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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2-16 23:03:28

딱신

태국 4대 대왕
수코타이 왕조 아유타야 왕조 톤부리 왕조 짜끄리 왕조
람캄행 나레수안 딱신 쭐랄롱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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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보롬마라차 4세
(딱신 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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톤부리 왕국 초대 국왕
딱신 대왕
ตากสินมหาราช | Taksin the Great
파일:Monument_of_King_Taksin_in_Wat_Kungtapao.jpg
딱신의 동상
출생 1734년 4월 17일
아유타야 왕국 아유타야
사망 1782년 4월 6일 (향년 48세)
톤부리 왕국 톤부리
재위 기간 시암 국왕
1767년 11월 6일 ~ 1782년 4월 6일
왕조 톤부리 왕조
전임 보롬마라차 3세
후임 라마 1세
(짜끄리 왕조)

1. 개요2. 생애

1. 개요

태국의 왕으로, 공식 왕호는 보롬마라차 4세 혹은 산펫 10세이나 흔히 딱신 대왕으로 불린다. 톤부리 왕조의 유일한 왕이기 때문에 '톤부리 왕'으로도 불린다.

태국의 역대 군주들 중 주목할 만한 업적으로 대왕의 칭호를 받은 4명의 군주를 4대 대왕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보롬마라차 4세도 태국의 독립을 이룩한 공을 인정받아 여기에 포함된다. 나머지는 동남아시아 전역에 타이족의 영향력을 떨치고, 타이 문자를 창제한 수코타이 왕조람캄행 대왕, 미얀마의 따웅우 왕조에게 점령되어 황폐화되어가던 와중에 군대를 모아 미얀마군을 격퇴하고 태국을 재건한 아유타야 왕조나레수안 대왕, 서구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균형 외교로 태국의 독립을 유지하고, 근대화에 공헌한 짜끄리 왕조라마 5세 쭐랄롱꼰 대왕이다.

딱신은 대표적인 태국의 명군이나, 순수 태국 혈통은 아니었다. 아버지 정용은 광동성 산두 출신의 중국인 상인이었고, 어머니 녹 양은 몬족 혈통의 태국 귀족이었으며 모계는 타이계 평민이었다.

톤부리 왕조의 개창자였으나 불행히도 단 1대에 그쳤다.

2. 생애

딱신은 아유타야 왕국 말기, 미얀마 꼰바웅 왕조의 제3대 왕 신뷰신의 군대에 의해 아유타야가 함락(1767년)되기 직전, 아유타야를 탈출하여 시암 동남부의 짠따부리로 피신해 그곳을 근거지로 삼은 뒤 반년 만에 아유타야를 탈환했다.

하지만 아유타야는 이미 초토화된 상태였고, 더이상 미얀마군을 막기에 적절하지 않아 수도를 현 방콕 서부인 톤부리로 옮겼다. 톤부리(방콕)는 17세기경 프랑스군이 주둔했을 때 요새를 만든 곳이었고, 아유타야에 비해 방어가 용이한 편이었으며, 해상으로 진출하기도 편리했다.

이런 이유로 딱신 대왕은 1768년에 톤부리를 수도로 정한 후, 옛 아유타야 왕국의 영역에 웅거한 모든 세력들을 통합했다. 1769년에는 태국 중부는 물론이고 캄보디아 서부까지 정복하는 등 빠르게 뻗어나갔고, 1774년부터는 북부의 미얀마 세력을 공격하기 시작하여 1776년 치앙마이 지역의 란나 왕국을 영구히 통합시키는 쾌거를 이뤘다.

딱신은 꼰바웅 왕조 미얀마의 공격을 물리치고, 옛 아유타야를 통합했으며, 라오스와 캄보디아를 다시 속국화시키고 비엔티안의 유명한 '에메랄드 불상'을 빼앗아 오는 등 큰 업적을 세웠으나, 안타깝게도 말년에 정신병에 걸려 부처를 자칭하고, 포악한 정치를 펼쳤다.

결국 폭정에 불만을 품게 된 세력이 반란을 일으켜 딱신은 강제로 구금되고 말았다. 그러나 사실 딱신은 미얀마의 공격에서 태국 국민들을 지키려고 희생한 군주였다. 한편 태국인이 아닌 신분이 낮은 중국계 모친을 둔 짜끄리는 차별의 대상이었으나, 전쟁 등의 혼란 속에서 신뢰를 얻은 그는 항상 딱신 왕을 배신할 준비를 해두고 있었다.

이 반란은 딱신의 맹우이자 그와 함께 정복전쟁을 펼치던 차오프라야 짜끄리가 이끄는 군대에 의해 정리되었으나 진압이라고 하기에는 반란 세력과 너무 얽혀 있었다. 이윽고 그가 새로운 왕 라마 1세로 즉위하고 짜끄리 왕조를 개창했다. 한편 유폐되어 있었던 딱신은 반란 와중에 살해당했다.