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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8-04 17:19:59

리스토마니아

🎷클래식 음악 팬덤
바그네리안
리하르트 바그너
브루크네리안
안톤 브루크너
말레리안
구스타프 말러
리스토마니아
프란츠 리스트
모차르티안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파일:external/www.dw.com/0,,6430024_4,00.jpg
1842년 베를린에서 열린 리스트의 연주회 풍경을 묘사한 그림
우측 하단에 연주를 듣다 기절한 여성의 모습이 보인다.
1. 개요2. 리스토마니아의 기행일화3. 사회적 배경4. 기타

1. 개요

리스토마니아(Lisztomania)는 역사상 최고의 피아니스트라 여겨지는 프란츠 리스트의 광적인 팬들을 의미하는 용어로, 리스트의 지인이기도 했던 독일의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가 처음 만들어낸 단어이다.

약 9년동안 교제하고 있었던 마리 다구 백작부인과의 관계를 정리한 후 본격적으로 전 유럽을 돌며 연주여행을 했던 리스트는 비인간적인 현란한 피아노 기교와 잘생긴 외모, 화려한 퍼포먼스로 당대 음악가로서는 최초의 아이돌 팬덤을 형성했으며 상단과 마찬가지로 그의 연주를 듣고 기절한 여성들도 있을 정도다. 동시대의 비르투오소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리스트의 롤모델이기도 했던 니콜로 파가니니도 연주로 나폴레옹의 여동생을 기절시키거나 전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긴 했지만, 음악과 연주를 넘어 음악가 본인의 초상화를 사서 간직하거나 스토킹을 하는 등 음악가 자체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팬덤이 생겨났던 사람은 리스트가 처음이다. 아래 문단을 보면 알겠지만 심각한 팬들은 현대의 아이돌 사생팬들을 방불케 한다.

2. 리스토마니아의 기행일화

3. 사회적 배경

리스트가 아직까지도 그를 능가하는 피아니스트가 없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넘사벽 실력의 천재 피아니스트이긴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리스트의 출중한 재능만으로 발생한 것은 아니다. 리스트가 피아니스트로서 활동했던 19세기 초~중반은 혁명 이후 부르주아 계급이 예술의 주된 향유층으로 대두되는 시기였는데, 이들은 엘레강스, 즉 품위 있으며 정신적인 미의식 보다는 물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컸다. 이들이 음악의 주 소비계층이 되면서 음악이라는 예술의 정신적인 요소보다는 외형적인 기교편중주의가 강해졌고, 이런 배경으로 인해 니콜로 파가니니, 프란츠 리스트, 지기스문트 탈베르크 같은 비르투오소들이 탄생하게 된다. 이렇게 음악에 있어 기교와 볼거리를 중시하는 경향이었던 시대에 리스트의 초절기교와 빼어난 외모, 연주할 때의 과장된 제스처 등은 대중이 원했던 스타상에 완벽하게 부합했다. 거기다 살롱에서 주로 연주했던 쇼팽과는 달리 리스트는 극장에서 연주회를 열었는데, 극장은 살롱과 달리 연주자와 다수의 청중이 완전히 분리된 공간으로, 청중은 집단화 되어 집단 히스테리에 가까운 열광에 빠지기 쉬워졌던 것.

또, 하이네는 리스트의 연주를 듣고 여성들이 기절하는 현상에 대해 여성 전문의사에게 자문을 구했는데, 그에 의견에 따르면 셀 수 없이 많은 촛불과 수백가지의 향수냄새, 땀냄새로 범벅된 음악회장에서 그의 연주와 몸짓을 보고 극도로 흥분한 여성관객들이 과호흡을 일으키거나, 당시 상류계급의 여성들이 착용했던 코르셋으로 인해 호흡량이 부족해 빈혈증상이 일어나 기절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리스토마니아라는 광적인 팬덤현상은 리스트 한사람의 재능과 매력만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고, 리스트가 기교와 외형적인 것을 선호하던 당시의 예술 소비층의 니즈를 완벽하게 충족시키는 시대에 부합하는 연주자였으며 리스트 본인도 그 점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었던 덕분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하지만 이렇게 리스트가 화려한 기교로 인기를 얻었고, 기교를 과시하기 위한 곡들을 남겼다고 해서 그를 기교에만 편중됐고 예술성은 부족한 작곡가라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확실히 비르투오소로서 온 유럽을 여행하며 순회연주를 하던 시절에 리스트가 남긴 곡은 어렵긴 더럽게어렵지만 작품성은 아쉬운 작품이 많긴 했으나, 카롤린 자인 비트겐슈타인과 만나 그녀의 조언에 따라 바이마르에 정착해서 작곡활동에 집중한 이후로는 기교는 물론이고 예술적으로도 훌륭하며, 후대의 인상파, 후기 낭만파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끼친 곡들을 다수 남겼다. 또한 리스트는 오케스트라에 교향시(Symphonic Poem)라는 새로운 음악 장르를 만들었는데, 이는 후대의 드보르작이나 시벨리우스 같은 많은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4. 기타



[1] 참고로 히틀러는 바그너의 열렬한 팬, 즉 바그네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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