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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4-08 00:59:33

리먼 브라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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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5f4e><colcolor=#ffffff> 리먼 브라더스
Lehman Brothers Holdings I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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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 기업)
업종명 투자은행
설립일 1849년
해체일 2008년 9월 15일[1]
창업주 헨리 리먼
이매뉴얼 리먼
메이어 리먼
후신 노무라 증권, 바클리스

1. 개요2. 역사
2.1. 2008년 이전2.2. 산업은행의 리만 브라더스 인수전2.3. 파산 이후
3. 기타

1. 개요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Lehman_Brothers_Times_Square_by_David_Shankbone.jpg
뉴욕에 위치했던 리먼 브라더스 본사[2]

한때 미국의 4대 투자은행[3]이었던 거대 금융그룹.

2. 역사

2.1. 2008년 이전

1850년 독일에서 미국 남부로 이민 온 유대인 허버트 헨리 리먼(Herbert Henry Lehman, 1822 ~ 1855)[4], 이매뉴얼 리먼(Emanuel Lehman, 1827 ~ 1907), 그리고 메이어 리먼(Mayer Lehman, 1830 ~ 1897) 형제가 목화 중개무역업[5]을 시작했고 뉴욕으로 진출하여 유통, 교역, 조사 및 연구 등으로 사업을 확장해 가면서 명성을 쌓아갔다.[6] 1980년대에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자회사로 편입되었고 1994년에 다시 분리(Spin-off)되었다.

2.2. 산업은행의 리만 브라더스 인수전

◆ 리먼, 한국에 "헬프 미"

자금 사정이 급했던 리먼이 한국에 도움을 요청한 시점은 지난 6월 초로 거슬러간다. 처음에는 산은이 아닌 하나금융지주와 한국투자공사(KIC)였고, 지분 20%를 인수해달라는 의사 타진이었다. 그러나 메릴린치 투자 손실로 부담을 느꼈던 두 기관은 리먼 측 요청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다. KIC 진영욱 사장은 "리먼의 비공식 제안이 있었지만 투자 매력이 없었다"고 말했다.

리먼은 산업은행을 찾았다. 민유성 행장이 지난 6월 행장 취임 직전까지 리먼의 한국지점 대표였던 인연이 작용했다. 산업은행은 경영권 인수가 아니면 관심이 없다며 리먼브러더스의 제안을 거절했다.

한 달쯤 뒤인 7월 중순, 리먼은 산은에 다시 '러브콜'을 보냈다. 경영권까지 넘기겠다는 내용이었다. 자금 사정이 그만큼 급박했던 것이다. 양측은 산은이 시장에서 주식을 매입하는 공개매수 방식으로 51% 지분을 인수하기로 잠정 합의하고 비밀리에 협상을 진행했다. 8월 초 여름 휴가를 명분으로 뉴욕에 간 민 행장은 리먼 본사에서 회사 장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했다. 특히 상업용 부동산 자산의 장부가액이 너무 부풀려져 있었다. 산은은 인수를 포기했다.

◆ 4대 전제조건

1차 협상이 결렬된 지 일주일 남짓 만에 리먼은 산은에 새로운 제안을 해왔다. 공개매수가 아닌 신주(新株) 인수를 통한 투자였다. 이에 대해 산은은 4가지 인수조건을 제시했고, 이를 전제로 양측은 2차 협상을 벌였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양측이 합의한 4중의 위험방지 장치는 ① 9월10일 합의문 발표 후 6개월 뒤인 2009년 2월 말 투자 실행 ② 6개월간 실사(實査)와 구조조정을 통해 부실자산은 '배드 컴퍼니'(부실자산 처리를 위한 별도 회사)로 넘기고 내년 2월 말 자산가치를 평가해 가격 재조정 ③ 6개월간 신용등급 하향 같은 중대한 변화가 없을 것 ④ 한국 정부의 승인이 있을 것이었다.

6개월간 실사와 구조조정 과정을 거쳐 부실자산은 '배드 컴퍼니'로 넘겨 기존 주주의 책임하에 털어내고, 우량자산만 갖게 되는 '굿 컴퍼니'는 기존 주주가 30%(45억 달러 정도)의 지분을 갖고 산은이 60억 달러를 투자해 40%의 지분을 확보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머지 30% 지분은 공모(公募)를 통해 투자를 유치한다는 계획이었다.

