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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4-04 21:34:45

루아이드리 맥루아이드리

이름 루아이드리 맥루아이드리
Ruaidhrí Mac Ruaidhrí
출생 미상
스코틀랜드 왕국 맥루아이드리 씨족 영지
사망 1318년 ]10월 14일 (향년 미상)
아일랜드 영지 포하트
아버지 앨런 맥루아이드리
친형제 라클란 맥루아이드리
이복형제 군도의 크리스티나
자녀 라날드, 에이미, 성명 미상의 딸
직위 스코틀랜드 서부의 해적

1. 개요2. 생애

1. 개요

스코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제1차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으로 스코틀랜드 정세가 혼란해진 틈을 타 해적 행위를 자행했다.

2. 생애

스코틀랜드 북서부와 섬 여러 곳에 영지를 소유한 씨족인 맥루아이드리 가문 출신으로, 아버지 앨런 맥루아이드리는 노이다트, 모이다르, 아리삭, 럼, 에이그, 위스트, 바라 섬과 가모란을 포함한 스코틀랜드 북서부 해안 지대의 영지를 다스렸다. 그는 친형제 라클란 맥루아이드리와 함께 앨런 맥루아이드리의 사생아다. 1286년 아버지가 사망한 후, 이복형제인 군도의 크리스티나가 맥루아이드리 가문의 모든 영지를 물려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1306년 잉글랜드군에 쫓기던 로버트 1세를 숨겨준 것 외에는 별다른 대외 활동을 하지 않았던 반면, 루아이드리는 형제 라클란과 함께 활발한 군사 활동을 벌였다.

1296년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1세가 스코틀랜드를 침공해 존 발리올을 폐위하면서 권력 공백이 발생한 틈을 타, 형 라클란과 함께 스카이 섬과 루이스 섬을 약탈했다. 이후 스코틀랜드 북부의 강력한 거물이었던 로스 백작과 코민 가문, 아가일의 알렉산더 맥두걸 등이 잉글랜드의 포로가 되어 있던 상황을 이용해 해적 활동을 스코틀랜드 북부로 확장하고, 루아이드리 가문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일조했다.

스코틀랜드를 온전히 병합하기를 희망했던 에드워드 1세는 맥루아이드리 형제의 해적 활동을 좌시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알렉산더 맥두걸을 풀어주고 영지로 보내 맥루아이드리 가문을 견제하게 했고, 아이슬레이 출신의 알렉산더 맥도날드를 아가일과 로스의 총독으로 임명했다. 알렉산더 맥도날드는 에드워드 1세를 대신해 맥루아이드리 가문과 대적해 스코틀랜드 북서부의 혼란을 잠재웠다. 이에 라클란은 에드워드 1세와의 전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던 베드녹 영주 존 코민 3세와 동맹을 맺었다. 이후 여전히 잉글랜드에 포로로 잡혀 있던 로스 백작 윌리엄 2세의 가신들 영지를 끊임없이 약탈했고, 루아이드리는 그런 형을 보좌했다.

1301년, 스코틀랜드 용병 휴 비셋과 존 맥스윈이 에드워드 1세를 대신하여 함대를 이끌고 헤브리디스 제도로 출진해, 맥루아이드리 가문에 소속되었던 해적들을 토벌했다. 이에 위협을 느낀 라클란과 루아이드리 형제는 1304년 대다수 스코틀랜드 귀족들과 함께 에드워드 1세에게 귀순했다. 라클란이 1306년 직후 모종의 시기에 사망한 뒤, 루아이드리가 형의 역할을 이어받아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2세로버트 1세 사이를 자기 잇속에 맡게 가담하거나 습격해 해적 활동을 자행했다. 그러나 1308년 로버트 1세가 스코틀랜드에 대한 지배력을 급속도로 팽창하자, 루아이드리는 대세를 파악하고 로버트 1세에게 복종했다.

1308년 이후, 크리스티나는 가모란에 대한 통치권을 이복형제인 루아이드리에게 물려줬다. 크리스티나의 동명의 아들인 루아이드리는 삼촌 루아이드리의 딸과 결혼했고, 삼촌이 남자 자식 없이 죽을 경우 그가 상속자가 되는 것이 규정되었다. 또한 루아이드리는 1308년과 1310년 사이에 로버트트 1세로부터 아가일의 영주로 로버트 1세에 대적했다가 잉글랜드로 쫓겨난 알렉산더 맥두걸의 영지 일부를 받았다. 1315년부터 로버트 1세의 동생 에드워드 브루스아일랜드 원정에 참여했다가 1318년 10월 14일 포하트 전투에서 에드워드 브루스와 함께 전사했다.

루아이드리의 장남 라날드는 사전에 체결된 조약에 따라 가모란을 상속받았다. 하지만 크리스티나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1321년과 1324년 사이에 가모란을 아서 캠벨 경의 아들인 아서 캠벨에게 물려줬다. 이에 반발한 라날드가 스코틀랜드 의회에 제소했지만, 1325년 3월 27일 스콘에서 소집된 의회는 지난 날 잉글랜드군의 추격으로부터 자기를 숨겨준 크리스티나에게 보답하고 싶었던 로버트 1세의 의중에 따라 라날드의 권리가 상실되었다고 선언했다. 이후 분쟁이 어떻게 지속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라날드는 1333년에 비로소 가모란의 합법적인 영주로 간주되면서 영지를 회복했다. 1346년 스코틀랜드 국왕 데이비드 2세가 잉글랜드를 침공하기 위해 군대를 소집할 때 헤브리디스 제도에서 군대를 이끌고 합류하려 했지만, 엘코의 시토회 수도원에 있는 자기 숙소에서 로스 백작 윌리엄의 사주로 살해되었다.

루아이드리의 딸 에이미 맥루아이드리는 군도의 군주를 칭한 존 맥도날드의 아내가 되었다.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또다른 딸은 군도의 크리스티나의 아들인 루아이드리의 부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