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인도양 사이클론 나르기스 | ||
위성사진 | ||
진로도 | ||
활동 기간 | 2008년 4월 27일 ~ 5월 3일 | |
영향 지역 | 미얀마 에야와디, 양곤, 바고 | |
태풍 등급 | 4등급[SSHWS] | |
최저 기압 | 937 hPa | |
최대 풍속 | 1분 평균 | 59 m/s |
피해 총합 | 인명 피해 | 138,373명 사망 |
재산 피해 | 129억 달러(2008년 기준)[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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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르기스가 덮치기 전후의 위성사진 비교 |
2008년 5월 미얀마 남부를 초토화시킨 사이클론. 미얀마 군부의 안일한 대처가 더해져 무려 14만 명 가까이 목숨을 잃고 250만 명이 이재민이 되는 대규모 인명피해가 벌어진 대참사를 유발했다.[3] 참사 후에도 군부는 투표가 임박했다며 한동안 국제 사회의 구호를 거부했고 이에 분노한 여론에 떠밀려 민주화에 나섰다.[4]
2004년 남아시아 대지진(1위), 2010년 아이티 지진(3위)과 함께 사망자 수로 따지면 21세기 최악의 재난 중 하나(2위)로 기록된 대참사다.
2. 상세
나르기스가 덮치자 흔들리는 야자수
침수된 마을들
나르기스로 인해 파괴된 주택들
사망자 분포. 에야와디강 하구 일대의 피해가 가장 크다.
4월 27일 첸나이 동쪽 벵골만에서 형성된 나르지스는 인도 동해안으로 향하는 듯하다가 5월 1일 새벽 급격히 몸집을 불리며 방향을 동쪽으로 틀었다. 본래 미얀마는 사이클론 이동 진로에서 벗어나 있는 관계로 사이클론의 대비를 전혀 안한 상태에서 날벼락을 맞았다. 게다가 인도 기상청에서 사이클론이 미얀마에 상륙할 가능성이 있음을 경고했으나 미얀마 군부는 투표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를 씹고 최소한의 대피령조차 안 내렸다. 결과는 대참사였다. 5월 2일 나르기스가 상륙하자 '대영제국의 밥그릇'이라고 불릴 정도로 비옥한 농토인 에야와디강의 삼각주로 이루어진 미얀마 서남부는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었다. 심지어 추수 즈음에 사이클론이 몰려왔기 때문에 식량난은 더욱 커져만 갔고 유엔식량농업기구는 나르기스로 미얀마 전체 논밭의 65%가 손상되었다고 보고했을 정도였다.
5월 3일 태국-미얀마 국경 산지에서 소멸할 때까지 미얀마 남부는 강풍과 폭우에 시달렸고 대부분의 지역이 침수 피해를 입었다. 태풍이 가장 강력했던 에야웨디 주의 라부타에서는 건물의 75%가 붕괴되었고 20%는 지붕이 날아갔으며 보갈레에서만도 1만의 사망자가 나왔다. 에야와디강 삼각주의 건물 95%가 파괴되었다는 보고도 있다. 미얀마의 대표 볼거리인 불교 사찰도 피해를 면하지 못하여 1400여개의 사찰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미얀마 남부는 현재까지도 그때의 가공할 만한 피해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집계되지 않을 정도의 대참사가, 그것도 최대 도시인 양곤 인근에서 발생했음에도 탄 쉐와 군부는 유엔 구호 인력이 주민들에게 무기를 주어 체제 전복을 기도할 수 있다는 망상에 빠져 국제 사회의 구호를 거부했으며 이재민들에게 썩은 쌀을 배급하고 비상 상황에서도 기어코 신헌법에 대한 국민투표를 강행하는 추태를 보였다.# 결국 5월 21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방문하여 직접 설득한 후에야 미얀마 군부는 외국 구호 인력을 수용했다. 다만 직접 구호에 나선 봉사자들은 미얀마 군부가 사망자 수치를 축소하고 있으며 실제 사망자 수는 30만에 이를 수도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3. 여담
21세기에, 비교적 최근에 벌어진 대참사임에도 동남아에 대한 저조한 관심 때문에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사건이다. 같은 21세기 최악의 참사인 2004년 남아시아 대지진과 2010년 아이티 지진은 한국에서도 언론에서 널리 보도되어 인지도가 높은 편인데도 이 사건은 전술한 사건들과 비교하면 이상할 정도로 인지도가 낮다.나르기스로 인해 촉발된 미얀마의 민주화는 불과 10여년만에 군부 쿠데타로 빛이 바럤다.
구글에 Nargis라는 키워드로 이미지 검색만 해도 당시 사망한 이들(대부분 아이들)의 시신이 물에 떠 있는 사진이 적나라하게 나오기도 하니 주의를 요한다.
[SSHWS] [2] 당시 미얀마의 GDP는 230.1억 달러였다. 즉, 미얀마는 1년 GDP의 절반을 넘는(약 56%) 엄청난 경제적 피해를 입은 셈이다. 관동대지진의 피해도 당시 일본 GDP의 37%, 2015년 네팔 대지진의 피해도 당시 네팔 GDP의 35%,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의 피해도 당시 소련 GDP의 32% 정도로 나르기스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참고로 2010년 아이티 대지진은 당시 아이티 GDP의 70%에 육박하는 피해를 입혔다.[3] 당시 미얀마 인구가 4873만 명이었다. 인구의 0.3%가 죽고 5.6%가 집을 잃은 셈.[4] 즉, 현재 미얀마 연방 공화국의 설립에 기여했다. 이와 비슷하게 방글라데시(당시에는 동파키스탄)도 1970년 11월 8~13일까지 사이클론으로 30~50만 명이 죽고 8640만 달러의 피해를 입었는데도 파키스탄 정부의 늦장 구호로 피해가 커지자 이에 대한 반발로 방글라데시 독립전쟁을 일으켜 1971년에 아예 독립했다. 이 사이클론도 1931년 중국 대홍수(1위), 1976년 탕산 대지진(3위)과 함께 20세기 최악의 재난 중 하나(2위)로 기록된 사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