, 2002년 월드컵 당시 붉은악마와 함께 찍은 사진도 가게에 걸려있었다.

변신자동차 또봇 10기에서 배경 장소로 마봉임 떡볶이란 곳이 등장한 적이 있다.# 참고로 '마봉임 떡볶이'가 나오는 또봇 10기가 첫 방영되던 시기가 마복림 여사가 사망한 지 약 1년 3개월 후였다.


[1] 김효정, "신당동 떡볶이 '원조' 마복림 할머니 별세", 「연합뉴스」, 2011.12.17.[2] 조건희 · 박훈상, "신당동 떡볶이 ‘진짜 원조’ 마복림 할머니 별세… 며느리도 몰랐던 맛, 다섯 며느리가 잇는다", 「동아일보」, 2011.12.17.[3] 마복림 본인이 언론사에 밝힌 사실이다. #[4] “중국집에 손님을 모시고 갔을 때, 비싼 음식을 먼저 먹기가 부담스러워서 가래떡을 먼저 먹으려고 하다가 가래떡을 짜장면 그릇에다가 떨어뜨렸는데, 짜장면 묻은 가래떡의 맛이 의외로 좋았다”라는 이야기도 있다.#[5] 사망하기 5년 전인 2006년 전수받았다고...[6] 당시 한국에서는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집안일이나 요리법 등을 전수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였는데, 며느리에게도 비법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으로 보아 건강이 나빠지기 전까지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비법을 가르쳐줄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7]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배우 이휘향도 전면에 등장한다.[8] 다만 간간히 일반인이 출연하여 효과를 본 광고는 은근히 있다. 거리에서 만난 사람을 대상으로 제작됐던 1990년대의 구구크러스터나, 세제의 효과에 대한 신뢰감을 높이기 위해 가정주부를 출연시킨 CJ의 세제 비트가 그 예.[9] 2003년 윤무부 교수가 출연한 포털 엠파스의 광고에서 "엠파스의 지식은 나도 몰라, 지식인도 몰라!"패러디되기도 했다.[10] 등기에는 1990년 1월 1일에 설립되었다고 등록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