산은이 실제 투자 시점을 내년 2월 말로 미룬 것은 그 사이 정확한 부실 규모를 파악하고 구조조정 시간을 벌어 투자의 안정성을 확보한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현지 IB 전문인력에 대한 '연말 보너스' 지급을 피해보려는 점도 고려됐다. 산은 고위 관계자는 "바클레이즈가 리먼의 미국 법인을 1조원에 인수했다고 하지만 올 연말 직원 보너스만 2조5000억원을 지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6.4달러 vs. 17.5달러

그러나 인수 가격에서 협상이 더 이상 진전되지 못했다. 리먼 측은 주당 17.5달러를 요구했으나, 산은은 6.4달러를 쳐주겠다고 했다. 리먼의 풀드 회장은 산은 요구에 대해 '모욕적(insult)'이라며 "바클레이즈나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노무라와 협상하면 당장 12달러 이상 받아낼 수 있다"고 반발했다.

협상 진전이 없자 리먼은 이사회에서 11~12달러까지는 어떻게 해볼 테니 인수가격을 조금만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때마침 한국에서도 '9월 위기설'이 불거지면서 금융시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청와대나 금융위원회 등 정부 당국자들의 부정적인 코멘트도 잇따라 나왔다.

10일 산은과 리먼의 협상이 결렬됐다는 소식이 외신을 통해 전해졌다. 이 소식에 14달러였던 리먼브러더스 주가는 7달러대로 주저앉았고, 12일엔 4달러대로 내려갔다.

시장에서 신뢰가 무너지자 다른 금융회사들이 만기가 남는 채권마저 회수에 나섰고, 리먼은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몰렸다. 결국 6000억달러 자산을 가진 '공룡' 리먼은 500억 달러를 막지 못해 15일 파산신청을 선언했다.

투자은행 중 채권 및 모기지 관련 투자가 많았고 수입 중 상당 부분을 M&A 관련 서비스에서 창출했다. 또한 부채비율이 굉장히 높았던 편이라 경기가 좋지 않을 경우 재무구조가 위험해질 수 있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2007년 미국 부동산 가격 하락과 함께 대규모 손실을 입었고 추가 투자가 없을 경우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대한민국의 3대 국책은행[7] 중 하나인 KDB산업은행이 이 리먼브라더스의 일부분에 대한 인수를 시도[8]하였고 실제로 협상 타결 직전까지 갔으나 국정감사 등 여러 가지 요인이 겹쳐 막판에 협상이 결렬되면서 무산되었다.[9] 물론 당시 산업은행도 호구가 아니기 때문에 리만이 지고 있는 리스크를 이용해서 가격을 마구 후려치긴 했다. 당시 1주당 가격이 30달러에서 18달러까지 내려가는 상황이었는데 산은에서 제시한 1주당 가격은 고작 $6.4에 불과했고, 그나마도 배드섹터는 버리고 수익이 남을만한 영역만 인수하는 조건을 제시했던 점을 보면 알 수 있다.[10] 하지만 리만이 떠맡고 있던 리스크의 크기는 산은이 예상하는 수준 이상이었고, 게다가 당시 달러 유동성이 극도로 제약받던 시점에서 리만 인수 소식이 국감에서 포화를 맞자 결국 인수를 포기한 것이다. 다만 협상에 직접 참가한 산은 외에 한국에서 리만의 리스크를 얼마나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는지는 의문 기호가 붙는 상황으로, 유력 언론들이 '월 스트리트로 가는 금융 고속도로'라는 표현을 써가며[11]사설과 칼럼을 통해 리먼 인수를 강력히 주장한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초기에는 리먼 브러더스 인수를 찬성하는 여론이 대단히 높았다. 하지만 부채가 너무 심각하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면서 서서히 여론이 돌아서기 시작했고, 전문가들이 직설적으로 위험성을 경고[12]하면서 결국 정부가 발을 빼기 시작했다.

결국 산은은 9월 10일 리먼 인수 포기를 공식 선언했다. 한국 산은의 인수 협상 결과가 최후의 생존 수단이었던 리먼의 주가는 '협상 결렬' 소식이 보도된 9월 9일(미 현지시각) 하루 만에 45% 폭락했으며, 6일 뒤인 9월 15일 파산을 선언했고 그로 인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게 됐다. 여담으로 리먼이 챕터 11 파산보호 신청을 한 9월 15일은 한국의 추석연휴 마지막 날이었다. 연휴가 끝남과 동시에 세계 경제의 악몽이 시작된 것이다.

