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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dulf VI | ||
생몰년도 | 미상 ~ 1077년 11월 27일 | |
출생지 | 베네벤토 | |
사망지 | 베네벤토 | |
재위 기간 | 1038년 - 1050년(판둘프 3세와 협치) 1054년 - 1077년(판둘프 3세, 판둘프 4세와 협치) |
1. 개요
베네벤토 공국 25대이자 마지막 대공.2. 행적
판둘프 3세의 아들로, 1038년 아버지에 의해 베네벤토 공동 대공이 되었다. 1040년, 롬바르드족 출신의 아두인, 멜피의 토포테리파, 그리고 노르만 용병들은 세금을 가혹하게 뜯어내는 동로마 제국에 반기를 들기로 했다. 그들은 판둘프 3세의 동생인 아테눌프를 지도자로 선출했다. 남이탈리아인들에게 여전한 경외를 받는 베네벤토 공국의 일원이고, 실제로는 한미한 세력이니 자기들을 통제하려 들지 못하리라는 계산이었다. 1041년 9월 3일, 반란군은 이탈리아 속주 총독 엑사고스토스 보이오안네스를 사로잡고 베네벤토에 수감했다.그런데 1042년 2월, 아테눌프는 동로마 제국이 엑사고스토스의 몸값으로 지불한 돈을 가지고 그리스로 도망쳐 버렸다. 당시 노르만 용병대가 살레르노 공작 과이마르 4세에게 상당한 급료를 지불받아 점차 포섭되고 있었는데, 그는 이에 위협을 느끼고 달아났던 것으로 보인다. 노르만 용병대는 기껏 세웠던 지도자가 돈을 갖고 도망쳐버리자 아르이로스를 새 지도자로 선출했다. 아르이로스는 동로마군을 상대로 몇 차례 승리를 거두며 4년간 남이탈리아에서 세력을 굳히다가 1046년 콘스탄티노스 9세의 회유를 받아들여 제국에 귀순했다. 이렇듯 남부 이탈리아의 정세가 급격하게 변하는 동안, 판둘프 3세와 란둘프 6세 부자는 베네벤토 시에서 잠자코 지냈다.
1047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3세가 이탈리아로 진군하여 메초조르노를 장악했다. 이후 황후 푸아투의 아그네스와 함께 가르가노에 순례자로 방문하고자 했는데, 베네벤토 정부는 아그네스는 기꺼이 자기 영역을 통과하는 것을 받아들였지만 하인리히 3세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마음이 상한 황제는 군대를 동원해 베네벤토를 포위했고, 황제의 압력을 받은 교황 클레멘스 2세는 판둘프 3세와 란둘프 6세를 파문했다. 란둘프 6세는 보복을 받을 것을 우려해 아버지 판둘프 3세, 숙부 디우페리우스[1]와 함께 살레르노 공국으로 망명했다. 그러다 신성 로마 제국군이 베네벤토 공략에 실패하고 철수하자 베네벤토로 귀환했다.
1050년 교황 레오 9세가 가르가노를 순례하면서 판둘프 3세와 란둘프 6세의 파문을 재확인했다. 이에 베네벤토 시민들이 봉기를 일으켜 두 부자를 몰아내고 자치정부를 수립했다. 1051년 4월, 시민들은 교황에게 도시를 이끌어달라고 요청했고 교황은 7월 5일에 이를 수락하고 교황 특사 로돌포가 베네벤토를 관장하게 했다.
1053년 6월 치비타테 전투에서 참패한 레오 9세가 노르만인들에게 사로잡히자, 베네벤토인들은 판둘프 3세와 란둘프 6세를 도시에 불러들였다. 이리하여 복위에 성공했지만, 그들은 교황의 봉신을 자처하고 교황령에 상당한 공물을 바쳤다. 이후 1056년 아들 판둘프 4세를 공동 대공으로 세우고 수 년간 통치했다. 1059년 아버지가 은퇴한 뒤 베네벤토의 권력을 계승받았다.
이후의 행적은 1065년 교황 알렉산데르 2세로부터 "유대인의 개종을 강제로 얻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받았다는 것과 1071년 10월 교황에 선임된 그레고리오 7세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베네벤토 시민들의 권리를 존중하겠다고 약속하는 서신을 보낸 것 외에 전해지지 않는다. 1074년 아들 판둘프 4세가 몬테사르키오 전투에서 전사한 뒤 후계자를 두지 못한 채 1077년 11월 27일에 사망했다. 그의 죽음으로 남부 이탈리아에 수백 년간 군림했던 랑고바르드계 귀족의 지배는 끝났고, 베네벤토 시는 노르만계 지도자인 로베르 기스카르가 이끄는 아풀리아 공국에 귀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