당시 출범 7개월차의 초창기였던 이명박 정부는 결과적으로 산은의 인수 포기 결정 덕에 최악의 경제 충격을 그나마 피하게 됐다.[13] 리먼의 총 부채가 10여 년 전 당시 물가로도 6,130억 달러(약 660조원), 대한민국의 1년 세입액보다도 많은 셈이니 산은이 그 당시 여론에 따라 실제로 인수를 진행했다면 대한민국 경제는 문자 그대로 박살났을 것이다. 미국을 넘어 전 세계를 뒤흔들 정도의 파급력을 지닌 파산이었는데 한국이 그것을 온전히 버텨낼 재간이 있을리가. 2008년 한국의 GDP는 1조 470억 달러였으니 당시 GDP의 58.5%에 달하는 엄청난 부채를 떠안게 되어 한국 경제는 과장 안 보태고 파산에 이르렀을 것이다. 심지어 리만의 파산 규모(6,700억 달러)까지 고려하면 한국은 당시 GDP의 무려 64%에 달하는 손실을 입을 뻔했다[14].

2.3. 파산 이후

파산 이후 리먼 브라더스의 북미 지역은 바클리스 캐피털이, 아시아 지역과 유럽 지역의 일부는 일본의 노무라 증권이 인수했다. 노무라는 리먼의 자산을 인수해 글로벌 투자은행으로 도약할 기회로 삼고 과감히 배팅했지만, 인수 직후 유능했다던 우수 인력들이 대거 회사를 이탈해버린 영향으로 흑자보다는 적자를 기록할 때가 더 많았고, 리먼을 인수해서 노렸던 해외 기반을 다지는 데에도 실패했다. 바클리스도 답이 없다고 생각해 내놓았던 일부 유럽 지역까지도 야심차게 인수했던 노무라는 유로존 위기로 인한 금융시장 한파까지 겹치자 2016년엔 사업 중단을 선언하고 1,000여 명의 인력을 감축했다. 2018년 4분기엔 1조 원에 가까운 영업 적자를 기록했는데, 이건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2009년 1분기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적자폭이다. 언론은 '10년 골병에 빠졌다'고 혹평하는 상황. 브렉시트의 영향도 있다곤 하나 노무라는 2019년인 현재도 여전히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고, 일본 내의 다른 IB와의 합병 가능성까지 계속 언급되고 있다.

다만 반대로 뉴욕에 있는 부동산을 포함한 북미 지역의 리먼 자산을 17억 5천만 달러라는 저렴한 가격에 인수하는 데에 성공한 영국의 바클리스는 당장 1년도 지나지 않아 30억 달러가 넘는 순익을 기록하며 그야말로 '대박'을 쳤고, 바클리스를 유럽 내 최대 수준의 금융 그룹 중 하나로 성장시키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인터넷 상에서는 미국의 채권 시장에 목이 매여 있고 현재 일본은 채권 시장에서 큰 위험을 계속 넘기면서 간신히 살아 있는 도중이라고 우리나라의 경제의 특성상 이 리먼 브라더스를 인수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채권 가격이 리먼브라더스를 산다고 독립되는 게 아니다. 리먼브라더스는 금융회사로써 고객의 자금을 채권 인수에 투자하는 거지 리먼이 채권을 사서 운용하는게 아니다. 반대로 파산할 경우 고객의 투자금이 빠져나가기 때문에 더 위험하게 된다. 금융사의 핵심 자산은 오랜 거래와 신용으로 확보해온 고객 기반, 그리고 고객 기반과 자산을 관리하고 운용할 직원들의 역량인데 산은보다 규모도 크고 글로벌 경험도 더 풍부했던 노무라마저 그런 무형의 '자산'을 유지하는 데에 한계를 느끼고 현재까지 계속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인데 산은이 덩치와 규모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던 리먼을 제대로 통제할 수 있었을지에는 부정적인 의견이 많다.
파일:external/file1.bobaedream.co.kr/ABw56fa43e01caea.jpg
파산 당시인 2008년 9월 런던 리먼 브라더스 직원들의 마지막 회의
파일:Lehman_Brothers_bankruptcy.jpg
간판을 내리게 된 리먼 브라더스[15]
파산 당시 리먼에 투자했던 여러 투자자들도 고꾸라졌는데 가장 크게 당한 곳이 AIG. 리먼이 서브프라임 신용도의 모기지들의 위험을 분산하면서 이 투자안이 고꾸라졌을 때 보상 받을 수 있게 만든 보험(CDS)을 저 AIG가 상당 부분 먹은 것. AIG에선 보험료 수억이 들어오니 좋고 리먼 브라더스의 경우는 손쉽게 고위험고수익 투자안의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리먼이 고꾸라진 순간... 결국 미의회의 구제금융안이 발동돼버렸다. AIG는 불행 중 다행으로 파산 직전에 구제금융을 통해 국영화되었지만[16], 그 여파로 규모가 대폭 축소되었다. 만약 저기서 AIG마저 고꾸라졌다면?[17]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이 파산했을 때의 충격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은 기네스북세계 최대규모 파산으로 등재되었다. 2위인 월드컴 파산의 13배인 6,700억 달러로 당시의 한국 원화 환율로 환산하면 무려 700조 원 상당의 파산이었다.[18]

3. 기타


[1] 대침체의 발단이 된 날.[2] 2007년 8월 12일에 찍힌 사진으로 지금은 바클리스 캐피털이 위치하고 있다.[3] 나머지 3곳은 골드만삭스, 모건 스탠리, 메릴린치. 5위 업체인 베어스턴스는 앞서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4] 1855년에 뉴올리언스에 여행하던 중 황열병으로 젊은 나이에 사망하고 만다.[5] 매매차익을 얻는 것이 목적으로 최초 수출자에게 상품을 수입하여 최종 수입자에게 수출하는 방식으로 하는 무역[6] 이들 형제 또한 자선사업가으로도 유명했다.[7] 한국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IBK기업은행[8] 이 당시 산업은행 총재는 2008년 6월 취임한 민유성이였는데, 그는 산업은행 총재로 취임하기 직전까지 리먼브라더스 서울사무소장이었다. 특히 리먼 브라더스의 인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산업은행 총재인 민유성이 리먼브라더스의 스톡옵션을 처분하지 않은 것이 밝혀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9] 국감을 떠나 당시 서울 외환 시장의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다. 2008년 7월엔 '도시락 폭탄 사건'이라고 불리는 대규모 외환 시장 개입을 비롯해 정부는 여러 차례 외환 안정에 나섰지만 환율은 계속 급등했다. 이런 상황에서 수십억 달러의 현금(달러)을 들여 리먼을 인수하고, 리먼을 안정시키기 위한 추가적인 리스크까지 국가적으로 부담할 수 있는 여유가 한국엔 존재하지 않았다.[10] 확인되지 않은 찌라시에 의하면 당시 산은 외에 리만 인수를 검토하고 있던 세력이 3군데 더 있었는데, 산은을 제외한 나머지 3군데에선 관망하는 상황에서 산은이 가장 협상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산은이 협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당시엔 비공개였던 협상가격(주당 6.4달러)를 다른 3군데에 까발려버리고 그나마도 국감 이후 인수를 포기해버리자, 다른 세력들은 '한국이 1주당 반토막도 안 되는 가격인데도 인수를 포기한 걸 보면 뭔가 있다'는 생각에 싹 다 인수를 포기했다고 한다. 그 결과 리만은 그대로 파산해버린다.[11] 당시사설[12] '이게 살릴 수 없을 정도로 망했으니까, 우리한테까지 순서가 온 것이다' 식의 칼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13] 오히려 2009년 기준 호주와 함께 플러스 성장을 한 유이한 메이저 선진국이었을 정도였다.[14] 참고로 나르기스의 피해가 당시 미얀마 GDP의 56%, 2010년 아이티 대지진의 피해가 당시 아이티 GDP의 66~71%였다.[15] 배경에 있는 글자 CHRISTIE's는 유명한 경매 회사인 크리스티스의 간판이다. 파산 등으로 망한 회사의 각종 자산은 경매를 거치는 일이 많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상당히 의미심장한 사진이다.[16] 훗날 미국 정부가 되팔았다.[17] 리먼 브라더스 파산 당시에는 AIG의 파산 이야기까지 실제로 나올 지경이었다.[18] 참고로 IMF 사태 당시 세계 최대규모 파산이자 현재까지도 비 미국권 최대규모의 부도사태로 꼽히는 대우그룹의 부도가 68조원이다. 더군다나 대우는 해체 이후 산하 계열사들이 다른 기업들로 인수되면서 사실상 주인만 바뀐 채 대부분의 계열사들이 흑자를 유지하며 존속하고 있지만 리먼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싸그리 청산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